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하면서 마음 속으로 말을 하면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수녀에게 무슈 드 생 시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인간은 노리개에 불과해요. 우리의 삶은 감옥이지요.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가랑잎과 이끼 속에 폐허를 세우는 겁니다."
예술은 가장 하찮은 잎사귀다.
가장 미미한 이파리인 이유는 돋아나는 잎사귀 중에서 가장 작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은 그러므로 가장 작은 것이다.
그것은 문화의 내부에 남아 있는 자연이다. 그것이 바로 출생이다. 만물 안에서 출생은 소생을 추구한다.
예술은 부활에만 관심이 있다. 자연은 그 근원이다. 예술은나뭇가지 끝에 희끄무레한 눈을 다시 틔우는 가장 평범한 봄과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미 우리는 남의 생각과 남의 집 속에서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보라. 책의 안팎에, 교실의 안팎에, 대체 우리의 것, 우리 역사의 터를 거쳐서 법고창신과 온고지신의 바람을 맞으면서 키워온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남아 있는가."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5.
이른바 고전 교육.ㅡ 우리의 삶이 인식에 바쳐진다는 것, 이렇게 인식에 바쳐진 삶이 삶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러한 삶을 내던질 것이라는 것, 아니! 그것을 내던져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다음의 시에 감동하며 자주 이 시를 암송하게 된다.

운명이여, 너를 따르리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숨을 지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2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간의 침묵이 지난 다음에 할말이 완전히 바닥난 나는 아빠가 결국 위암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그렇게절망적인 건 아닌데 또다른 데로 전이가 됐다고 말했다. 삼은 한침묵하더니 아버지의 쾌유를 빈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삼은 그 누구보다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상황에서 쾌유를 빌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이다. 나는 왜 이1 인간인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울었는데 다 울고 나니 번다생각들이 모두 다 용해된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울기 위해서는엄청난 열의와 압력이 필요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감정들을 온몸으로 울면서 모두 죽여버린 기분이었다. 때로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국숫집을 나와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인선의 숱 많은 단발머리에 소슬히 눈이 쌓였다. 아마 내 머리에도 그만큼 쌓였을 것이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적 없는 하얀 거리가 커다란 그림책처럼 펼쳐졌다. 우리 발이 눈을 밟는 소리, 파카에 소매 스치는 소리, 멀리 있는 가게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 또렷했다. 우리 입과 코에서 흰 김이 흘러나왔다. 눈송이들이 콧잔등과 입술에 내려 앉았다. 우리는 따뜻한 얼굴을 가졌으므로 그 눈송이들은 곧 녹았고, 그 젖은 자리 위로 다시 새로운 눈송이가 선득하게 내려앉았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기 위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연인들이 짧은 이별을 미루기 위해 우회로를 택하듯 계속해서 지하철 역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듯 펼쳐지는 고요한 횡단보도를 건너며 나는 기다렸다. 침묵을 깨고 인선이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 P4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