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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
이묵돌 지음 / 냉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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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아무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칭찬이다) 근래에 학교공부도, 교회일도, 내 미래도, 읽는 책들도 모두 내 머리를 땅으로 떨구게 하는 것들 뿐이었는데 그나마 잠들기 전 <역마>를 읽는 시간은 내 머리를 편안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이묵돌은 내가 리뷰왕 김리뷰때부터 좋아하던 페북작가? 중 한명이다. 요즘 그림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업로드 중인데 마지막에 나오는 제목이 압권인 사람이다. 일상을 정말 진솔하게 풀면서도 찌질하지 않은, 한국소설에서 보기힘든 그 느낌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예민한 사회 주제들의 미묘한 뉘앙스와 본질들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정말 이묵돌만이 할 수 있은 거라고 본다.
휴대폰으로 보는 글과 활자로 보는 글은 좀 다를까 호기심에 빌렸는데 역시 좋은 글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쉬고 싶을 때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혼자 여행할 때 심심할 때 낯선 친구대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책.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아주 날아가버릴듯 가벼운 건 아니다. 그래도 가벼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니 별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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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

이제껏 당연히 함께 지내오던 가족의 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낯선 곳으로 추방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에 우리 가족은 혜정이와 우리는 다르다고 스스로 정당화해야 했다. 혜정이에겐 혜정이의 삶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가훈이 되었다. 만일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면 우리는 같이 살고 있어야 했다.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면 혜정이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시설로 보내지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그러므로 설령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많은 일들이 혜정이에게 일어난다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다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p.35

그것은 내 삶을 위해 나보다 연약한 사람의 삶을 밀쳐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속삭이는 세상 그 자체였다. 건물을 이루는 벽돌한 장 한 장이 곧 그 목소리였다. 우리 부모님은 바로 이 목소리에 굴복한 것이었다. 이곳을 보라고, 여기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세상이 그런 것 이라고, 이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너 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하는 이 세상의 목소리가 시설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 역시 이 목소리의 일부였기에 여태껏 혜정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범인이 바로 이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다르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한껏 세상의 구석으로 밀쳐져 이제는 거의 잊힌 한 무리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곳에 살고 있었다. 혜정이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곳은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장소였다.

p.39

혜정이의 부자유가 불운이라면 나의 자유는 행운이었다. 우리의 자유를 운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자유는 권리여야 했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쟁취해야 했다.

p.58 텀블벅 프로젝트 소개

동생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처럼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동생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자립‘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로서 ‘자기다움‘을 위한 여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의 과정에서 세상 속의 자기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자립‘의 참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93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다.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대하는 특별한 방법이 없듯이 장애인을 대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사항은 필요하지 않다. 혹여 실수를 하게 된다면 사과를 하면 된다. 물론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상대의 몫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장애와 비장애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다.

p.150

이 세상은 누구라도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장애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효율과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오랫동안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살아남는 것은 혼자서 하는 일이라는 각자도생의 철학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개인의 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게 된다. 나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을 우러르고 능력이 모자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그런 세상에서 상대적 약자를 돕거나 돌보는 것은 가진 자의 여유 이거나 ‘숭고한 희생‘으로 치부한다. 내 한 몸도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감히 누가 누구를 돌본단 말인가.
그런 생각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이기에 남을 돌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나만이 나를 돌보는 세상은 제아무리 잘난 개인이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이 각박하고 살기 힘들수록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버팀목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서로 의지할 때 버티는 힘은 훨씬 더 커진다. 사회구성원 간의 촘촘하고 튼튼한 연결은 모두의 삶을 알뜰히 떠받치는 안전망이다.

p.164 친절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지 않는 세상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친절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그들은 가끔 만나는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다해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대개 그 친절은 과장되고 부자연스럽다. 친절을 위한 친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하지만 정작 왜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지 이유를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불쌍해서‘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눈치로 안다.
장애인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배려와 호의, 친절한 태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많은 사람들은 비장애인을 대할 때는 당연하게 지키는 매너를 장애인 앞에 서면 지키지 않는다. 장애에 관해 꼬치꼬치 묻는 것은 기본이고 사적인 영역의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며 삶의 모든 면면을 장애와 연관 지어 해석하려 든다. 장애인의 일상은 늘 힘들고 불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 그러나 자신을 불행의 원흉처럼 상처 받을 수 있는지를 떠나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p.178

나는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를 연기하며 혜정이와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인 채로 서로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 사이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말이다.

p.184-185

나에게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어떤 환경이 실은 완전에 가까운 차별을 통해 구축된 것일 가능성이 있음을 늘 의심해야 한다.
•••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대결 구도에 선 존재가 아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으나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p.214

어떻게 그 고민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어질 수 있을까?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답이라기보다는 질문이고 방법이라기보다는 원칙이다. 내 말에 힘이 실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믿고 있는 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의 실천이 그대로 타인의 실천이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실천을 찾아야 하는 숙명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답을 찾는 지난한 과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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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좀 감정적인 책이라고 생각
그러나 몰라서 안보이던 것들을 보게 해둠
이 책을 읽고 난 후 막차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지하철 노동자, 학교에서 보이는 청소노동자, 공사장에 보이는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까지 너무 많이 조우
불편하고 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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