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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권리 -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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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07 : 저항할 권리,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작년 여름 한 통의 전화를 갑자기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건, 의사였던 동창 친구 녀석의 부고... 늘 축구를 열렬히 사모하고, 운동을 좋아하던 쾌활한 친구를 기억하기에 "도데체 왜?"라는 질문을 꺼냈을 때, 들려오던 조심스러운 이야기는 AZ백신 2차 접종이후 쇼크사일수도 있다는 나즈막한 답변이었다. 당시 한국은 한참 코로나 사태가 극성이었을 때이고, 백신이 긴급하게 투입되어 난리법석인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일 뉴스에서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과 백신의 부작용 의심으로 인한 사망사례가 동시에 나오며 혼란의 시기를 보내던 때였다. 나 역시 며칠 후에 백신접종을 앞두고 있었고,(내 의사와 관계없이 직업적 이유로) 건강했던 친구의 마지막 쓸쓸한 길과 함께 다가올 내 운명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비단 이 이야기는 내 개인적인 일이기만 할 뿐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도 벌어졌던 일이라 믿고 있고, 이 책의 부제와 같이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라고 막연히 생각이 드는 시점에 와서야 이 책을 뒤늦게 접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조르조 아캄벤의 글이나 발언을 접해본적 없이 이 책을 펴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라고 할 만큼 도발을 넘어서, 아나키즘의 흔적까지 느낄 정도의 파격적인 주장에 대경실색할 지도 모른다. 더욱이 한국과 같이 국가주의(더 나아가 전체주의)에 가까운 정서를 가졌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갈수록 이 사람의 주장이 명확해지는 순간, 나와 같은 리버레테리안들은 어느새 그의 주장에 올라타는 걸 느낄 것만도 같다.

2. 저자의 의도...

우리는 공교육의 사회, 윤리 등의 시간에서 책에서만 실존하는 존재로 전락한 "사회계약론",을 주장하던 로크, 홉스, 루소, 그리고 스튜워트 밀의 "자유론"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것이다. 근대 국가 체계에서 그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한 사상들이자,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자유진영의 헌법속에서 반드시 발견되는 논리들 말이다. 그러나 "책에서만 전락하는"이라고 언급했듯이 누구나가 알지만 제데로 이들을 접하거나 읽은 이들은 전공자를 제외하면 극소수인 이 현실에서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숨쉬며 소비하는 공기처럼 자연주의적이고 언급될 필요조차 못느끼는 당연한 명제로 치부할때 쯤, 우리는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사태를 맞이하고, 다시금 이 질문이 유효하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가 어느덧 머리속에서 지워버린 그 잔영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왜 싸우지 않냐고 격정적으로 선동한다. 그의 질문과 발언에 열렬히 지지하든, 격렬하게 반발하던, 그 격론의 장을 저자는 피하지 않으며, 완고하게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책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 비견될만큼 피가 끓는 선동의 글이다. 많은 학자들이 취하는 "전략적 모호함"이나 권위주의적 자세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자고 우리에게 호소하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누군가는 우리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불온 서적으로 취급할만큼이나 말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그 완고함에서 매력적이다. 나는 요즘 현재 사회의 많은 문제들에서 그 말도 안되는 "기계적인 상대주의"에 극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정의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다같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레밍"들의 무리 중 하나로 남기를 거부한다.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가 비로소 "선생님"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런 존재들에 목말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서 소개하듯이 백신 "그린패스"를 거부하며 그 모든 사회적 차별을 감수하면서 까지 학생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화재로 인한 데이터센터의 유실로 촉발된 대규모 플랫폼 중지 사태(카카오 그룹)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나도 집중된 사회가 단 하나의 예기치 않은 오류로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예건하고 있다. 이웃한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가관에 의한 검열을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고, 이미 많은 국가들이 "빅 브라더"의 실현에 성공했으며, 대중들이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극도의 효율만 따지는 이 사회에서 인본주의적 사고가 사라지게된 이 현실을 주저없이 비판하고,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지라도 다시 "연대"하여 투쟁하자고 "Again 6.8. 혁명"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는 그에 의거해 개인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정당성을 가지게 되며, 국민을 보호하고 책임을 질 권력을 가지게 된다. 만일,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 국민은 국가에 더이상 종속되지 않으며 그에 저항할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다시한번 재상기시켜준다. 모든 국민들이 "바이든"이라고 들었다고 말조차 꺼내기 힘든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 우리는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고, 비합법적인 권력의 힘이 과연 어디까지 남용될 수 있는지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4. 아쉬운 부분...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한번 찬찬히 도입부의 문제적인 발언들을 돌아보면 저자의 피끓는 심정이 전달되어 감탄하게 되지만, 처음의 충격은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피할 수 없는것 같다.(물론 내가 보기에는 이조차도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라 사료된다.) 따라서 이해가 안가거나, 공감할 수 없다고 초반에 거부하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고 나서도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논의의 장에서 의견을 말하면 된다....라고 조언하고 싶다. 

또한 굉장히 많은 문학작품이나 사상서에서 따온 기가 막힌 인용들이 눈에 띄지만, 이는 아마도 이 책들을 상당부분 읽어본 독자가 아닐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거창하고, 단절적인 표현들이 거슬린다면 주석에 나온 작품들, 또는 최소한도로 그 소개를 읽어본다면 저자의 주장을 오독하는 일이 없을것이다. (독서량이 상당히 많다고 자부한 나조차도 이 작업을 해야만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허나 너무나 현학적으로 그 담론들을 끌고가기 보다는 매우 직관적이며 명료하게 구사하여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나름의 공감이 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반추할 기회를 가지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5. 나오며...

이제 코로나 시대의 종식을 아직 선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어느덧 늘 그렇듯이 우리는 정상생활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살아가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지난 3년간 전대미문의 대격변이 지나간 앨범 속에 잠들어 버린것 같았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입증할 길은 이제 사라졌지만, 내 안의 의문과 불안감은 조금이라도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불안감은 영원히 안고가는 동반자일 것이다. 내 안의 혼돈을 받아들이고, 뚜렷이 보이는 내일의 희망을 위해, 오늘 싸워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인용한 문구 중에 나를 사로잡은 문구를 소개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그들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는 어두웠다고... 하지만 당신들은 왜 침묵했습니까?"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저항할권리 #얼굴없는인간 #_뒷이야기 #조르조아캄벤 #효형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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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3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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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shorts 201-24-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vol.3 , 편집부 저, 2024 ★★★★?

아는 사람만 안다는 지적 교양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호 리뷰임. 자신이 진보적이고, 인문적인 식견과 국제감각을 가지고 싶다면 필독 잡지임! 좋아요! ㅋ
(자세한 리뷰는 프로필 링크나 아래 링크 참조.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396506931)

2. 저자의 의도.
먼저 르 몽드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오래된 프랑스 유력 신문매체 중의 하나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지금 소개하는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이하 르 디플로)”와 계간지 “마니아 드 부아 Maniere De Voir”는 르 몽드 신문과 일종의 자매지 성격의 잡지이다. 르 디플로는 국제 정치, 사회 문제와 비판에 촛점을 맞춰서 발행되고, 마니아 드 부아는 문화나 특정 관심 분야에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식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잡지이다.

아마 국내에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독자들도 있겠지만, 사실 꽤나 알음알음으로 독자층을 확보하는 진보 계열지이다. 대학생이나 학자들 사이에 고정 구독층을 꽤 확보하고 있으며, 원래 한겨레 신문과의 협업관계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의외로 역사가 된 잡지이다. (이들만 주로 다루는 독서모임도 존재할 정도이다.)

이번 르 디플로 3호는 늘 그랬듯이, 프랑스 판의 기사 80%와 한국어 판의 단독 기사 20%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프랑스 판의 헤드 라인 기사는 “계산기 앞의 건강 불평등”으로 의료 민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현안”과 관련해서 기사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한국 단독 기사는 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공방 중인 이른바 “김건희 여사 명품 핸드백 수수 논란”을 두고 벌어진 언론 탄압과 정치적 이슈들, 그리고 IT 기술의 최전선에서 횡행하는 “AI 이미지”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 세 줄 요약평.
1. 당신이 진보 지식인을 표방한다면 반드시 르 디플로를 읽을것!
2. 시의적절하면서도 오래 간직될 엄선한 글로 가득참.
3. 우리 언론의 처참한 현실을 이 잡지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비판하므로 나는 종종 애용함!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르몽드마니에부아르
#정치 #사회
#도서리뷰 #도서추천 #책리뷰 #책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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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 지음, 정기헌 옮김, 장석준 해제 / 원더박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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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18 내전, 대중혐오, 법치, 피에르 다르도 Pierre Dardot 외 저, 2024 ★★★★★

아..학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파헤친 역작! 올해 읽은 책 중에 두번째로 완벽하네요! 강력 추천합니다.
(자세한 리뷰는 프로필 링크나 아래의 링크 참조 바람.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388438278)

2. 저자의 의도
이번 신간,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프랑스 신 좌파의 산실, 파리 낭테르대학 소속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연구 그룹(GENA)” 멤버들이 펴낸 일종의 연구 총서격인 저서이다. 대표 저자인 피에르 다르도 Pierre Dardot 와 크리스티앙 라발 Christian Laval 은 이미 지난 2009년도에 “새로운 세계합리성”이라는 저서로 신 좌파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 낸 바 있는 최전선의 학자들이다. (우리 나라에는 2022년에 소개된 바 있다.)

신 자유주의가 우리를 향해 자신들의 사상을 정립하고, 우리의 삶을 재정의하려 그들만의 학회를 열었듯이, 이 대륙 출신들의 신 좌파들도 대열을 정비하고 비로소 “적”을 규정하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양극화”의 주범으로 신자유주의를 공고히 지목하고, 현재 우리의 일상이 무너진 근본에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낱낱이 파악하여 기록한 그 책으로 진보 진영의 담론에서 일시에 주목을 이끌어낸다. - 역시 싸움에는 피아식별이 중요한 법! -

이번 신간에서 다르도는 지난 명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재의 상태를 “내전”으로 규정하며 이미 철이 지난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왜 아직도 우리 삶에서 떠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어진 담론으로 연결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정치 혐오증 내지는 편협한 포퓰리즘 - 극우의 성향을 띈 - 의 만연에 수구 기득권 세력들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포장한 맹공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그들의 민낯을 우리에게 고발한다. - 그들(기득권)은 사실 신자유주의의 주장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한 도구일 뿐. -

게다가 입법부(의회) 장악으로 그들의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인 “법치”를 역으로 활용하여 어떻게 우리의 삶을 그들의 의도대로 바꾸는지를 그동안의 많은 정치적 사건들과 경제적 사안들로써 독자들에게 고하고 있다. 거기다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권위주의 정권의 경우도 포괄하여 이들 모두 대중들의 믿음에 반해 권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세력들 - 주로 경제적 이득을 바라는 자들 - 과 결탁하여 지금의 정치적 대혼란을 불러오는지 마져도 큰 흐름에서 다루고 있다.

* 세 줄 요약평.
1. 신자유주의는 시작부터 “부도덕”했고, 법마저 유린했다.
2. 그들의 만행은 우리를 무제한적인 경쟁으로 몰아넣은 것뿐 아니라, 그들의 목적을 위해 정치적으로 우릴 타락시켰다.
3. 따라서 지금은 신자유주의와의 “내전”상태이며 우리는 이에 적과 맞서 근본적으로 싸울 준비가 되야한다.

#신자유주의 #원더박스 #장석준의적록서재 #내전대중혐오법치
#정치 #사회비판
#책리뷰 #책추천 #도서리뷰 #도서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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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제도 - 다수 지배와 소수 보호의 균형을 위한 정치제도 설계 정치연구총서 1
문우진 지음 / 버니온더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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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3 : 대의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제도, 문우진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모피어스 :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나?...(중략),,, 네(네오)가 회사에 출근을 하러 나가던, 쓰레기를 비우러 나가던, 심지어 세금을 내러가든 말이야. 어디를 가더라도  너를 짓누르는 그 느낌....너를 미치게 만들고는 하지...(중략)...나에게 매트릭스(Matrix)가 무언지 물었나? 답은 하나야.

통제(Control)이지.

위 대사는 1999년에 나온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주인공 네오와 선지자 격인 모피어스와의 첫만남에서 가져왔다. 극중에서 네오는 현실에서의 불안감과 기시감에 억눌려 자꾸 겉돌게 되고 그 답을 찾으러 모피어스와의 첫만남에서 매트릭스가 무어냐고 물었을때, 모피어스는 위의 대사를 날린다. 잠깐 영화의 설정을 언급하자면 기계에게 종속되어 살아가는 인간들이 동력원으로써 부품 취급을 당할 때 - 인간은 그 상황을 알지 못한다. - , 보다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연결하여 가상 세계를 제공하고 그것을 매트릭스라고 부른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저 대사가 문득 기시감(Deja-vu)이 느껴지지 않는가? 왜 당신은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 하고, 아무데나 버려도 될 거 같은 쓰레기를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방식대로 버리고 있으며, 심지어 당신의 노동의 댓가 중 일부를 기꺼이 국가에 납부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 모든 일상의 행위 양식 안에는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정해진 룰이라 모두 받아들이고 있고 이를 어길 시 발생하는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때론 폭력적으로 우리를 굴복시키며 답답하게 조차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묵히 - 때론 격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 이를 사회구성원으로써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것들이 있는 법. 어떤 이들은 이를 바꾸기 위해 소리쳐 외치며, 여론을 규합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기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활의 룰을 정하는 것을 나는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원리와 구성 요소들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 역활을 하고 있다. 작가는 정치학 교수로써 이미 일련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여러 저서들을 내놓은 바 있고, 또다시 우리 앞에 한 권의 해설서를 내놓았다.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의문 말이다. 지금이 아니어도 작가는 업으로써 한국의 정치 시스템을 꾸준히 연구하는 학자이고,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강의로도 그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데 말이다. 잠시 현 시점을 떠올려보면 곧 다가올 22대 총선(2024.04.10.)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지금은 극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정치의 분열 상황과 전쟁으로 얼룩진 국제 정치의 상황이 겹쳐 다시금 선거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현 집권 세력의 지난 행태를 보면 '혐오의 정서'에 기반한 매우 분열된 정치를 구사하고 있다고 평들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올 총선은 혼돈의 양상이 예측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몇 년간의 중요한 기로에 있다고 보인다. 저자의 문제 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된다. 우리의 일상의 "한 표"가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고찰 또한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신중히 투표할 것을 독려하고자 함이 느껴진다.

3. 인상적인 부분...

세상 모든 것에는 발생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치 또한 예외없이 그 법칙을 따른다. 최초 사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국가"라는 큰 단위를 형성하기 까지 무수히 많은 사건과 합의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는 했다. 그 모든 디테일을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정치 시스템 - 여기서는 적어도 헌법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 한정한다. - 에 있어,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이론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세부적 절차가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대중들에게 매우 필요해 보인다. 비록 교육시스템에서 기본적으로 배우고, 언론에서도 다루지만 아주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이유에 의하든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선거에 대해 귀찮은 '의무' 쯤으로 여기지, 이를 주권자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권리'임을 상기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굴 뽑아야만 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향후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처럼 '미인대회'의 선발처럼 선거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정책과 나의 삶의 목표와의 교집합을 고려하고, 미래를 위해 설계를 누구에게 맡기는 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작지만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좋은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인상적인 부분은 정치 시스템에 따라 현실 세계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선건구의 획정이라던지, 비례대표제의 룰에 따라 실제 투표결과의 차이를 비교하는 대목은 눈여겨 볼만하다. 현실 정치에서 우리들의 대표가 과연 진짜로 우리를 '대변'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논의하지 않으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또한 각 선거구의 획정에 따라 어느 정당이 유리한지도 언론에서는 잘 말해주지 않는다. - 이는 언론의 책임을 망각한 행위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 따라서 유권자로서의 알권리는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며, 단순히 그 당시의 감정이나 제한된 상태에서만 투표를 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쉽상이다. 따라서 저자와 같이 누군가는 이를 냉정하게 비교 분석하여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제시한 가이드 라인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면 더 좋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나마 쉽게 느끼는 '행정부'의 권력관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은 좋은 지점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민주국가에서는 헌법상에 '3권분립'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유권자를 대표하는 입법부와 집행권한의 상당수를 위임받는 행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법부와의 관계는 민주주의 사회를 대표하는데 필수적인 사항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의 탄생이 상당히 흐른 지금 시점에서 보면 각 부의 관계를 그 나라 현실이나 상황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특징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되어 처음의 취지와 어긋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향후의 지속적인 민주정치를 위해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이 제도의 모순이나 그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의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도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그 모든 요소들간의 상관관계를 간략히나마 정리하는 본 저서의 챕터들은 상당히 유용하다고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본 저서는 기획의도가 다가올 총선을 대비한 유권자들의 의식을 고양하기 위함이라는 데에는 저자도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자 출신의 작가이고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의도에서인지 현 시스템의 문제점이나 비판 요소는 극히 적게 거론된다. - 또는 존재한다 하더라도 미미한 정도라 보인다. - 사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제도는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굳이 지난번 총선을 들지 않더라도, 거대 두 정단의 양당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선거 제도의 맹점과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인구수 - 특히 도농지역간 격차 - 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구 획정으로 인한 과대표 문제, 그리고 대안 정당의 가능성이나 사표 심리에 의한 왜곡된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정할 것인가는 첨예한 문제들 중 몇몇일 것이다. 심지어 지난번 대선에는 '위성정당'의 편법마져 동원된 현실에서 개헌의 대두성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적 딜레마들과 해결책의 모색에 대해 좀더 분명한 입장 표명과 의견 제시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의 또 다른 키를 쥐고 있는 '언론. 즉 여론 형성 집단에 대해 지적한 부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최근의 SNS를 동원한 여론전의 성격이라던가, 현재 미디어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 현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우려가 존재함을 지적하고 싶다. 심지어 여론 조사 마져도 특정 정당이나 이익 집단을 위해 신뢰도가 의심되는 부분도 상당수 존재함이 확인되고 있고, 급기야 지난 총선에서도 여론 조사와 다른 선거 결과마져도 드러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의 편향적 보도나 공영 방송의 편향성 시비, 그리고 종편의 극단적 성향은 각종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대안 마련이나 제도적 장치의 변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는 학자로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떠나 심각한 문제로 지적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첨언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화가 감지되는 부분도 언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전자 투표 내지는 디지털 설문 조사의 가능성을 논의하고, 그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실험해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불거졌던 각종 SNS의 공정성 시비와 여론 조작 가능성, 그리고 날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여론 수렴의 가능성이나 방법론은 현재 매우 첨예한 관심사를 보이며 논의되고 있는 분야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의'라는 단어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보다 면밀한 언급이나 대안으로써의 논의가 없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존 저서들을 볼 때, 추후 이 부분만을 따로 학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이 들기는 한다.

5. 나오며...

 굳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거론하지 않아도, 현재의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를 그 근본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국가의 역할이 바뀌고, 지금은 또 다시 그 역할의 경계와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인다. 각국의 정치 지형에서 이미 극우적이고 편협한 정당들의 득세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는 듯 전쟁내지는 분쟁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분쟁의 역사는 단 한번도 멈춘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전 지구적 분쟁은 아마도 2차대전을 기점으로 종전이후 80년 가까이 외형적 분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내지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말하는 학자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 듯 최근의 전쟁에 대한 우려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늘 말하지만 정치는 결코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룰로써의 역활에서부터 국가 간의 관계 설정까지 모든 행위 양식에는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 저서와 같은 고찰은 언제든 필요하고, 저자의 문제의식도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필요성은 꾸준히 일깨워 줘야 하며, 사실 이는 공교육이나 언론이 행해야 할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기능을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이 저서와 같은 작은 시도들이 모여 언젠가 우리의 현실에 변화를 다시 한번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 글을 마친다.

#대의민주주의와 한국정치제도 #대의민주주의 #정치 #버니온더문 #문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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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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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7 : 이탈리아로 가는 길, 조귀동 저, 202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위 문구는 아랍의 속담이자, 1974년에 개봉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대표작 제목이다. 파스빈더의 일생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짐작하듯이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엄청난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온 문제작이었다.(지금까지도 아예 이 제목이 관용구로서 자리잡을 정도이다.) 영화는 독일의 소외된 계층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흔히들 말하는 "만나서는 안되는 만남"을 시작하고, 주변의 끊임없는 편견과 무시로 인해 끝내는 파국에 이르는 치정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평범한 작품이라면 이 정도에서 고전으로 남지 않았으리라. 이 영화의 진면목은 여기서부터 발휘된다. 감독은 흔히들 짐작할 수 있듯이 외부로부터 오는 편견의 폭력성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로써 "전후 독일 사회"에서 조차 도저히 근절하지 못했던, "일상의 나치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체주의에 반성을 통렬히 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새시작을 했다고 자부하던 독일 주류 사회조차도, 언제든 일상적으로 "타자화"의 폭력을 아무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시선에 많은 비평가들이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일종의 기시감(Deja-vu)을 느끼게 하는 이유라고 돌이켜 생각해 본다. 

2. 저자의 의도...

                 

본 책은 <한겨레 21>에 연재된 저자의 칼럼인 "조귀동의 경제유표"와 그 외의 다수의 논고들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진단하고, 유사 국가들 (특히 여기서는 "이탈리아"를 거론한다.)과 비교 분석하며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특히나 그 시작점을 "노무현"으로 보고, 그 이후 비극적인 보수정권의 재등장, 이를 뒤집는 극적인 촛불 시민혁명으로 인한 정상화, 끝내 다시 반동된 극우정치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정치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분석한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점을 최근 이탈리아의 그것과 대비하며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지고, 그 대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자 한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을 보면 전반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진단"이다. 책의 첫 문장부터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노무현" 정신의 태동과 그 이후 몰락의 과정을 비교적 명료하게 관찰한다. 마치 미국 민주당 정권이 클린턴 대통령 이후 "중도"의 가치를 들고, 그 정치적 근간을 기존 노동계층아 아닌 과포장된 중산층으로 옮겨오면서 그 이후 정치적 아젠다를 상실해 버린 그 위기를 지적하듯이 말이다.(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실제 "쁘띠 부르주아"에 가깝다.) 그럼으로써 끝내 "트럼프"라는 정치적 괴물에게 미국의 모든 가치를 넘겨준 오류를 범하는 그 퇴행말이다. 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같은 서사구조로 다가왔으며, 그 결과 우리는 혼란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맹렬히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한 켠에는 정치적 이념(이데올로기보다는 현안 극복을 위한)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오직 남는 것은 "기술"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적"을 상정하고, 그로써 정치적 우군을 규합하여 담론을 주도하여 대중 매체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을 기획하고, 그럼으로써 표결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그 퇴행적 기술말이다.(일찍이 이런 전략은 칼 슈미트의 논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덕분에 토론은 상실되고, 언론조차도 이해관계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어 대중들은 신뢰하자 않으며 그 어떤 정치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비교적 정확하고 간결하게 진단하는 대목은 가장 이 책의 묘미이다.

둘째로, 월트 로스토우의 "국가발전론"을 비롯, 새뮤얼 헌팅턴의 "정치발전론"에 입각하여 표면적 정치현실의 위기가 "경제문제"라는 하부구조에 기대어 있다는 논지를 적극 차용하여 전개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먹고사니즘"으로 이해되는 단순한 표어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90년대에 촉발된 양극체제의 붕괴(사회주의 몰락)로 한 쪽의 일방적 승리가 선언이 되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단극체제의 폭정을 제어할 구실이 부재했었음에 기인한다는 많은 학자들의 진단에 합류하는 합리성을 띄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근본에는 이른바 "오일쇼크"로 대비되는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시도였고, 결국 우리가 목격했듯이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그 종말을 맞이한다. 그 이후 현개까지 그 어떤 경제 담론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리저리 표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어쩌면 지그문크 바우만이 지적한 "유동하는 사회"의 근간에는 이러한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현 정치체제의 위기의 근본에는 바로 이와 같은 "경제체제의 모순"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앞서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이유로 야기된 "불안감"이 결국 민주정이란 "영혼"을 잠식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게다가 경제구조의 하위 요소인 "인구구조" 또한 언급하여 보다 더 설득력있게 이 위기를 진단하는데 보태어, 결국 노무현 정권의 최대 오점인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불평등의 극대화 및 고착화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된 논거인 "이탈리아"와 비교 대목은 꽤나 신선했다. 흔히들 한국의 미래를 일본에 빗대어 언급하고, 실제로도 현재의 대한민국 발전사에 일본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롤모델로 자리잡아온 현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러한 세간의 인식을 뒤집고 다소 생뚱맞게 저 멀리 유럽의 이탈리아를 거로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 나라의 사회구조적 유사성을 들어서 선택하지 않았나 짐작이 간다. 하부 구조인 경제구조에서 상당히 유사성이 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정치적 현실의 전개 양상이 표면적 이유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그 특유의 국민성에 대한 교집합, 고유의 독자 문화에 대한 열광 및 자부심, 모두가 느끼는 대중들의 기질적 유사성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탈리아를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추측이 든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드는 첫번째 아쉬움은 저자의 "진단"에는 충분히 동의하나, "처방"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특히 유럽) 다수 저서와 뉴스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진보"쪽으로 분류하는 미디어에서 누누히 지적해온 것들의 동어반복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본 주장이 차별화되려면 그 진단과 별개로 구체적인 "처방"이 나와야만 유효할 것인데, 본작에서는 그 임팩트가 약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독자들을 공감케 하는 제데로 된 처방이 나와야 앞서 전대한 훌륭한 진단이 더욱 빛을 발하며 대중들에게 문제의식을 불러오게 되거늘, 현재의 모습은 다소 힘이 빠지는 모양새이니 더욱 그렇다.(물론 일개 지식인으로써의 위치로 인한 한계와 또다른 논란의 부담을 피하고자 함이 의도되어 있을수도 있으나, 그 마지막 개선책의 선명성이 더욱 아쉬움을 가져온다.)

또한 대한민국 정치 위기의 현실과 이탈리아의 그것과의 비교분석은 흥미로운 대목이긴 하나, 한계점 또한 명백히 보인다. 먼저 필자가 주장한 하부구조인 경제구조의 유사성도 얼핏보면 유효한 것처엄 보이지만 차이점 또한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경제 구조는 외견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유로화"라는 단일체제에 묶여있어 우리와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한국의 대외적 요인은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시장의 흐름속에 있고 글로벌 수출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데 반해 이탈리아는 유럽이라는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고, 더군다나 유로화는 기축통화이므로 그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기조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현재 저자가 지적하는 유사성은 좁은 영역에서의 수치상의 유사함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또한 남북이 갈등하는 구조인 이탈리아와 아예 영호남간의 대치하는 한반도의 현실이 겹쳐보일 수도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시민들의 의식구조가 많이 다른 관계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의 길을 고대로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주장은 간극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신선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글로써의 한계를 태생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 유럽정치의 흐름과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적 역사를 어느정도 파악한 나와 같은 독자라면 저자의 이탈리아와의 비교하는 대목의 진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일반 대중 독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취할 수 있는 책의 구조는 어딘가에서 챕터를 따로 할애하여 이를 설명하는 대목들을 처리하고, 이후에 한국의 현실로 넘어와서 분석하는 구조였다면, 아마도 지금 책의 분량으로는 힘들고, 두꺼운 학술적인 면모가 강조된 책으로 오인받아 대중성을  떨어뜨리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그 비교할 근거를 제시할 대목을 생략하고 간다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조는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글의 전체적인 구조를 유기적으로 탄탄하게 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보이며, 저자 또한 고민했을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감한 시도를 했고, 여기에는 충분히 공감대가 개인적으로 형성되었다. 

5. 나오며...

우리는 분명 "불안"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징후는 전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퍼져 내가 일일히 이 글에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남는 의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 불안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나는 섣불리 어떤 것을 제시하기 힘들다. 현대의 복잡성은 좋은 의도로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합의 과정 또한 험난한 가운데 모두가 "선"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온전히 제도로서 정착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써 "존엄"에 대한 마지막 신뢰가 그것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타신의 존엄성을 짓밟는 결정을 내린다면(최소한 동조한다면) 어찌 인간으로써 그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겠는가. 한나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생각없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악마의 죄를 저지를 수 있다"라는 지난 세기의 처참한 교훈을 벌써 잊어버리면 안된다. 나는 다시한번 인간의 역사에서 양보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선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늘 말한다. 그것만이 우리와 "동물"을 구분짓는 유일한 점이므로... 그러한 교훈의 시작은 우리 주변의 문제인식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나와 같은 의도와 문제의식으로 이 글을 암울한 현실속에 내놓았다고 믿으며 저자의 노고에 공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탈리아로가는길 #조귀동 #생각의힘 #한국정치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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