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리부트 -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김미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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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라고 하면 뭔가 감정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이 들고 기회라고 하면 왠지 운이 따라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위기와 기회 사이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 P34

함께 일하는 공간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구체적인 성과와 실력뿐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꼭 이걸 물어봐야 한다.
"나는 회사에서 함께 일하건 혼자 일하건 똑같이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인가?" - P106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해하는 수준으로는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 생존할 수 없다. 마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습득해야만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 P94

한 분야에서 코어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 코어가 재정비되고 업그레이드된 상태를 매일 유지한다는 얘기다. 적어도 3~5개 정도의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코어콘텐츠가 유지되고 더 탄탄해지려면 그 코어의 주변 공부를 해야하고, 그래야만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탄생다. - P111

인디펜던트 워커는 하나의 작은 회사다. 투자하지 않는 회사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수입의 30퍼센트 정도는 미래를 위한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 나는 매일 영어공부, 디지털 공부, 책 읽기, 과학 공부, 취미 계발을 꾸준히 한다. 남들은 그러면 너무 히미들지 않냐고 묻는데 괜찮다. 힘든 것과 바쁜 것은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그래도 바쁜 게 한가한 것보다는 낫고, 힘든 게 슬픈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걸 오랫동안 인디펜던트 워커로 살아오며 체험했다.
그래도 참 좋은 것은 이런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결과가 내 몸과 커리어와 내 인생에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이다. - P112

회사 밖에[서 혼자 일하게 되면 일감이 끊기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왜 나를 찾지 않는지 감도 안 잡힐 때는 더욱 난감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거다. 일이 끊겼다는 것은 ‘독립‘한 게 아니라 ‘고립‘되었다는 반증이다.(...) 혹시 인디펜던트 워커를 ‘혼자서 일하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독립적으로 일하되 사람과 사회와 촘촘히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 - P113

머리로는 변화의 진폭을 이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지금 가진 것들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재고 청산이 빠른데 개인은 재고 청산이 힘들다. 자기를 여태껏 먹여 살려온 내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심지어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 서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재고는 재고일 뿐이다. 괄거에 나를 먹여 살렸지만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아 재고가 되어버린 자산이 있다면 빨리 처분해야 한다. 재고를 처분해야 새로운 곳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45

변화가 빠를 때는 투자 관점에서 자산을 매각하는 일을 일상화해야 한다. 끊임없이 바꾸고 조합하고 새로 채워야 내 분야에서 유능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빗장을 여는 일이다. 열어야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야 바꿀 수 있다. - P146

이렇게 가져갈 것과 채워야 할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적다 보면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있다. 작대기 긋기다. 짝을 지어 서로 연결을 시켜보면 목록들이 저절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 만약 목록을 다 적고도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직 분석이 덜 끝났다는 뜻이다. - P165

모든 아이디어는 낯선 것을 봤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거나,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났거나, 내가 지금껏 관심 없던 것들과 연결되면서 만들어 진다. 낯선 것과의 충돌은 기존의 생각에 균열을 만들고, 그 틈새에서 새로운 시각이 탄생한다. - P169

우리가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멋들어진 시나리오 자체가 아니라 시나리오 쓰기와 실행을 수도 없이 반복해나가는 실행력이다.
개인의 리부트 시나리오에는 그저 전망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하려고 한다‘는 개인의 의지가 들어 있다. 시나리오 3단계와 실행이 습관이 된다면 우리도 현재와 미래를 만나게 할 수 있다. 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지는 미래는 단 하나도 없다. 나를 살리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방법은 계속 실패해보고 수정하는 것뿐이다. 해보지 않은 일은 실패가 곧 검증이다. - P178

우리도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 방식을 리부트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몇 년간 파고드는 ‘석박사형 공부‘가 아니다. 넓게 알고 빨리 연결시키는 게 중유한 융합형 학습니다. - P196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실력‘이다. 기술은 집중하면 단기간에 얻을 수 있다.(...)먹고사는 기초 실력이 없으면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강의하는 실력이 없었다면 유투브를 하건, 줌을 하건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을까. 아무리 SNS 홍보 기술이 뚸어나도 음식이 맛없고 경영 실력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기술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써복 익숙해지면 일상의 하나가 될 뿐이다. 그러니 자꾸 움츠러들지 말자. - P260

코로나 이후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으려면 목표를 수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수정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수‘와 ‘변수‘를 구분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그 일을 하고 싶은 나는 변하지 않는 ‘상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변수‘는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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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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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신화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 중심에 번역가 이윤기가 있었다. 동화 같은 신화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성인들이 신화를 읽게 한 장본인, 바로 이윤기이다.


나도 그 열풍에 같이 뛰어들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1,2권을 사서 탐독하였다. 아쉽게도 수많은 헷갈리는 신들의 이름과 범람하여 한꺼번에 몰려드는 강물처럼 쏟아지는 신들의 사건들에 치여 후속 책들은 읽지 못했지만.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을 때 받은 느낌은, '이 사람 글 참 쉽게 쓴다'였다. 이후로 나는 이윤기가 소설이면서도 전문 번역가로 아주 유명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작년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이윤기가 번역한 책이었다. 46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 2권이나 되는 책이었는데 내용 또한 난해하여 서양 중세의 종교와 철학, 기호학, 시학이 책 속에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책을 다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당시 나는 "뭔 번역을 좀 쉽게 하지. 이야기를 이해를 못 하겠잖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집 앞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있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남아서 정말 오랜만에 실물 서점에 들어갔다. 책을 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서점을 막 나오는 순간 이 책이 내 눈에 띄었다. 눈에 잘 띄는 노란 표지였다. 책값은 단돈 5천 원. 바로 책값을 지불하고 말았다.


책을 읽고 보니 이윤기가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어렵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책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의 수준이 안되었던 것임을 알았다. 스스로 1.5세대 번역가임을 자처했던 이윤기는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기 위해서 철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학, 철학과 무수한 철학의 개념을 일일이 찾았다. 또 그는 애초 원문인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문판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놓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오독과 오역은 필수불가결하게 따라왔기에 2000년대 들어 그의 오독과 오역이 지적을 당하자 두말 않고 지적을 흡수하고 수정하여 더 나은 품질의 번역으로 다시 책을 출간하였다. 번역은 소설 창작을 두 번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미의 이름>이 어려웠던 건 그의 번역이 부실함이 아니라 내가 중세의 종교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윤기도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이윤기가 살아있을 때 썼던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이다. 부제는 '땀과 자유로 범벅이 되게 써라!'.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했던 이윤기는 '조르바'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던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작품과 작가라고 칭송하였다. 카잔차키스가 묻힌 크레타 섬에 두 번이 찾아가서 그의 무덤에 묵념할 정도로 좋아하였다. 그랬던 그가 '조르바'를 사랑하고 '조르바'와 카잔차키스가 숭배해 마지않았던 "자유"를 찬양하고 애정했다는 것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다.


이 책은 글쓰기와 번역하기에 대해서 이윤기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글과 말로 나누었던 느낌들을 가벼운 필치로 써 내려간 책이다. 메모장과 연필 없이 나도 가볍게 읽어내렸어갔지만 두 가지 지점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미국에 자리 잡은 뒤부터 번역 일을 줄였다. 내가 가장 힘써서 한 일은 '노는 일'이었다. 푹 놀았다. 노는 틈틈이 책 읽고, 영어 입말 배우고, 미국을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라는 특정 언어 배우기와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 배우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법 배우기였다. 나는 개인의 힘은 자기를 바꾸어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는 바닥부터 박박 기었다.

(93쪽)

이윤기는 나이 마흔다섯에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업 잘나가는 번역가라는 신분을 걷어차고 스스로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그는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싶었다"라고 했다. 잘나가는 번역가로 남아있어도 되지만 그에게 글쓰기이라는 동반자를 있게 해준 소설과 소설 쓰기가 아직 내지 못한 숙제처럼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는 밀린 숙제를 내기 위해서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모두 다 그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어쨌든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하여서 꿈꾸던 것을 이루었다. 밀린 숙제를 마침내 다 해서 제출한 것이다. 그렇게 낸 밀린 숙제는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동인문학상이라는 큰 상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말했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다. 흐르려면 바닥을 기어야 한다. 사람 또한 그렇다. 사람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94족)

나는 흐르는 물일까, 고여있는 물일까. 나는 바닥을 기고 있는 걸까, 아직 바닥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바닥을 무사히 지나온 것일까. 

- 나는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숱한 외국의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윤기는 어쩔 수 없이 우리말을 공부하고 우리말 어법에 맞게 쓰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런 그가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못 견뎌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게 쓰는 말과 글이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거나 들을 수 있는 표현들, 책에서 가져온 예를 들어보자면

"보여지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말을 빌면, 위 표현은 잘못되었다. "보이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우리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국어에 영어식 표현을 갖다 쓰다 보니 영어의 사역어법을 우리말에도 많이 쓰고 있다. "~보여지는 것은" "~되어진 것은"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게 했다" 등이 그것인데 이것은 "~보이는 것은" "된 것은" "나는 ~을 했다"등으로 표현해야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에 있어서"같은 일본식 표현도 아직까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도 꽤나 많이 "~하게 되다" "보여진다" 등의 글을 말이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할 때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글을 쓸 때는 이런 어미의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글자 수를 늘려보려는 꼼수가 버릇이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직접적으로 쓰는 위험을 줄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겸손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후 이런 내가 글을 이런 어미로 마무리하는지 어떤지를 한 번 더 검토하곤 한다. (방금도 검토하게 되었다. 라고 썼다가 고쳤다. 이게 정확히 문법적으로 잘못된 건지 아닌지 다시 한번 알아보아야겠다.)


글을 많이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에 관련한 책을 종종 읽는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주제 정하기, 소재 고르기, 비유, 묘사 등 글 쓰는 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평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갖고 있던 생각을 가벼운 수필로 쓴 책이다. 하지만 나는 마냥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조르바가 어렵고 춤추는 것은 더더욱 못하기 때문에 조르바를 춤추게 하기는커녕 춤 못 춘다고 조르바에게 역정이나 듣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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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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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의 재해석도 삼가려고 하지요. 그 까닭은, 경험할 때의 세게 인식과 재해석할 때의 세계 인식은 그 층위가 다르게 마련인데, 이 양자를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무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열다섯 살 소년의 경험 해석에 쉰 살 먹은 사내의 인식이 개입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는데, 이래가지고는 열다섯 살배기의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고 그래서 대책 없이 강력한 에너지의 형상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 P48

경험의 재해석으로부터 탈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상상력이라는 날개가 있기는 합니다만 일상의 중력에 길들고 타성에 물든 이 상상력이라는 날개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데 너무나 무력하지요. 중력권 바깥은 어둠의 벽입니다. 상상력은 어둠의 벽 앞에서 번번히 격퇴당하고 말지요. 중력권을 탈출하자면 막강한 추진력 혹은 파괴적인 돌파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 P49

나는 숨은 그림과 나 사이에 거대한 어둠의 벽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어둠의 벽입니다. 벽의 어둠입니다. 나는, 작가느 ㄴ숨은 그림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숨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진 겁니다. 작가란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가 아닐까 싶어진 겁니다. - P55

미국의 대학에서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또 그 책이었다. 내가 몸 붙인 대학의 도서관에서는, <신화 이미지>같은 책이 길이 50미터쯤 되는 서가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 많은 책을 다 읽을 것인가? 나의 책을 쓸 것인가? 학문을 할 것인가? 소설 쓰기로 돌아설 것인가? - P61

친구는 ‘유단자‘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은 유단자였다. 문학에 대한 친구의 이해는 실로 깊고도 넓었다. 나는 친구야말로 고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굴에 모닥불이 묻은 듯했다. - P67

나는, 사람의 삶은 나남의 삶에 간섭하면서 끊임없이 그 삶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남의 삶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나는 가정합니다.
첫 번째는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변화의 단계인데, 나는 이것을 변형,transformation이라고 한번 불러봅니다. 두 번째는 포도가 포도주가 되는 것과 같은 화학적, 연금술적 변화의 단계입니다. 나는 이것을 ‘변성,transmutation‘이라고 불러보기로 합니다. 세 번째는 포도주가 그것을 마신 사람 안에서 성체가 되기도 하고 술주정이 되기도 할 때 일어나는 제3의 초물질적인 변화의 단계인데, 나는 이것을 ‘변역,transubstantiation‘이라고 한번 불러봅니다 - P69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나비가 바다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그 수심을 모르기 때문‘일지도모른다. 새는 제 몸무게를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하늘을 더 잘 나는지도 모른다. - P73

겨울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매우 혹독한 계절이다. 풀은 말라야 하고 나무는 자라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새들은 배를 곯아야 하고 산짐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이 오거든 보라.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나는 화분 중 몇 개는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있다. 겨울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음 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도 있다. 대부분의 알뿌리 식물은 겨울을 경험해야 다음 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식물원은 매장으로 나갈 알뿌리를 냉장고에다 보관하는 것이다. - P89

나는 개인의 힘은 자기를 바꾸어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 P93

나는 아들딸을 외국에서 공부시킨 것을 두고 ‘트란스플란테이션(옮겨심기)‘이라는 말 쓰기를 좋아한다. 풀이나 나무에게 이식당한다는 것은 아픔이다. 하지만 아픔을 경험하지 않고는 성숙해질 수 없다. 외국에 대한 적응, 우리 가족이 장착한 ‘베이식‘, 변화에 대한 대응, 우리 가족이 장착한 ‘풀 옵션‘이다. ‘미국‘대신 다른 나라 이름을 써도 좋다.
나는 외국을 향해 3,40대의 등 떠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다. 흐르려면 바닥을 기어야 한다. 사람 또한 그렇다. 사람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 P94

나에게 크레타는 온통 카잔차키스, 그리고 조르바였다. 쪽빛 바다 위에 웅크린 섬 크레타는 거대한 거북의 등짝 같았다. 나는 왕을 알현하러 들어가는 변방의 병사가 된 느낌으로 크레타로 들어갔다. - P146

‘메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물리적.화확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주가 되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이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 P155

"저렇게들 심고자 하는데, 너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느냐?" - P164

"연극과 영화의 원자재 공급? 결국은 문학이 맡아야 하는 소임입니다. 앞으로 꽃필 영상 문화는 결국 문학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 P183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즐겨 쓰는가? 자기네들끼리만 아는 말을 씀으로써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가? 말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포기하기 싫은, 달콤한 권력에의 유혹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 P276

문제는 소통이다. 반평생 영어만 끼고 살아온 내가, TV토론자들이 쓰는 영어 앞에서 쩔쩔매는 것은 여전히 영어에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치자. 반평생 글만 써온 내가 군청에만 가면 쩔쩔매는 것도 한국어에 무식해서 그런 것인가?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
소통을 우너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 P277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살마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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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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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인 에어를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아마도 대학을 갓 졸업한 후였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20대의 처녀가 상당히 두꺼운 제인 에어를 읽어낼 수 있었던 힘은 로맨스때문이었다. 동화책과 할리퀸에서 많이 읽었던 어려운 처지의 처녀가 역경을 딛고 부자인 남자와 결국은 해피엔드로 행복하게 오래도록 잘 살았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순정만화와 사춘기 시절 하이틴 로맨스를 교과서보다 더 많이 읽어냈던 나는 20대 중반에 읽은 제인 에어도 그런 맥락에서 읽었다. 감동적인 해피엔딩의 연애소설로 기억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으로 제인 에어를 추천하였고 단 한 번도 원망을 들은 적이 없다.

제인 에어를 처음 읽었던 나이만큼의 세월이 지난 후 제인 에어를 다시 읽게 되었다. 나는 제인 에어를 아주 잘 쓰인 로맨스 소설로 여기고 있던 터라 줄거리를 다 아는데 또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세상도 흉흉하니 가벼운 연애 소설로 마음을 몰캉하게 하고 싶기도 해서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2권 분량의 완역본을 찬찬히 읽게 되었다.

, 우리는 고전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읽지도 않고서 읽었다고 착각하거나 읽었음에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 고전이라고 했던가! 20대 처녀였던 내가 만난 제인 에어와 지금 다시 만난 제인 에어는 내가 든 나이만큼이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같은 작품 같은 인물이 많이 다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로맨스를 그리기 위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갖다 쓰고 돈 많은 중년의 남자 주인공을 만들어 낸 줄 알았는데, 제인 에어라는 여성이 어떻게 성숙하고 성장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어린 시절의 우울을 배경으로 깔았고 돈 많은 중년의 남자를 조연으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눈에 띄었다. 과거와 현재에 내가 느낀 독후의 차이는 그 만큼 내가 성숙했다는 증거이겠지만, 왜 처음 제인 에어를 만났을 때 이 성숙된 감상을 가지지 못했는지 왜 세월이 흘러서야 푹 고아낸 사골 국물 같은 깊이가 나와야 한 건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낀 성찰과 감상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이번에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 깨달은 두 가지 고전의 법칙이 있다.

첫째, 주인공은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떠나야 이야기가 시작되고 떠나야 고전이 된다.

제인 에어는 자신을 키워준 리드부인의 저택을 떠났고 유년기를 보낸 로우드 학교를 떠났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집을 떠났다. 오디세우스가 문학작품에서 가출(?)의 시작을 알렸고 같은 그리스의 영향권아래에 있던 오이디푸스도 그러했다. 동양권에서는 서유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길을 떠났고 우리나라에선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울분에 못 이겨 집을 떠났다.

경계 안에 머물게 하는 울타리는 안전하지만 역경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아픔과 성장은 역경을 동반하는 것. 그래서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떠나고 있다. 엄마를 찾아 삼만 리나 되는 길을 떠나고(엄마 찾아 삼만 리),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를 따라 섬으로 떠나고(그리스인 조르바), 떠날 구실이 마땅치 않으면 비행기 사고라도 내서 섬에 표류하게 만들며(파리 대왕), 이즈마엘처럼 배 타고 멀리 바다로 떠나보내지(모비 딕) 못한다면 작은 배라도 만들어 매일매일 주인공을 바다로 내몰곤 한다(노인과 바다). 삶도 고전이 되려면 일단 떠나야 하는 것일까?


두 번째로는 주인공의 독백과 생각이 많아야 한다. 스토리만으로는 고전이 될 수 없다.

내가 20대에 제인 에어를 읽었을 때 로맨스만 기억했던 이유는 줄거리만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출판사의 같은 텍스트를 읽었다. 그때의 나는 주인공의 독백과 생각은 건너뛰고 대화와 줄거리만을 쫓았다. 그러다보니 제인 에어가 어떤 생각의 지도를 어떻게 그렸는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으니 제인 에어의 생각을 따라 책을 읽어 나갔다. 어떤 순간과 상황에 맞부딪힐 때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결심을 하였나에 더 관심을 두었다. 제인은 소설의 처음과 결말에 사고가 변화하였다. 여러 개의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면서 그녀의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진 탓일 게다.

인생 속의 상황이라는 것이 소설이든 실제이든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태어나고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헤어지고 이별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이런 통과의례를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느냐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지만 동시에 영원한 숙제이다.

고전에서는 독백과 생각의 흐름이 많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작품의 반 이상의 주인공 알료샤의 독백과 생각이거나 알료샤와 조시마 장로의 대화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철학이 있고 가치관이 있으며 질문이 있고 해답이 있다. 이것은 순전히 줄거리만 따라간다면 독자들은 책을 읽고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작품인지 전혀 파악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알료샤의 독백과 조시마 장로의 생각과 그 둘의 대화를 곱씹어 읽으려니 고전을 읽는 것이 품이 상당히 드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또한 웬만한 철학책에 맞먹는 이해와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비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만 그렇겠는가? 현재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생각과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정신과 가치관과 철학을 향유하게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고전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작품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나 세월이 몇 십, 몇 백 년이 흐른 지금에나 원형은 같다. 인간의 삶과 고민은 형태를 달리할 뿐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근원은 거의 같기 때문인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제인 에어는 어린 시절 헬렌 번즈라는 친구를 잃고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고난을 찾아 떠났다.

"나는 자유를 원했다. 자유를 갈망했다. 나는 자유를 원해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소리는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흩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기도를 그치고 좀 더 겸손한 탄원을 했다. 변화와 자극을 달라고 기원했다. 그 간절한 애원마저 막연한 공간 속에 휩쓸려 들어가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게 새로운 고생살이를 하도록 해주소서!"(152)


새로운 고생살이를 찾아 떠난 제인은 손필드 저택에서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였다. 이러는 동안 제인은 스스로 단단해져 가며 한 인간으로 완성되어갔다. 로체스터의 비밀을 알게 되고 손필드 저택을 떠나 옆구리를 할퀴는 기아까지 경험하면서, 제인은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하게 되고 성숙된 인간으로서 자아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은 모두 요구와 고통과 책임을 그냥 지닌 채로 아직도 나의 것이었다. 지워진 짐은 날라야 했다. 욕구는 충족되어져야 하고, 고난은 견디어야 하고 책임은 다해야 했다. 나는 출발했다." (P175)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스스로 진리를 터득하고 삶의 나침반을 가다듬은 제인 에어. 제인 에어를 다시 읽으면서 심장을 간질이는 로맨스뿐만 아리나 내 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인생 훈련법을 또 하나 배우게 되었다. 이래서 고전은 읽는 나의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인가 보다.


나는 어디로 떠나야 할까? 어떤 방향을 기준점삼아 출발을 해야 할까? 고전을 덮으면서 내 의문은 더 늘어만 간다. 답은 떠나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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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0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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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불타고 기대에 차 있던 여인, 거의 신부가 될 뻔했던 제인 에어는 다시 싸늘하고 외로운 처녀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인생은 창백해고 전도는 황량했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때의 서리가 내렸고 12월의 폭풍이 7월에 휘몰아쳤고, 얼음이 익은 사과를 뒤덮었고, 눈보라가 피어나는 장미를 짓밟아 버리고, 콩밭과 목초지는 얼어붙은 수의로 뒤덮여 버렸다. 어제 꽃이 만발하던 오솔길은 오늘 인적도 없이 눈에 덮여 사라졌고, 열두 시간 전에 열대의 숲처럼 울창하고 향기롭게 물결치던 숲은 이젠 겨울철 노르웨이의 소나무숲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게, 흰빛 일색으로 평쳐져 있을 뿐이었다. 나의 희망은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 P116

그러나 생명은 모두 요구와 고통과 책임을 그냥 지닌 채로 아직도 나의 것이었다. 지워진 짐은 날라야 했다. 욕구는 충족되어져야 하고, 고난은 견디어야 하고 책임은 다해야 했다. 나는 출발했다. - P175

기아라고 하는 독수리가 이처럼 내 옆구리에 부리와 갑톱을 박아놓고 있는 한, 고독도 고독이 아니고 휴식도 휴식이 아니었다. - P180

"(...) 그들의 잠을 깨우고-그 노력을 하도록 설득하고, 권유하고 그들이 어떠한 재능을 타고났으며, 어째서 그 재능은 주어졌는지를 가르쳐주고-그들의 귀에 하느님의 사명을 전달하고, 하느님이 선택하신 지위를 직접 하느님의 명령으로 그들에게 주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 자신의 마음이 우선 본인에게 그런 걸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요?" - P325

그는 병사가 좋은 무기를 존중하듯이 나를 존중할 뿐이다. - P331

"선량하고 위대한 분이에요. 그러나 그분은 매정스럽게도 자신의 커다란 포부를 찾는 데 급급해서, 위대하지 못한 사람의 감정이나 권리는 생각지 않는 분이세요. 그러니까 하찮은 인간들은 그분 앞에서 물러나야 해요. 그분의 발에 밣히지 않도록."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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