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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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6 :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현 저, 202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강호의 도의(度義)가 땅에 떨어졌다..."

이 대사는 그 유명한 영화 "영웅본색"의 한 대사이다. 이 단호한 선언과도 같은 문구는 다음의 극중 흐름에서 나온다. 등장인물이 몸담던 범죄조직에서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상황이 조성되고, 기존의 권력구조가 또다른 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가운데 극중 인물들은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을 보인다. 

        


첫째로, "변절하는" 유형이다. 영화내에서는 담성(이자웅 분)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일찍 감지하고 재빨이 그 안에서 개인의 영달을 꾀하며, 기존 세력의 제거를 도모한다. 둘째로, "저항하는" 유형이다. 이 영화의 진주인공에 해당하는 소마(주윤발 분)는 강건하지만 낭만적 인물로 이 불의에 분노하며, 그 유명한 "풍림각의 복수"장면을 보이며 배신자들을 응징한다. (이 과정에서 본인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만 하는 큰 부상을 입게된다.) 마지막으로 "순응하거나 도피하는" 유형이다. 외견상 영화의 주인공인 송자호(적룡 분)가 이 유형에 해당하며 극중에서는 음모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회피는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며, 이 불의에도 조직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와 함께 출소하면서 과거 청산을 위해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온다.

이와 같은 서사 구조는 역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침탈로 인해 결국 한일합방에 이르렀을 때,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저자린 진암 이병현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이병형 선생은 호는 진암이고, 경남 함양 출신의 유생이다. 당시 영남유림의 곽종석에게 사사받는 재야 유림으로써, 그 입지를 굳힐 뻔하나 당대 청나라의 강유위(캉 유웨이)의 개화사상을 접하고 개화사상가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외견적 목적인 중국 방문 또한 그 강유위의 사상을 보다 더 근거리에서 접하고, 궁극적으로 "공교"(유교의 종교 개혁 운동에 해당) 사상을 조선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함이었다. 비록 후에 그 뜻이 보수 유림들의 반대에 부딪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으나, 망해버린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써 유학을 근본 사상으로 하여 난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활동은 평생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옴이 다수의 저서를 통해 남겨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사상적 근본에 해당하는 "공교"와 그 이론적 종주국인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함으로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앞서 밝혔듯이 필자는 "유교의 종교화" 즉 "공교"를 꿈꾸는 원대한 이상향을 근간으로, 중국 본토, 공가의 고장에서 공자나 기타 유교의 성인들에 대한 제례와 의식들에 대해 매우 세밀한 서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종교적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 세부적인 절차와 의미 부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유관 학문 분야에서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의해 합병이 되어버리고, 중국마져 서양 각국의 침탈에 신음하던 그 때에, 혼란함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조선에서 만연하고 있던 배청사상의 비판과 당대의 만연한 구악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조선 풍수설"로 인한 묘지 남용으로 말미암은 토지 사용의 왜곡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다던지,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북방에 대한 힙일설에 공감하는 대목이 그런 예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합병된 조선이 슬픈 현실에 대해 나름의 한계를 인지하고, 근대 서구 문물과 문화에 대한 관심 (단, 적극적인 도입은 아닌것으로 보인다.)에 대한 지적도 의미가 있다. 만주지방의 경제적 침탈과 붕괴는 "금본위제"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근대적 화폐론을 거론하는 대목도 엿보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다던지, 또는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짐작케하는 내용을 거론하는 장면은 이례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아마도 청나라로부터 전래된 서구 과학 문물에 대한 정보를 접해봤다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서문의 소개글에서는 언급되지만 본 저서에는 많이 서술되지 않는 사실은, 이병현 선생이 서구의 "근대국가론"과 칸트, 루소 등 "계몽철학"도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에서 명백히 서술되는 "유교우위론"과 "공교"에 대한 언급에서 불가피한 구시대적 유학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근대 서구 철학의 근본 명제와 이제껏 자신이 받아들이던 유학의 그것들이 상충하는 부분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되며, 결국 본인의 선택은 후자의 우위론을 설파하는데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서구에서 종교과 철학이 분리되고, 정치에 있어 국가의 기본이념이 "종교"가 아닌 "시민의식"에 입각한 "법"에 근거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이는 곧 루소나 칸트의 계몽철학의 근간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그동안 믿어왔던 철학이자 이념으로서의 유교 사상에 입각한 지식 체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종교와 철학이 합일될 것이라는 학문적 예측 오류도 범한다.)

또한 지주가 둥글다는 것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지동설과 공전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도 자기 고백적으로 나온다. 이는 서구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합리적 명제들이 어떻게 철학과 분리되었고, 객관화(또는 실체화)되어 감에 따라 하나의 학문 체계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즉, 서구 근대 문물의 우월성과 특이함에 관심은 보이되, 그 근간을 보지 못했다는 면에서 유학을 맹신하는 구시대적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생의 꿈인 "공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머지, 대부분의 근대적 국가에서 당연시되던 "재정분리"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점도 눈에 띈다. 세속의 종교가 한 국가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것과 그 종교가 특정 국가의 시스템에 완전히 구조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로 봐야한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서구권에서는 근대 국가 이전의 국가론에서나 볼 법한 주장에 지나지 않고, 이미 때는 계몽사회를 넘어 "발전국가"의 모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임에도, 본인이 인지하는 그 시대적 감각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당대 이 정도 유림의 지식인들의 표본이라고 이 저자를 설정한다면 그 시대적 수준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대비되어 "메이지 유신" 이후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그것돠는 크게 보아 백년, 작게 보아도 최소 수십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니, 그 시대의 흐름을 조선이 따라잡지 못한 것은 현재 우리들에게 뼈아픈 대목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5. 나오며...

이 여행기를 다 읽고 나서 나에게는 이 책의 제목은 "공교로의 애가" (내지는 회귀)라는 제목이 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 세 부류의 유형 중, 이병현 선생은 자신의 세계로 침착해 들어가 끝내 퇴보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퇴보는 자신이 원한 바도 아니었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유교 근본주의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타파하지 못하였기 때문아닐까. 또한 본인은 여행 중 넉넉치 못함을 가끔 호소하나, 그 당시 생계와 관련없이 이역만리를 몇 차례에 걸쳐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 대중에 비해 삶의 여유가 최소한 보장된 부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만일 이 짐작을 긍정한다면, "저항하지 않고" 이와 같은 애가에 가까운 기록만 남겼다는 소극적 회피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유학의 마지막 현세에 대해 세밀한 기록의 기여 부분은 인정할만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1차 사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인다. 오늘날 시대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변하였고, 세상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넘나드는 이 시기에 과거의 우리 모습을 소규모로나마 남겼다는 의의로 이 작품을 이해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중화유기 #이병현 #빈빈책방 #근대 #중국여행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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