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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40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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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 나와 함께 떠납시다...!
지오바나 : 그럴 수 없어요, 당신도 나도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잖아요...
안토니오 : .....(물끄러미 응시를 하며)
이 장면은 한국 고전 영화팬들도 잘 아는 작품인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1970)"의 마지막 장면이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의 운명으로 기구하게 헤어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재회하여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같이 떠나자는 남자의 제안을 대사처럼 거부하고 그의 아내 곁으로 떠나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이윽고 소피아 로렌은 멀어지는 기차창으로 물끄러미 자신을 보는 남자를 끝까지 응시하면서 그렇게 떠나보내고, 마지막에 폭발하듯이 무너지면서 오열하는 눈물의 롱테이크는 영화사에 남을 이별의 한 장면으로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화 내내 나오는 헨리 맨시니의 아름다운 피아노 곡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장면이 있기까지 사건의 전개와 결말은 지극히 진부한 흐름을 따른다. 아무리 사랑하지만 이미 가정을 각자 꾸리고 있는 두 남녀가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는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흔하디 흔한 이야기인데, 정작 이 장면이 가지는 힘은 마지막 기차역에서의 롱테이크에 있다. 그 어떤 대사도 없이 서로를 아쉬운 듯 바라보는 (다시 만나지 못할 운명을 이미 서로 아는듯) 그 흔들리는 눈빛과 애써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어 그를 배웅하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두고 참았던 눈물을 결국 쏟아내고 마는 그 장면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너무나 선명하고 애달프게 표현한다. 이처럼 걸작인 영화에 있어 명대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이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대사로 처리하는 것은 하급한 연출로 취급된다. 진정한 명감독일수록 대사 하나없이도 위의 "해바라기"처럼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연출로서 전달하는 것이 고급한 연출로 간주되어왔다.
그런데 2000년대를 넘어서서 최근까지 개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점점 그 화면의 호흡이 짧아지고 있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대사의 양도 점점 늘어나며 매우 감각적이고도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화면에 가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예전 고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정적인 고요함, 느린 화면, 잔잔한 구성은 점차적으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인가...라는 반문을 할 정도로 요즘 매체들은 "바쁘기만" 하다.
2. 저자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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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 영화업계에 종사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와중에, 이 책의 기반이 된 칼럼을 기고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각종 매체에서 저자의 주된 논점인 "현재 세대의 콘텐츠 소비성향"을 다루며, 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본 작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제목조차 2030세대가 열광하는 명시적인 책 제목으로 의도적으로 지었으며, 현재 세대의 콘텐츠 소비 성향 실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책 또한 발간하자마자 즉시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정을 받았고, 현재까지 다수의 관련 저서를 발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위 MZ세대로 대변되는 연령층의 충격적인 변화를 각종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통하여 낯낯이 소개하고,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과 저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이들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실태백서"에 가까운 책이다.
3. 인상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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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자가 지적하듯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소위 "빨리감기"를 통하여 패스트푸드를 소비하듯 컨텐츠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양태가 아니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 습관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종 컨텐츠의 제작하는 환경에서부터 변화를 자발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로 큰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감독이나 작가나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완성품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전까지의 세대와는 달리 작품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노력을 요구하면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외면을 하는 팬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가 스스로가 일종의 "검열"과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다. 이는 제작사나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도 하고, 산업으로서의 한계를 가지는 환경에서 의도치 않은 변화이다. (이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헐리우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이 개인을 파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주의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역기능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전에는 학교, 직장과 같이 사회생활을 위한 시간에서는 철저히 사회화를 따르고, 자신들의 공간인 각자의 집이나 개인영역에서는 자기만의 문화나 습관을 분리 유지하는 반면, 지금은 각종 메신져를 비롯, 온라인으로 거의 24시간 내내 누군가와는 커뮤니케이션의 여지를 열어두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자신들이 구축한 관계망에서 소외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세대의 불안 심리는 공통의 관심사로 참여할 수 있는 보평성 내지는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고 타인과 차별화를 보여줄 수 있는 개별성을 동시에 강요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각을 살펴보면 개성이 있는듯하나, 모두가 의도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니 정작 차별화가 안되는 모순적인 상황말이다.) 게다가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을 담보한 여론의 반응은 이전 세대보다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하므로, 반대로 컨텐츠 제작의 입장에서는 무언의 압박을 전례없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온라인화의 전면적 확대가 개인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면을 가져오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점에서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빅브라더"의 출현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한 시나리오 작가의 인터뷰에서 지적하듯이 제도권 교육의 실패가 가장 뼈아픈 지점 중 하나이다. 비교적 고전 작품이나 예술들을 자신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제도권 교육의 커리큘럼에서이다. 긴 호흡의 문학작품, 모호한 의미의 그림, 신나는 댄스음악이 아닌 소박하고 고즈넉한 음악 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제도권 교육이 충실하게 그 기능을 다하였다면, 이 정도로 이해력의 부재와 불통을 호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교육들이 변화하는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점이 매우 미흡하고, 특히나 입시 위주의 한중일 같은 나라들은 아예 학생들이 공교육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할 지경이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MZ세대들의 현재 모습은 완성이 되었고, 이를 그들만의 잘못으로 비난하기에는 분명 기성 사회의 책임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기보다는 현재의 세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이상 사람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학습을 하든, 소비를 하든, 모두가 속도에 취해 질주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현기증마져 난다. 그와 반대 급부로 "느림의 미학"에 대해 의도적이더라도 집중이 이뤄지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절대로 잠깐 멈추어 서서 현재 자신의 어떤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난을 한다. 이러한 세태의 끝은 현재 각국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로의 회귀이다. 지난 십수년간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소위 "빅마우스"로 대변되는 극우에 가까운 편협한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전례없이 전쟁의 위기감마져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경이다.) 앞으로 흘러갈 방향이 흡사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양상마져 겹쳐져 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매번 발생하는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양극화가 사람들에게서 "기다리는" 여유를 빼앗아가고만 있다고 느껴져 매우 아쉽다. 이대로 대안을 찾지 않으면 근래내에 우리는 다시 한번 "전면전"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져 든다.
5.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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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컨텐츠 소비의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 LP에서 디지털 CD로의 전환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이전의 LP를 감상할 때는 느긋히 독립된 공간에서 정성스레 바늘을 올려놓고, 한면이 다 끝날 때까지 들어야 했다. 앨범의 구성 조차 A면/B면의 곡배치도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배치되며, 순차적으로 감상하면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CD로 넘어오며 A면/B면의 구성은 사라지고 가장 큰 특징으로 "skip" 기능이 눈에 띄게 된다. 다시말해 원하는 곡을 "선택적"으로 찾아가서 듣고 전체 CD의 구성에 대해 관심이 느슨해지는 것을 개인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원하는 노래만 "반복' 청취할 수도 있었다. 이는 편리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아날로그 적인 "행위 자체의 기쁨"을 어느덧 상실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 아닐까. 더욱이 mp3로 대표되는 음원시장과 현재의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아예 물리적 실체조차 사라지고, "소유"의 개념조차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개별 곡들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뮤지션들 또한 개별 곡을 선택하는 대중들의 선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급기야 현재 곡들의 기이한 곡구조 (기승전결의 고전적 구성이 아닌 충격요법에 기인한 도입부의 기형적 구조)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시대의 조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고유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부인하기에는 어렵다. (일반적인 음반의 판매고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영혼없는 질주의 세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는 나와 같은 고전주의자들은 점점 개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후세대에게 다시 그 고유의 가치를 즐기는 법을 전수해야 하는 "숙제" 또한 주어졌다. 저자가 주장하듯 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좀더 방향을 제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매우 공감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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