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를 믿고 날뛰지 마라. 학문의 수양으로 재주를 거럴내야 한다. 기교로는 눈만 놀라게 할 뿐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오래 깊숙이 울림을 남기는 시를 쓰려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시와 사람이 따로 노는 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저 혼자 온 세상 다 짊어진 것처럼 끙끙대고 , 세상을 향해 이유 없이 이빨을 드러내 물어뜯는 버릇을 시인의 특기로 여기면 피차에 민망하다. 시로 징징대지 마라."

*정민 교수의 '나는 나다' 중 성대중(成大中, 1732~1812)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당시 천재시인으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던 이언진(李彦?, 1740∼1766) 과의 일화에 관련된 이야기다.

"기교로는 눈만 놀라게 할 뿐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어디 시를 짓는 것 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일 모두가 이 뜻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에 품은 온기로 내민 손의 정情을 알지 못하고 건넨 손을 뿌리치는 것은 상대방이 전하는 온기를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나를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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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
유독 사람의 이목을 끄는 꽃이다. 긴 겨울이 끝나간다는 신호로 이해한다. 꽃도 사람도 봄을 맞이하려는 조급한 마음이 눈맞춤을 부른다.


화려한 외출이다. 본래부터 속내는 그렇다는듯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거나 숨기는 일이 없다. 그 화려함이 주목 받기에 한몫한다.


꽃보다 사람이 많은 곳과 시간을 피하느라 너무 이르거나 조금 늦기 마련인 꽃놀이다. 그러다보니 피고지는 과정을 볼 기회가 더 있다. 꽃놀이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함을 알게하는 꽃이다.


처음 간 곳이다. 지형을 모르니 햇살이 드는 시간을 모른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번은 더 이 꽃을 주인공으로 꽃나들이를 할 것이다. 조금 늦게 나선 길에 지는 꽃과 다음 봄을 약속할 수 있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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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쉼이자 숨이다. 출발인 동시에 멈춤이고, 들고 나는 창이며, 너인 동시에 나다. 

"식물체 각 기관의 미발육 상태를 눈이라고 한다. 눈의 중심에는 잎이나 꽃, 줄기가 될 부분이 들어 있고, 줄기가 될 부분의 끝에는 생장점이 있다. 이 생장점을 둘러싸고 추위나 외부환경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비닐 같은 조각을 '아린'이라고 한다. 장차 꽃이 될 눈은 꽃눈, 잎이 될 눈은 잎눈이라고 하며 꽃과 잎이 동시에 되는 눈은 '혼아'라고 한다."

눈과 비바람을 가장 앞에서 맞이하는 식물의 '눈'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아무것도 없을 것같은 언 땅에서 새순이 돋아나 볕을 가득 품듯 나무의 뿌리와 줄기에 볕의 온기를 품는 통로가 '눈'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나와 세상이 만나는 통로가 있어 숨을 쉬고 쉼을 얻는다. 나는 무엇을 '아린'으로 삼아 나를 꽃 피울 '혼아'를 보호하고 있을까.

단풍나무의 겨울눈 속에서 내 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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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핀 섬진강의 매화로 시작한 탐매행이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니 마음이 더 바빠진다. 꽃 피었다는 소식이 기쁜 것은 꽃 보는 자리에 함께할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친교의 매화'다. 꽃 피니 벗부터 생각나고 그 향기를 나누고 싶어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매화 가지를 꺾다가 마침 인편을 만났소.
한 다발 묶어 그대에게 보내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가지에 봄을 실어 보내오.


折梅逢驛使
寄興嶺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이 꽃 한 가지를 통해 나눈 우정이 매향梅香처럼 고매하다. 육개는 멀고도 먼 강남에서 매화 한 다발을 친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꽃이 가는 도중 시든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범엽이 꽃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여름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사 온 해 모월당 뜰에 홍매의 꽃봉우리가 부풀어 올랐다. 유독 짙은붉은색으로 피는 매화라 모월흑매慕月黑梅라 이름 지었다. 매화나무를 심은 까닭이 육개와 범엽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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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
-이승수, 돌베개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조선 후기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시조이다. 거문고 줄을 고르다 잠이들었는데 문득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벗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옹화상과 이색, 정몽주와 정도전, 김시습과 남효온 
성운과 조식, 이황과 이이, 양사언과 휴정 
이항복과 이덕형, 허균과 매창, 김상헌과 최명길 
임경업·이완과 녹림객, 이익과 안정복, 나빙과 박제가

옛사람들의 이 조합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섬진강에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문득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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