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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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술관에 갔을 때는 무제’, ‘단상, 혹은 그저 숫자로만 기록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난감하기만 했죠.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시민씨에게 텍스트 중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렇구나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더욱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텍스트도 없고, 이미지를 읽어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말이죠. 하지만 미술관의 그 고요한 시간이 저에게는 좋은 느낌으로 남았고, 언제부터인가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정답이 딱히 없다는 것에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고, 지금까지도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물론 다양한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배경지식을 쌓아서 감상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요.

이번에 읽은 <한밤의 미술관>역시 처음에는 미술과 배경지식에 포커스를 맞추며 읽기 시작했지만, 마치 미술관을 친구와 함께 거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참 좋았어요. 잘 알려져 있는 그림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림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친구같다고 느껴진 이유는 너무나 공감가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았고요.

브와디스와프 포드코빈스키의 광란이라는 작품은 정말 강렬했는데요. 광란이라는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과 그 위에 앉아 있는 평온한 나신의 여인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이전에 그렸던 맑다 못해 투명한 감각의 수채화와도 달랐고, 아직 폴란드에는 그에게 큰 영감을 준 인상주의 화풍이 낯설기만 하기도 했죠. 거기다 그림 속의 여성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입방아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그가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찢었다고 하는데, 그의 칼끝이 향한 곳은 바로 그 여인이었어요. 작가는 그 그림에서 여성은 자신의 꿈이고 소망이고 희망이었을거라고 추측하는데,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을 보는 순간부터 어쩌면 그가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와 대비되는 그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의 좌절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지요.

또한 프랭크 캐도건 카우퍼 '무자비한 미녀'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네요. 나중에 글을 읽기 전까지는 그 아름다운 여성 아래 남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는데요. 실제로 큰 화폭에 담겨 있는 그림을 봐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서, 그 그림 속의 여성이 바로 팜므 파탈의 현신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작품은 소재불명이라, 너무나 안타깝기만 해요. ‘무자비한 미녀는 구전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존 키츠가 쓴 시 무자비한 미녀에서 영감을 받은 화가들이 화폭으로 많이 옮겼다고 하는데요. 책에 수록된 작품도 있고, 여기저기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프랭크 캐도건 카우퍼의 작품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미녀를 만나기는 힘들더군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니, 도대체 이 작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티베트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만다라에 대한 이야기 무無로 돌아가다’, 그리고 한밤의 미술관 산책이라는 소코너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아서 휴즈의 ‘4월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참 좋았어요. 다음에 영국에 가면 꼭 런던 테이트 브리튼 박물관에 가서 보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리고 우리 동네 미술관에 등장한 경주의 솔거미술관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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