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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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간결한 문장은 어딘지 아픈 구석이 있다.

화려한 문체와 심오한 철학이 없어도(물론 작가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당연하고 심플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독서.

국외자로서, 추방자로서, 사유하는 자로서 평생을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이 살아왔다면 모든 미사여구들이 증발할 것만 같아, 작가의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의 작품들 중 덜 문학적이었다고 자평했다는데, 그 말에는 쉽게 수긍할 수는 없겠다. 이미 그녀의 삶이 넘치도록 문학적인 장치들로 가득하니까.

나는 네 살이다. 전쟁이 막 시작됐다. - 9

책의 내용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네’는 정말 ‘네’이지만, 죽음에 대한 ‘네’이고, 그러니까 삶에 대한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 63

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나는 그것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문자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감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 조용한 도서실의 한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활자들은 일렁이는 물결처럼 내 안을 흔들어놓았고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와 나의 조그만 세계를 여지없이 부수었다. - 116

2018.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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