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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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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을 이야기하기 앞서 다른 책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군요. 2009년 한겨레21에서 " 노동OTL " 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된 기획취재를 엮은 "4천원 인생(한겨레 출판사)" 입니다. 이 기획자체가 일종의 '한국판 노동의 배신'에서 출발한 만큼 여러면에서 비견됩니다.


노동OTL은 팀장급의 중견기자부터 사회부 초년생까지 4명의 기자를 할인매장(마트), 식당보조, 가구공장등 노동현장에 신분을 숨기고 파견시켰습니다. 그곳은 육체노동의 바깥 풍경에서 관조만하던 만보객들의 상상을 짓밟는 무서운 공간이었습니다. '얼굴과 실명을 걸고 기사며 방송도 몇번 해는데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던 최고참 기자의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습니다. 아무도 마트 가공육 코너에서 '마감떨이! 30% 추가할인!'을 외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으나 투명인간처럼 인간이 아닌 기계 정도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가구공장으로 간 기자는 10cm에 달하는 타카가 살을 뚫고 뼈에 박히는 '산업재해' 를 입었습니다. 그날 오후 근무에서 빠지고 약국에 들러 소염제를 사먹고 하루밤을 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가 나자 '뻰찌'를 들고와 능숙한 솜씨로 뼈에 박힌 타까를 뽑던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병원가봐야 의사도 뺸찌들고 뽑더라고, 병원 가는것보다 이게 더 빨라' 그나마 기자는 사정이 나았습니다.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 같은 약을 받아도 액수가 배로 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함부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엄두를 못냈기 때문입니다.


연령과 이름과 상관없이 '아줌마' 가 되어버린 기자는 그 가운데서도 사람사는 풍경을 봅니다. 저축도 미래도 없는 맞교대 노동 속에서도 동료의 생일을 챙기고 가족의 경조사에 힘을 모으는 다른 '아줌마' 들을 보며 뜨거운 것을 눌러 삼킵니다.   


이 놀라운 기획은 10년전 바버라 샌드의 '노동의 배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생물학 박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바버라는 기획회의 도중 우연히 나온 '노동현장 취재' 아이템을 구체화 시켜 '위장취업'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전혀 연고가 없던 미국 3개주를 떠돌며 웨이트리스, 호텔 메이드, 요양원 보조, 월마트 직원등 허드렛일에 투신합니다. 저자의 취재기간은 지금과 10여년의 공백이 있는 2000년 즈음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놀랄만큼 오늘날과 닮았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급 6,7달러를 받는 일들은 사람을 쉽게 구하고 쉽게 버립니다.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 물론 바버라는 이 말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고용주가 특별한 자격조건을 요구하지 않을 뿐이지 그 일을 수행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건 아닙니다. 허드렛일이고 임금이 싼 일자리일지라도 저마다 노하우와 직능적 훈련을 요구됩니다 . 단지 이런 자리를 내주는 고용주들이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편견과 같인 것이지요 -  교육수준이 낮고 기존의 직장에서 밀려난 취약계층이 몰려 듭니다. 이들이 받는 돈은 주급(월급)으로 환산해보면 꽤 괜찮은 듯 싶어보이지만 시급으로 환산해보면 턱없는 임금입니다. 숙식과 위생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돈을 제하고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추가비용까지 계산해 보면 남길 수 있는 돈은 줄어듭니다. 유니폼을 자비로 준비할 것을 요구하는 직장부터 통근을 위한 교통비까지 숨겨진 비용은 예상외로 많지요. 결국 입에 풀칠은 하나 저축이나 미래는 생각하기도 어렵고 의료비나 교육비로 인한 추가지출은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계급의 악순환을 불러오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는 당연히 의료, 교육, 복지와 같은 사회적 혜택에서 멀어지고 성장해 부모와 비슷한 '맥잡' 밖에 허용되지 않는 순환고리를 타게 되는 것이죠.


가난할수록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 집니다. 안정된 주거를 위해선 종잣돈이 필요로한데 출발점이 남들보다 뒤쳐진 이들은 보증금과 같은 종잣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무보증, 단기임대 형식의 주거는 주거 환경은 나쁘지만 금전적 부담을 늘어나고 이는 버는만큼 다시 쓰는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결과적으로 하루벌어 하루쓰는 삶이 고착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문제와 해결방안을 살펴봅시다.


"임금은 낮고 부동산은 비싸다" 


10년뒤 태평양 건너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너무나 일치합니다. 덧붙여 그녀는'가난' 을 죄악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하는데 복지를 '게으른 거지들' 에게 주는 시혜나 '불량국민' 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정책 입안자나 중산층의 왜곡된 시선을 말합니다.


'건강한 육체와 비상금과 사전계획, 결정적으로 이것이 일종의 취재지 내 일상이 아니라는 위안을 가지고 접근한 나조차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애초에 이 수렁에서 태어난 이들은 오죽한가? 그들이 나태하거나 게을러서가 그렇게 된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버라의 시선을 요약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푸어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 집만 가진 하우스 푸어, 자녀를 가진 에듀푸어, 나이들어 아무것도 없는 실버푸어. 그 바탕엔 구조적 가난을 야기한 정책입안자들의 실패와 안일함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그걸 모르고 여전히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기 저 아저씨처럼 되는거야'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들에게 노동의 배신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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