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색 머리카락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침착하고 분별있어 보이는 표정에, 보고 있으면 즐거워지는 행복하고 선량한 모습이었다. 아들 삐에르의 표현에 따르면, 롤랑 씨 부인은 돈의 가치를 알지만 그렇다고 몽상의 매력을맛보는 데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소설과 시들을 즐겨 읽었는데, 그 예술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들이 일깨워주는 우수 어린 부드러운 몽상 때문이었다. 시 한편, 종종 진부하고, 종종 형편없는 시 한편이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듯 그녀의 여린 심금을 울리며, 은밀한 욕망이 거의 실현된 듯한 느낌을 안겨줬다. 그리고 회계장부처럼 정리가 말끔하게 되어 있는 그녀의 영혼을 살그머니 흔들어놓는 이 가벼운 감정들을 즐겼다. - P43

르까뉘 씨는 공증인이고, 사업상 인연으로 롤랑 영감과 약간 친분이 있었다. 저녁때 방문하겠다고 알려온 걸 보면 뭔가 위급하고중요한 용건임이 틀림없었다. 롤랑네 네 식구는, 계약, 유산, 소송, 바람직하거나 혹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연관된 오만가지 생각을 일깨우는 공증인의 개입이 있을 때마다 보잘것없는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러듯이, 이 소식에 불안을느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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