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한옥 집에 아주 반가운 사람이 찾아오면 흔히 맨발로 뛰어나간다는 표현 한두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혹은 불난 집에 긴급할 때 신발을 신을 사이도 없이 맨발로 뛰쳐나간다고도 했다. 급박하거나 기쁠 때거나 경황이 없을 때거나 신발을 벗고 맨발의 상황을 자기도 모르게 연출하게 된다.
맨발로 산을 걸었다. 마음이 급박해서였을까. 비유하자면 그렇다. 지난 주말 휴일에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 때로는 건강을 위해 맨발로 지압의 효과를 바라는 분도 있었고, 나처럼 이 맨발의 사진을 찍고자 맨발로 걸으며 사진도 찍었다. 나야 뭐 예술적? 인 약간의 퍼포먼스처럼 맨발이었다. 걷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산을 거대한 레코드판과 같다. 산길은 레코드판에 적힌 신호이다. 나는 그 신호를 따라 산길에 적힌 산의 음을 발촉감으로 따라가는 것. 산길이 때로는 따끔하고 때로는 따스하다가도 질퍽하기도 하고 그 산길의 음질은 실로 다양하고 시공 감각적이기도 했다. 산과의 스킨십에서는 맨발이 즉각적이고 반사적이기도 했다. 맨발로 걷지 못했던 시간 동안은 대지와 이별하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발을 신음으로써 발을 보호하고 행동반경을 넓히고 속도를 높여왔던 반면, 우리는 발을 땅에서부터 분리 시키고 감춤으로써 땅의 기운과 차단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무얼 하나 얻으면 반대로 무얼 하나 잃었던 원리도 맨발과 신발 사이에서 우린 갈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마음에서 절박한 상황을 정리하고 싶을 때, 꼭 맨발로 길에 집중해 보시라. 비움은 생각만으로 그리 쉽사리 찾아오지가 않는다. 그러나 맨발로 땅의 지음을 듣고 내려놓음을 하고 싶다면 맨발로 걸어 보시라.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에서부터 발바닥까지의 거리라고도 한다. 그만큼 생각과 행동을 매치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뜻일 테다. 그러나 자신에게 조금만 용감해지면 눈치 볼 것도 없이 이깟게 뭐라고 못할 게 뭐냐 싶은 오기가 발동하게 되고 자신에게 눈치 보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 골방에 틀어박혀 짜부라지지 말자. 더운 여름날이더라도 산길과 교감의 스킨십 정도면 뭐 까짓 거 더운 것도 잊는다.
일요일에 걸었던 산길의 촉감이 아직도 잔여감으로 발바닥에 기록돼 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감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거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