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는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먼지를 둘러쓰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 금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여가며 자그마한 모래산을 쌓았다가, 단 한번의 발길질로 무너뜨려댔다.
삐에르에게 오늘은 아주 음울한, 자기 영혼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접힌 주름마다 들춰보게 되는 그런 날들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의 노동이란 것도 이 꼬맹이들이 하는 일과 흡사하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것이 이런 불필요한 어린 존재들을 둘이나 셋 낳아놓고 자기만족과 호기심을 갖고 그 어린것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결혼하고 싶은 욕구가 그를 스쳐갔다. 더는 혼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망연자실하지도 않는다.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 적어도 누군가 ‘당신‘ 이라고 말을 하는 것만으로 이미 대단한 것이다.
그는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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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방귀를 무척 좋아한다, 안 그런가? TV에서는 마약과 섹스와 폭력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요즘 아이들도 옛날 우리가 그랬던것처럼 방귀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어한다. 결국 이 세상은 그리많이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직 이 세상에 영원한 진리가 몇 개는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어린이에게 "꼬마야, 엄청난방귀 냄새 한번 맡아볼래?"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미쳤냐는 듯당신을 바라보는 시대는 생각하기도 싫다. "엄청난 뭐라고요?"
"방귀. 방귀가 뭔지도 모르는 거냐?" "당연히 알죠. 그건 게임이잖아요. 표적에 그걸 던져요. 그러면 점수를 획득해요." "멍청한녀석, 그건 다트dart지. 방귀 fart 말이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을 때 뀌는 게 방귀야. 바람을 일으킨다고도 하지. 물론 그걸로게임을 해서 점수를 딸 수도 있어. 젖은 방귀는 점수가 높고, 연발탄도 횟수만큼 점수를 얻고, 이런 식이지. 그리고 진흙을 흘리면,
옛날엔 그렇게 불렀지, 벌점을 받아.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그냥재미로 방귀를 뀌는 거란다. 정말이지 우리가 어렸을 땐 몇 시간동안 방귀를 뀔 수 있었어! 무더운 여름밤 어느 집 현관에서, 거리에서 하교 가는 기에 베 어느 나 하의 없이 대장간에 모여앉아 방귀를 뀔 수 있다면 대만족이었지. 옛날에는 영화도 TV도 아무것도 없었단다. 모두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동전 한 닢 나온 적없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흥밋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거나말썽을 피울 일도 전혀 없었지. 가장 좋은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거였어. 정말이지 그 시절의 아이들은 남는 시간을 잘 쓸 줄 알았단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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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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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이고 뭐고 숨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무턱대고 고시원을 나갔다. 주택가의 담을 따라 그늘이 지는 곳을 골라 다녀도 정수리가 따가웠다. 화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계절의 한복판에서 내 몸은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했다. 그냥 걸었다. 앞에서 끌어줄 희망도 뒤에서 밀어줄 바람도 없었다. 멈춰버리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나를 아무 데나 쏟아버리지 않으려면 멈추지 말아야 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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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색 머리카락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침착하고 분별있어 보이는 표정에, 보고 있으면 즐거워지는 행복하고 선량한 모습이었다. 아들 삐에르의 표현에 따르면, 롤랑 씨 부인은 돈의 가치를 알지만 그렇다고 몽상의 매력을맛보는 데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소설과 시들을 즐겨 읽었는데, 그 예술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들이 일깨워주는 우수 어린 부드러운 몽상 때문이었다. 시 한편, 종종 진부하고, 종종 형편없는 시 한편이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듯 그녀의 여린 심금을 울리며, 은밀한 욕망이 거의 실현된 듯한 느낌을 안겨줬다. 그리고 회계장부처럼 정리가 말끔하게 되어 있는 그녀의 영혼을 살그머니 흔들어놓는 이 가벼운 감정들을 즐겼다. - P43

르까뉘 씨는 공증인이고, 사업상 인연으로 롤랑 영감과 약간 친분이 있었다. 저녁때 방문하겠다고 알려온 걸 보면 뭔가 위급하고중요한 용건임이 틀림없었다. 롤랑네 네 식구는, 계약, 유산, 소송, 바람직하거나 혹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연관된 오만가지 생각을 일깨우는 공증인의 개입이 있을 때마다 보잘것없는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러듯이, 이 소식에 불안을느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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