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문
자유의지
엄마의 마음

p.177

"그 어떤 가상의 경로도 실제로 선택된 경로보다 더 시간이 걸려. 바꿔 말하자면, 광선이 취하는 경로는 언제나 최소 시간에 도달할 수있는 경로라는 뜻이지. 이걸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라고 하지."

p.179

"••• 따라서 빛은 언제나 극치(極値)의 경로, 바꿔 말하자면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든지 아니면 최대화하는 경로를 택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해. 최소와 최대는 수학적인 속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으니까, 이 두 상황 모두 하나의 방정식을 써서 나타낼 수 있지.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페르마의원리는 최단 원칙이라기보다는 ‘변분(變分; variational) 원리 중 하나에 해당해."
"그러면 그런 변분 원리가 그것 말고도 더 있단 말야?"
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존재하지. 거의 모든 물리학 법칙은 변분 원리의 하나로서 다시 기술될 수 있어. 이 원리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어떤 속성이 최소화되고, 최대화되는지에 달려 있어." 게리는 마치 탁자 위에 물리학의 여러 분야들이 진열되어 있다는 듯한 태도로 손짓해 보였다. "페르마의 원리가 적용되는 광학(光學)에서 극치를 가져야 하는 속성은 시간이야. 역학에서는 또 다른 속성이 적용되지. 전자기학에서는 역시 또 다른 속성이 대두되지. 그러나 그런 원리들은 수학적으로는 모두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있어."

p.186-187

"빛의 굴절을 언제나 인과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야. 광선이 수면에 도달하는 것이 원인이라면, 그 방향이 바뀌는것은 결과라는 식이지. 페르마의 원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빛의 행동을 목표 지향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야. 마치 광선에 대한 계명(誠命)인 듯한 느낌이랄까. ‘네 목표로 갈 때는 도달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할지어다‘ 하는 식으로 말야."
•••
"••• 문제의 쟁점은, 물리 법칙의 통상적인 공식은 인과적인데 비해서, 페르마의 원리 같은 변분 원리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고, 거의 목적론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야."
•••
"그럼 이 광선의 목표는 가장 빠른 경로를 택하는 것이라고 해, 광선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 거지?"
•••
"••• 빛은 일단 선택 가능한 경로들을 검토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일일이 계산해야 해"
•••
"광선은 자신의 정 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해. 목적지가 다르다면 가장 빠른경로도 바뀔 테니까."
게리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목적지가 없다면 ‘가장 빠른 경로‘ 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지니까 말야. 또 해당 경로를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경로 중간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지, 이를테면 수면이 어디 있는지 하는 식의 정보도 필요해."
나는 냅킨에 그려진 그림을 계속 응시했다.
"그리고 광선은 그런 것들을 사전에 모두 알고 있어야 해. 움직이기시작하기 전에 말야. 맞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빛은 적당한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그런 행위에서 야기된 경로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니기 때문이지. 따라서 빛은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쳐야 해."
나는 속으로 곱씹었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 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어떤 것을 생각나게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p.193

게리가 페르마의 원리에 관해 내게 처음으로 설명해 주었던 날, 그는 거의 모든 물리 법칙은 변분 원리로 기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리 법칙을 생각할 때 인류는 인과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편을 선호한다. 이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운동 에너지나 가속도처럼 인류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은 모두 고정된 시점에서 어떤 물체가 가지는 성질이다. 그리고 이런 성질은 순차적이고 인과적인사건 해석으로 이어진다. 어떤 순간이 다음 순간을 낳고, 원인과 결과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작용‘ 이나 적분에 의해 정의되는 것들처럼 헵타포드들이 직관적이라고 간주하는 물리적 속성들은 일정한 시간이 경가을 경우에만 의미를 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사건의 목적론적인 해석- 이어진다. 사건을 일정 길이의 시간에 걸쳐 바라봄으로써 만족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1, 최소화나 최대화라는 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 그리고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과
‘태들을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마지막의 상태들을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p.203

헵타포드들은 자유롭지 않지만 속박당한 것도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 개념들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에따라 행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력한 자동인형인 것은 아니다. 헵타포드의 의식 양태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그들의 행위가 역사상의 사건과 일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동기또한 역사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를 창출해 내고, 연대기를 실연해 보이기 위해 행동한다.
자유는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순차적 의식이라는 맥락에서는 완벽 한 현실이다. 동시적 의식의 맥락에서 보면 자유는 의미가 없지만, 강제 또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결국 맥락이 서로 다를 뿐이고, 한쪽이다른 쪽보다 더 타당하다거나 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착시 현상 을 설명하기 위한 유명한 그림을 닮았다고나 할까.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우아한 젊은 여인으로도 보이고, 턱이 가슴에 묻힐 정도로 고개를푹 숙인, 울퉁불퉁한 코를 가진 노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그림의 경우처럼,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양쪽 모두 동등하게유효성을 가진다. 그러나 두 그림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가 미래를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일단 내가 미래를 알면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말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미해에 관해 얘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세월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p.205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쓰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쓴다. 그렇다. 어떤 대화룰 하든 간에ㅠ헵타호드들이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금발머리는 아빠곰의 죽을 먹으려고 했지만 거기에는 금발머리가싫어하는 양배추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너는 웃음을 터뜨려, "아냐, 그 얘긴 틀렸어! 너는 나와 함께 소파 에 나란히 앉아 있고, 우리 무릎 위에는 얇으면서 가격만 비싼 하드커버 장정의 그림책이 놓여 있지.
나는 계속 읽어.
"금발머리는 엄마곰의 죽을 먹어 보았지만, 그 죽에는 역시 그녀가싫어하는 시금치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너는 책장을 손으로 누르고 나를 제지하지.
"원래대로 읽어 줘, 엄마!"
"난 여기 나와 있는 대로 읽고 있는데."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지.
"아냐. 엄마가 한 얘기는 진짜 얘기하고 달라."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 달라고 하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300

무엇인가 끔찍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으로부터 단절된 장소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반면에 닐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축에 속했다. 그가 보는 한, 집단으로서의 지옥의 망자(亡者)들은 지금의 그보다 더 불행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생활은 인간계에서의 자신의 생활보다 더 나쁘지도 않았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영원한 육체는 선천성 기형이라는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314

닐 자신도 휴머니스트 운동의 팸플릿 하나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타락 천사들에 관한 언급이었다. 타락 천사들의 강림은 드물었고, 행운도 악운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면서 인간계를 잠깐 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그들이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질문을 하곤 했다. 당신들은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타락 천사들의 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너희들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우리가 한 일은 바로 그것이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

p.333

닐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모든 신비는 이제 풀렸다. 삶은 모두 사랑이며, 고통조차도, 아니 특히 고통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를 지옥으로 보냈다.

p.335

대다수의 주민들 입장에서는 지옥은 지상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벌은 살아 있었을 때 충분히 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회오이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견딜수 있었다. 그러나 닐의 경우 지옥은 인간계와는 아무런 유사점도 가 지고 있지 않은 장소였다. 닐의 영원한 몸에는 정상적인 두 다리가 달려 있었지만, 그가 그것을 자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두 눈도 복원되었지만, 닐은 눈을 뜬다는 사실 자체를 견딜 수가 없었다. 천상의 빛을봄으로써 인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얻은 그는,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신의 부재(不在)를 자각했던것이다. 닐이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일은 비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이 고통은 인간계의 고통과는 달리 신의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니라 신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닐은 살아 있을 때 가능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한 고뇌에 시달렸지만, 그가 보이는 유일한 반응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닐은 여전히 사라를 사랑하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만, 그녀와 재결합하기 직전까지 갔다는 생각은 그를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닐은 자신이 지옥으로 보내어진 것이 그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고차(高次)의 목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신에 대한 닐의 사랑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설령 닐이 천국으로 받아들여지고 고통이 끝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그런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8 북런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강 소요리문답 (상)
황희상 지음 / 흑곰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요리상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유진이 어휘를 빌려.. “은밀한 감정의 대환장 파티”.
도덕을 떠나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을 잘 풀어냈다. 다들 남한테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글 자체가 매우 잔잔하고 사건들도 차분히 진행되어 오히려 그러한 ‘은밀한’ 감정들의 ‘대환장’ 파티가 되는 것 같다.

2.
10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글 자체는 술술 읽혀서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다. 다만 각 제목들은 왜 그 제목들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제목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려운 책이다.

3.
몇몇의 인상깊은 작품을 적어보자면,

[구멍]
후회와 죄책감에 대한 감정선이 좋았다. 결국 트라우마는 그 당시의 감정,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후회, 계속되는 가정으로 인한 사실 왜곡 등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 속에서 심화되는 것 같다.

[폭풍]
누나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동생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작가가 작중의 사건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아서 좋았다.

[피부]
가장 짧은 글이지만 가장 사건이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 (p.254)”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