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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개빈 지음, 김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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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201-24-29 쳇 베이커 -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 제임스 케빈 James Gavin 저, 2024 ★★★★?

아..간만에 이 양반을 영접하게 됨! 슬픈 사슴의 눈을 가진 그이지만 평생을 마약과 여성 편력으로 탕진한,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이콘이 된 그를 조명하는 좋은 책! 벽돌책이긴 한데 매우 읽을만해요! ㅋ

(자세한 리뷰는 프로필 링크를 참조하거나 아래 링크를 참조 바람.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429412245)

2. 저자의 의도.
이번 신간, “쳇 베이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의 주인공 쳇 베이커는 어떤 의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아티스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양 극단의 호불호를 보이는 평가도 그렇고, 호사가들의 입에 그토록 오르내리는 뮤지션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약에 절어 살았고, 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재즈 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백인 뮤지션으로 특히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화려한 인생..그러나 말년에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져 어느 구석진 호텔에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비운의 뮤지션이라는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은 영화 관계자들이나 작가들에게 일찍이 좋은 소재로 볼법한 비극적 삶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이미지적 거품을 걷어내고 온전히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저자인 제임스 캐빈 James Gavin 은 비단 이 저서말고도 레나 혼 Lena Horne, 페기 리 Peggy Lee, 조지 마이클 George Micheal 등의 유명 뮤지션들에 대한 전기로 이미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이 분야의 스타급 작가이다. 이 작품 또한 “평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동안의 워낙 과장되거나 과소평가된 부분들을 망라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쳇 베이커를 그린 명저이다. (이미 이 책은 2007년에 초판이 나와 인정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문화계의 출판물을 꾸준히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이 을유출판사의 고유 브랜드,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는 이제 검증된 아이템 중 하나로서 아실 것으로 사료된다. 각 시대를 대표하거나, 당대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시대 담론까지 연결하는 의미있는 작업들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작업으로 지목된 쳇 베이커는 한 시대의 아이콘 Icon 적 현상을 추적하며 그의 일생을 대비하여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 세 줄 요약평.
1. 쳇 베이커는 나르시스트적 아이콘의 대표이자, 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인이다.
2. 쳇 베이커의 온갖 퇴폐적, 향락적 삶은 그의 음악에 짙은 우수와 하무를 남겨두었다.
3. 오늘날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는 “패배의 미학”으로 본 예술의 “잔인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쳇베이커 #제임스개빈 #을유문화사 #재즈 #재즈아티스트
#대중음악 #평전 #현대예술의거장
#책리뷰 #책추천 #도서리뷰 #도서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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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디터 람스 지음, 최다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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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10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디터 람스 Dieter Rams , 2024 ★★★★✮

 

*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공식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디자인 Design : 실용성이 있으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의상이나 제품작품건축물 등을 설계하거나 도안하는 일.

(다음-고려대 사전)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디자인이란 말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흔히들 멋진 건물이나 실내에 오면 의례적으로 디자인이 멋지네!”라고 감탄사를 내뱉는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학자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 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기표 記標 와 기의 記意 사이의 어떤 동적 관계 아니던가..즉 그것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활용하는 가도 중요한 언어의 측면이다.

 

따라서 디자인의 원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앞서 언급한 정의가 나온다.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말의 일종으로 우리가 쓰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수긍이 된다. 그런데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서두의 실용성이 있으면서..”라는 문구가 포착된다! - 내가 문제를 삼는 지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실로 미를 다루는 우리 인간의 수많은 행위 양식 중 디자인은 비교적 어린 편에 속한다. 과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이론가 란칠로티 Francesco Lancilotti가 공방의 장인匠人 들의 결과물들을 평가하며 쓴 대목이 그나마 기록에 보이는 거의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본격적으로 디자인이 대두된 건 산업혁명의 시기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상품이라는 가치가 전복되었을 때 이 디자인 또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소위 상품으로서 경쟁력의 한 측면에서 디자인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보기 좋고, 가격에 합당한 외양을 어떻게 (값싸게) 만들것인가가 생산시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기 시작한다. 이후 산업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더욱 디자인에 대한 수요는 커져만 가고, 급기야 디자인자체에 대한 미학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전설의 바우하우스 Bauhaus”로 대표되는 일련의 흐름이다! - 이거도 독일이네. -

 

그 당시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 Modernism 양식의 실제 구현을 어떻게 할까에 관심이 있는 일군의 예술가들이었고, 이에 동조하는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많은 이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된다. - 그리고 그걸 나치 Nazi 가 한방에 박살낸다. -

 

그러나 한번 터진 봇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이 혁신적인 양반들은 뿔뿔이 흩어져 오히려 예술계와 산업계 전반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씨앗삼아 퍼트리고 그 유산은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축이나 실내, 그리고 상품에 이르기까지 소위 산업디자인 Industrial Design 은 이런 맥락으로 이어져 옴을 알 수 있다. - 거의 그 끝자락에 애플 Apple 을 놓으면 맞을 듯. -

 

 

이후 이 바우하우스의 유산은 곳곳에서 확인되는바, 오늘 살펴볼 독일의 브라운 Braun - 여러분이 전기면도기로 아는 그 브라운 맞다. - 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 Dieter Rams 의 신화는 시작된다!

 

2. 저자의 의도.


디터 람스는 당시 이미 기반을 가지고 있던 독일 가전회사 브라운의 2세대부터 등장한다. 당시 창업자였던 막스 브라운의 사후 , 두 아들이 승계하는데 이 양반들이 지금의 브라운을 규정짓게할 디자인철학을 표방하면서 디터 람스는 그 집행자의 역활을 부여받게 된다. 그 이후 브라운은 전기면도기를 포함한 기존의 사업영역에서 생활가전(주방), 음향가전, 전문가용 기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면 일대 혁신을 불러오게 된다. - 그의 대표작 휴대용 라디오 T3, T31, T4, T41, 턴테이블 P1은 지금 내놔도 팔릴만하다! (사진참조) -

 

명성을 드높이던 디터 람스는 마치 요즘 패션-명품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의 역활을 맏아, 자신만의 팀으로 매 제품들을 자신만의 감각을 담아 디렉팅했고 무수히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이후 디터 람스는 함부르크 미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연구를 하는 한편, 자신의 영역을 가전제품에서 벗어나 가구, 실내 인테리어 등 그야말로 생활 전반으로 확장하여 어엿한 아티스트로 자리잡고 그렇게 전설로 남았다. 이 책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은 본인이 현재까지 남긴 유일한 책이며, 자신의 일부였던 브라운에서의 그동안의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일종의 회고집 Restopective”의 성격을 가지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의 명성을 드높인 많은 작품들과 일화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디자인 철학에 관한 단편들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우리의 눈 앞에 펼쳐놓는다. - 역시나 아티스트답게 화보 구성이다. -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은 회고전의 성격이 강한 책이므로 그의 발자취를 담은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지금 내놓아도 당장 살것같은 그 작품들은 가히 이 양반이 괜히 전설로 남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쟁이(디자이너)에게는 말이 필요없다. 그의 작품이야말로 모든 걸 담고 있는 그의 분신이니 나 역시 글로써 그를 그리기 보다는 독자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그의 작품들을 올려본다. (사진참조)

 

어떤가? 지금봐도 전율이 오는 모더니즘의 미학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의 제목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은 단순히 이 책의 제목인 수사修辭 가 아니라 모더니즘의 핵심을 담은 문구이다. 바우하우스의 시절에도 그랬고, 디터 람스 또한 충실한 그 계승자로서 단순함의 미학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그 결과물들의 향연饗宴 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또한 이미 이 업계(디자인)의 선수들에게 십계명처럼 참고하는 디자인 철학을 책에서도 자랑스럽게 명시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작고한 애플 Apple 의 간판 고스티브 잡스 Steve Jobs도 이 좌우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으며, 공공연히 애플 자신들의 제품에 적용하여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어찌보면 아이포드 i-Pod, 아이팟 i-Pot, 그리고 아이폰 i-Phone 은 모두 람스의 손자들 뻘이다! )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미적이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거슬리지 않는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간다.

8. 좋은 디자인은 사소한 부분 하나에까지 철저하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이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 십계명)

더군다나 책에 간간히 나오는 디자인에 대한 람스의 멘트들은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분명히 참고해야할 아젠다 Agenda 를 여전히 담고 있다따라서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의 관심사를 가지는 독자들은 이 양반의 책에서 영감靈感 을 받을만하다고 자부한다. - 결과물들이 너무 좋으니ㅋ -


마지막으로 그가 이 모든 걸 가능케했던 든든한 후원자, 브라운 형제와의 관계가 보이는 대목이 보인다. 사실 디터 람스의 이러한 거장으로서 성공 뒤에는 그의 철학을 공감하고, 묵묵히 지지해준 브라운 형제의 공도 있다하겠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주가 좋아도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은 무로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디터의 안목과 철학을 지지해준 덕분에 브라운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지금도 당신의 집에 면도기, 전동 칫솔, 백색 가전들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것이다! - 이런 리더쉽은 오늘날 더욱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

 

4. 아쉬운 부분.

 

그의 작품은 워낙 단순하고, 또한 고도로 기능성을 은근강조한 디자인이라 군더더기가 없다. - 이것이 그의 디자인이 영속성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 오죽하면 애플이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들의 해답을 그에게 찾았을까..- 여기까지는 찬양의 시간. -



그러나 바로 이 단순함의 미학이 역설적으로 그의 최대 단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말해 그 단순함의 미학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심심하고, 허전하며 그 비어있음을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백컨데 나는 일정한 양식미 樣式美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특히 바로크 양식이나 벨에포크 양식을 좋아한다.) , 나와 같은 양식미를 좋아하는 대중에게는 모더니즘의 결과물들은 밋밋하거나 그 안에 담겨있는 장인의 혼을 느끼지 못한다. - 이건 취향의 문제이다. - 따라서 단순한 상품 Product”으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또한 앞서 소개했던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디자인, 특히 산업 디자인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상품성에 기인한다. , 생산하기 쉬워야하며,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큰 무리없이 어필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극단적인 모더니즘의 제품에서도 보듯이 몰개성 沒個性적이고 예술가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 익명성 匿名性이 오히려 산업 디자인에서는 미덕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제품의 측면이 강한 양식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미학이라는 것이 정당화가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더욱이 최근의 디지털 환경에서의 비인간적 도구화의 냄새마져 느끼게 된다! 다시말해 잘못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인간적 감수성,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딱딱한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디자인 십계명의 한계 지점이 여기서 또 다시 드러난다. 최소한의 미덕, 기능성의 극단화는 우리가 인간적이라 믿는 어떤 감성들을 담아내기에는 그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의 획일성을 문제삼는 사상, 즉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 의 반격이 예견된다. 그리고 이미 다수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 하다.

- 디터의 디자인조차 시간이 지나면 “양식의 권력”을 가지며, 이를 극복하려는 태도는 당연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

 

5. 나오며..

 

이제 다시 내가 서두에서 문제를 삼았던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디자인의 역사에서 상업성은 그 내재된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해주고, 이젠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지경인데 과연 여기에 미학 美學이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 이는 디자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학이라는 영역의 내재된 문제로 보인다. -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양반은 그 유명한 앤디 워홀 Andy Warhole 이다. 이른바 워홀이 주창한 팝아트 Pop-Art”의 캐치 프레이즈는 상업 디자인도 충분히 미적 요소로서 기능함을 입증해 내었다라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의의는 과거 칸트 Immanuel Kant 시절부터 시작된 미학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서 결국엔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희미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각인시킨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디자인 = 미적감수성이라는 보다 포괄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봐야 이 현상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형된 의미로 우리는 일상에서 디자인 괜찮네..”라는 멘트를 사용한다. 이쯤되면 무엇이 과연 디자인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잘 정제된 디자인에서 여전히 어떤 심미안審美眼 을 느끼지 않는가! - 그러니 당신들이 애플폰을 그 돈을 주고 사지 않나. -


그러므로 우리는 디자인에 미학이 있다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다만 그게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미학인지는 따져볼 문제이지만, 어쨋든 그와 같은 단어를 부여하여 이해를 해도 인간의 유구한 미적 행위에 부합하는 한 쟝르로 마땅히 편입되어야 함은 굳이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리고 그 행위 양식의 변천사에 큰 족적을 남긴 디터 람스는 우리에게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고, 충분히 그 자격이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그의 이 책이 그 증거일테니 말이다.

 

우리 인류에게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그의 업적은 앞으로도 또 하나의 영감으로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디터 람스에게 경의를 표한다..그의 작품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Long live the 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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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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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2 :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차이코프스키 , 민은기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빌리 부친 : "...사내 자식이  계집애처럼 무슨 발레냐? 먹고 살기도 힘든 이 마당에...하라는 복싱은 안하고 이게 무슨 짓이야?"

빌리 : (보란듯이 춤을 추며) "아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춤을 춰야되요! 보시라구요!"

(이어서 바로 빌리의 뺩을 때린다. 그러나 빌리는 지지않고 계속 춤을 춘다.)

당신은 혹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기억하는가? 국내에서도 꽤나 언급이 되었고,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떤 작품이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대략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배경은 80년대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최악의 불경기로 신음하던 영국의 한 탄광이 나온다. 대규모 해고와 파업으로 혼란한 시기이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환경에서 비교적 연약한 주인공인 빌리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춤'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내다운 운동인 복싱을 배우러 간 체육관 한 켠에서 발레를 연습중이던 여학생들을 보고 말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뇌하지만, 춤을 추는 순간의 기쁨과 자신의 운명의 이끌림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족들 몰래 계속 춤을 연습한다. 급기야 더이상 배울게 없을 정도로 성장한 빌리는 왕립 발레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되지만,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 위 장면이 바로 그 대목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 우여곡절 끝에 고향을 떠나고 발레리노로서 승승장구한 빌리는 훗날 "백조의 호수"에서 당당히 주연 발레리노가 된다. 이때까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들의 공연을 처음 초대되어 보러오게 된다. 발레리노로서 성장한 아들이 찬란하게 허공을 향해 비상하는 장면에서 '아..."하는 깊은 찬사와 탄식을 보내며 영화는 끝난다. (사진참조)

나는 이 책 "난처한 클래식 수업 - 차이코프스키"를 읽으면서 줄곧 이 영화가 떠올랐다. 땀냄새와 매케한 연기가 가득한 그 마초적인 탄광촌에서 한줄기 꽃처럼 빌리가 피어났고, 얼마나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고민했을까 말이다. 게다가 극중에서 성적 소수자임을 짐작케하는 장면도 나오니 말이다. 또한 그런 아이를 둔 아비의 심정과 결국 아이의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비의 모습 - 파업을 하는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 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아무리 삶이 시궁창스럽고 너무 견디기 힘들다 하더라도, 창공을 향해 완벽한 한 마리의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이 나오는 그 장면...!

우리에게 예술이란 그런 것이리라. 현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어떤 예술적 경이를 보면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그 경외감이야말로 예술의 본질 아닐까? 한 순간이라도 이 더러운 세상에 한 줄기 성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지니 말이다. 우리 인류가 지적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자기 표현의 수단이자 사회적 활동의 산물인 예술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인간 감성의 가장 밑바닥에 내재한 욕망을 위로하고, 그것을 현재의 세상으로 끌어내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양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고전음악' 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짓눌린 저 본능의 욕구...일종의 '권위'로 말미암은 본질의 왜곡은 가끔 내게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클래식 음악이건 대중음악이건 관계없이 이 양식들은 우리의 내면을 위로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며 때로는 삶의 빛을 안겨주는 그 고유의 성격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말이다. - 아무리 문외한이어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만 들어도 그 장중한 전율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 따라서 이 책과 같이 간간히 나오는 대중 클래식 서적에 대해 반가움을 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민은기 교수는 한국의 1세대 음악가에 해당하는 학자이다. 기존의 클래식 저변에 자리잡은 선입견을 타파하고, 대중 저변에 좀더 친숙한 클래식의 이미지를 설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이력이 있다. 다수의 저서와 다양한 매체의 기고를 통해 대중입문격인 클래식의 소개부터 작품의 해설까지 방대한 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여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을 해온 바 있는 교수이다.

이 채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는 그러한 민은기 교수의 노력의 결실물이라 보인다. 그동안 수없이 난립한 대중 클래식 소개서와 달리, 현재 대중들에게 보다 더 적합하고 와닿을 수 있는 면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역작이다. 매 권마다 소개하는 작곡가 - 내지는 음악사조 - 에 대해 꼼꼼하고도 지루하지 않게 대화체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 장마다 소개한 내용을 정리하여 핵심적인 부분을 기억하기 쉽게 해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음악작품을 유투브나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소개를 해놓고 있어 따라가기 쉽게 해놓았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쉬운 해설서"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대화체로 구성이 되어 있어 마치 옆에서 친근하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듯한 인상을 받도록 배려해놓았다. 클래식이라는 권위와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본질인 음악에 다가가기 위해 외피를 좀더 친숙하게 한 배려는 좋은 시도로 보인다. 또한 그러면서도 다소 난잡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의식하여 매 장마다 해당 챕터에서 강조하는 주요 포인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페이지만 보아도 대략 이 장에서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온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인 음악에 대해서도 매우 세심한 배려가 되어 있다. 해당 음악이 언급되는 절 옆에 주석이나 기존의 장식보다는 QR코드를 이용하여 찾아보기 쉽고, 빠르게 해당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놓아, 현대의 독자들에게 보다더 편리하게 저자의 소개를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함까지 엿보이고 있다. 아마도 근래들어 본 대중 클래식 소개서 중에 이토록 철저히 독자들을 배려한 입문서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이는 저서이다.

또한 차이코프스키라는 작곡가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좋은 시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우리가 전기로 접하는 상당수의 작곡가들은 어릴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다던지, 혹은 정규교육에 준하는 훈련을 거쳐 음악가로서 성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는 전혀 다른 인생의 행적을 초창기에 보인다. 가계로부터가 음악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고, 실제 법학도로서 학업을 지속했었다. 차이코프스키카 살던 당시 제정 러시아의 후반에 해당하며 법률가로써의 삶을 시작한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운명에 이끌린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자신의 새업을 그만두고, 늦깍이 학생으로써 처음 음악적 삶을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 혹은 전설이 시작된다. - 늦게 시작한 음악공부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놀랍도록 무섭게 성장하여 그 어렵다던 '교향곡'을 2년만에 작곡하며 천재성을 단숨에 드러내게 된다. 이를 일찍이 감지한 루빈시테인과의 만남과 이후 이어지는 음악적 행보는 전설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향곡이나 발레곡의 초연이 실패한 경우도 많았지만, 꾸준하게 작품들을 내놓으며 자신을 뛰어넘는 곡들을 생산해내게 되고 이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인생의 2막에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상태였지만,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차이코프스키는 '성소수자'였던 것이었다! 그로 인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결혼 생활의 파경, 그리고 연이은 남자 제자들과의 염문으로 말미암아 인생에 있어 큰 굴곡을 남기게 된다. 지금도 남성중심적인 사회분위기로 유명한 러시아인데, 그 당시 제정시대의 러시아란 그야말로 성소수자였던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 실제로 당시 법적으로도 금지되었다. - 연이은 대중적 성공과 드높아가는 명성과는 달리 자신의 사생활은 비참함에 가까우리라는 것은 짐작코도 남는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시점이 기록에 존재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급작스러운 죽음... - 공식적으로는 "콜레라"로 기록되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찬란한 음악적 유산과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없잖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점을 여과없이 잘 제공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잘 다뤄지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인간 차이코프스키를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그로 인한 음악적 세계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라고 평소 공감하던바이기에 이 대목은 매우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실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에게 주류로 간주되던 소위 "러시아 5인조"의 언급도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 악파하고도 거리가 상당히 있다. 오히려 당시의 평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너무 서구적'이란 비판을 자주 받았고, 러시아 국민악파와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인식과 다르게 차이코프스키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으며, 초반기 대중적 인지도도 러시아 국내보다는 바깥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지금 러시아 발레의 정수이며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받는 평가와는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의 평가나 음악적 사조 측면에서 러시아 5인조와의 비교도 분명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감히 끌어들여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함으로써 보다 더 입체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마도 학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언급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측면에서의 시도로 보이며, 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바이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설명했던 이 책의 미덕인 "대중입문서"라는 점은 분명 강점이지만, 반대로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되는 작품들도 많기 마련이라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본 책의 내용이 그리 새로운 것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음악적으로, 기교적으로 깊게 들어간 부분은 거의 없으며 이는 식상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 깊은 논의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이 심심하게도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대중입문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서 중반기를 차지하는 일화의 조명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음악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폰 메크 부인"과의 후원관계가 그것이다. 현재도 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꽤 알려진 이 기묘한 관계를 - 평생 플라토닉한 후원 - 둘러싼 무수한 가설이 존재하고, 이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생애에 중요한 지점에 해당하는 사건이므로 마땅히 중요하게 다뤄야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치정극으로 보기에 이 에피소드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존재하고, 정규 학자로서 추측만이 난무하는 이 대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적절치 못했으리라. 따라서 현 작품에서의 비중 정도로 끝내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정수를 전달함에 있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단연코 "우아함"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그리고 잘 알려진 "1812년 서곡"조차도 그 음악적 형식미에서 어쩔 수 없이 광대한 멜로디와 악기 구성을 보기 쉽지만, 실제로 그의 선율은 매우 서정적이며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성적인 면으로 느껴지기에는 좀 다른 측면이 감지된다. - 베토벤이나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웅장한 대목에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완전히 폭주하는 부분은 차이코프스키 작품 전반에 걸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발레곡이나 왈츠를 차용한 멜로디 부분에서 유독 차이코프스키의 강점은 독보적이다. 여성적인 우아함을 남성임에도 가장 잘 구사하며, 심미적인 면을 너무도 잘 포착하는 것은 대표적인 그의 특징이다. - 혹자는 이런 부분에서 그의 성소수자적 성향과도 관련짓기도 한다. - 실제로도 매우 연약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기록에 나오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성격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고뇌한 부분이 존재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책에서 그 비중만큼 다루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 그의 인생사 전반을 다루고 다양한 측면을 할애해야하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가는 대목이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글의 초반부에 언급한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가보자. 결말부에 해당하는 "백조의 호수"는 매튜 본 경이 재해석한 작품이 등장한다. 이 작품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어찌보면 차이코프스키의 특징과 연결된 부분이 존재하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소수자인 매튜 본 경 스스로가 기존의 이 작품을 남성 발레로 완전히 재해석한 부분이다!

흔히들 머릿속에 떠올리는 여성 발레리나의 여리여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아한 남성들의 육체의 향연으로 바꾼 것이다. - 빌리가 바로 이 무대의 주인공인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 전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편견을 보란듯이 비틀어서 남성의 육체도 얼마든지 고혹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 무대는 당시에 파격에 가까웠다. 마치 그 고지식한 빌리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비상하는 아들의 유려한 몸동작에 깊은 탄식을 지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그 장면이 우리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 매튜 본 경의 백조의 호수는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흔히들 예술은 그 당대의 생각을 반영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니체도 언급했듯이 "예술은 언제가 대중들에게 경계를 묻는 존재여야 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즉 당대의 편견과 소수의 혁신적인 시도로 인해 큰 변화를 줄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또다른 장의 표현을 가능케한 전례는 늘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아온 예술의 행보이다. 즉, 그 표현의 한계를 누군가가 임의로 설정할 수도 없으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현실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 예술의 가능성은 전례없이 그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고도 있다. 만일 차이코프스키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각을 승화시킬 기회는 좀더 다양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당대의 분위기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를 해서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작품들을 남겨주었다. 이것만으로도 고생한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편히 안식을 취할 것이라고 나는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우리 인류 역사에 그만큼 위대한 작품을 남긴 그에게 그 정도의 존경의 표현은 과하지 않다고 보변서 말이다. 이토록 위대한 작곡가를 쉽게 설명해준 저자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다.

#난처한클래식수업 #차이코프스키 #난생처음한번들어보는클래식수업

#민은기 #사회평론 #고전음악 #클래식 #낭만주의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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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도슨트, 루브르 박물관 - 전문가의 맞춤 해설로 떠나는 나만의 미술 여행 나만의 도슨트
서정욱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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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2 : 나만의 도슨트 루브르 박물관, 서정욱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산타 크로제 성당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듯 했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from "나폴리와 피렌체 - 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1817)"

위 인용구는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를 방문할 당시, 명화 "베아트리아 첸치의 초상"을 보고 겪은 개인적 경험을 밝힌 것이다. 물론 이 일화에 대해 진위 여부의 공방이 존재했고,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는 평이지만 그의 이름은 후대에 "스탕달 신드롬"으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수의 관객들이 명화에 압도된 나머지, 신체 이상을 호소하고 환상 증상 마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현대에는 넘쳐나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건텐츠가 존재하고, 직간접적으로 예술작들을 접할 기회가 비교도 안될만큼 존재하므로 이런 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지금도 빼어난 명화들은 그 독보적인 생명력을 자랑하며, 가끔 예술 경매 시장에서 그 엄청난 몸값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참으로 신비롭다. 냉철하게 분석하면 회화는 단지 평면적인 재료들의 조합일 뿐이고, 음악은 뇌에 반응하는 특정 화음들의 나열이며, 건축이나 조각은 입체적인 재료들의 덩어리일 뿐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을 사랑하고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왜일까...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 세계의 상대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영원 불변의 "이데아"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즉, 누구나의 마음속에 회귀하고픈 원초적 근원이란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에 대한 추구는 극단적으로 위와 같은 현상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법하다. (나 또한 실제로 몇몇 작품에서 넋을 잃고 빠져들었던 개인적 경험이 있어, 위 현상을 다소나마 이해하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은 "서정욱 갤러리"로 잘 알려진 전문 도슨트이자 관장인 저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어하는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중 대표작을 선정하여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익히 잘 알려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부터 비교적 한국에 덜 알려진 카미유 코로나 앙투안 와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사조를 넘나들며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다수의 잡지와 신문 칼럼으로 대중들과 교감을 이뤄온 바가 있어서 이 책도 매우 대중 친화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명성이 높은 다빈치, 라파엘로의 작품은 물론, 다분히 정치적, 역사적 배경이 필요한 자크 루이 다비드나 들라크루아의 대표작도 친절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특히나 명화들은 그 해설의 유무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이 가능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큐레이션은 표준적이고도 대중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보다 친근하게 해설하고 있다. 또한, 작자 미상이지만 "밀로의 비너스"나 "승리의 여신, 니케" 또한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특별히 권미에 소개를 놓치지 않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은 철저히 대중친화적인 면을 상정해서 소개한 점이 눈에 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바티칸 박물관은 일일히 소개하기도 벅찰만큼 다양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에 걸쳐 매일 찾아가도 그 전체 소장품을 미쳐 다 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우리조차 한두번쯤 이름을 들어본 명작들은 연일 관람객들이 수없이 전세계에서 구름처럼 몰려든다. 실제로 현장에 가면 예약없이는 관람할 수 조차 없고, 예약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관객들로 충분한 감상에 무리가 갈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면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대표작들에 대해 충분히 표준적이며 쉽게 해설을 해주고, 실제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서술을 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의 작품과 호흡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방해받지 않고 감상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장점이 있다 하겠다.)

또한 역사적, 정치적 해설이 반드시 필요한 작품들을 중반부에 대거 소개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나, 비교적 최근의 사조인 인상주의의 경우 따로 해설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이해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나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작품에 녹아있고, 그 의도나 배경을 알아채지 못하면 관람시 그 흥미가 반감되는 특징들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당시 사회의 배경과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저자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나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 당대의 사조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매우 중요한 대표적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그동안 잘 정제된 저자의 실력이 빛을 발하는 듯하다. 잘 관찰하기 어려운 지점부터, 놓치기 쉬운 곳까지 세세히 지적하여 그 감상에 더없이 적절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저자 개인의 취향도 작용한 소개작들이 존재한다. 오로지 한 평생 풍경화만 고집하여 후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카미유 코로라든가, 작자 미상이지만 그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찬사와 영감을 주던 그리스 시대의 유물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로써 저자의 개인적 취향도 잠시나마 발견이 가능하며, 이러한 작품들에 공감하기 좋은 독자들에게는 좋은 선물인듯 하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오로지 분량이다. 이 짦은 책의 분량으로는 그 방대한 작품들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등장시키기에도 벅찰 만큼 엄청난 유물이 보관된 곳 아니던가. 따라서 그 많은 방대한 유물 중에서 아주 일부나마 저자의 눈과 해설을 빌려 감상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데로 사조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소개를 한 점이 눈에 띄나, 아쉽게도 인상주의나 현대미술 쪽은 배제되어 있다. 특히 인상주의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루브르 박물관이기에 더욱 그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정된 분량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아마 벽돌 두께의 화보집으로 만들어도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현대미술 쪽은 루브르 박물관의 특성상 여타 미술관과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대표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노선을 위해 이를 과감히 생략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대중들과의 교감을 꾸준히 이어온 저자인 만큼, 후속작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하며 아쉬움을 접어둔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스탕달이 겪은 그 일화를 생각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평판과 소문,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그 실체에 대한 환상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고, 막상 만남에 있어 그 매력을 확인하는 순간, 감정의 동요를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감상 후에 헤어짐을 해야만 할 때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만남을 고대하는 그 감정적인 흐름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연애를 할 때의 사랑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스탕달의 일화가 단순히 허구인 미사여구나 호사가들의 농담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 자신의 삶을 바쳐 끝내 그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명화도 우리 삶에 있어 한순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환희를 안겨준다고 믿는다. 어쩌면 명작만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교회에 있는 루벤스 그림을 보기 위해 생을 다한 주인공 네로처럼, 우리도 각자의 가슴에 그런 작품들 하나를 품고 있지 않을까...

아직 그런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어떨까 하는 바램으로 글을 마친다.

#나만의도슨트루브르박물관 #서정욱 #넥서스 #루브르박물관 #미술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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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피셜 뱅크시
알레산드라 마탄자 지음, 정다은 옮김 / Pensel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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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46 : 언오피셜 뱅크시, 알레산드라 마탄자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이 미국이란 나라의 위대함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이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구매하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이 말은 미국 팝아트의 대명사인 앤디 워홀(1928~1987)이 인터뷰 중 자신의 예술관에 대한 질문에 답변으로 말한 내용이다. 워홀은 한창 주가를 올리던 무렵 위와 같이 공공연히 대중들의 위선적 예술관을 조롱하며 더욱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했고, 더욱더 그 명성(내지는 악명)을 높이며 팝아트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주된 생각은 대중들이 돈이 되는 예술을 원한다면 그를 기껏이 행하는게 예술가의 책무이며, 그것이 결코 예술가로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그런 관객의 수준을 조롱하며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거꾸로 대중들에게 전복적으로 다가가 마치 "록스타"의 이미지를 원했다. 그리고 그의 예측대로 그는 전설로 남게되었고, 그의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2000년대로 돌아와 우리의 상황을 엿보도록 하자. 위의 두 그림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지 않은가? 왼쪽의 그림은 워홀의 그 유명한 "마릴린 몬로(1964)"이고, 오른쪽은 뱅크시의 "케이트 모스(2005)"이다. 두 그림의 차이점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법과 구도가 매우 유사하며, 그것을 뱅크시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뱅크시는 워홀과 달리 철저히 익명으로 현재까지 남아있고, 자아도취적인 워홀과 달리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그리고 자신이 번 엄청난 돈도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린다.) 이 그림은 나오자마자 열광적인 관심을 받으며,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며 완판됬다.

 이처럼 뱅크시는 어느덧 대중들에게 가장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로서 자리잡았으며, 그의 각종 기행과 (다분이 의도된) 에피소드들은 더욱더 그의 명성을 높이며, 현재 최고의 판매가를 자랑하는 작가로 각광을 받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은 앞서 소개한 뱅크시의 작품들과 내력을 소개한 저서이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그동안 다수의 관련 서적이 나왔지만, 이 책은 기존 책과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먼저 이 책은 거리 미술의 전문가로 알려진 존 브랜들러와 사진작가 알렉산드라 마탄자의 공저로 쓰여진 책이다. 브랜들러는 그동안 주로 뱅크시의 작품들을 거래하고, 대중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본 작 이외에도 다수의 매체에서 뱅크시의 작품 세계에 대해 평을 올려서 이름이 알려진 아트 딜러이다. 마탄자는 사진작가이자, 작가로 여러 베스트셀러를 써낸 전문 작가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의 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작품들의 소개와 뱅크시에 대한 주 코멘트는 브랜들러가, 전체 책의 집필은 마탄자가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브랜들러는 초기부터 뱅크시에 주목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알려져, 이 책에서도 주로 작품해설에 치중하여 그를 소개하고 있다. 뱅크시는 철저히 "거리미술"에 전념해 왔으며, 그것을 빼고는 그를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따라서 그의 주요작품들을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대부분 소개하며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을 세심하게 배치한 책이다. 또한 뱅크시의 정치적 견해를 배제하면 그의 작품세계의 절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아나키스트적 면모를 여과없이 설명하며, 마치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의 전설에 견주어 그를 소개하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뱅크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앤디워홀 + 체 게바라"라고 나는 단언한다. 위트있는 농담과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비꼬며, 온갖 권위에 도전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영국 여왕이 아이콘인 정치 세력들,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쟁의 현장까지...어디든 정치적 모순과 권력의 남용으로 신음하는 곳에 반드시 그의 작품을 남기며, 대중들에게 소위 "가치전복"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치 아나키스트적으로 모든 체제를 부정하는듯이 보이지만, 의외로 그 근본에는 휴머니스트적인 측면이 관찰된다. 전위적으로 체제를 전복하는 과격한 측면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사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여 그 수위를 조절한다. 

또한 뱅크시는 그 소재에 있어서 몇몇 특징들이 있다. 첫째로, 그의 작품은 "거리"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대중을 무법적으로 감시할법한 감시카메라 바로 앞에 "무엇을 쳐다보는가?"라는 작품을 남기듯이 그 적재적소의 장소에 알맞은 작품을 남긴으로써 환경과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일체화시켜버린다. 그것을 서로 분리하는 순간, 그 원래의 가치는 사라져 버리고 퇴색해버리는 것이다. 둘째로, 블랙코메디적인 요소를 적극 차용하여 이미지 전복을 시도한다. "침팬지"가 지배하는 이 지구의 모습이라든지, '생쥐"가 주인공인 다양한 군상을 인간에 빗대어 그리는 모습말이다. 이는 기존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여, 주목도를 높이고 그 모순에서 유머를 발생하여 작품의 의도를 휴머러스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외면한 탐욕적인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다국적기업으로 대표되는)를 실랄하게 비판한다. 우리의 시각을 방해하는 광고판에 조롱하듯 작품을 남기거나, 수많은 난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면서도 그 현실을 외면하는 기업들의 로고를 명시하여 작품에서 조롱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대중들에게 잘못된 소비관과 주체하지 못하는 이윤추구의 욕심을 이제는 그만하기를 바라며, 대중들에게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작품들을 배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은 항상 작품에 연관된 일화 하나씩을 담고 있다. 이는 워홀이 당시에 구사하던 전략과 매우 흡사하다. 모호한 작품을 던지고, 가치전복적인 메세지나 일화를 배경으로 전달하여 대중들이 열광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물론 조롱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는 보들리야르가 일찍이 예건한 시뮬라크르의 실현이며, 뱅크시도 그 방법론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다만 차이점은 워홀의 방법론은 따르되, 절대로 자신의 어떤 부분을 익명성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뱅크시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만, 아무도 그의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하며 심지어 한 명의 작가인가에 대한 논란마져 존재한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욕과는 거리가 멀며, 끝까지 저항하는 정신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대중들은 열광을 하며, 그의 작품들은 가장 인기를 끄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모들을 설명해주며 그의 작품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뱅크시의 작품 세계에 대부분 촛점을 맞춘 책이다. 그의 신화적인 이야기나 기행들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배제한 것이 보인다. 이는 유사한 작가들의 "의도된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 거리를 두고자 함이 아닐까 사료된다. 다분히 이러한 행위들은 유행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주목도를 높이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기억은 휘발되고 결국 남는 것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을 걷어내고 작품 자체만으로 생명력이 약한 작품들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취급받으며 그 생명이 다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뱅크시의 작품을 소개할 때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구성한 부분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뱅크시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이다. 그 메시지가 없으면 작품은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는 반쪽 자리 작품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런 딜레마를 이기고 온전히 아티스트로서 인정받을려면 그의 행보를 부각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작품에 보다 치중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였을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면모가 보인다. 다만 전시회에서의 작품들은 많이 소개되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그의 거리미술 측면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수긍이 간다. 

5. 나오며...

위 작품은 그의 대표작 "분노, 꽃을 던지는 자 (2005)"이다. 현재 국제 분쟁의 상징인 이스라엘의 베들레햄에 존재하는 작품이다. 원래 이 이미지는 폭동에 가담한 시위자가 마스크로 자신을 숨기고, 분노의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인데, 그 화염병을 평화의 상징인 "꽃"으로 대치한 것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정체성, 즉 "체 게바라 + 앤디 워홀"의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가차없이 저항하며 분노를 하지만, 그 투쟁의 방식은 폭력이 아닌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또한 이 작품의 위치를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스라엘에 남김으로써 블랙 유머적인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혁명적 투쟁 방식으로 이미 그는 전설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언젠가 자신을 드러낼 지,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대중들의 가슴속에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지는 뱅크시 본인만이 아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주도한 예술적 행위에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그의 어떤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그의 진솔한 "작품"으로서의 면모를 잘 살려준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좋은 시도를 한 저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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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ae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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