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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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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보고자 함이다
비오는 주말, 넉넉하고 한적함이 어딘가는 꼭 가야할 것 같아 마음부터 일어서고 있다. 우산을 준비하고 가까운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이런 날 누가 오려고?’ 하는 마음이었으나 막상 미술관을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이거나 또는 혼자서 그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제법 많다. 젊음을 한껏 누릴 남녀, 아이 손잡고 선 아버지, 지긋한 나이의 부인, 부모는 어디 갔는지도 모른 체 초롱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 이들 모두에게 살며시 얼굴에 번지는 미소로 답하고 나도 그럼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흰색 화살표를 따라 흘러간다.

시립미술관엔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흔하게 접하는 서양화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사진도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설치미술도 있다.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예술가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것은 각기 다를 것이다. 요사이 미술관이나 전시장엔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장소를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있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림이 걸린 벽과 관객 사이에 놓은 거리만큼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림과 관객을 이어주어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필요성에 의해 안내자가 있을 것이지만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나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설명에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다.

예술작품과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책들이 은근하게 번지고 있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라 할 것이다. 그림을 읽어주는 안내서 들이 그것이다. 이들 안내서들은 대부분 유명한 서양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다소 아쉬움 점이 있지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우리 옛 그림에 대해 그림 읽어주는 책들이 발간되고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옛것을 우리들 가까이 불러오는 사람들 중 옛 그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저자들이 눈에 띈다. 내가 주목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의 저자 미술사학자 고(故)오주석씨를 비롯하여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고연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손철주 등이 그들이다. 오주석의 감성적이고 지극한 사랑이 물씬 풍기는 글도 매력적이고 문학 특히 시를 중심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고연희의 그림 사랑도 흥미로우며, 미술 컬럼니스트의 진면목을 보이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손철주의 담백한 글도 눈길을 오랫동안 잡아두고 있다. 이들은 각기 자신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말해주고 있지만 옛 그림에 대해 지극한 애정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엇비슷하다 할 것이다.

‘하루 한 점만 보아도, 하루 한 편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손철주의 또 다른 책이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제목처럼 옛 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68편을 선별하고 이를 사계절로 구분하여 실었다. 이미 익숙한 화가들의 익숙한 그림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화가의 그림도 있어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설렘도 있다. 산수도, 화훼도, 풍속도, 인물화, 조충도를 비롯하여 남녀의 애뜻한 마음이 가득한 그림까지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정조왕의 그림 두 점은 학문과 예술을 사랑한 군주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손철주의 글은 독특하다. 간결하고 단문이기에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만 담겨 있다. 저자의 글처럼 구성 또한 간결하다. 그림 한 점에 주목할 수 있도록 시원스런 편집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옛 그림이 전해주는 그 담백한 맛을 그대로 닮았다. 옛 그림에서 느끼는 정서를 글 속에 담아내고자 지금은 거의 쓰지 않은 단어를 일부러 골라 사용한 것은 옛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하지만 오롯하게 뜻을 전하기에는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자꾸 멈추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42명의 화가들의 간략한 약력을 담아 놓고 그림 목록까지 있어 찾아보기에도 꼼꼼한 마음 씀씀이가 좋다.

"옛 시인과 옛 화가의 심정이 무릇 살갑다. 넘치는 욕심은 시와 그림을 망친다. 모자라기에 애타고, 덜어내기에 미덥다. 가냘프면 설렌다. 만개 아닌 반개한 꽃이 향기가 짙고, 떼 지은 꽃가지보다 외돌토리 가지가 마음에 오래간다. 쓰고 그리는 이만 그럴까. 읽고 보는 이도 말은 끝나되 뜻이 이어지는 서화에 흥이 돋는다. 여운은 남김이 아니라 되새김이다."

이는 저자 손철주가 우리 옛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일 것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글이 넘치는 애정의 표현이라면 손철주의 글은 굳이 들어내지 않더라도 살며시 스며드는 정서의 공유를 담아내고 있어 보인다. 묵직하고 착 가라앉은 듯하지만 울림이 큰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옛 그림을 읽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곁에 두고서 오랫동안 찾고 싶은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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