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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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0 : 펄프헤드 Pulphead, 존 제러마이어 설리반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위 그림은 초 현실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의 대표작으로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마그리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는데, 그 의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림은 물리적으로 캔버스위에 물감 덩어리의 분포에 따른 어떤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물리적 실체를 보지 않고 그림이 표방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이는 보들리아르 Baudrillard 가 "시뮬라시옹"에서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그리고 잠식) 으로 매우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문득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에게 미국 America 은 무엇인가?..."

아마 다양한 이미지가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만가지 대답이 교차할 듯 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마천루, 넓디 넓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대자연,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기회의 땅 등등... 기존에 우리가 가진 미국의 이미지는 크고 광활한 대륙, 전 세계의 중심인 패권의 나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대중 문화의 끝판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을 우리와 최근의 현대사(해방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를 함께한 "혈맹" 으로 간주하고, 늘 부러운 대상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문득 나는 우리의 이 모습이 마치 큰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부분적으로 만지며 느낀데로, 그 거대한 전체의 집합인 코끼리를 속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누군가 미국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설명해주지 않겠어?"라고 부탁하면, 전혀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기대마져 하면서 말이다. 소위 "디커플링" 시대에 들어서 이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니, 적어도 그들의 민낯은 고사하고 도데체 무어라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개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특히 더 그러하다. 그리하여 다음의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과연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John Jeremiah Sullivan 은 미국 중부 테네시 출신의 기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등을 비롯 유수의 잡지사에 기고를 하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진으로 활동중인 작가이다. 본 작, 펄프헤드로 2011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후로 언급할 "뉴 저널리즘 New Journalism"으로 특징되는 에세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뉴 저널리즘은 영미권의 잡지들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서 기사와 에세이의 절충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일반적인 신문 기사들이 그렇듯이 시계와 같이 딱딱하고 정확한 사실 전달, 기자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제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그것처럼 세부 표사의 극적인 디테일, 필자의 의도나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개입까지 한다. 따라서 논픽션의 기틀은 유지하되 소설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하여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치 사건을 "목도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본 작은 이러한 뉴 저널리즘의 현재적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그 특유의 문체를 경험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른, 미국인 저자가 느끼는 진짜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해보기에 상당히 강점이 있다 하겠다.(그리고 책 말미에 출판사의 후기에서도 이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일종의 모음집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각 글들의 주제나 동기는 정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 한 가지는 일관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써, 동시대에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과 그 뿌리, 그리고 나아가는 여정을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3. 인상적인 부분...



처음 이 책을 접하면 - 약간이나마 이 책에 대해 전달받은 사전 정보와 달리 -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분명 에세이 집이라고는 하는데 소위 벽돌 두께의 큼지막한 분량이란! 더군다마 펼쳐든 목차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미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평소 자부하던 나부터도 도데체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던진 내 질문을 스스로 찾아보리라는 의무감마져 동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제목들을 선정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접해본 기쁨이 나름 존재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인 그 외형과 달리 선정한 주제들은 꽤나 현시적이다. "트럼피즘"의 지지 기반이 된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반동을 연상케하는 대형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다룬 첫 장 "이 반석 위에서"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상흔이 남은 태풍 "카트리나"의 기억들, 그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난 영화같은 일화들을 그 이후의 장에서 다룸으로써, 현재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분명히 큰 트라우마를 안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엿보이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는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는 면을 보여준다.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적인 공격들은 결국 "메디케어 Medicare"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로 귀결되며, 이 준동의 밑바닥에는 "폭스 뉴스"로 대변되는 극우 레서시 미디어와 티파티 Tea-party 로 잘 알려진 보수 공화당을 지지하는 로비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자들이 자기 친척들이다.) 짐작컨데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가 느끼는 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서 훗날 "미 의회 점거 폭동(2021)"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건 나만의 우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과도한 황홀감도 어두움도 없다. 다만 현장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생생함이 묻어있다. 이러한 현장감이 내가 당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대륙(유럽)에 대해서 느끼는 문화적, 역사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느끼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은 패권주의에 익숙해진 시점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단 자신들의 고립된 대륙에서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고대의 문명들의 탐사와 재발견("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이라든지 "남부"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때론 낭만주의)적 문학 운동의 마지막 장의 결말("미스터 라이틀:에세이),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었지만 과소평가된 "블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흔적들과 그를 둘러싼 문화적 의의 평가와 보전에 대한 글("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서사를 외부 시선과 상관없이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렇게 갈망한 자기들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결국 "전통"이란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역량과 세대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우리가 기억할법한 헐리우드 고전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당당시 "고전 Classic"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오마쥬를 바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밴드 출신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록 문화를 포함한 MTV 시대의 성장,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확실히 감정이 있다. 그 누가 우스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의 안티 테제로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이 반석 위에서"). 게다가 "액슬로즈의 마지막 컴백"에서 엿보이는 노골적인 락에 대한 경배와 - 나는 이것이 편협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 "마이클"에서 나타나는 모타운 사운드를 넘어선 한 위대한 뮤지션의 최대 논쟁 지점 - 아동 성추행 혐의 - 는 지금도 명백히 유효한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도 펍 Pub 에서 들려오는 각종 록 음악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이 자연스레 녹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레게 음악의 시발점인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llers 의 바로 그 에윌러를 취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빌보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그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저자의 예리한 느낌이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에세이 집이고 그들의 현재 시각과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해 선지식이나 당대의 이해도가 없는 독자들에겐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비춰질 여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화면에 나오는 미국 현지의 스탠딩 코메디 쇼를 볼때,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부분에서 자막을 보아도 유머의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석이나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학술서나 전문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주석이나 해설글이 장황해지면, 자칫 가벼운듯한 느낌의 저자의 글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거라는 지점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의 우려를 반영한듯 최대한 주석을 자제한 편집이 보인다. - 그러므로 이 책을 보다 더 다양한 독자들과 조우하게 하려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미디어에서 그 역활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또한 내가 보기에 미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고 믿는다. 1,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6.25 전쟁과 베트남전으로 우리 역사와도 조우하는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나 그들 이전의 원주민들에 의한 역사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저 단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백인 중심"의 시각에서 다룬 일부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원 즈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따라가기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구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소스가 존재하고, 접근성도 꽤 용이한 편이므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어나가면 어떨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구현하고 있는 "뉴 저널리즘" 문체의 한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이 글들은 뉴스 기사와 소설사이의 어딘가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글들이며 신선할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부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그들의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 쟝르가, 전혀 규모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우리의 그것에서 얼마나 인상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인듯 하다. -그리고 출판사도 이를 비판하는 문제 인식을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뿐, 어떤 목적성이 들어갈 문제는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꾸준히 이러한 글들을 소개한다면, 꽤나 가독성이 보장되는 이 쟝르의 글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미국을 바라보도록 하자. "신대륙, 신국가"라는 의지의 표상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구대륙"의 모순들을 피해 모여든 이민자들의 다양성이 혼재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현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기회의 땅"의 모습, 물질 문명의 극치를 선보이며, 그 이미지적 헤게모니를 장학한 거대 국가... 이 정도로 그동안 정리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오로지 이 책에서의 느낌으로 재정의 해보는 것이다.

문자를 남기지 않아 지금도 그 신비함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적 대륙, 가장 현대적인 도시 문명과 가장 전원적인 자연 환경이 공존하는 드넓은 나라,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문화적 근간들 - 흑인음악, 남부문학, 헐리우드 영화 - 을 구축해낸 역동성의 나라,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간 견제가 팽배한 국가.. 이 정도가 아닐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오늘도 외신을 장식하는 그들의 뉴스를 좀더 이해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도 자유 지향적이면서도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의 내면, 패권주의를 보이지만 자신들의 대륙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의 뿌리,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 문화적 배경을 대중문화와 영상매체를 통해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재편한 그들의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 모순적인 부분들을 보다 더 잘 드러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의 시도일지라도 서서히 우리의 인식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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