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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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아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 더 나쁘기도 하단다. - P93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P119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P149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아니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마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돈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P17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리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 P213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 P237

"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살마들도 잇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미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기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 P372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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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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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렸던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누군가와 다 같이 읽게 되니 뒤로 밀려있던 순위가 단번에 1등을 차지했다.


이어령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교수, 학자, 작가, 칼럼니스트, 예술가, 장관, 아트디렉터.....

워낙 많은 일들을 너무도 다 잘 해내었기에 어떤 수식어를 그 이름 앞에 붙여도 하나도 상경하지 않은 사람. 바로 이어령이다.


이 책을 계기로 김지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잡지사의 에디터였다고 하며 이어령 교수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김지수 작가는 암 투병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서도 끝까지 공부하고 탐구했던 '까칠한' 인간 이어령을 16번이나 단독 인터뷰하는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총 16개의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16개 수업은 나름의 제목을 갖고 있지만, 나도 내 나름으로 각각의 수업에서 얻어 낸 키워드가 있다.


1장 바디/스피릿/마인드.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꿀벌 독서법

2장 큰 질문을 경계하라

3장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과 은폐.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것, 죽음

4장 운명과 자유의지

5장 존경vs사랑. 관습vs도발 혹은 삐딱

6장 디테일의 진실. 타자성의 철학

7장 진선미-순수, 실천, 판단의 기준

8장 스토리텔링이 있는 부유한 삶. 인생의 3단계 - 관심/관찰/관계

9장 꿈꾸는 삶

10장 상처와 고통

11장 눈물 한 방울

15장 도마뱀의 창조성. 한국인


김지수 작가가 이어령 교수를 거의 신급으로 존경하고 사랑한 관계로 책은 마지막 수업을 정리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어령의 말을 경전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오히려 약간의 반감을 생기게 했다고나 할까?


과도한 경전화의 느낌을 알아서 편집하고 나면, 이어령의 말들은 생전에 그가 이룬 수많은 일들처럼, 그의 말조차 무수히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고 있다.

그의 말을 읽음으로써 필부(匹婦)인 나는 전혀 몰랐던 지식과 사상을 알게 되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16개의 수업 중에 마지막 몇 개의 수업은 앞의 수업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앞의 수업을 잘 들었으면 뒤에 있던 수업은 밑줄을 긋지 않아도 절로 반복 효과가 나는, 아주 바람직한 수업이었다.

모두가 가슴에 새길만하고 머리에 쌓아둘 만한 가치 있는 수업이었으나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생각을 되새김한 가장 좋았던 수업은 두 번째 수업 '큰 질문을 경계하라'였다.


이어령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어떤 양봉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이어령 교수는 이런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하며, 그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의 큰 질문 - 책 한 권으로도 답이 모자랄만한 총론 같은 질문이 아주 많다고 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나, 질문하는 것을 고깝게 보고 돌출된 행동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논문을 쓴다면 "8.15 해방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같은 것을 많이 쓴다면, 서양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세세하게 따지고 드는 논문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나도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워크숍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국인은 두어 명이었고 외국인은 열 명 정도인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더 좋은 중간 관리자가 되기 위한 몇몇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팀끼리 토론을 통해 우리 회사에 맞는 중간 관리자는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좋은 중간 관리자라, 어찌 보면 뻔한 대답이 나올만한 주제이다.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상사와 회사가 요구하는 것을 밑으로 잘 전달하는 것. 뭐 이런 뻔한 교과서적인 답을 준비하면서 나는 토론에 활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양에서 온 동료들은 이 뻔한 내용을 갖고 어찌나 시시콜콜 대화를 하고 대립을 하고 갑론을박을 하는지 나는 이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아니, 뭐 이리 진지하고 세밀하게 사례를 들어가며 토론을 한단 말인가!

발표 시에 보니 서양의 동료들은 아주 디테일한 본인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좋은 중간관리자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였다. 내가 준비한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야말로 뻔한 말이어서, 발표에서 나는 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공교육에서 질문과 발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주입식 교육법 탓을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가 '질문 있습니까?'라고 할 때 내 질문은 주로 두루뭉술한 거대 담론적인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멍청해 보여서 타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 내야 할 수도 있고, 시간도 없는데 뭐 그런 것까지 묻는다고 그런 건 따로 조용히 가서 질문하라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질문,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도 화려한 미사여구로 있어 보이는 질문을 하다 보니 내 질문은 주로 '큰 질문'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의 두 번째 수업을 들으면서 내 질문의 허점을 깨닫게 되었고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수업은 아주 좋은 수업이다.

게다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기에 돈이 들지 않았다.) 배웠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터이다. 모든 수업이 다 좋은 수업이었지만, 이어령 교수에게서 들은 마지막 수업 중 두 번째 강의가 내게 딱 그런 수업이었다.


밑줄을 여러 군데 그었다. 수업 내용은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배운 것을 두고두고 보고 익히기 위하여, 밑줄 그은 문구들을 나의 '좋은 말 모음집' 노트에 고이고이 필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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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시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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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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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 P12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 P49

우리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P60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 P85

필연과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P88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다시 덧붙였다.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P114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ㄲ 작곡하고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싦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잇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음닐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P187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이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그는 아무것도 비밀이 아니며 모든 시선에 열린 ‘유리 집‘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던 앙드레 브르통의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 P205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 P353

목청 높여 자신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 나았을까? 혹은 침묵해서그 대가로 좀 더 느린 종말을 사야 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한 가지 해답만이 존재할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 P357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 P436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중략)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중략)
세 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중략)
끝으로 아주 드문 네 번째 점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 P440

현실이란 꿈을 뛰어넘는 것, 꿈을 휠씬 뛰어넘는 것이란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 P448

테레자는 태평하게 무릎을 베고 누운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대상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은 아무런 미덕도 아니다. 테레자는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릭 심지어 토마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랑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우리 감정, 우리 사랑이나 비-사랑, 우리 호의 혹은 증오의 결과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개인 간 역학 관계에 의해 사전에 규정되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 P470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밖에 나온 거야. 카레닌은 산책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단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려고 온 거야."
그녀가 한 말은 슬펐지만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슬픔을 무릅써서가 아니라 슬픔 덕분이었던 것이다. - P476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니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귿르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휠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 - P493

"솔직히 말해서 아들과의 만남이 두려워. 바로 그래서 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내가 왜 이리 고집불통인지 나도 모르겠어. 어느 날 어떤 결심을 하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 결심에는 자기 고유의 관성이 생기는 거야.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을 바꾸는 게 더 힘들어." - P500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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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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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 P46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내가 내디딘 걸음들뿐이다. - P65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 P88

각성이 나의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었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어느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 P91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 P122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다. 나는 운명을 동경하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그곳에 있었다. 늘 내 위에 있었다. - P127

나는 단 한 가지만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 내 앞 어딘가에 그려 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 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P128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 P130

이제 비로소 피스토리우스가 이해되었다. 그의 모든 꿈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런 꿈이었다. 사제가 되어 새로운 종교를 알리는 꿈, 찬양과 사랑,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주고 새로운 상징들을 세우려는 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도 편안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 속에 머물렀다. 그는 예전의 것을 너무도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에 대해, 아브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았다. 그의 사랑은 이미 지구가 본 형상들에 매여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스스로가 잘 알았다.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하며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어 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의 직분은 어쩌면 나에게 해 주었듯이 인간이 그 자신에게 이르도록 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대미문의 것, 새로운 신들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 P168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P169

"연대란...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 P180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하면 안 돼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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