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이 오래 걸린 까닭은, 카타리나 블룸이 놀랄 정도로 꼼꼼하게 모든 표현을 일일이 검토했고, 조서에 기록된 문장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앞 장에서 언급된 남자들의 치근거림이 처음에는 조서다정함으로, 즉 "신사들이 다정하게 대했다" 라는 식으로 기록되었다. 이에 대해 카타리나 블룸은 몹시 분노하며 있는 힘을다해 반대했다. 개념 정의를 두고 그녀와 검사들 혹은 그녀와 바이츠메네 사이에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카타리나는, 다정함은 양쪽에서 원하는 것이고 치근거림은 일방적인 행위인데 항상 후자의 경우였노라 주장했다. 심문에 참여한 신사들이, 그런것은 모두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심문이 보통보다 더 오래 걸리면 그건 그녀 탓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치근거림 대신 다정함이라고 쓰여 있는 조서에는 절대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차이가 그녀에게는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그녀가 남편과헤어진 이유 중 하나도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다정한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고 늘 치근거렸다 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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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생지옥. 불행 속에서 완전히 뿌리 뽑히기.

일반적으로 인간들의 불의不義는 순교자가 아니라 생지옥에 던져진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생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도둑한테 옷을 다 빼앗기고 몸도 다친 사람들과 같다. 그들은 개인적 기질이라는 옷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엄청난 고통이라도 뿌리를 남겨두는 고통이라면 생지옥과는 전혀 다르다.
뿌리 뽑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 그 대가로 악의적인 태도, 배은망덕, 배신이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불행을 아주 조금 함께 겪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그들의 불행을 함께 겪을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럴 힘이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정된 어떤 사람들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불행을 감내하듯 감내해야 한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결부된 게 아니다. 완전성이 그러하듯 생지옥의 불행에는 어느 정도 비개인적인 것이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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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고통을 달래줄 위안을 구해서는안 된다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위안이나 고통의 영역을 넘어선다. 지팡이나 다른 연장의 끝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원래의 촉각과 다르듯이, 참된 행복은 다른 감각으로 감지된다.
그 다른 감각을 지니려면 몸과 영혼을 다한 훈련을 통해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성서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이제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보상은 필요 없다. 우리의 감각 능력 안의 빈자리가 우리를 그 감각 능력너머로 데려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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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재회한 친구와의 악수. 그 악수의 감촉이 즐거움인지 괴로움인지 미처 파악할 틈이 없다. 장님이 지팡이 끝으로 사물들을 직접 느끼듯, 나는 친구가 있음을 직접 느낀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다. 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고통을 달래줄 위안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위안이나 고통의 영역을 넘어선다. 지팡이나 다른 연장의 끝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원래의 촉각과 다르듯이, 참된 행복은 다른 감각으로 감지된다.

그 다른 감각을 지니려면 몸과 영혼을 다한 훈련을 통해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성서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이제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보상은 필요 없다. 우리의 감각 능력 안의 빈자리가 우리를 그 감각 능력 너머로 데려가준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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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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