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듯 잦아드는 빗소리다. 안으로만 파고드는 마음과는 달리 시선은 어둠으로 깊은 밤하늘을 헤맨다. 아직 겨울을 맞이하지도 못했는데 이미 섬진강에 매화가 피었단다. 앞서 간 마음이 향기를 누리는데 늦은 몸이 서둘러 그곳에 설 날을 기다린다.

이 비 그치면 겨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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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의 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다. 나는 무엇에 집중하여 세상을 볼까. 꽃, 새, 할머니, 어머니?. 내 가슴에 품은 온도와 색깔로 바라보는 세상이 늘 온화하고 따뜻하길 바란다면 내 삶이 그것과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는 하루를 살아보자.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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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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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에게 꽃은?

좀딱취가 피는 늦가을부터 매화가 피기 이른 봄까지 제법 긴 시간동안 꽃을 보지 못한다이 시기를 꽃궁기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산과 들에 핀 꽃을 찾아다니는 이들이다이 꽃궁기에 꽃친구들은 일 년 동안 찍어둔 사진을 꺼내보거나 식물도감이나 사전 등을 끼고 꽃을 보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나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꽃궁기를 심심하지 않게 건너갈 놀이감을 발견했다.

 

문학 속에 핀 꽃들’, ‘문학이 사랑한 꽃들’, ‘서울 화양연화’ 등으로 이미 익숙한 김민철의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가 그것이다박완서와 꽃절묘한 조합이다이를 발견하고 간추려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저자 김민철의 혜안이 부럽다꽃에 관심 갖고 공부하며 산과 들에서 직접 보는 것과 그를 기반으로 작품 속 꽃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통하는 무엇이 분명 있겠지만 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산들꽃을 찾아다니는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리움을 위하여’-복사꽃, ‘거저나 마찬가지’-때죽나무, ‘아주 오래된 농담’-능소화, ‘그 남자네 집’-보리수나무, ‘그 여자네 집’-꽈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분꽃, ‘미망’-수수꽃다리, ‘친절한 복희씨’-박태기나무 등 24종의 작품을 이런 조합으로 이미 연결된 박완서와 꽃을 새롭게 조망화고 있다.

 

작가 박완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이 작품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꽃이 지낸 의미를 확장하여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데 보다 풍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이는 문학에 대한 내공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여기에 꽃으로 대변되는 식물에 대한 이해도 역시 갖추어야 가능해지는 일이기에 저자 김민철의 열정과 노력에 심심한 응원을 보텐다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꽃에 대한 흥미를 한층 더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0년 1월은 소설가 박완서 9주기다꽃이라는 테마로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만나 그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며 동시에 꽃과 더 풍부한 이야기꺼리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완서에게 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로부터 시작하여 문학과 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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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탐매기蟾津探梅記
"수일 못 뵈었습니다. 가람 선생께서 난초를 뵈어 주시겠다고 22일(수) 오후 5시에 그 댁으로 형을 오시게 좀 알려 드리라 하십니다. 그날 그시에 모든 일 제쳐 놓고 오시오. 청향복욱靑香馥郁한 망년회가 될 듯하니 즐겁지 않으리까."

*정지용이 이태준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를 받고 모임에 참석한 이는 좌장 이병기 선생을 비롯하여 이태준ㆍ정지용ㆍ노천명이 참석 했다.

"1936년 1월 22일. 우리는 옷깃 여미고 가까이 나아가서 잎의 푸르름을 보고 뒤로 물러나 횡일폭의 목화와 같이 백천획으로 벽에 어리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람께 양란법을 들으며 이 방에서 눌러 일탁의 성찬을 받았으니 술이면 난주요 고기면 난육인 듯 입마다 향기였었다."

*이태준은 그 모임의 후기를 남겼는데 '설중방란기雪中訪蘭記'가 그것이다. 위 글은 설중방란기의 일부다. 난을 두고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모습을 상상하니 난향이 은근하게 베어난다. 지극히 부러운 만남이다.

하나, 이 만남이 마냥 부러운것 만은 아니다. 이태준의 '설중방란雪中訪蘭'이 난향을 두고 만났다면 매향을 두고 벗들이 만났으니 이 또한 지극한 아름다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2020년 1월 12일 오전 10시 소학정. 멀리 제주도를 필두로 울진, 서울, 대구, 옥천, 진주, 곡성에 사는 이들이 섬진강가에서 만났다.이름하여 섬진탐매蟾津探梅다. 

반백의 벗들이 만나 매향梅香을 가슴에 품고 서로 나눈 눈길이 한없이 곱기만 하다. 마주잡은 손길에 온기가 가득하고 주고 받는 안부에 매향이 오간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이 따로 있을까. 환한 미소가 머무는 벗들의 얼굴에 모든 것이 다 담겼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의 시 '그리움'이다. 시인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벗들과의 하루가 한편의 시다.

섬진탐매蟾津探梅
꽃을 보듯 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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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仙花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 겨울 마음 줄기에서 둥글게 피어나
천품이 그윽하고 담백하여 시리도록 빼어나구나
매화가 고상하나 뜰을 떠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해탈한 신선을 참으로 보네 

*추사 김정의 시 '수선화'다. 수선화를 몹시 좋아했던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 지천으로 핀 수선화를 보고 사뭇 진지함을 드러낸다. 한양에서는 없어서 애중지하던 꽃이 제주에는 돌담밑에도 밭에도 길거리에도 발길에 채일 정도였다고 한다. 수선화는 당시 조정에서 수입을 금할 정도로 선비들 사이에 유행하며 대접 받았던 꽃이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에게 평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고려자기에 수선화 심어 선물했다. 이를 받은 다산은 수선화를 '세파에 초연한 선비'라는 의미를 두며 아꼈다고 한다.

제주 사는 지인의 뜰에 수선화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유독 빨리 핀 수선화는 무슨 사연을 담았을까. 지난 봄 내 뜰에 핀 수선화를 대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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