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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평점 :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7 : 이탈리아로 가는 길, 조귀동 저, 202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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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위 문구는 아랍의 속담이자, 1974년에 개봉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대표작 제목이다. 파스빈더의 일생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짐작하듯이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엄청난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온 문제작이었다.(지금까지도 아예 이 제목이 관용구로서 자리잡을 정도이다.) 영화는 독일의 소외된 계층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흔히들 말하는 "만나서는 안되는 만남"을 시작하고, 주변의 끊임없는 편견과 무시로 인해 끝내는 파국에 이르는 치정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평범한 작품이라면 이 정도에서 고전으로 남지 않았으리라. 이 영화의 진면목은 여기서부터 발휘된다. 감독은 흔히들 짐작할 수 있듯이 외부로부터 오는 편견의 폭력성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로써 "전후 독일 사회"에서 조차 도저히 근절하지 못했던, "일상의 나치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체주의에 반성을 통렬히 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새시작을 했다고 자부하던 독일 주류 사회조차도, 언제든 일상적으로 "타자화"의 폭력을 아무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시선에 많은 비평가들이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일종의 기시감(Deja-vu)을 느끼게 하는 이유라고 돌이켜 생각해 본다.
2. 저자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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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한겨레 21>에 연재된 저자의 칼럼인 "조귀동의 경제유표"와 그 외의 다수의 논고들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진단하고, 유사 국가들 (특히 여기서는 "이탈리아"를 거론한다.)과 비교 분석하며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특히나 그 시작점을 "노무현"으로 보고, 그 이후 비극적인 보수정권의 재등장, 이를 뒤집는 극적인 촛불 시민혁명으로 인한 정상화, 끝내 다시 반동된 극우정치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정치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분석한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점을 최근 이탈리아의 그것과 대비하며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지고, 그 대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자 한다.
3. 인상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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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보면 전반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진단"이다. 책의 첫 문장부터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노무현" 정신의 태동과 그 이후 몰락의 과정을 비교적 명료하게 관찰한다. 마치 미국 민주당 정권이 클린턴 대통령 이후 "중도"의 가치를 들고, 그 정치적 근간을 기존 노동계층아 아닌 과포장된 중산층으로 옮겨오면서 그 이후 정치적 아젠다를 상실해 버린 그 위기를 지적하듯이 말이다.(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실제 "쁘띠 부르주아"에 가깝다.) 그럼으로써 끝내 "트럼프"라는 정치적 괴물에게 미국의 모든 가치를 넘겨준 오류를 범하는 그 퇴행말이다. 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같은 서사구조로 다가왔으며, 그 결과 우리는 혼란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맹렬히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한 켠에는 정치적 이념(이데올로기보다는 현안 극복을 위한)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오직 남는 것은 "기술"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적"을 상정하고, 그로써 정치적 우군을 규합하여 담론을 주도하여 대중 매체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을 기획하고, 그럼으로써 표결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그 퇴행적 기술말이다.(일찍이 이런 전략은 칼 슈미트의 논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덕분에 토론은 상실되고, 언론조차도 이해관계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어 대중들은 신뢰하자 않으며 그 어떤 정치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비교적 정확하고 간결하게 진단하는 대목은 가장 이 책의 묘미이다.
둘째로, 월트 로스토우의 "국가발전론"을 비롯, 새뮤얼 헌팅턴의 "정치발전론"에 입각하여 표면적 정치현실의 위기가 "경제문제"라는 하부구조에 기대어 있다는 논지를 적극 차용하여 전개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먹고사니즘"으로 이해되는 단순한 표어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90년대에 촉발된 양극체제의 붕괴(사회주의 몰락)로 한 쪽의 일방적 승리가 선언이 되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단극체제의 폭정을 제어할 구실이 부재했었음에 기인한다는 많은 학자들의 진단에 합류하는 합리성을 띄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근본에는 이른바 "오일쇼크"로 대비되는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시도였고, 결국 우리가 목격했듯이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그 종말을 맞이한다. 그 이후 현개까지 그 어떤 경제 담론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리저리 표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어쩌면 지그문크 바우만이 지적한 "유동하는 사회"의 근간에는 이러한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현 정치체제의 위기의 근본에는 바로 이와 같은 "경제체제의 모순"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앞서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이유로 야기된 "불안감"이 결국 민주정이란 "영혼"을 잠식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게다가 경제구조의 하위 요소인 "인구구조" 또한 언급하여 보다 더 설득력있게 이 위기를 진단하는데 보태어, 결국 노무현 정권의 최대 오점인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불평등의 극대화 및 고착화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된 논거인 "이탈리아"와 비교 대목은 꽤나 신선했다. 흔히들 한국의 미래를 일본에 빗대어 언급하고, 실제로도 현재의 대한민국 발전사에 일본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롤모델로 자리잡아온 현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러한 세간의 인식을 뒤집고 다소 생뚱맞게 저 멀리 유럽의 이탈리아를 거로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 나라의 사회구조적 유사성을 들어서 선택하지 않았나 짐작이 간다. 하부 구조인 경제구조에서 상당히 유사성이 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정치적 현실의 전개 양상이 표면적 이유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그 특유의 국민성에 대한 교집합, 고유의 독자 문화에 대한 열광 및 자부심, 모두가 느끼는 대중들의 기질적 유사성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탈리아를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추측이 든다.
4.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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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드는 첫번째 아쉬움은 저자의 "진단"에는 충분히 동의하나, "처방"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특히 유럽) 다수 저서와 뉴스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진보"쪽으로 분류하는 미디어에서 누누히 지적해온 것들의 동어반복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본 주장이 차별화되려면 그 진단과 별개로 구체적인 "처방"이 나와야만 유효할 것인데, 본작에서는 그 임팩트가 약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독자들을 공감케 하는 제데로 된 처방이 나와야 앞서 전대한 훌륭한 진단이 더욱 빛을 발하며 대중들에게 문제의식을 불러오게 되거늘, 현재의 모습은 다소 힘이 빠지는 모양새이니 더욱 그렇다.(물론 일개 지식인으로써의 위치로 인한 한계와 또다른 논란의 부담을 피하고자 함이 의도되어 있을수도 있으나, 그 마지막 개선책의 선명성이 더욱 아쉬움을 가져온다.)
또한 대한민국 정치 위기의 현실과 이탈리아의 그것과의 비교분석은 흥미로운 대목이긴 하나, 한계점 또한 명백히 보인다. 먼저 필자가 주장한 하부구조인 경제구조의 유사성도 얼핏보면 유효한 것처엄 보이지만 차이점 또한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경제 구조는 외견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유로화"라는 단일체제에 묶여있어 우리와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한국의 대외적 요인은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시장의 흐름속에 있고 글로벌 수출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데 반해 이탈리아는 유럽이라는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고, 더군다나 유로화는 기축통화이므로 그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기조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현재 저자가 지적하는 유사성은 좁은 영역에서의 수치상의 유사함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또한 남북이 갈등하는 구조인 이탈리아와 아예 영호남간의 대치하는 한반도의 현실이 겹쳐보일 수도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시민들의 의식구조가 많이 다른 관계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의 길을 고대로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주장은 간극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신선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글로써의 한계를 태생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 유럽정치의 흐름과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적 역사를 어느정도 파악한 나와 같은 독자라면 저자의 이탈리아와의 비교하는 대목의 진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일반 대중 독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취할 수 있는 책의 구조는 어딘가에서 챕터를 따로 할애하여 이를 설명하는 대목들을 처리하고, 이후에 한국의 현실로 넘어와서 분석하는 구조였다면, 아마도 지금 책의 분량으로는 힘들고, 두꺼운 학술적인 면모가 강조된 책으로 오인받아 대중성을 떨어뜨리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그 비교할 근거를 제시할 대목을 생략하고 간다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조는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글의 전체적인 구조를 유기적으로 탄탄하게 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보이며, 저자 또한 고민했을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감한 시도를 했고, 여기에는 충분히 공감대가 개인적으로 형성되었다.
5.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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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명 "불안"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징후는 전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퍼져 내가 일일히 이 글에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남는 의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 불안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나는 섣불리 어떤 것을 제시하기 힘들다. 현대의 복잡성은 좋은 의도로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합의 과정 또한 험난한 가운데 모두가 "선"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온전히 제도로서 정착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써 "존엄"에 대한 마지막 신뢰가 그것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타신의 존엄성을 짓밟는 결정을 내린다면(최소한 동조한다면) 어찌 인간으로써 그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겠는가. 한나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생각없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악마의 죄를 저지를 수 있다"라는 지난 세기의 처참한 교훈을 벌써 잊어버리면 안된다. 나는 다시한번 인간의 역사에서 양보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선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늘 말한다. 그것만이 우리와 "동물"을 구분짓는 유일한 점이므로... 그러한 교훈의 시작은 우리 주변의 문제인식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나와 같은 의도와 문제의식으로 이 글을 암울한 현실속에 내놓았다고 믿으며 저자의 노고에 공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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