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쉽지만은 않다. 그저 무슬림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주인공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잊은듯 심도있는 내면의 독백과 주변에 대한 관찰과 사색은 잠시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6.25때 참전 용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귀국하지 않고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하는 무슬림이라니.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하산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몸에는 흉터와 마음에는 상처투성이인 '나'는 고아원을 나온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하산 아저씨가 주인공 '나'를 입양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지만, 끝까지 그 사연이 밝혀지지는 않는다.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가난한 동네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처럼 모든 것을 넉넉히 품어내는 안나아주머니의 충남식당이 있고, 하산아저씨와 친구인지 웬수인지 모를 그리스사람 야모스 아저씨가 산다. 퇴역군인으로 아직도 전쟁중인 대머리 아저씨와 말더듬이 유정, 그리고 고양이와 교감하는 맹랑한 녀석이 있다. 어찌보면 경쟁사회의 낙오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삶은 답답하고 어렵지만, 그들이 보내는 유머는 촌철살인이다. 그들은 동네의 어려운 사람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돕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화해한다. 말이 없는 하산 아저씨의 어두운 기억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의 어떤 것이 이 낯선 나라에서 그들의 신이 금하는 것을 다루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한 것일까. 또 서술자 '나'는 어떤 인생의 굴곡에서 그 자리에 도착한 것일까? 많은 의문만이 자리잡지만, '나'와 유정, 혹은 맹랑한 녀석의 깊이있는 대화는 생의 어떤 비밀을 알고있는 어른들의 대화와 다르지 않다. 작가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을까? " .......신은 네 안에서 잔다. 신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단다.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지. " " 어떻게 해야 눈이 부셔 일어날까요? " " 네 영혼을 닦아야지. 마룻바닥을 닦듯 거울을 닦듯 한 점 빛이라도 태양처럼 반사시킬 수 있도록 깨끗하게 닦아야지. " 본문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