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건너기
윤성택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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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속에 갇힌 시간

시인 윤성택의 산문집 '마음을 건네다'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그 이유를 확인도 하고 시인의 사유의 세계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그의 다른 책을 찾았다.

 

이 새벽에

깨어 있는 것을 위하여

여행이 길을 멈추고

사랑이 나를 지난다

이 편지가 나를 읽고 끝내

나를 잊을지라도 우리가

적었던 어제는 오늘이 분명하길

 

어쩌면 다시더 깊은 늪에 빠질 것만 같은 이 불안함은 뭘까가을앓이가 시원찮다 싶더니 여기서 덜미를 잡힐 줄은 몰랐다시인 윤성택의 시집을 건너뛰고 다시 그의 산문집을 골랐다정제된 시적 언어 보다는 다소 풀어진 마음자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이래저래 위험을 자초한 일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사진이 있는 에세이를 엮은 책이기에 글과 사진이 주는 이미지를 통해 한발 더 시인의 생각과 생각 사이의 문장 건너기가 수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시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극에 절박함을 데려와 문장으로 일생을 살게 한다그러나 종종 활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폐허가 되는 내면도 있다나는 늘 그 부실이 두렵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어떤가진실함과 절박함이 오래 마주하다 진실이 떠나고 나면절박은 저 혼자 사람과 사람 사이 귀신이 된다스스로 정체성을 잃은 채이기와도 욕망과도 내통하며 사람을 홀린다진실이 있지 않은 절박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다시가 될 수 없다그러니 나의 이 절박은 무엇인가.”

 

시인이 세상과 만나 자신만의 사유의 창에서 얻는 마음자리를 시적 언어로 담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듯도 싶다독백처럼 토해내는 문장을 헤아리기에는 내 사유의 부족을 탓하기도 하지만 문장을 건너가는 버거움은 어쩌면 태생을 알 수 없는 시인의 사유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을 건네다에서 버거웠던 문장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가는 것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따로 없는 이유는 시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본능적으로 매 순간 은유한다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시어를 빌어 다시 태어날 때 그곳은 이미 여기와는 다른 세상이다이해하지 말고 느껴야 하는 그 세계가 우리 곁에 있지만 가깝고도 참 낯설다.”

 

이 말처럼 더 이상 시인의 문장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찾기는 어렵다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직관이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표현된 문장을 독자 역시 자신만의 직관적 감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범위를 넘어선 이해는 나중으로 미뤄두어도 좋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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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풍경이 불러 뜰에 내려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기다린 비가 오는듯 싶었는데 이내 그치고 만다. 급하게 비를 몰아가 버린 바람은 무엇이 더 남았는지 애꿎은 풍경만 흔들어대고 있다.


마른 가을날 덕분에 추수도 일찍 끝난 들판엔 먼지만 풀풀 날린다. 가을걷이 끝난 밭엔 찌꺼기를 태운 연기만 폴폴 마을을 점령이라도 할듯 기세등등하다. 상추, 시금치 씨앗 뿌려놓은 텃밭엔 새싹은 없고 새들이 놀다간 흔적만 남았다. 발목까지 내려온 단풍은 더이상 깊은 가을로 익지 못하고 바삭거리는 소리로만 남았다. 비를 기다린 이유들이다.


비 내린 후에야 발목잡힌 가을은 계절을 넘을 수 있다. 비를 기다린 진짜 이유다. 멀리가지 못하는 풍경소리만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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夕佳軒


저녁이 아름다운 집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젊은 날의 명성을 뒤로하고 늙어 추한 그 모습은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명나라 때 사람 장호張灝의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의 내용을 담은 정민의 '돌 위에 새긴 생각'에 나오는 전각과 그에 관한 풀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꾼다. 그 저녁의 중심엔 온전한 내가 나로 만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안식도 저녁을 채워가는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나 역시 어느덧 저녁을 향해 질주하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음을 안다. 삶 또한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가꾸고 누리는 그 중심에 스스로가 오롯이 설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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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장나무'
낙엽지니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들이 열매다. 붉은 열매받침과 푸른 열매가 강렬한 색의 대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들의 먹이로 주목받아야 다음 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날개를 젖힌듯 한껏 준비된 자세가 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꽃이나 열매 중 대부분 한가지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나무는 독특한 꽃도 그 열매도 다 눈여겨보게 된다. 꽃은 한여름에 끝 부분이 다섯 개로 갈라진 동전 크기만 한 꽃이 흰빛 또는 연분홍빛으로 무리지어 핀다. 수술이 길게 뻗어나온 모습이 독특하여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꽃만큼 독특한 열매는 붉은 열매받침을 배경으로 둥글며 짙은 파란빛의 열매를 맺는다. 열매 받침과 열매가 이루는 전체 모양은 브로치를 연상케 한다. 옛 한복에서 저고리의 고름이 없어지고 편리한 브로치로 바뀌던 개화기 때는 누리장나무 열매 모양이 가장 널리 쓰였다고 한다.


누릿한 장 냄새가 난다고 누리장나무라고 불리지만 꽃이 필 때는 향긋한 백합 향을 풍긴다. 향기만으로도 근처에 이 나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진한 향기 또한 독특하다.


여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보면 '친애', '깨끗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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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꽃이 지고 단풍든 낙엽마져 지고나면 꽃이 귀한 때라 자연스럽게 열매에 주목하게 된다. 독특한 색과 모양으로 때론 꽃보다 더 화려하게 이목을 끄는 열매들에게 눈을 돌린다.


붉게 여물어가는 열매를 무수히 달았다. 잎이 지는 나무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봄에는 여린 연둣빛 새순을 올려 주고, 여름에는 푸른 잎과 하늘거리는 하얀 꽃을, 가을에는 붉게 물들어가는 줄기와 잎을, 겨울이 깊어가면 더욱 단단하고 붉은 열매로 사계절 사랑받는 나무다.


꽃도 열매도 관심가지고 보게 되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잎의 색감은 더욱 좋다. 날엽한 모습에 과하지 않은 붉음이 깊어가는 가을을 여유롭게 대할 수 있게 한다. 서재에서 마주보는 작은 화단에 남천이 붉은 잎으로 손짓한다.


남천이라는 이름은 열매가 달린 모양이 빨간 촛대를 세워 놓은 것 같아 붙여졌다고 한다. '전화위복'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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