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관한 중요한 평론에서 황도경은 화원 여자의 글쓰기는 "허위적 욕망에 들뜬 자신을 죽이고 세상과 맞서는 (……) 계기"를 이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나의 분석이 옳다면 그것은 남성 욕망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주체 선언"이라는 측면 못지 않게 어두운 사랑 충동을 품은 여성의 그 자신에 관한 발화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몸과 마음의 접경을 주시하는, 트리우마적 향유를 둘러싼 여성의 고백으로서 <배드민턴치는 여자>에 필적하는 한국어 텍스트는 극히 드물다고 생각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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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면서 마음 속으로 말을 하면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수녀에게 무슈 드 생 시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인간은 노리개에 불과해요. 우리의 삶은 감옥이지요.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가랑잎과 이끼 속에 폐허를 세우는 겁니다."
예술은 가장 하찮은 잎사귀다.
가장 미미한 이파리인 이유는 돋아나는 잎사귀 중에서 가장 작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은 그러므로 가장 작은 것이다.
그것은 문화의 내부에 남아 있는 자연이다. 그것이 바로 출생이다. 만물 안에서 출생은 소생을 추구한다.
예술은 부활에만 관심이 있다. 자연은 그 근원이다. 예술은나뭇가지 끝에 희끄무레한 눈을 다시 틔우는 가장 평범한 봄과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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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남의 생각과 남의 집 속에서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보라. 책의 안팎에, 교실의 안팎에, 대체 우리의 것, 우리 역사의 터를 거쳐서 법고창신과 온고지신의 바람을 맞으면서 키워온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남아 있는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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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이른바 고전 교육.ㅡ 우리의 삶이 인식에 바쳐진다는 것, 이렇게 인식에 바쳐진 삶이 삶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러한 삶을 내던질 것이라는 것, 아니! 그것을 내던져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다음의 시에 감동하며 자주 이 시를 암송하게 된다.

운명이여, 너를 따르리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숨을 지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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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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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침묵이 지난 다음에 할말이 완전히 바닥난 나는 아빠가 결국 위암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그렇게절망적인 건 아닌데 또다른 데로 전이가 됐다고 말했다. 삼은 한침묵하더니 아버지의 쾌유를 빈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삼은 그 누구보다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상황에서 쾌유를 빌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이다. 나는 왜 이1 인간인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울었는데 다 울고 나니 번다생각들이 모두 다 용해된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울기 위해서는엄청난 열의와 압력이 필요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감정들을 온몸으로 울면서 모두 죽여버린 기분이었다. 때로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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