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 공동체 의식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현정 옮김 / 디이니셔티브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12 투게더 Together, 울리히 슈나벨 Ulrich Schnabel 저, 2024 ★★★★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책! 더군다나 요즘의 시대를 비판하는 “공동체 의식”을 생물학적으로 타당함을 입증하는 책! 색다른 시선임.
(리뷰 전문은 프로필 링크나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374457939)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 모르나 독일을 비롯한 유럽 출판계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상당히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독일의 최대 정론지 “디 차이트 Die Zeit”의 과학 분야 편집인이자 작가로서 천체물리부터 뇌과학, 생물학, 심리학, 인공 지능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남긴 인기 작가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게오르크 폰 홀츠브링크 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보유한 중견 작가이다.

슈나벨은 그동안 일관되게 인간의 뇌와 의식에 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번 신작 “투게더”에서는 그 의식 중 “공동체 의식”, 즉 공존하고자 하는 의식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한다. 얼핏보면 인문학 책과 잘 구별되지 않는 주제들 가운데, 과학 저널리스트 답게 적절한 과학적 근거들로 뒷받침하여 독자들에게 왜 공동체 의식이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역설力說 하고, 나아가 “이기적 유전자”로 대표되는 생존 투쟁의 본능이 잘못된 오역임을 설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 세줄 요약평.
1. 인간은 생태학적으로 이기적이며 동시에 이타적이다.
2. 인간의 두 양면 중 어떤 면이 우선하는가는 즉각 처해진 상황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문화)적 요인에 좌우된다.
3. 인간의 행위 양식의 “전염성”은 놀라운 것이므로 우리가 이를 긍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도나 연대가 필요하다.

#투게더 #울리히슈나벨 #투게더디이니셔티브 #공동체의식
#인류학 #생태학 #경제
#책리뷰 #책추천 #서평 #도서리뷰 #서평단모집 #도서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shorts 101-24-11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Ed Conway 저, 2024 ★★★★☆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와 콜라보한 서평 이벤트 당첨! ㅋ
이 책 “물질의 세계” 재미있음! 쉽고 흥미진진한 산업의 세계!
(자세한 풀 리뷰는 아래 블로그 참조바람.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371658931)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에드 콘웨이 Ed Conway 는 이미 “당신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 경제학 아이디어”라는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알려진 경제 컬럼니스트이다. 이 양반의 과거 행보를 잠깐 들여다보면 그동안 영국 뉴스 채널인 스카이뉴스 SkyNEWS 의 경제 전문기자이자 “더 타임스”, “선데이타임스”의 경제 칼럼란에 기고하는 중견 베테랑 기자이며, 경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출신 답게 “경제”적 인사이트에서 바라보는 저서를 기획하고 저술해왔다. - 그리고 이 책은 발간 즉시, 그의 두번째 베스트셀러가 된다. -

저자는 이 책에서 경제적 관점보다는 “역사”적 관점에 좀더 치중하여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금 우리의 일상 생활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많은 요소들 중에 여섯 가지 -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튭 - 물질을 선정하여 이에 대한 역사적 고찰, 기술적 담론들을 현장감있게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세줄 요약평.
1. 산업 사회에서 “물질”은 매우 필수적이다.
2. 오로지 드러나는 물질만 중요한게 아니라, 인프라 산업의 물질이 훨씬 더 중요하고 절대적이다.
3. 인프라 산업의 물질을 둘러싼 인간의 역사와 갈등은 앞으로도 다 심각할 것이다. (환경문제까지)

#물질의세계 #인플루엔셜 #지구본연구소
#경제 #경제사 #과학 #기술
#책추천 #책리뷰 #도서추천 #도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디터 람스 지음, 최다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10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디터 람스 Dieter Rams , 2024 ★★★★✮

 

*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공식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디자인 Design : 실용성이 있으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의상이나 제품작품건축물 등을 설계하거나 도안하는 일.

(다음-고려대 사전)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디자인이란 말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흔히들 멋진 건물이나 실내에 오면 의례적으로 디자인이 멋지네!”라고 감탄사를 내뱉는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학자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 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기표 記標 와 기의 記意 사이의 어떤 동적 관계 아니던가..즉 그것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활용하는 가도 중요한 언어의 측면이다.

 

따라서 디자인의 원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앞서 언급한 정의가 나온다.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말의 일종으로 우리가 쓰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수긍이 된다. 그런데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서두의 실용성이 있으면서..”라는 문구가 포착된다! - 내가 문제를 삼는 지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실로 미를 다루는 우리 인간의 수많은 행위 양식 중 디자인은 비교적 어린 편에 속한다. 과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이론가 란칠로티 Francesco Lancilotti가 공방의 장인匠人 들의 결과물들을 평가하며 쓴 대목이 그나마 기록에 보이는 거의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본격적으로 디자인이 대두된 건 산업혁명의 시기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상품이라는 가치가 전복되었을 때 이 디자인 또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소위 상품으로서 경쟁력의 한 측면에서 디자인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보기 좋고, 가격에 합당한 외양을 어떻게 (값싸게) 만들것인가가 생산시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기 시작한다. 이후 산업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더욱 디자인에 대한 수요는 커져만 가고, 급기야 디자인자체에 대한 미학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전설의 바우하우스 Bauhaus”로 대표되는 일련의 흐름이다! - 이거도 독일이네. -

 

그 당시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 Modernism 양식의 실제 구현을 어떻게 할까에 관심이 있는 일군의 예술가들이었고, 이에 동조하는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많은 이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된다. - 그리고 그걸 나치 Nazi 가 한방에 박살낸다. -

 

그러나 한번 터진 봇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이 혁신적인 양반들은 뿔뿔이 흩어져 오히려 예술계와 산업계 전반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씨앗삼아 퍼트리고 그 유산은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축이나 실내, 그리고 상품에 이르기까지 소위 산업디자인 Industrial Design 은 이런 맥락으로 이어져 옴을 알 수 있다. - 거의 그 끝자락에 애플 Apple 을 놓으면 맞을 듯. -

 

 

이후 이 바우하우스의 유산은 곳곳에서 확인되는바, 오늘 살펴볼 독일의 브라운 Braun - 여러분이 전기면도기로 아는 그 브라운 맞다. - 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 Dieter Rams 의 신화는 시작된다!

 

2. 저자의 의도.


디터 람스는 당시 이미 기반을 가지고 있던 독일 가전회사 브라운의 2세대부터 등장한다. 당시 창업자였던 막스 브라운의 사후 , 두 아들이 승계하는데 이 양반들이 지금의 브라운을 규정짓게할 디자인철학을 표방하면서 디터 람스는 그 집행자의 역활을 부여받게 된다. 그 이후 브라운은 전기면도기를 포함한 기존의 사업영역에서 생활가전(주방), 음향가전, 전문가용 기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면 일대 혁신을 불러오게 된다. - 그의 대표작 휴대용 라디오 T3, T31, T4, T41, 턴테이블 P1은 지금 내놔도 팔릴만하다! (사진참조) -

 

명성을 드높이던 디터 람스는 마치 요즘 패션-명품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의 역활을 맏아, 자신만의 팀으로 매 제품들을 자신만의 감각을 담아 디렉팅했고 무수히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이후 디터 람스는 함부르크 미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연구를 하는 한편, 자신의 영역을 가전제품에서 벗어나 가구, 실내 인테리어 등 그야말로 생활 전반으로 확장하여 어엿한 아티스트로 자리잡고 그렇게 전설로 남았다. 이 책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은 본인이 현재까지 남긴 유일한 책이며, 자신의 일부였던 브라운에서의 그동안의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일종의 회고집 Restopective”의 성격을 가지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의 명성을 드높인 많은 작품들과 일화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디자인 철학에 관한 단편들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우리의 눈 앞에 펼쳐놓는다. - 역시나 아티스트답게 화보 구성이다. -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은 회고전의 성격이 강한 책이므로 그의 발자취를 담은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지금 내놓아도 당장 살것같은 그 작품들은 가히 이 양반이 괜히 전설로 남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쟁이(디자이너)에게는 말이 필요없다. 그의 작품이야말로 모든 걸 담고 있는 그의 분신이니 나 역시 글로써 그를 그리기 보다는 독자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그의 작품들을 올려본다. (사진참조)

 

어떤가? 지금봐도 전율이 오는 모더니즘의 미학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의 제목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은 단순히 이 책의 제목인 수사修辭 가 아니라 모더니즘의 핵심을 담은 문구이다. 바우하우스의 시절에도 그랬고, 디터 람스 또한 충실한 그 계승자로서 단순함의 미학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그 결과물들의 향연饗宴 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또한 이미 이 업계(디자인)의 선수들에게 십계명처럼 참고하는 디자인 철학을 책에서도 자랑스럽게 명시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작고한 애플 Apple 의 간판 고스티브 잡스 Steve Jobs도 이 좌우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으며, 공공연히 애플 자신들의 제품에 적용하여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어찌보면 아이포드 i-Pod, 아이팟 i-Pot, 그리고 아이폰 i-Phone 은 모두 람스의 손자들 뻘이다! )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미적이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거슬리지 않는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간다.

8. 좋은 디자인은 사소한 부분 하나에까지 철저하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이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 십계명)

더군다나 책에 간간히 나오는 디자인에 대한 람스의 멘트들은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분명히 참고해야할 아젠다 Agenda 를 여전히 담고 있다따라서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의 관심사를 가지는 독자들은 이 양반의 책에서 영감靈感 을 받을만하다고 자부한다. - 결과물들이 너무 좋으니ㅋ -


마지막으로 그가 이 모든 걸 가능케했던 든든한 후원자, 브라운 형제와의 관계가 보이는 대목이 보인다. 사실 디터 람스의 이러한 거장으로서 성공 뒤에는 그의 철학을 공감하고, 묵묵히 지지해준 브라운 형제의 공도 있다하겠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주가 좋아도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은 무로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디터의 안목과 철학을 지지해준 덕분에 브라운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지금도 당신의 집에 면도기, 전동 칫솔, 백색 가전들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것이다! - 이런 리더쉽은 오늘날 더욱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

 

4. 아쉬운 부분.

 

그의 작품은 워낙 단순하고, 또한 고도로 기능성을 은근강조한 디자인이라 군더더기가 없다. - 이것이 그의 디자인이 영속성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 오죽하면 애플이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들의 해답을 그에게 찾았을까..- 여기까지는 찬양의 시간. -



그러나 바로 이 단순함의 미학이 역설적으로 그의 최대 단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말해 그 단순함의 미학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심심하고, 허전하며 그 비어있음을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백컨데 나는 일정한 양식미 樣式美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특히 바로크 양식이나 벨에포크 양식을 좋아한다.) , 나와 같은 양식미를 좋아하는 대중에게는 모더니즘의 결과물들은 밋밋하거나 그 안에 담겨있는 장인의 혼을 느끼지 못한다. - 이건 취향의 문제이다. - 따라서 단순한 상품 Product”으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또한 앞서 소개했던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디자인, 특히 산업 디자인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상품성에 기인한다. , 생산하기 쉬워야하며,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큰 무리없이 어필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극단적인 모더니즘의 제품에서도 보듯이 몰개성 沒個性적이고 예술가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 익명성 匿名性이 오히려 산업 디자인에서는 미덕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제품의 측면이 강한 양식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미학이라는 것이 정당화가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더욱이 최근의 디지털 환경에서의 비인간적 도구화의 냄새마져 느끼게 된다! 다시말해 잘못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인간적 감수성,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딱딱한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디자인 십계명의 한계 지점이 여기서 또 다시 드러난다. 최소한의 미덕, 기능성의 극단화는 우리가 인간적이라 믿는 어떤 감성들을 담아내기에는 그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의 획일성을 문제삼는 사상, 즉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 의 반격이 예견된다. 그리고 이미 다수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 하다.

- 디터의 디자인조차 시간이 지나면 “양식의 권력”을 가지며, 이를 극복하려는 태도는 당연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

 

5. 나오며..

 

이제 다시 내가 서두에서 문제를 삼았던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디자인의 역사에서 상업성은 그 내재된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해주고, 이젠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지경인데 과연 여기에 미학 美學이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 이는 디자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학이라는 영역의 내재된 문제로 보인다. -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양반은 그 유명한 앤디 워홀 Andy Warhole 이다. 이른바 워홀이 주창한 팝아트 Pop-Art”의 캐치 프레이즈는 상업 디자인도 충분히 미적 요소로서 기능함을 입증해 내었다라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의의는 과거 칸트 Immanuel Kant 시절부터 시작된 미학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서 결국엔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희미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각인시킨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디자인 = 미적감수성이라는 보다 포괄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봐야 이 현상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형된 의미로 우리는 일상에서 디자인 괜찮네..”라는 멘트를 사용한다. 이쯤되면 무엇이 과연 디자인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잘 정제된 디자인에서 여전히 어떤 심미안審美眼 을 느끼지 않는가! - 그러니 당신들이 애플폰을 그 돈을 주고 사지 않나. -


그러므로 우리는 디자인에 미학이 있다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다만 그게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미학인지는 따져볼 문제이지만, 어쨋든 그와 같은 단어를 부여하여 이해를 해도 인간의 유구한 미적 행위에 부합하는 한 쟝르로 마땅히 편입되어야 함은 굳이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리고 그 행위 양식의 변천사에 큰 족적을 남긴 디터 람스는 우리에게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고, 충분히 그 자격이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그의 이 책이 그 증거일테니 말이다.

 

우리 인류에게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그의 업적은 앞으로도 또 하나의 영감으로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디터 람스에게 경의를 표한다..그의 작품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Long live the King !

 

#디터람스 #디터람스책 #디터람스브라운 #위즈덤하우스 

#최소한그러나더나은 #디자인 #바우하우스 #애플 #책리뷰 #책추천

#서평 #도서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09 컬처 culture 문화로 쓴 세계사, 마틴 푸크너 Martin Puchner , 2024 ★★★★✮


*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공식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들어가기 앞서..) 

* 이 글은 저자의 견해를, 제가 현대 생물학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각색한 글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 들어가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말, 2024년 대한민국 서울의 젊음의 거리인 홍대입구는 청춘들로 붐빈다. 웃고 떠들며 서로 반기는 사람들의 표정과 흥청거리는 분위기는 지난 4년간의 - 20201월을 공식적인 발병시점으로 잡는다면 - 우리의 삶이 무너지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짐을 느껴지게 한다. 언제 그랬냐는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COVID-19” 바이러스는 잊혀진 것 같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아냈다늘 그렇듯이.” 극복했고, 누군가는 지난 4년간의 우리의 싸움을 정리하고 있다.


우린 이번 사태로 무엇을 배웠는가?

 

먼저 생각보다 우린 서로 얽혀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유행성 질병은 단지 어느 한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확산될만큼 빠르고, 다양하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그 질병의 공포의 양상마져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모습마저 -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 - 우리는 실제로 경험했다. (여기까지는 인문학적의의일 것이다.)

 

또 하나는 과학의 영역에서 다시 한 번 시각 Dogma”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 지난 70년대에 우리가 기어코 발견한 유전자의 핵심, “DNA” 중심의 생물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드디어 “RNA” 의 역활을 주목하고 이를 활용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 우리의 구세주 m-RNA 백신! -




 

여기서 잠깐 과학적 지식을 점검해보자.

 

위에선 언급한 RNA의 역활을 주목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사실 우리는 수 억년 전부터, 초기의 세포細胞 Cell가 탄생한 이래로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맞서왔다그것이 환경적 요인이던외부 침입자에 의해서이던 생존生存 의 투쟁은 늘 있어왔다생물(세포)이 살고자하는 그 의지는 가히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들며다양한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 그 와중에 극복을 못한 것들은 지금 우리 곁에 없다. - 특히 외부 침입자에 의한 대응책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을 무장하는 면역체계 Immune System 의 발생과 발전이다! 외부 침입자의 색출과 대응, 그리고 퇴치까지 나름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 왔으며 이는 우리의 DNA에 이미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 생존경쟁 - 외부 침입자와 이를 막는 객체사이의 - 은 마치 우리의 전쟁처럼 대응과 맞대응으로 치열하게 점철된다. 이 끊임없는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세포는 과거의 적들에 대한 정보와 대응책을 마치 도서관에 기록을 저장하듯, 자신의 DNA와 미토콘드리아 Mitochondria에 새겨넣는다! - 그리고 죽으면서 대대로 자손들에게 이 긴요한 정보를 넘겨준다. DNA와 같이 말이다. -

 

 

여기까진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교 일반생물학의 수준 지식이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이다그러면 이번 코로나 사태의 변화는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기존의 라이브러리격인 DNA보다 실제 면역물질을 발현하고 대응하는 RNA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도서관(DNA)에 책이 있어도 그 책을 어디서, 어떻게 꺼내 쓰느냐가 진짜 문제였는데, COVID-19 바이러스라는 희대의 강적에 맞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RNA) 성공한 것이다. - 그 결과 당신이 지금 살아서 이 글을 보고 있는 것이다. -



여기까지 보면 자연의 신비란 대단하면서도, 그 피비린내나는 투쟁의 역사는 가히 스펙터클의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선대의 이 귀중한 전쟁 경험을 세포분자의 레벨에서 기록해놓고, 전수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끔찍한 투쟁을 매번 반복해야 할 것이며, 어쩌면 절멸絶滅 의 순간에도 다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해도 아찔한 이 위험을 우리는 이렇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극복해왔다. 기록이라는 신의 한수로 말이다!

 



그렇다..이처럼 경험과 지식의 전수는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에 있어서 더없이 유리한 지점을 제공하는 전략인 것이다. 이는 생물학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사의 전반에 걸쳐 무수히 관찰되는 위대한 전략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문제를 놓고 계속 고민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인류가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반복될 지적 생명체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종족 특성이기도 한 이 기록, 특히 문화文化 의 기록은 늘 존재해왔다. - 남겨져서 발견하냐, 못 하냐의 문제이지 남기지 않은 적은 없다고 본다. - 적어도 문화란 단어가 인간의 모든 행위 양식을 통칭한다를 사전적 의미를 곱씹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자신의 흔적을 남길려는 것은 어찌보면 세포 주준에서조차 볼 수 있는 생존 - 사후에도 - 의 욕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행위에서 이 문화의 역사는 가장 좋은 주제가 아닐까 싶다.

 

2. 저자의 의도.

 



여기 또 하나의 문화사에 대한 신간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이 책의 저자 마틴 푸크너 Martin Puchner 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지 몰라도, 인문학 쪽에서는 꽤 유명인사이다. 현재 미국 하버드 Harvard 대학교에서 영문학/비교문학 교수에 재직하고 있으며, 저명한 시리즈 노튼 세계 문학 전집 Norton Anthology of World Literature”의 주 편집위원이였다. 이외에도 문학 역사에 대한 다수의 명저들을 집필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구겐하임 펠로쉽(2017)과 훔볼트상(2021)을 수상하였다.

 

그런 푸크너가 또다시 신작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를 내며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 전공인 문학만을 다루지 않으며, “문화라는 거대한 정의에 맞게 다양한 인간의 행위 양식 - 예술작품, 건축, 종교, 과학 등 - 의 보존과 전달에 이르는 서사를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다양성의 시대에 맞게 서양의 그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동양과 제 3세계까지 아우르는 대장정大長程 을 표방하면서 말이다. - 우리 한국도 언급한다! - 따라서 독자들은 이번 신작을 통해 유구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듯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앞서 도입부에서 지적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분자생물학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 이입하여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역사에 남겨진 많은 기록들은 그 고귀함과 미지의 힘과는 상관없이, 우리 인류가 그 당시의 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그 기나긴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모든 그간의 투쟁의 기록을 우리 세포 DNA에 기록하듯이 말이다.



그 모습은 알타미라 Altamira의 동굴 벽화로 신성함을 공유하고 의식의 하나로 - 또는 인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신에게 묻기 위해 - 남겼을 수도 있다. 때로는 고대 페르시아 왕들의 광활한 제국의 치세治世 를 위한 지혜의 창고 Summa”의 모습을 띄기도 하였으며, 이제는 과학의 힘을 빌려 그 안에서 우주 Meta-verse”를 창조했노라고 선언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의외로 단순한 질문 하나가 깔려 외양만 바꿔서 흘러내려 온것이 내 눈에는 선하다.

 우리는 무엇이고어디로 가는가?

 The Question over the Ages.. by FATMAN 

현대에 와서 몇몇 의심되는 증거들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는 존제라는 것이다! 결국 책에서 다루는 그 수많은 문화적 사례들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그동안의 우리의 여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생존의 투쟁을 지나, 자연을 정복하고, 나아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양상은 늘 지속되어 왔다. - 이제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관심을 돌린 지 꽤 되고, 조만간 다른 행성으로 직접 가려는 시도의 첫 걸음마까지..-

 


이 모든 행위양식(문화) 안에는 저 단순한 지적 호기심 - 그러나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ㅋ - 의 산물이자, 그 과시내지는 도전이 우리의 많은 것들을 정의해 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이 책은 다원화多元化 된 최근 학계의 시각을 반영하듯 동서양, 3세계까지 균형있게 조명을 한다. 특히 서양학자라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설명, 일본 문학과 미술에 대한 세밀한 당대의 정치적 해석, 그리고 남미의 고대 아즈텍 문명이나 아프리카의 근대 문화를 통해 이러한 문화 양식이 결코 어느 한쪽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다. -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가깝다. -



또한 저자는 더 나아가 문화의 약탈적 편입, 또는 자발적 계승이라는 상반된 양상을 반영하듯 그렇게 문화의 다양한 흐름의 역사를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것은 단지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 세포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교류의 양상과도 매우 동일하다. 생존을 위해 바이러스는 낯선 타 세포라는 환경에 서슴없이 침투하고, 생존을 위해 갖은 노력과 기제機制 를 동원하는가 하면, 방어하는 세포의 입장에서는 순응하는 바이러스를 때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영입하고 보존하기도 한다!

 - 이런 두 유사성을 의식하듯 문화 바이러스란 용어가 아예 존재하기도 한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여겨 볼 것은 이른바 고전 古典에 대한 조명을 반드시 들고 싶다. 고전은 끊임없이 맑은 물을 뱉어내는 샘물처럼 우리에게 영원한 영감靈感 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비단 그리스 로마 고전 뿐만아니라 중세 시대의 기사도 이야기, 근대의 과학적 사고와 계몽주의적 소설들, 그리고 현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자랑할만한 유산들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세월의 풍파를 이리도 견뎌온 작품들이니 더욱 그러하다. -

 

그러나 디지털 혁명 이후 고전, 특히 문학 쪽의 변화(쇠퇴?)는 우려되는 수준이다. 이른바 문해력을 시험을 통해서라도 유지하고 싶은 욕망들이 존재할 정도로 기존 텍스트 위주의 서사 구조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무너져 가고 있다. 그 공백을 영상 매체 내지는 인터랙티브 서사(게임)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으며 그 추이는 막을 수 없다고 보인다. - 재미있고 돈되는 것들 앞에 장사없다. -

 

다만 그러한 새로운 대안 매체들도 결국 원초적 창조는 불가능하다. 다시말해 자신들의 서사 구조를 어디선가 빌려와야 하는데, 그 원천은 여전히 기존 텍스트에서 차용하는 것이란 말이다. 따라서 그 근원을 이해하고, 보다 더 창조적으로 서사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후세대에게 지속적으로 고전을 기록하고 알려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인 푸크너 교수는 이 점을 고려해서 다양한 고전들을 재조명하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 고전에 대한 따분한 선입견을 버리고, 저자가 추천하는 고전들 보시길 권한다. 재밌다. -

 

4. 아쉬운 부분.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그렇게 잘 보이지는 않는다. 먼 고대부터 시작하여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의 시간 흐름에 따라 안배를 잘 했으며, 그 와중에 세계관들의 균형 감각마저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는 구성이다. 게다가 각 에피소드의 분량 또한 현대 독자들의 호흡에 맞게 다듬은 티가 역력하니 두께에 비해 꽤나 가독성이 좋을 것이다. - 벽돌책이라고 쫄지 마시라. -



다만 문학 교수로서 그 한계는 보이는 지점이 있다. 현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온라인 강의로도 외부와의 강연을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주 전공 분야인 문학이외의 분야의 - 예를 들어, 미술, 건축, 음악 등 - 에피소드는 문학을 다루는 분량보다 현저히 작다. 아마도 전문가적 입장(학자)에서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까지 거론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텍스트 위주의 서사에 정통한 학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자긍심의 발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위의 사진같은 유물들의 소개 사진이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들은 비교적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지에 좀더 익숙한 독자들은 처음엔 페이지를 가득채운 깨알같은텍스트의 분량에 질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하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 그래도 영미권 작가들이 명료한 글을 잘 쓰는 편이다. 대륙권(유럽)의 작가들은 정말 난해한 작가들 널리고 널렸다! -

 

5. 나오며..


잠시 언급했듯이, 이른바 문해력의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현재 세대의 독서를 위해 출판사는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는 중인듯 하다. 이번 서평을 위해 특별히 필사의 가이드 메모와 발제문 發題文형식의 독서카드를 친히 보내왔다. - 못 미더우니 이거 가지고 읽어 보라는게지. -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예 이걸 따로 책과 함께 포함해서 판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라는 긍적적 시도의 평을 내리고 싶다. (아니면 적어도 홈페이지에 홍보용 자료 내지는 참고 자료로 올려주는 방안도 괜찮을듯 하다.)

 

의외로 초보 독서가들에게 이와 같은 인문학 도서들은 진입 장벽이 꽤 존재한다. 읽고 싶어도 분량이 부담되거나, 저자의 주제의식으로 가는 경로가 꽤나 험난한 도서들이 대량으로 존재한다. - 소위 무자비한 책들.- 과거에야 지성인이라면..” 내지는 필독 도서라는 사회적 인식이 저변에 깔린 상태라 이악물고 보는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그 환경이 격변에 가까울 정도로 바뀌었다. 더군다나 대체할 매체가 차고 넘친다는 환경적 변화 요인도 존재한다. 이미 상당수의 독자들이나 잠재적 독자들은 그런 식의 서사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며 한탄하는 것보다는 변화된 세대에 맞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시도는 좋아보인다.

  

끝으로, 푸크너 교수의 인류 문화사, 특히 고전에 대한 애정은 간만에 느끼는 흥미로움이었다. - 누가 고전주의자 아니랄까봐! - 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 나온 문헌들과 고전들을 접해본다면 좀더 우리 인류의 문명 그리고 발전에 대한 서사를 한 단계 높이는데 충실한 텍스트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누군가 나서서 과거의 유산을 기록하고 소개해야 하는 입장에서 기꺼이 그 역활을 자임한 푸크너 교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독자들의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원한다.



#푸크너 #역사 #문화 #문명 #세계사 #어크로스출판사 

#책추천 #책리뷰 #서평 #도서추천 #신간도서 @across_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논객 - 우리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07 도시논객, 서현 저, 2024 ★★★★☆


*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공식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우리에게 인문학 人文學 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단어의 정의말고, 우리가 실제로 지금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 정의말이다. 한 잔의 커피 옆에 펼쳐놓은 책 한 권,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보는 멋진 그림 한 점? 아니면 SNS에서 오늘도 쏟아지는 “인문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 눈을 아프게하는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 그 중 진짜 인문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차치하고. -

 

물론 저 행위 양식 안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흔적이 있다. 그러나 무언가 저 이미지만으로 인문학을 말한다면 당신은 2%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 200% 일수도. ㅋ -

 

 

인문학을 언어적으로 풀어보면 “Humanities, Humanitas (라틴어)” 이다. 이를 우리 말로 풀어보면 인간에 대한 “모든 것”, 인간 중심의 사고에 기초한 행위 양식을 총칭하는 뜻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이미지도 충분히 해당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주변을 바라볼 때, “우리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에 답을 하는 것이라 보면 적절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하면 더 좋고. -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한계가 없다고 했을 때, 가능한 모든 것은 인문학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유구한 인류의 역사 이래로 셀 수 없이 많은 서적과 흔적들이 다 그러하다. 그리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장소 Place”도 그 시선을 피해갈 수 없다. 아니, 더더욱 그래야만 한다!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네 삶은 꽤나 주변에 흔적을 남긴다.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간다”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것도 없으니까 주변 자연을 변형하여 우리 스스로를 살아가게끔 하고, 죽을 때는 그동안의 모든 것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니 일생 내내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무언가를 생산하며 그 흔적을 반드시 남기게 된다.- 이게 성립하니 고고학 考古學이 존재하는거 아닌가. ㅋ -

 

 

따라서 우리 주변, 즉 장소들에 대한 고찰(인문학)은 늘 있어왔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도시 都市“도 피해갈 수 없다!

- 오히려 이 거대 도시 Metropolis 야말로 인류 문명의 도서관이다. -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이 책, “도시논객” 또한 그 대오 隊伍에 합류하는 작품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 서현 서울대 교수는 이미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빨간도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로 잘 알려진 건축가이다. 대중들에게 다가가는걸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타 한국 교수들하고 다르게, 일찍부터 꾸준히 신문 칼럼에 인문학적 건축 글을 기고하며 위에 말한 책으로 대중들로부터 그 응답을 받은 학자이다.

- 방송을 잘 안타서 그렇지, 오래 전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시던 분임. -

 

 

이번 신간은 그의 계속된 여정 와중에 현재 표류하고 있는 이 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을 “도시”를 매개로 비판하며 쓴 작품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위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인 이 대한민국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며, 마음에 있는 하고픈 말을 담은 책이란 말이다. - 도데체 무엇을 향해서?.. -

 

 

우리를 비판하는 책이야 한 가득 나오고 있지만, 서현 교수는 그 중에서도 도시를 매개로 날카로운 성찰을 보이는 일련의 그룹에 속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발전국가”라는 국가 아젠다로 피폐해진 한국의 삶을 재조명하며, 급기야 “부동산”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신음하는 우리들을 각성시키고 나아가 “성과 지상주의”의 이 폐해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 도데체 언제쯤 가야 우리는 잘 산다고 말할거니? -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이 책의 최대 미덕은 그의 시선을 공유하며 “눈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된다. 그것은 유희遊戱적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치를 일깨우는 “불편함”에 가깝다.

“도시의 투전판 전략”.. “일회용품 도시”.. “땡전 없는 시대와 청와대”.. “부채 의식 없는 건축”..

도시논객 中

단지 의례적인 비판이 아니라, 삶의 실천 속에서 나오는 그의 생각과 가치에 의해 나오는 당연한 이 불편함은 우리에게 무언가 울림을 준다. 우리가 매일 보고,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것들속에 너무도 많이 우리의 “가치관이 쇠퇴함”을 우리도 모르게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이미지(사진)”으로 우리가 목격하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동의한다.

- 솔직히 나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프로불편러. ㅋ -


 

그리고 이 책은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straight 한 매력이 있다. 통상 학자들은 그 특유의 현학적 자세때문에 그들의 발언이 우리에게는 유약하거나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 앞선 제 자기계발 글 참조 - 그러나 서현 교수는 있는 그대로 직선적으로 다가간다. 때로는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어떤 면이라도 그는 그냥 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내면 속에 담고만 사는 - 그래서 병이 되는 - 지점을 끄집어내어 모두가 바라보고 같이 고민하며 치유하길 바란다.

- 이 부분은 동양권 문화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그냥 덮어놓고 가는 망각의 해법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망쳐왔는가! -

“(태극기 부대)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아우성. 태극기와 성조기는 이해하겠으나 이스라엘 국기는 생경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봐도 생경할 일이다”

 

“흰 눈 위의 불평등”

 

“용산으로 이주한 대통령 집무실. 이주 초기에는 근접 접근이 허용되었으나 다시 겹겹이 담장이 설치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지하철의 경로석 풍경) 나이에 근거한 자신감이 없으면 이 자리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

도시논객 中

때로는 냉소를 지나 불편함에 이를 수도 있음에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부분은 바로 “인간에 대한 따스한 성찰”일 것이다! (이거 없으면 욕 좀 먹을수도)

 

“(한강 복판의 노들섬) 강으로 둘러싸인 저 공간을 다중 이용 공간으로 만들려면 도시의 희소재인 섬의 가치를 버려야 한다. 그곳에 섬이 있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 옳다.”

 

“한국 전쟁 피난 시절의 기억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한 부산. 저 계단을 오르내린 기억들까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도시논객 中

이처럼 “모두까기”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지적이며 비판이기에 그 날카로움이 아프지 않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물론 저 지적이 일개 이상주의 학자의 주장이나 세상 물정모르는 동키호테같은 선비의 그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사람의 가치를 배제하지 않는다. 단지 “장소”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치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현 교수의 불편함은 그 진정성에서 기꺼이 용인해줄 수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서현 교수한테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 속시원히 하고 싶은말 다하시고, 그것도 친히 “사진”까지 첨부해서 기록하니 말이다. 굳이 들자면 지면의 분량 제한으로 아마 전부 다는 말 못한 점? 정도는 들 수 있겠다. ㅋ

오히려 아쉬운 점은 바로 “우리들”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옛 건물들이나 그 이전 시대의 유적들에 대해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폭력적인 현대 도시의 군림”이다!


 

오로지 개발 이익(땅값), 상권, 임대료, 부동산 가치에 함몰되어 정작 그 안에 살아가고, 기억(추억)을 가지고 사는 이들의 생각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 폭력성 말이다.

주변 경관과의 부조화는 애교 수준이고, 역사고 뭐고 간에 일단 돈이 되어야한다는 약탈적 행태는 이 땅에서 끊이지 않는다. 나는 개발을 반대하는 박제주의자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필요하면 개발을 하고, 때론 새출발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오로지 개발만을 부르짖는다면 정작 우리를 위한 개발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다. - 건물을 위해 우리가 사는 건 아니다. - 때론 어떤 건 그냥 놔두어야 그 의미가 있다. (적어도 부득이한 경우 최소한 기존과의 조화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또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근대 건축물들, 특히 일제시대때라는 라벨이 붙은 자취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거냐 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비단 지금은 사라져버린 “중앙청” 철거논란 뿐만 아니라, 구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의 향후 거취 논란이다.

 

 

개인적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우리 나라가 최초로 개항한 곳 인근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 서양식(일제식) 건물들이 낯설지 않고, 게다가 나름의 미가 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에서… 지금도 가끔 옛 추억에 그 동네를 가면 반절이나마 아직 그 건물들이 남아있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내 주관적으로 겉으로 뻔지르르하게 유리로 도배하고, 번쩍거리며 위용을 자랑하는 요즘의 건물보다 백 배이상의 미학을 느낀다. - 일제 찬양이 아니다! -




더욱이 민족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면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없애자고” 한다면 과연 그만큼 순수해질까 반문하고 싶다. 아픈 기억도 역사이고 그걸 우리는 제데로 기억해서 후대에 물려줄 의무도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다양성을 존중하는 걸 넘어, 서로의 것을 인정하고 그 전체로서 살아가는 것과 인간을 위해,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존을 말하는 시대로 이미 넘어와 버렸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연남동, 익선동, 힙지로, 성수동..”등 그 핫플레이스로 가보면 무엇을 현대의 대중들이 원하는지, 소위 시대정신 Zeitgeist가 뭔지 알게될 터이니 말이다.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서 나오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바로 그 몰려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5. 나오며..

 

어느덧 이 책 “도시논객”으로 출발하여, 거대 도시 비판, 그리고 나아가 천박한 자본주의 비판까지 담론을 살짝 맛보앗으니 이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겨진 무수히 많은 알레고리들과 우리의 반영된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거꾸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런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활일 것이다. - 근데 나는 이과인데. ㅋ -

근데 나는 벌써 걱정된다. 이 책에 담긴 서현 교수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외면할 몇몇 독자들이 보여서이다. 오늘도 쏟아져나오는 경제경영(이라 쓰고 돈벌이라 읽는) 서적들이나 자기계빌 서적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그러나 이 책은 적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한 부분에 답을 줄거리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나아가며, 그 길에는 반드시 “돈”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할란다. 내가 소중해했고 편하게 느껴던 그 건물들이 살아남길 바라기도 하고, 내 후손들에게 오늘 고민한 이 흔적들이 그들 사이에서도 숨쉬고 이어나가 몇 백년 후의 랜드마크라 내세울 이 땅의 품격있는 도시를 꿈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곳이 건물이지, 건물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반드시 전해주어야 한다.

 

#도시논객#서현#효형출판#서평단#책추천#도서추천#리뷰#서평#도시공학#인문학#건축#메트로폴리스#발터벤야민#도시인류학 태그수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