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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너밖에 없구나, 와인 - 맛과 향으로 남겨지는 날들의 기록 일하는 사람 15
앤디 킴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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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shorts 101-24-25 결국 너 밖에 없구나, 와인, 앤디 킴 저, 2024 ★★★★?

오호라! 좋아하는 와인 책이 나왔음. 요리를 사랑하는 나로서 반가운 책임! 읽어보세요..흥미로워요! (여기 요리는 전부 내가 한거임 ㅋ)

(자세한 리뷰는 프로필 링크나 아래의 링크 참조 바람.
https://m.blog.naver.com/fatman78/223414473008)

2. 저자의 의도.
이번 신간, “결국 너밖에 없구나, 와인”은 다소 특이한 책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저자라고 밝힌 앤디 킴은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던 일반 사람이 와이너리에 빠져 자신이 하고자하는 분야에 도전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언더 독 Under-Dog”의 사연을 가진 이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와인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국립 와인 대학교에 입학하여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를 가감없이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끝내 와인 기사 훈장 (2022년)을 받기까지의 에피소드는 현대인의 삶에서 일과 삶의 영역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신간에서 저자는 거창하게 자신의 성공을 읖조리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겪은 짧은 경험들에서 과연 와인이라는, 어쩌면 우리에게 거창하게도 들릴지도 모르는 낯선 문화에서 삶의 면모를 느끼는 과정을 간간히 들려준다. 그럼으로써 삶의 궤적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지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서구 문화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상대적 왜소함의 지점을 극복하고 보다 친숙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 자신이 밝히는 이력은 상당수 거창하기는 하나, 그 어떤 프로필 사진도 관련 기사도 없이 다소 신비주의적 모습을 보여준다. -

* 세 중 요약평.
1. 와인은 생활 필수품이지 사치품이 아니다.
2. 이 책에서의 저자는 와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3. 요리와 더불어 페어링되는 와인은 삶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결국너밖에없구나와인 #앤디킴 #일하는사람 #문학수첩
#와인 #요리 #식문화
#도서리뷰 #도서추천 #책리뷰 #책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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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논객 - 우리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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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공식 북 리뷰 시리즈 101-24-07 도시논객, 서현 저, 2024 ★★★★☆


*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공식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우리에게 인문학 人文學 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단어의 정의말고, 우리가 실제로 지금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 정의말이다. 한 잔의 커피 옆에 펼쳐놓은 책 한 권,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보는 멋진 그림 한 점? 아니면 SNS에서 오늘도 쏟아지는 “인문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 눈을 아프게하는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 그 중 진짜 인문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차치하고. -

 

물론 저 행위 양식 안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흔적이 있다. 그러나 무언가 저 이미지만으로 인문학을 말한다면 당신은 2%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 200% 일수도. ㅋ -

 

 

인문학을 언어적으로 풀어보면 “Humanities, Humanitas (라틴어)” 이다. 이를 우리 말로 풀어보면 인간에 대한 “모든 것”, 인간 중심의 사고에 기초한 행위 양식을 총칭하는 뜻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이미지도 충분히 해당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주변을 바라볼 때, “우리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에 답을 하는 것이라 보면 적절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하면 더 좋고. -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한계가 없다고 했을 때, 가능한 모든 것은 인문학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유구한 인류의 역사 이래로 셀 수 없이 많은 서적과 흔적들이 다 그러하다. 그리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장소 Place”도 그 시선을 피해갈 수 없다. 아니, 더더욱 그래야만 한다!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네 삶은 꽤나 주변에 흔적을 남긴다.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간다”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것도 없으니까 주변 자연을 변형하여 우리 스스로를 살아가게끔 하고, 죽을 때는 그동안의 모든 것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니 일생 내내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무언가를 생산하며 그 흔적을 반드시 남기게 된다.- 이게 성립하니 고고학 考古學이 존재하는거 아닌가. ㅋ -

 

 

따라서 우리 주변, 즉 장소들에 대한 고찰(인문학)은 늘 있어왔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도시 都市“도 피해갈 수 없다!

- 오히려 이 거대 도시 Metropolis 야말로 인류 문명의 도서관이다. -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이 책, “도시논객” 또한 그 대오 隊伍에 합류하는 작품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 서현 서울대 교수는 이미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빨간도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로 잘 알려진 건축가이다. 대중들에게 다가가는걸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타 한국 교수들하고 다르게, 일찍부터 꾸준히 신문 칼럼에 인문학적 건축 글을 기고하며 위에 말한 책으로 대중들로부터 그 응답을 받은 학자이다.

- 방송을 잘 안타서 그렇지, 오래 전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시던 분임. -

 

 

이번 신간은 그의 계속된 여정 와중에 현재 표류하고 있는 이 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을 “도시”를 매개로 비판하며 쓴 작품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위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인 이 대한민국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며, 마음에 있는 하고픈 말을 담은 책이란 말이다. - 도데체 무엇을 향해서?.. -

 

 

우리를 비판하는 책이야 한 가득 나오고 있지만, 서현 교수는 그 중에서도 도시를 매개로 날카로운 성찰을 보이는 일련의 그룹에 속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발전국가”라는 국가 아젠다로 피폐해진 한국의 삶을 재조명하며, 급기야 “부동산”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신음하는 우리들을 각성시키고 나아가 “성과 지상주의”의 이 폐해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 도데체 언제쯤 가야 우리는 잘 산다고 말할거니? -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이 책의 최대 미덕은 그의 시선을 공유하며 “눈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된다. 그것은 유희遊戱적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치를 일깨우는 “불편함”에 가깝다.

“도시의 투전판 전략”.. “일회용품 도시”.. “땡전 없는 시대와 청와대”.. “부채 의식 없는 건축”..

도시논객 中

단지 의례적인 비판이 아니라, 삶의 실천 속에서 나오는 그의 생각과 가치에 의해 나오는 당연한 이 불편함은 우리에게 무언가 울림을 준다. 우리가 매일 보고,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것들속에 너무도 많이 우리의 “가치관이 쇠퇴함”을 우리도 모르게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이미지(사진)”으로 우리가 목격하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동의한다.

- 솔직히 나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프로불편러. ㅋ -


 

그리고 이 책은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straight 한 매력이 있다. 통상 학자들은 그 특유의 현학적 자세때문에 그들의 발언이 우리에게는 유약하거나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 앞선 제 자기계발 글 참조 - 그러나 서현 교수는 있는 그대로 직선적으로 다가간다. 때로는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어떤 면이라도 그는 그냥 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내면 속에 담고만 사는 - 그래서 병이 되는 - 지점을 끄집어내어 모두가 바라보고 같이 고민하며 치유하길 바란다.

- 이 부분은 동양권 문화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그냥 덮어놓고 가는 망각의 해법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망쳐왔는가! -

“(태극기 부대)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아우성. 태극기와 성조기는 이해하겠으나 이스라엘 국기는 생경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봐도 생경할 일이다”

 

“흰 눈 위의 불평등”

 

“용산으로 이주한 대통령 집무실. 이주 초기에는 근접 접근이 허용되었으나 다시 겹겹이 담장이 설치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지하철의 경로석 풍경) 나이에 근거한 자신감이 없으면 이 자리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

도시논객 中

때로는 냉소를 지나 불편함에 이를 수도 있음에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부분은 바로 “인간에 대한 따스한 성찰”일 것이다! (이거 없으면 욕 좀 먹을수도)

 

“(한강 복판의 노들섬) 강으로 둘러싸인 저 공간을 다중 이용 공간으로 만들려면 도시의 희소재인 섬의 가치를 버려야 한다. 그곳에 섬이 있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 옳다.”

 

“한국 전쟁 피난 시절의 기억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한 부산. 저 계단을 오르내린 기억들까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도시논객 中

이처럼 “모두까기”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지적이며 비판이기에 그 날카로움이 아프지 않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물론 저 지적이 일개 이상주의 학자의 주장이나 세상 물정모르는 동키호테같은 선비의 그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사람의 가치를 배제하지 않는다. 단지 “장소”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치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현 교수의 불편함은 그 진정성에서 기꺼이 용인해줄 수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서현 교수한테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 속시원히 하고 싶은말 다하시고, 그것도 친히 “사진”까지 첨부해서 기록하니 말이다. 굳이 들자면 지면의 분량 제한으로 아마 전부 다는 말 못한 점? 정도는 들 수 있겠다. ㅋ

오히려 아쉬운 점은 바로 “우리들”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옛 건물들이나 그 이전 시대의 유적들에 대해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폭력적인 현대 도시의 군림”이다!


 

오로지 개발 이익(땅값), 상권, 임대료, 부동산 가치에 함몰되어 정작 그 안에 살아가고, 기억(추억)을 가지고 사는 이들의 생각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 폭력성 말이다.

주변 경관과의 부조화는 애교 수준이고, 역사고 뭐고 간에 일단 돈이 되어야한다는 약탈적 행태는 이 땅에서 끊이지 않는다. 나는 개발을 반대하는 박제주의자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필요하면 개발을 하고, 때론 새출발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오로지 개발만을 부르짖는다면 정작 우리를 위한 개발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다. - 건물을 위해 우리가 사는 건 아니다. - 때론 어떤 건 그냥 놔두어야 그 의미가 있다. (적어도 부득이한 경우 최소한 기존과의 조화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또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근대 건축물들, 특히 일제시대때라는 라벨이 붙은 자취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거냐 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비단 지금은 사라져버린 “중앙청” 철거논란 뿐만 아니라, 구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의 향후 거취 논란이다.

 

 

개인적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우리 나라가 최초로 개항한 곳 인근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 서양식(일제식) 건물들이 낯설지 않고, 게다가 나름의 미가 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에서… 지금도 가끔 옛 추억에 그 동네를 가면 반절이나마 아직 그 건물들이 남아있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내 주관적으로 겉으로 뻔지르르하게 유리로 도배하고, 번쩍거리며 위용을 자랑하는 요즘의 건물보다 백 배이상의 미학을 느낀다. - 일제 찬양이 아니다! -




더욱이 민족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면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없애자고” 한다면 과연 그만큼 순수해질까 반문하고 싶다. 아픈 기억도 역사이고 그걸 우리는 제데로 기억해서 후대에 물려줄 의무도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다양성을 존중하는 걸 넘어, 서로의 것을 인정하고 그 전체로서 살아가는 것과 인간을 위해,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존을 말하는 시대로 이미 넘어와 버렸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연남동, 익선동, 힙지로, 성수동..”등 그 핫플레이스로 가보면 무엇을 현대의 대중들이 원하는지, 소위 시대정신 Zeitgeist가 뭔지 알게될 터이니 말이다.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서 나오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바로 그 몰려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5. 나오며..

 

어느덧 이 책 “도시논객”으로 출발하여, 거대 도시 비판, 그리고 나아가 천박한 자본주의 비판까지 담론을 살짝 맛보앗으니 이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겨진 무수히 많은 알레고리들과 우리의 반영된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거꾸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런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활일 것이다. - 근데 나는 이과인데. ㅋ -

근데 나는 벌써 걱정된다. 이 책에 담긴 서현 교수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외면할 몇몇 독자들이 보여서이다. 오늘도 쏟아져나오는 경제경영(이라 쓰고 돈벌이라 읽는) 서적들이나 자기계빌 서적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그러나 이 책은 적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한 부분에 답을 줄거리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나아가며, 그 길에는 반드시 “돈”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할란다. 내가 소중해했고 편하게 느껴던 그 건물들이 살아남길 바라기도 하고, 내 후손들에게 오늘 고민한 이 흔적들이 그들 사이에서도 숨쉬고 이어나가 몇 백년 후의 랜드마크라 내세울 이 땅의 품격있는 도시를 꿈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곳이 건물이지, 건물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반드시 전해주어야 한다.

 

#도시논객#서현#효형출판#서평단#책추천#도서추천#리뷰#서평#도시공학#인문학#건축#메트로폴리스#발터벤야민#도시인류학 태그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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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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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0 : 펄프헤드 Pulphead, 존 제러마이어 설리반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위 그림은 초 현실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의 대표작으로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마그리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는데, 그 의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림은 물리적으로 캔버스위에 물감 덩어리의 분포에 따른 어떤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물리적 실체를 보지 않고 그림이 표방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이는 보들리아르 Baudrillard 가 "시뮬라시옹"에서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그리고 잠식) 으로 매우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문득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에게 미국 America 은 무엇인가?..."

아마 다양한 이미지가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만가지 대답이 교차할 듯 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마천루, 넓디 넓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대자연,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기회의 땅 등등... 기존에 우리가 가진 미국의 이미지는 크고 광활한 대륙, 전 세계의 중심인 패권의 나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대중 문화의 끝판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을 우리와 최근의 현대사(해방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를 함께한 "혈맹" 으로 간주하고, 늘 부러운 대상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문득 나는 우리의 이 모습이 마치 큰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부분적으로 만지며 느낀데로, 그 거대한 전체의 집합인 코끼리를 속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누군가 미국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설명해주지 않겠어?"라고 부탁하면, 전혀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기대마져 하면서 말이다. 소위 "디커플링" 시대에 들어서 이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니, 적어도 그들의 민낯은 고사하고 도데체 무어라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개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특히 더 그러하다. 그리하여 다음의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과연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John Jeremiah Sullivan 은 미국 중부 테네시 출신의 기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등을 비롯 유수의 잡지사에 기고를 하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진으로 활동중인 작가이다. 본 작, 펄프헤드로 2011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후로 언급할 "뉴 저널리즘 New Journalism"으로 특징되는 에세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뉴 저널리즘은 영미권의 잡지들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서 기사와 에세이의 절충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일반적인 신문 기사들이 그렇듯이 시계와 같이 딱딱하고 정확한 사실 전달, 기자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제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그것처럼 세부 표사의 극적인 디테일, 필자의 의도나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개입까지 한다. 따라서 논픽션의 기틀은 유지하되 소설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하여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치 사건을 "목도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본 작은 이러한 뉴 저널리즘의 현재적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그 특유의 문체를 경험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른, 미국인 저자가 느끼는 진짜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해보기에 상당히 강점이 있다 하겠다.(그리고 책 말미에 출판사의 후기에서도 이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일종의 모음집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각 글들의 주제나 동기는 정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 한 가지는 일관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써, 동시대에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과 그 뿌리, 그리고 나아가는 여정을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3. 인상적인 부분...



처음 이 책을 접하면 - 약간이나마 이 책에 대해 전달받은 사전 정보와 달리 -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분명 에세이 집이라고는 하는데 소위 벽돌 두께의 큼지막한 분량이란! 더군다마 펼쳐든 목차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미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평소 자부하던 나부터도 도데체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던진 내 질문을 스스로 찾아보리라는 의무감마져 동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제목들을 선정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접해본 기쁨이 나름 존재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인 그 외형과 달리 선정한 주제들은 꽤나 현시적이다. "트럼피즘"의 지지 기반이 된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반동을 연상케하는 대형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다룬 첫 장 "이 반석 위에서"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상흔이 남은 태풍 "카트리나"의 기억들, 그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난 영화같은 일화들을 그 이후의 장에서 다룸으로써, 현재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분명히 큰 트라우마를 안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엿보이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는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는 면을 보여준다.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적인 공격들은 결국 "메디케어 Medicare"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로 귀결되며, 이 준동의 밑바닥에는 "폭스 뉴스"로 대변되는 극우 레서시 미디어와 티파티 Tea-party 로 잘 알려진 보수 공화당을 지지하는 로비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자들이 자기 친척들이다.) 짐작컨데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가 느끼는 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서 훗날 "미 의회 점거 폭동(2021)"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건 나만의 우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과도한 황홀감도 어두움도 없다. 다만 현장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생생함이 묻어있다. 이러한 현장감이 내가 당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대륙(유럽)에 대해서 느끼는 문화적, 역사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느끼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은 패권주의에 익숙해진 시점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단 자신들의 고립된 대륙에서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고대의 문명들의 탐사와 재발견("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이라든지 "남부"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때론 낭만주의)적 문학 운동의 마지막 장의 결말("미스터 라이틀:에세이),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었지만 과소평가된 "블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흔적들과 그를 둘러싼 문화적 의의 평가와 보전에 대한 글("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서사를 외부 시선과 상관없이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렇게 갈망한 자기들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결국 "전통"이란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역량과 세대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우리가 기억할법한 헐리우드 고전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당당시 "고전 Classic"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오마쥬를 바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밴드 출신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록 문화를 포함한 MTV 시대의 성장,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확실히 감정이 있다. 그 누가 우스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의 안티 테제로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이 반석 위에서"). 게다가 "액슬로즈의 마지막 컴백"에서 엿보이는 노골적인 락에 대한 경배와 - 나는 이것이 편협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 "마이클"에서 나타나는 모타운 사운드를 넘어선 한 위대한 뮤지션의 최대 논쟁 지점 - 아동 성추행 혐의 - 는 지금도 명백히 유효한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도 펍 Pub 에서 들려오는 각종 록 음악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이 자연스레 녹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레게 음악의 시발점인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llers 의 바로 그 에윌러를 취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빌보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그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저자의 예리한 느낌이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에세이 집이고 그들의 현재 시각과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해 선지식이나 당대의 이해도가 없는 독자들에겐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비춰질 여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화면에 나오는 미국 현지의 스탠딩 코메디 쇼를 볼때,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부분에서 자막을 보아도 유머의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석이나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학술서나 전문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주석이나 해설글이 장황해지면, 자칫 가벼운듯한 느낌의 저자의 글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거라는 지점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의 우려를 반영한듯 최대한 주석을 자제한 편집이 보인다. - 그러므로 이 책을 보다 더 다양한 독자들과 조우하게 하려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미디어에서 그 역활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또한 내가 보기에 미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고 믿는다. 1,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6.25 전쟁과 베트남전으로 우리 역사와도 조우하는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나 그들 이전의 원주민들에 의한 역사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저 단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백인 중심"의 시각에서 다룬 일부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원 즈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따라가기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구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소스가 존재하고, 접근성도 꽤 용이한 편이므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어나가면 어떨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구현하고 있는 "뉴 저널리즘" 문체의 한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이 글들은 뉴스 기사와 소설사이의 어딘가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글들이며 신선할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부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그들의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 쟝르가, 전혀 규모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우리의 그것에서 얼마나 인상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인듯 하다. -그리고 출판사도 이를 비판하는 문제 인식을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뿐, 어떤 목적성이 들어갈 문제는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꾸준히 이러한 글들을 소개한다면, 꽤나 가독성이 보장되는 이 쟝르의 글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미국을 바라보도록 하자. "신대륙, 신국가"라는 의지의 표상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구대륙"의 모순들을 피해 모여든 이민자들의 다양성이 혼재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현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기회의 땅"의 모습, 물질 문명의 극치를 선보이며, 그 이미지적 헤게모니를 장학한 거대 국가... 이 정도로 그동안 정리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오로지 이 책에서의 느낌으로 재정의 해보는 것이다.

문자를 남기지 않아 지금도 그 신비함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적 대륙, 가장 현대적인 도시 문명과 가장 전원적인 자연 환경이 공존하는 드넓은 나라,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문화적 근간들 - 흑인음악, 남부문학, 헐리우드 영화 - 을 구축해낸 역동성의 나라,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간 견제가 팽배한 국가.. 이 정도가 아닐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오늘도 외신을 장식하는 그들의 뉴스를 좀더 이해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도 자유 지향적이면서도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의 내면, 패권주의를 보이지만 자신들의 대륙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의 뿌리,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 문화적 배경을 대중문화와 영상매체를 통해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재편한 그들의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 모순적인 부분들을 보다 더 잘 드러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의 시도일지라도 서서히 우리의 인식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펄프헤드 #존제러마이아설리반 #고영범 #알마 #알마출판사 #에세이 #미국문화 #신간

#마이클잭슨 #건즈앤로지스 #리얼리티쇼 #미국남부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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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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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6 :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현 저, 202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강호의 도의(度義)가 땅에 떨어졌다..."

이 대사는 그 유명한 영화 "영웅본색"의 한 대사이다. 이 단호한 선언과도 같은 문구는 다음의 극중 흐름에서 나온다. 등장인물이 몸담던 범죄조직에서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상황이 조성되고, 기존의 권력구조가 또다른 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가운데 극중 인물들은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을 보인다. 

        


첫째로, "변절하는" 유형이다. 영화내에서는 담성(이자웅 분)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일찍 감지하고 재빨이 그 안에서 개인의 영달을 꾀하며, 기존 세력의 제거를 도모한다. 둘째로, "저항하는" 유형이다. 이 영화의 진주인공에 해당하는 소마(주윤발 분)는 강건하지만 낭만적 인물로 이 불의에 분노하며, 그 유명한 "풍림각의 복수"장면을 보이며 배신자들을 응징한다. (이 과정에서 본인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만 하는 큰 부상을 입게된다.) 마지막으로 "순응하거나 도피하는" 유형이다. 외견상 영화의 주인공인 송자호(적룡 분)가 이 유형에 해당하며 극중에서는 음모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회피는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며, 이 불의에도 조직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와 함께 출소하면서 과거 청산을 위해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온다.

이와 같은 서사 구조는 역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침탈로 인해 결국 한일합방에 이르렀을 때,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저자린 진암 이병현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이병형 선생은 호는 진암이고, 경남 함양 출신의 유생이다. 당시 영남유림의 곽종석에게 사사받는 재야 유림으로써, 그 입지를 굳힐 뻔하나 당대 청나라의 강유위(캉 유웨이)의 개화사상을 접하고 개화사상가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외견적 목적인 중국 방문 또한 그 강유위의 사상을 보다 더 근거리에서 접하고, 궁극적으로 "공교"(유교의 종교 개혁 운동에 해당) 사상을 조선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함이었다. 비록 후에 그 뜻이 보수 유림들의 반대에 부딪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으나, 망해버린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써 유학을 근본 사상으로 하여 난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활동은 평생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옴이 다수의 저서를 통해 남겨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사상적 근본에 해당하는 "공교"와 그 이론적 종주국인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함으로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앞서 밝혔듯이 필자는 "유교의 종교화" 즉 "공교"를 꿈꾸는 원대한 이상향을 근간으로, 중국 본토, 공가의 고장에서 공자나 기타 유교의 성인들에 대한 제례와 의식들에 대해 매우 세밀한 서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종교적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 세부적인 절차와 의미 부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유관 학문 분야에서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의해 합병이 되어버리고, 중국마져 서양 각국의 침탈에 신음하던 그 때에, 혼란함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조선에서 만연하고 있던 배청사상의 비판과 당대의 만연한 구악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조선 풍수설"로 인한 묘지 남용으로 말미암은 토지 사용의 왜곡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다던지,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북방에 대한 힙일설에 공감하는 대목이 그런 예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합병된 조선이 슬픈 현실에 대해 나름의 한계를 인지하고, 근대 서구 문물과 문화에 대한 관심 (단, 적극적인 도입은 아닌것으로 보인다.)에 대한 지적도 의미가 있다. 만주지방의 경제적 침탈과 붕괴는 "금본위제"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근대적 화폐론을 거론하는 대목도 엿보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다던지, 또는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짐작케하는 내용을 거론하는 장면은 이례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아마도 청나라로부터 전래된 서구 과학 문물에 대한 정보를 접해봤다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서문의 소개글에서는 언급되지만 본 저서에는 많이 서술되지 않는 사실은, 이병현 선생이 서구의 "근대국가론"과 칸트, 루소 등 "계몽철학"도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에서 명백히 서술되는 "유교우위론"과 "공교"에 대한 언급에서 불가피한 구시대적 유학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근대 서구 철학의 근본 명제와 이제껏 자신이 받아들이던 유학의 그것들이 상충하는 부분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되며, 결국 본인의 선택은 후자의 우위론을 설파하는데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서구에서 종교과 철학이 분리되고, 정치에 있어 국가의 기본이념이 "종교"가 아닌 "시민의식"에 입각한 "법"에 근거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이는 곧 루소나 칸트의 계몽철학의 근간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그동안 믿어왔던 철학이자 이념으로서의 유교 사상에 입각한 지식 체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종교와 철학이 합일될 것이라는 학문적 예측 오류도 범한다.)

또한 지주가 둥글다는 것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지동설과 공전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도 자기 고백적으로 나온다. 이는 서구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합리적 명제들이 어떻게 철학과 분리되었고, 객관화(또는 실체화)되어 감에 따라 하나의 학문 체계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즉, 서구 근대 문물의 우월성과 특이함에 관심은 보이되, 그 근간을 보지 못했다는 면에서 유학을 맹신하는 구시대적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생의 꿈인 "공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머지, 대부분의 근대적 국가에서 당연시되던 "재정분리"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점도 눈에 띈다. 세속의 종교가 한 국가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것과 그 종교가 특정 국가의 시스템에 완전히 구조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로 봐야한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서구권에서는 근대 국가 이전의 국가론에서나 볼 법한 주장에 지나지 않고, 이미 때는 계몽사회를 넘어 "발전국가"의 모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임에도, 본인이 인지하는 그 시대적 감각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당대 이 정도 유림의 지식인들의 표본이라고 이 저자를 설정한다면 그 시대적 수준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대비되어 "메이지 유신" 이후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그것돠는 크게 보아 백년, 작게 보아도 최소 수십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니, 그 시대의 흐름을 조선이 따라잡지 못한 것은 현재 우리들에게 뼈아픈 대목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5. 나오며...

이 여행기를 다 읽고 나서 나에게는 이 책의 제목은 "공교로의 애가" (내지는 회귀)라는 제목이 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 세 부류의 유형 중, 이병현 선생은 자신의 세계로 침착해 들어가 끝내 퇴보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퇴보는 자신이 원한 바도 아니었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유교 근본주의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타파하지 못하였기 때문아닐까. 또한 본인은 여행 중 넉넉치 못함을 가끔 호소하나, 그 당시 생계와 관련없이 이역만리를 몇 차례에 걸쳐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 대중에 비해 삶의 여유가 최소한 보장된 부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만일 이 짐작을 긍정한다면, "저항하지 않고" 이와 같은 애가에 가까운 기록만 남겼다는 소극적 회피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유학의 마지막 현세에 대해 세밀한 기록의 기여 부분은 인정할만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1차 사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인다. 오늘날 시대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변하였고, 세상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넘나드는 이 시기에 과거의 우리 모습을 소규모로나마 남겼다는 의의로 이 작품을 이해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중화유기 #이병현 #빈빈책방 #근대 #중국여행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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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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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40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안토니오 : 나와 함께 떠납시다...!

지오바나 : 그럴 수 없어요, 당신도 나도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잖아요...

안토니오 : .....(물끄러미 응시를 하며)

이 장면은 한국 고전 영화팬들도 잘 아는 작품인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1970)"의 마지막 장면이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의 운명으로 기구하게 헤어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재회하여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같이 떠나자는 남자의 제안을 대사처럼 거부하고 그의 아내 곁으로 떠나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이윽고 소피아 로렌은 멀어지는 기차창으로 물끄러미 자신을 보는 남자를 끝까지 응시하면서 그렇게 떠나보내고, 마지막에 폭발하듯이 무너지면서 오열하는 눈물의 롱테이크는 영화사에 남을 이별의 한 장면으로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화 내내 나오는 헨리 맨시니의 아름다운 피아노 곡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장면이 있기까지 사건의 전개와 결말은 지극히 진부한 흐름을 따른다. 아무리 사랑하지만 이미 가정을 각자 꾸리고 있는 두 남녀가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는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흔하디 흔한 이야기인데, 정작 이 장면이 가지는 힘은 마지막 기차역에서의 롱테이크에 있다. 그 어떤 대사도 없이 서로를 아쉬운 듯 바라보는 (다시 만나지 못할 운명을 이미 서로 아는듯) 그 흔들리는 눈빛과 애써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어 그를 배웅하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두고 참았던 눈물을 결국 쏟아내고 마는 그 장면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너무나 선명하고 애달프게 표현한다. 이처럼 걸작인 영화에 있어 명대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이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대사로 처리하는 것은 하급한 연출로 취급된다. 진정한 명감독일수록 대사 하나없이도 위의 "해바라기"처럼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연출로서 전달하는 것이 고급한 연출로 간주되어왔다. 

그런데 2000년대를 넘어서서 최근까지 개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점점 그 화면의 호흡이 짧아지고 있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대사의 양도 점점 늘어나며 매우 감각적이고도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화면에 가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예전 고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정적인 고요함, 느린 화면, 잔잔한 구성은 점차적으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인가...라는 반문을 할 정도로 요즘 매체들은 "바쁘기만" 하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일본 영화업계에 종사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와중에, 이 책의 기반이 된 칼럼을 기고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각종 매체에서 저자의 주된 논점인 "현재 세대의 콘텐츠 소비성향"을 다루며, 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본 작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제목조차 2030세대가 열광하는 명시적인 책 제목으로 의도적으로 지었으며, 현재 세대의 콘텐츠 소비 성향 실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책 또한 발간하자마자 즉시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정을 받았고, 현재까지 다수의 관련 저서를 발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위 MZ세대로 대변되는 연령층의 충격적인 변화를 각종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통하여 낯낯이 소개하고,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과 저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이들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실태백서"에 가까운 책이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저자가 지적하듯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소위 "빨리감기"를 통하여 패스트푸드를 소비하듯 컨텐츠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양태가 아니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 습관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종 컨텐츠의 제작하는 환경에서부터 변화를 자발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로 큰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감독이나 작가나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완성품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전까지의 세대와는 달리 작품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노력을 요구하면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외면을 하는 팬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가 스스로가 일종의 "검열"과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다. 이는 제작사나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도 하고, 산업으로서의 한계를 가지는 환경에서 의도치 않은 변화이다. (이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헐리우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이 개인을 파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주의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역기능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전에는 학교, 직장과 같이 사회생활을 위한 시간에서는 철저히 사회화를 따르고, 자신들의 공간인 각자의 집이나 개인영역에서는 자기만의 문화나 습관을 분리 유지하는 반면, 지금은 각종 메신져를 비롯, 온라인으로 거의 24시간 내내 누군가와는 커뮤니케이션의 여지를 열어두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자신들이 구축한 관계망에서 소외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세대의 불안 심리는 공통의 관심사로 참여할 수 있는 보평성 내지는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고 타인과 차별화를 보여줄 수 있는 개별성을 동시에 강요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각을 살펴보면 개성이 있는듯하나, 모두가 의도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니 정작 차별화가 안되는 모순적인 상황말이다.) 게다가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을 담보한 여론의 반응은 이전 세대보다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하므로, 반대로 컨텐츠 제작의 입장에서는 무언의 압박을 전례없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온라인화의 전면적 확대가 개인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면을 가져오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점에서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빅브라더"의 출현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한 시나리오 작가의 인터뷰에서 지적하듯이 제도권 교육의 실패가 가장 뼈아픈 지점 중 하나이다. 비교적 고전 작품이나 예술들을 자신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제도권 교육의 커리큘럼에서이다. 긴 호흡의 문학작품, 모호한 의미의 그림, 신나는 댄스음악이 아닌 소박하고 고즈넉한 음악 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제도권 교육이 충실하게 그 기능을 다하였다면, 이 정도로 이해력의 부재와 불통을 호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교육들이 변화하는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점이 매우 미흡하고, 특히나 입시 위주의 한중일 같은 나라들은 아예 학생들이 공교육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할 지경이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MZ세대들의 현재 모습은 완성이 되었고, 이를 그들만의 잘못으로 비난하기에는 분명 기성 사회의 책임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기보다는 현재의 세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이상 사람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학습을 하든, 소비를 하든, 모두가 속도에 취해 질주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현기증마져 난다. 그와 반대 급부로 "느림의 미학"에 대해 의도적이더라도 집중이 이뤄지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절대로 잠깐 멈추어 서서 현재 자신의 어떤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난을 한다. 이러한 세태의 끝은 현재 각국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로의 회귀이다. 지난 십수년간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소위 "빅마우스"로 대변되는 극우에 가까운 편협한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전례없이 전쟁의 위기감마져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경이다.) 앞으로 흘러갈 방향이 흡사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양상마져 겹쳐져 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매번 발생하는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양극화가 사람들에게서 "기다리는" 여유를 빼앗아가고만 있다고 느껴져 매우 아쉽다. 이대로 대안을 찾지 않으면 근래내에 우리는 다시 한번 "전면전"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져 든다.

5. 나오며...

사실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컨텐츠 소비의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 LP에서 디지털 CD로의 전환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이전의 LP를 감상할 때는 느긋히 독립된 공간에서 정성스레 바늘을 올려놓고, 한면이 다 끝날 때까지 들어야 했다. 앨범의 구성 조차 A면/B면의 곡배치도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배치되며, 순차적으로 감상하면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CD로 넘어오며 A면/B면의 구성은 사라지고 가장 큰 특징으로 "skip" 기능이 눈에 띄게 된다. 다시말해 원하는 곡을 "선택적"으로 찾아가서 듣고 전체 CD의 구성에 대해 관심이 느슨해지는 것을 개인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원하는 노래만 "반복' 청취할 수도 있었다. 이는 편리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아날로그 적인 "행위 자체의 기쁨"을 어느덧 상실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 아닐까. 더욱이 mp3로 대표되는 음원시장과 현재의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아예 물리적 실체조차 사라지고, "소유"의 개념조차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개별 곡들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뮤지션들 또한 개별 곡을 선택하는 대중들의 선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급기야 현재 곡들의 기이한 곡구조 (기승전결의 고전적 구성이 아닌 충격요법에 기인한 도입부의 기형적 구조)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시대의 조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고유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부인하기에는 어렵다. (일반적인 음반의 판매고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영혼없는 질주의 세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는 나와 같은 고전주의자들은 점점 개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후세대에게 다시 그 고유의 가치를 즐기는 법을 전수해야 하는 "숙제" 또한 주어졌다. 저자가 주장하듯 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좀더 방향을 제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매우 공감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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