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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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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을 이야기하기 앞서 다른 책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군요. 2009년 한겨레21에서 " 노동OTL " 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된 기획취재를 엮은 "4천원 인생(한겨레 출판사)" 입니다. 이 기획자체가 일종의 '한국판 노동의 배신'에서 출발한 만큼 여러면에서 비견됩니다.


노동OTL은 팀장급의 중견기자부터 사회부 초년생까지 4명의 기자를 할인매장(마트), 식당보조, 가구공장등 노동현장에 신분을 숨기고 파견시켰습니다. 그곳은 육체노동의 바깥 풍경에서 관조만하던 만보객들의 상상을 짓밟는 무서운 공간이었습니다. '얼굴과 실명을 걸고 기사며 방송도 몇번 해는데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던 최고참 기자의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습니다. 아무도 마트 가공육 코너에서 '마감떨이! 30% 추가할인!'을 외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으나 투명인간처럼 인간이 아닌 기계 정도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가구공장으로 간 기자는 10cm에 달하는 타카가 살을 뚫고 뼈에 박히는 '산업재해' 를 입었습니다. 그날 오후 근무에서 빠지고 약국에 들러 소염제를 사먹고 하루밤을 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가 나자 '뻰찌'를 들고와 능숙한 솜씨로 뼈에 박힌 타까를 뽑던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병원가봐야 의사도 뺸찌들고 뽑더라고, 병원 가는것보다 이게 더 빨라' 그나마 기자는 사정이 나았습니다.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 같은 약을 받아도 액수가 배로 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함부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엄두를 못냈기 때문입니다.


연령과 이름과 상관없이 '아줌마' 가 되어버린 기자는 그 가운데서도 사람사는 풍경을 봅니다. 저축도 미래도 없는 맞교대 노동 속에서도 동료의 생일을 챙기고 가족의 경조사에 힘을 모으는 다른 '아줌마' 들을 보며 뜨거운 것을 눌러 삼킵니다.   


이 놀라운 기획은 10년전 바버라 샌드의 '노동의 배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생물학 박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바버라는 기획회의 도중 우연히 나온 '노동현장 취재' 아이템을 구체화 시켜 '위장취업'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전혀 연고가 없던 미국 3개주를 떠돌며 웨이트리스, 호텔 메이드, 요양원 보조, 월마트 직원등 허드렛일에 투신합니다. 저자의 취재기간은 지금과 10여년의 공백이 있는 2000년 즈음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놀랄만큼 오늘날과 닮았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급 6,7달러를 받는 일들은 사람을 쉽게 구하고 쉽게 버립니다.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 물론 바버라는 이 말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고용주가 특별한 자격조건을 요구하지 않을 뿐이지 그 일을 수행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건 아닙니다. 허드렛일이고 임금이 싼 일자리일지라도 저마다 노하우와 직능적 훈련을 요구됩니다 . 단지 이런 자리를 내주는 고용주들이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편견과 같인 것이지요 -  교육수준이 낮고 기존의 직장에서 밀려난 취약계층이 몰려 듭니다. 이들이 받는 돈은 주급(월급)으로 환산해보면 꽤 괜찮은 듯 싶어보이지만 시급으로 환산해보면 턱없는 임금입니다. 숙식과 위생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돈을 제하고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추가비용까지 계산해 보면 남길 수 있는 돈은 줄어듭니다. 유니폼을 자비로 준비할 것을 요구하는 직장부터 통근을 위한 교통비까지 숨겨진 비용은 예상외로 많지요. 결국 입에 풀칠은 하나 저축이나 미래는 생각하기도 어렵고 의료비나 교육비로 인한 추가지출은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계급의 악순환을 불러오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는 당연히 의료, 교육, 복지와 같은 사회적 혜택에서 멀어지고 성장해 부모와 비슷한 '맥잡' 밖에 허용되지 않는 순환고리를 타게 되는 것이죠.


가난할수록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 집니다. 안정된 주거를 위해선 종잣돈이 필요로한데 출발점이 남들보다 뒤쳐진 이들은 보증금과 같은 종잣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무보증, 단기임대 형식의 주거는 주거 환경은 나쁘지만 금전적 부담을 늘어나고 이는 버는만큼 다시 쓰는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결과적으로 하루벌어 하루쓰는 삶이 고착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문제와 해결방안을 살펴봅시다.


"임금은 낮고 부동산은 비싸다" 


10년뒤 태평양 건너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너무나 일치합니다. 덧붙여 그녀는'가난' 을 죄악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하는데 복지를 '게으른 거지들' 에게 주는 시혜나 '불량국민' 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정책 입안자나 중산층의 왜곡된 시선을 말합니다.


'건강한 육체와 비상금과 사전계획, 결정적으로 이것이 일종의 취재지 내 일상이 아니라는 위안을 가지고 접근한 나조차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애초에 이 수렁에서 태어난 이들은 오죽한가? 그들이 나태하거나 게을러서가 그렇게 된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버라의 시선을 요약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푸어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 집만 가진 하우스 푸어, 자녀를 가진 에듀푸어, 나이들어 아무것도 없는 실버푸어. 그 바탕엔 구조적 가난을 야기한 정책입안자들의 실패와 안일함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그걸 모르고 여전히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기 저 아저씨처럼 되는거야'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들에게 노동의 배신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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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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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드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미끈한 코팅지의 촉감, 총천연색의 화보, 하나의 주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수집된 이야기거리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권 '흡혈귀 :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 편에 여러모로 비견되는 책이다. 15년을 앞서 나온 그 책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일단 판형과 지질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승리다. 도서의 가장 큰 가치는 그 안에 담긴 활자의 깊이에 있다. 그러나 그 활자를 둘러싼 '포장' 그 자체에도 분명 값이 존재한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를 처음 받아들면 그 묵직함과 넉넉함에 놀랄 것이다. 2만원이 넘는 올컬러에 도판이 들어가지 않은 페이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도해자료가 없는 페이지마저 컬러용지다. 이런 서적은 '도감류' 를 제외하면  정말로 쉽게 만나기 어렵다. 전체 페이지수에 비해 과하다 싶은 가격에 반발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막상 펼쳐보면 어지간한 도감에 맞먹는 구성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모험적인 도전을 시도한 출판사의 용기에 박수.


내용면에 있어선 어떠한가? 훨씬 넓고 깊다. 애초에 시공 디스커버리 시리즈가 '핸드북' 내지는 '문고판' 형태를 담고 있어서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한정적이다. 과거의 '잠들지 않는 전설' 의 경우 흡혈귀의 정의를 브람스토커에 한정시켰다. '동유럽에 사는 피를 먹는 언데드 몬스터' 에 한해서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끌어다 놓았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의 경우는 그 기원을 찾아 고대 바빌로니아까지 올라가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피 - 날개달린 반인반조. 사람의 피를 먹는다 - 처럼 '흡혈' 그 자체에 촛점을 맞추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John William Waterhouse - Odysseus and the Sirens

싸이렌을 '하피' 의 형상으로 묘사한 워터하우스의 그림


거기에 가장 큰 진보는 15년 이라는 시간에 있다. 그 사이 대중문화에선 흡혈귀라는 원형을 활용해 다양한 '문화컨텐츠' 들을 생산해 놓았다. 저자는 통시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동시대로 수평적 발산까지 하고 있다. 특히 순수예술(Fine Art)에 그치지 않고 영화, 드라마, 방송, 락음악 같은 대중문화의 영역까지 확장된 관심사를 가지고 자료를 모았다는 사실을 높이사야겠다. 최신도서이니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자료들이 많다.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 '블러드 (헐리우드에서 무려 전지현!!을 기용해 영화해 했으나 쪽박을 찬 영화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지마는)' 나 21세기용 할리퀸 로맨스인 '트윌라잇' 시리즈까지 망라해 놓은 저자의 부지런함에 다시 한 번 박수.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책은 '일진보한 자료집' 이 된다. 일종의 사전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해야 좋다. 사전이나 도감류를 구매하는 까닭은 그 안의 내용을 구구절절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해당 정보가 어디 있는지 'know where' 를 알고 필요할 때 꺼내쓰기 위한 '외장형 정보 저장소' 인 셈이다. 외워야할 것은 정보의 색인이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다. 현대는 정보의 범람으로 외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 피곤한 시대다. 정보는 외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가장 바르게 읽은 법은 통독이나 회독이 아니라 한 번의 '훑어보기' 와 능동적인 '발췌독' 이 되겠다. 흡혈귀에 대한 정보는 신화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 정리 자체가 유기적이지는 못한게 사실이다. 일단은 시간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지역과 사례에 따라 챕터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각을잡고 앉아 통독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나도 책을 받아들고 목차부터 훑은 다음 미트로프의 A bat out of hell (90년대초에 잘 먹혔던 대중음악) 앨범 이야기가 나오는 뒤에서 두번째 챕터부터 읽었다. 내킬 때마다 제일 '땡기는' 챕터 하나씩 뽑아서 읽어나갔다. 그게 바로 자료집을 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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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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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사회학자가되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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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고 들어가자면 저는 피터버거의 저작을 딱히 읽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 자신의 분야에서 선연한 족적을 남겼는지 알 길이 없군요. 이게 피터버거의 그냥 자서전도 아닌 '지적행보의 자서전' 을 표방하고 나선 책인만큼 그래도 그의 학문적 업적을 경애하거나 그가 밟아온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감동이 배가될 터인데 아 저에겐 그럴 가능성을 애초에 봉인하고 시작한 독서니 시작부터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순리대로라면 무작정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집어들고 읽기 전에 피터버거의 연구 논문이라도 한두편 찾아읽고 '음, 피선생은 이런 양반이셨구만!' 하고 사전지식을 쌓는게 도리겠습니다만 일단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무례는 피선생도 양해해주실 분이라 믿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 얻은 결론인데 피터버거 선생은 이 정도의 무례함은 충분히 '익스큐즈' 해줄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남다른 아량을 가진 '굿가이' 라 이겁니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따라붙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 입니다. 파인만씨의 경우도 한 분야에서 추앙받는 석학의 자서전이면서 대필작가가 대신 써준티가 뚝뚝 묻어나는 양산형 자서전의 형식을 벗어난 유쾌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 엑시덴탈 소셜로지스트와 쌍둥이 같습니다. 각기 전문분야는 사회학과 이론물리학으로 판이하지만 버거선생이나 파인만박사나 틀에 갇히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 합니다. 더불어 애초에 '아! 나에게는 이 길 뿐이야! 나는 00학자이 길을 가겠어!' 라고 결연히 떨쳐 일어선게 아니라 '아니 그냥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군요...' 라는 결론도 그렇습니다.


피터버거 박사는 나치를 피해 2차대전중에 미국으로 이민와 처음엔 루터교 목사가 되어 사목생활을 할 생각이었다지요. 그런데 목회자가 되기 전에 '교양' 차원에서 다니던 대학원 (거의 모든 수험이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사회인 대상이 야간 대학원) 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 재밌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지도교수를 만나 필드워크를 정하고 학위를 밟고 가다보니 사회학자가 되어 있더라, 마 이런 식 입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 분야의 석학소리를 듣게 되었다니, 거 참 자기 일이라고 말은 편하게 하는구만! 이라고 빠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노릇 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피터버거가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좋게좋게 표현했을 뿐이지 깊이 헤아려보면 결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거란걸 알 수 있을겝니다. 일단 그의 모교부터 '뉴스쿨' 이라는 아무런 학문적 자양분이나 상징자본을 갖지못한 야간대학원 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가 신선하고 창발적인 연구로 대중적 명성을 얻던 중년까지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주류학계는 그를 철저히 변두리의 학자로 규정하고 은근히 따돌려 왔던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널리 기억되고 또 거듭나게 할 수 있었던 저력은 과연 무엇이냐? 유머감각 입니다. 만년에 CURA에서 독자연구를 거듭하던시기 그가 낸 저서 <웃음의 구원성>에서 보여지듯 그는 명랑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만들어낸 친화력과 수용력이 그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겠지요.


그러니까 어쩌다 우연히 사회학자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건 '명랑' 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자기 자신이 직업에 대해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임을 명심합시다.


사회학자란?

가장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데 백만달러를 기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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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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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말하기에 참으로 애매한 책이로군요. 제목부터 단호하게 자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그렇게 뚝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걸 저자인 사사키 선생이나 저나 여러분이나 절실히 통감하고 있을 것 입니다. 일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과연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부터 갈피가 잡히지 않을 겁니다.


저자인 사사키 아타루의 약력을 훑어보고 고지식하게 '정신분석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어떤 의미에서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모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서간문의 꼴을 빌린 에세이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차라리 철학사 혹은 서양 중세-근대사 개론으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저자의 집필의도 - 저자인 아타루 선생의 의견에 따르면 어찌 감히 그렇게 함부로 텍스트의 진의를 잘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과감히 재단해 보자면 - 만 놓고 봤을 때 '기도하는그 손'은 근 10여년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소피의 세계' 와 닮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하룻밤의 철학우화' 같은 노골적인 부제를 달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훨씬 더 품위있고 자라나는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그런 책 입니다.


라깡의 '쥬이상스 - 향유, 향락, 쾌락등으로 번역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 고정된 역어가 없기 때문에 역자마다 표현이 바뀐다. 이 책에서는 향락에의 추구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와 같이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아무런 준비운동 없이 쏟아 놓는 통에 첫번째 장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다소 어안벙벙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아주 일시적인 현상일 겁니다. 나머지 네개의 장을 읽어나감에 따라 다소 모호해 보였던, 사람에 따라선 매우 고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던 첫장의 내용역시 큰 흐름안에 포섭되어갑니다.


아타루 선생은 태초 - 아 !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던 20만년전부터 지금까지, 다섯번의 대멸절과 다섯번의 혁명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일깨우려 하는 겁니다. 혁명, 그것은 손에 돌을 쥔 성난 민중들의 피와 폭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혁명과 함께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임을, 오히려 그 밑에는 '文' 이라는 함축적인 언어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뿌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말입니다. 기존의 고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만큼이나 인류 역사에 있어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활자와 독일어 성경의 출현 역시 혁명인 겁니다. 국가라면 막스베버가 말한 '폭력의 사유화 금지' 내지는 ' 법전, 영토, 국민' 정도만 앵무새처럼 외우는 우리에게 교황과 카톨릭의 위계질서가 곧 근대(modern)적 국가의 씨앗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 아래는 모두 '文' 이라는 자양반이 밑받침 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가지의 혁명에 대해 논하는 다섯밤의 편지를 모두 읽고나면 명제는 자명해 집니다. 아타루는 몹시 낮은 자세로, 때에 따라선 고답적인 노교수가 연상될 정도의 목소리로 거의 성을 내며 계속해서 말하는 겁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어느날 과거를 버리고 떠나게 만들었던 그 목소리, 예언자 무함두가 대천사 지브릴에게서 들었던 그 목소리! 이꾸라! 이꾸라! 이꾸라! (Iqura : 아랍어로 '읽으라') 


태초부터 文이 위태롭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으니 너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며 혀를 차는 애늙이는 처럼 굴지말고 그저 읽으라 읽으라 읽으라! 세계의 종말은 아직 요원하기만하니 너는 380만년 뒤의 영원을 기다리며 읽으라!


- 굳이 트집을 잡아보자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은 너무 짧아서 아쉽고 '아.. 이 대목은 제가 이전 책인 영원과 전장에서 아주 자세히 논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가 남발되어 아타루의 이전 저작인 '영원과 전장' 을 궁금하게 한다는 점 정도. 이 책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서 일어를 하지 않는 이상 딱히 읽을 방법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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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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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e the money! 돈 없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

"Give me the moncey! 돈만주면 다 되는 세상 "


한창 흐름을 타고 있는 유행가 가사가 이러하니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 하나 덧붙여 물신숭배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가히 짐작 가능하다. 이러한 시기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내한해 가는 곳마다 청중을 몰고다니고 언론이 이를 실시간 중계하고 있으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샌델이 말하는 정의나 시장의 참 뜻을 이해하고 있다기보니 그저 하버드대 교수라는 직함에 부화뇌동 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제목만 놓고 봤을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틱낙한이나 달라이 라마류의 무소유의 행복론인양 착각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정의의 연장선에 있다. 시장이 지배하게 되고 모든 가치가 화폐라는 정량적이고 추상적인 기호로 환산되는 시대에서 올바른 선을 찾아 탐구하는 내용이다.  그 과정은 시장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사례중심이고 그 방법은 샌델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자(孔子)' 식 문답법이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면서 족집게 입시 강사마냥 이것은 이러하고 저것은 저러하다며 포인트를 짚어준 적이 없다. 고사(예화)를 제시하고 묻고 답하면서 배우는 이가 스스로 깨우치게했다. 공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수렁에 빠지는 이도 있는가하면 자기가 답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품고 있던 자기모순과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자(馬子)선생께서 제시하는 우리시대의 예화는 다음과 같은 것 들이다. 특히 이들 사례들은 상당부분 외국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당부분 '그건 좀 아니다' 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얻고 있는 것들이나 그러나 해외에서는 실존하는 사례들이고 신자유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상과 멀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인도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로  6250달러가 지불된다. 현재 국내에서 연구 실험과 같은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대리모나 난자를 매매하는 행위는 위법으로 간주된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국내 법규가 미비하여 정자를 매매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법적 규제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대리모는 위법이지만 대리부는 불법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인도의 대리모 제도를 그냥 허투로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돈을 내고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 입학권을 얻는다. 이 때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적으로 2억원 정도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런 방식으로 예일대에 입학했다. 현재 교육부가 20년 가까이 고수해오고 있는 3불 정책에 따라서 대학 본고사 금지, 고교 등급제 급지, 기부금 입학 불허는 국내에서 일종의 '정의' 로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학벌을 '공정하게 노력해서 얻는 학벌사회에서의 수급' 으로 여기는 이들의 관점이지 돈이 되는 사람과 (그리고 자신의 위신, 재산을 그대로 자녀에게 이식해 주고 싶어하는 이들) 돈장사를 원하는 대학은 오랫동안 기부금 입학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었다.


이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마음이다. 샌델은 '친구나 배우자의 기념일 선물로 현금을 주는 것이 좋을 까 선물을 직접 골라서 주는게 좋을까' 라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현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이미 화폐는 단순한 기호를 초월한 상태다. 


결국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벽은 사라지고 있으며 이 현상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공자의 질문에 스스로를 성찰하던 제자 자로의 발견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읽어야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이상 깨우칠 방법이 없다. 시대의 스승 샌델의 저인망 그물같은 사고의 촘촘함 속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 거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바란다.


아, 끝으로 이 책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는 대기업 CEO들이 추천해서 그들의 부림을 받게될 대학생들이 열성적으로 찾고 있다는 현실이 진정한 희극이다.


-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아주 쉽게 풀어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해제로 이해될 수도 있다. 칸트를 이해했다는 사람은 지성인임을 자부해도 좋다는 말들을 여럿이 한다. 샌델의 저작을 읽고 난 다음에는 칸트에 한 번 다시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독서일 것이다. 그래도 칸트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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