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역설 - 비난의 순기능에 관한 대담한 통찰
스티븐 파인먼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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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나는 당신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이다. 그만큼 나에게 비난은 부정적인 느낌이었고, 그래서 <비난의 역설>이라는 책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비난(blame)이라는 단어는 고대 기독교에서 훈계와 배척을 의미하던 '블라스페마레(blasphemare: 악한 말을 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판이 갖고 있는 뒤틀리고 파괴적이나 속성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책에서 소개한 인류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는 마녀사냥이나 희생양 역시 그런 형태의 하나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모두에게 있는 그림자같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남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시키려는 자기 보호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집단들이 갖고 있는 배경이나 그들이 지역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쌓아온 경험에서 오는 차이조차 무시하는 무분별한 비난은 사회를 경직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난민문제를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직행동분야를 오랜 시간 행동해온 스티븐 파이먼이 <비난의 역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비난의 순기능은 무엇일까?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이라는 것을 빌미로 부정한 행동을 하는 기업이나 정부에 대한 비난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학교의 교구나 시설에까지 기업 브랜딩 활동을 하는 기업이 있다. 이는 그들이 해야 할 책임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까지도 브랜드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소프트 마케팅의 일환으로 봐야 마땅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기, 담배, 정크푸드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대중의 태도를 완화시키고, 합당한 비판활동조차 약화시키기 위해 펼치는 수많은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비난 역시 필요한 역할이다.

그리고 그는 서문에서 합당한 비난과 분노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언급을 한다. 문득 지금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촛불집회가 생각났다. 이 것은 압도적 권력을 갖고 있는 국가와 기업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의 저자가 한국사람이었다면, 거리투쟁에 대한 이야기에서 분명 촛불집회를 언급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판을 피하다 보니 유머와 연극을 저항의 무기로 삼아 축제의 형태를 취한 서양과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우리나라의 평화로운 촛불축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대로의 상태가 유지된다면 사람들은 점점 더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리고 도덕과 법과 정의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고, 심지어 그 뜻을 왜곡시키는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렇다. 사회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권력을 견제하는 비난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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