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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원제 [ The rape of Nanking ] 의 저자 아이리스 장은 지금 이세상에 없다. 국수주의 적인 일본 우익 단체들의 협박과 압력 , 그로인한 심신의 피로도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 , 서평전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
어느 역사나 그러할지 모르지만 특히 전쟁의 역사 ,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쟁 와중에 겪어야 하는 민중들의 고초는 말로 다 할수가 없다. 근대사의 한국 전쟁이 그러했고 ,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만주 사변이나 이책에서 집중 조명한 난징 대 학살이 그렇고 , 2차 세계 대전시의 유태인의 학살을 주도한 독일의 나치 정권이 그러하다...
난징에서 학살로 숨진 추정 사망자는 대략 30만에서 ~ 40만 사이라고 한다. 이는 두번의 원자탄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두 도시 사망자 총수를 뛰어 넘는 것이고 , 1937년 중/일 전쟁이 선전 포고 없이 발발 하면서 그해 12월 약 6주 정도의 짧은 시간안에 인명 대청소를 시행한 광폭한 폭도들의 군인 집단이 살상이 가능한 최대 수치 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견할 만한 것이 독일 나치에 저질 러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이다. 제너사이드 가 가능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어떤 것이지가 궁금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책 기록에서도 일부 일본 군인들은 사람들을 구타 하는 것 조차 두려워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기회에 살인과 폭력을 일삼게 되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에서 아무런 법질서 없이 행해진 죄악이 집단 면죄부를 받는 다고 생각 하는 순간 이들 개개인의 양심은 다를 지 모르지만 집단 광기의 흐름은 그 누구도 제어 할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라와 , 정치 , 그리고 군대 조직이 지탱 하기 위한 기반에는 규율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컨트롤 하는 집단 우두머리들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의 위계 질서를 깨드리면서 까지 평화 행동에 나서는 무리들은 전쟁 중에는 당연하게도 배척 되었고 배제 되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원제 그래로 라면 최악의 집단 강간 살해가 일본 군국주의 자들의 치밀한 계획아래 , 합법적으로 저질 러진 만행이 난징 대학살 사건 이다... 아직까지도 국가적인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당시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껏 절규 하고 있다... 세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지만 일본 국수주의 자들의 조직적인 방해공작 또한 만만 치가 않다.. 자국의 교과서에서는 전혀 그러한 내용을 표기 하지 않는 역사의 왜곡 , 날조
심지어 , 전쟁중의 일이라 어쩔 수 없다라는 어처 구니 없는 문건의 글을 보면 , 이나라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을것이라 확신 한다.
독일 또한 비숫한 과오를 저질럿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 국가의 총수 , 미르켈 총리는 언제나 반성과 화해의 모드로 타국민의 정서와 국제법에 준한 피해 보상을 약속 하고 절차에 따른 이행을 하고 있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현제 2014년 일본은 가장 우익 스러운 아베정권이 국정을 좌지 우지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중국 전쟁에 대한 피해 보상은 커녕 자국의 이익을 구하기에 급급 하다. 그런 마당에 신사 참배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 까지 하다. 한국민에 대한 위안부 논쟁 또한 그들의 눈엔 버들나무 바람 날리기 이다.
생각해 본다. 일본인이 살고 있는 나라 자체가 이러한 광기를 저면에 가지고 있는 민족성인가. 아님 그 시대가 그러한 광기의 역사를 묵인해 준 손쉬운 방편 이었는가 , 1980년대 후반까지 천수를 누리다 제명에 죽은 히로 히토 천황은 그저 살아 있는 신인가 ? 아님 그네들의 그간 피묻힌 역사의 면죄부의 대리인지 파악해 보고 싶다..
역사를 다시 돌아가 ,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을 앞서 개항 시키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 그리고 이후 40년 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하지 못햇더라면 ,- 난징의 비극은 없었을 텐데 ... 1904년 러일 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은 이후 1910년의 한일 합방은 아주 손쉬운 먹이감이었다.. 당연하게도 1931년 만주 사변을 고의로 일으켜 중국과의 마찰로 전쟁의 빌미를 잡은 그들은 1937년 선전 포고 없는 대 중국 전쟁을 하게 된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마무리 되고 나서 1946 년5월 ~ 1948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이 개정 되었고 A 급 전범 7명이 사평 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 졌지만 최고 지도자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면죄부를 받았다. 기소 조차 되지 않은 그를 보면서 수많은 우익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동일하게 전쟁의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 하는 지도 모른다.
집단적 광기는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도 있다. 중국 난징 에서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 하지만
전쟁의 죄악을 반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대로된 절차 없이 무마하거나 그러한 일이 아니라고 왜곡 시킨다면
그나라의 장래는 불확실 하고, 또다른 광기의 분출구를 찾는 다른 목적에 의해 언젠가 터질 지 모르는 화산섬이기도 하다.
불행 하게도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러한 화산섬을 옆에 두고 이렇게 무심히 생활 하고 있다.. 위로는 개념없는 어린 통치자가 할아 버지 흉내를 내느라 과잉 정책을 편다.
이 첵 프롤 로그에 이런 말이 있다 [ 역사를 무시 하는 사람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by 폴리처상 수상자 , 카를로스 로물로 .
난징의 강간 - 은 지금도 진행되고 치열하게 작용 하는 세계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과도 같다고 애기 하고 싶다. 우리는 이 정의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 가녀린 목소리로 자신이 겪어 보지도 못했던 참혹한 일들을 하나 하나 재구성에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의 책으로 발간하게 된 그녀의 용기와 그들을 도와 진실의 목소리를 오늘도 전파 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끝나지 않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고야 말리라는 것에 세계 정의의 미래를 걸어 봅니다. < 책력거99 >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