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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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딸아이가 아빠를 부르고 있습니다. 천 미터 땅 밑에서요. 이대로 아이를 잃는다면 저는 평생 제 자신도, 이 나라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저는 내려가야 합니다. 꼭 내려가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흔들린다. 무너져 내린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거대한 아가미를 벌리고 인간의 욕망을 삼켜버리는 충격적인 싱크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인 3명이 있다. 그들은 마치 산의 부름을 받은 특별한 존재처럼 보인다. 달리기는 빠른 놈이 최고지만, 산은 천천히 오르는 자세, 산을 배우기 위해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과 함께 보낸 세월 속에서 강인한 집념으로 자신을 지켜온 김혁. 그의 뒤를 따르는 영준과 소희 이렇게 세 사람은 팀을 이루고 수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한편, 국내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지상 123층 지하 7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끊임없이 욕망의 탑을 쌓아간다. 거대한 성을 건설하기 위해 모여든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투자자금을 걸고 화려한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이제 곧 '파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낭가파르바트의 빙벽을 닮았어. 아니, 그것보다 더 비슷한 게 있는데….(p.54)

<싱크홀>은 천재지변으로 감쪽같이 사라진 초고층 빌딩에 갇힌 무고한 생명의 구출작전이 인상적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선사한 배부름에 만족하지 못한 탐욕에 찌든 인간의 초라한 최후를 경고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짜릿한 신선함'을 느끼지 못했다. 책표지에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재난소설'이라는 문구가 차라리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걸까? 이야기가 전개되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산악인'의 존재는 이미 전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싱크홀이 무엇인가?

 

지하의 암석이 붕괴되거나 지반이 약해져 땅이 꺼지는 현상을 '싱크홀'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123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가 나온다. 오픈식을 화려하게 치르고 자정이 될 무렵까지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카만 허공 속으로 떨어지는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영원히 깊은 땅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누가 믿을까? 인간의 마지막 순간은 오직 신만이 알리. 입구는 펀치로 종이뭉치를 뚫을 듯 정확한 원 모양이었다. 구멍 안은 무척이나 넓고 깊어서 지구의 입처럼 보였다. 그 구멍이 시저스 타워를 삼켰다. 야간 축하 행사가 끝나고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싱크홀의 아가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깊은 땅속에 매몰된 사람들은 붕괴된 건물의 잔해 깔려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극한의 위기에 처하면 인간이 지닌 본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싱크홀>이다. 사건의 발단은 인간의 무리한 욕심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소재는 참신하고 좋았는데,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책을 향한 나의 판단력을 분산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어떤 책을 읽더라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싱크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책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개입되어서 독창적인 핵심을 추려내기가 애매했다. 무너져 내린 시저스 타워가 암시하는 두 가지 측면, 인간의 욕망과 사랑인가?

 

 





 

땅으로 사라진 빌딩 속에 난데없이 '살인마'가 등장해서 무고한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작가는 무언가 독자로 하여금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최후를 씁쓸하게 느낄 수 있게끔 살인적인 광기를 삽입했을까. 개인적으로 마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었고 굳이 '살인마'라는 요소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내가 생각하기로' <싱크홀>이라는 책이 마음껏 펼쳐내야 했던 핵심은 '땅으로 꺼져버린 시저스 타워'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을 심도있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산악인의 비애, 부와 명성을 누리는 축복,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작은 희망, 가족의 기능이 상실된 한부모 자녀의 심리적 갈등, 어머니와 아들의 애착, 애정결핍, 남녀의 삼각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가 개입되어서 '싱크홀'이 남기고 떠난 '숙제'가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

 

끝으로 <싱크홀>의 가상공간에서 나름 발견한 게 있다면, '인간의 정신' 지닌 강인한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재난소설은 항상 암시적이다. 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칠레 화산폭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직도 자연을 마음껏 활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이치에 어긋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부실한 몸뚱어리는 뒤로한 채 외적인 부분만 뜯어내고, 깎아내고, 잘라내고 흡입하는 시술을 향한 욕망은 버려야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기회가 되면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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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행복론 - 끊고斷, 버리고捨, 떠나라離
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박전열 옮김 / 행복한책장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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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집착이란,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 끈질긴 집념으로 매달리는 것, 모두가 모무한 짓이라 손가락질하는 비효율적인 행위,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일방적인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애착 행위에도 그 수단과 목적에 따라 장단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달린 문제라서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예에 불과할 것이다. 왜 '집착'에 대하여 말하느냐면, 이번에 읽은 <버림의 행복론>에서 '단사리'라는 버림의 실천법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버린다'는 개념이라, 참 간단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행위 그 자체이니 말이다.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 알고 보면 당신은 물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버림의 행복론>이 계속 강조하는 부분, 그 자체의 필요성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재차 설명한다는 것이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소유나, 무소유냐를 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진정 몸과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쓸모없는 잡년과 잡동사니가 우리를 치장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 책의 저자인 야마시타 히데코는 단(끊을 斷). 사(버릴 捨). 리(떠날 離) 실천법을 소개한다.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이 자유로워질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상태에서는 무시와 부정과 혼란 등이 여러 겹으로 쌓이면서 부정적인 에너지와 뒤얽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흙탕에 묻힌 상태에서 버둥거리는 것입니다. 하물며 상념이 강한 물건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 방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본문 중에서

 

단사리가 무엇인가? 소유한 물건과의 불필요한 관계를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는 '단사리' 세미나가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얼마 전에 출간된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 역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에 '버리기 연습' 열풍을 일으켰다. 왜 사람들은 버리는 것에 집중하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물건과 마주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과 같습니다. 방을 정리하는 일은 자신을 정돈하는 일인 것입니다. 마음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마음의 변화를 초래합니다. 행동하면 마음이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단사리는 행동하면서 참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동선(動禪)'입니다."라고 말이다.

 

이 책의 대주제는 '우리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이득'이라고 생각된다. 이익을 위해서 무언가를 버린다는 뉘앙스를 풍길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우리는 잃는 것보다 그 뒤에 찾아올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임이 분명하다. 책은 우리에게 '단사리'를 계속 이야기한다. 어질러진 방은 당신의 얼굴, 인격이라고 말이다. 언젠가는 입겠노라 다짐하며 옷장 속에 넣어둔 옷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하여 묻는다. 차곡차곡 모아놓으면 언젠가는 쓰게 된다는 생각으로 모아둔 일회용 용기와 나무젓가락은?

 

 





 


「별로 사용할 의사가 없는 물건이지만 무심코 서랍 안에 가득 넣어두고 있습니다. 단지 사용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기를 꺼리는 심리, 즉 '아깝다'는 마음에 우리는 자주 매몰되고 맙니다. 이것은 물건이 주인인 상태입니다.」- 본문 중에서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방 청소를 한꺼번에 몰아서 한다. 책도 뒤죽박죽 쌓여 있고 각종 프린터물과 그림 도구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확실히 방이 어수선하면 정신적으로 집중이 안 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까짓 거 버리는 게 뭐 어렵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내 방을 떠올리는 순간 정곡을 찔린 느낌을 받았다. 부끄럽도다! 쓸모없는 물건을 과감히 버리는 것만으로도 평범했던 삶의 질을 더욱 윤택하게 바꿀 수 있다고 하니! 지금 당장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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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심리학 - 생활 속의 심리처방
와타나베 요시유키 & 사토 타츠야 지음, 정경진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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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면 아마도 '인간' 그 자체가 아닐까. 나도 인간으로서 내 진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변덕이 심했던 걸까. 고집이 세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나는 내가 봐도 못된 심보를 가진 인간이다. 그래서 이기적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봤다.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심리학 저서를 끊임없이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나'를 똑바로 알기 위해서, '나와 너'의 관계 개선을 위함이었다.

 

심리분석에서 발견되는 우리의 표정, 말과 행동 그를 통하여 나와 너를 알아가는 것

사람이 기분이 나쁘면 이런 행동을 하고 행복하면 이렇게 웃는다더라. 그래서 저 사람은 지금 매우 슬프고, 그 사람은 몹시 힘들었나보다. 우리는 이렇게 얼핏 주워들은 심리학의 작은 상식을 통해서 사람 유형을 분석하기에 이른다. 항상 확률은 50대 50이다.

누군가로부터 '안 좋은 일 있으시죠? 안색이 좀…'이라는 말을 들으면, 진짜 아무 일이 없었음에도 괜히 '내 표정이 이상한가?'라는 생각과 함께 진짜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그게 인간의 심리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은 <유쾌한 심리학>은 사실 특별하고 획기적인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책은 인간의 '성격', '관계', '의욕'을 아우르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심리를 주로 다루고 있다.

 

 





 


「'심리학을 배운다' 는 것은 다른 학문처럼 '지식' 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견해' 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심리학에 접근하면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이 지금까지와는 꽤 다르게 보일뿐더러 일상적인 고민이나 행동상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의외의 해결책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본문 중에서

 

<유쾌한 심리학>'왜 우리가 심리학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전투적인 자세로 인간관계에 임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나,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관계 맺기'와 '관계유지'이다. 때로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인간관계의 기술에 대한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좋고 싫은 감정이 생기려면 일단 상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이 싫다거나 전에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인데 보자마자 좋아지는 일은 없다. 즉, 우리는 타인과 만나고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그 사람에 대한 플러스 정서나 마이너스 정서를 키워가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이 말한 바와 같이 '일단 부딪혀보는 것'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도전하기에 앞서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한 법.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을 통해서 사람 됨됨이를 추측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소통의 신호를 재빨리 낚아채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라 생각된다. 혹시 아직도 혈액형을 운운하며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도 궁합이 안 좋게 나왔다고 이별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유쾌한 심리학>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궁합이란 운명처럼 정해진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덜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생각해낸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궁합을 적절히 이용하되 거기에 연연하거나 휘둘리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궁합이 아니라 행동, 상황, 의욕, 예전의 경험 등 실로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서 결정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때로는 직감에 의해 내린 결정으로 큰 수확을 거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밑져야 본전'이란 믿음에 의지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직감', '직관' 그 자체는 타인을 배제한 사적인 영역에서 스스로 내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학'을 반드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심리학을 몸에 익히는 법'을 지금부터라도 알아간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소속감이 더욱 탄탄해질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쾌한 심리학>은 '생활 속의 심리처방'을 중심으로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 책이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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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 독한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남는 법
카야마 리카 지음, 김정식 옮김 / 모벤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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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우리에게 '인간'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모든 이야기에 모멸찬 회의감을 느낀다. 저마다 독특한 유전자를 지닌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한 것임을 잘 아는데, 사회라는 곳에 종손된 개인으로서 독립된 시공간을 유지한다는 자체가 정말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쉽게 말해보자면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는 온전한 삶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본성'에 절대적으로 따르되, 외적인 충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굳건한 신념을 키우라는 뜻이 되는 걸까?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비워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될지도….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가 임상치료를 통한 환자와의 경험에서 비롯된 인간 본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정적인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 공통점은 바로 '인간의 본성'에 숨겨진 선악의 모순이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겪는 50대 남자의 모습, 저자는 이 남자의 우유부단함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생명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우유부단함이라니!

 

 



 

 


「이 남성 환자는 확실히 최근의 사회적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존엄사를 선택하는 게 좋다'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때가 되면 결단을 못 내린 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며 고민하고 말죠. 게다가 그 결정이 어머니를 위한 선택인지, 자신의 제 멋대로인 생각인지도 잘 몰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것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위와 같은 접근방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독특하게 짚어나간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조금씩 살펴보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항상 양보하고 손해 보는 사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 '늘 먼저 사과하는 사람', '언제나 가족에게 희생하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 '인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특징을 내걸고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너무 지나치게 강한 경쟁의식이나 눈에 띄고 싶다는 욕망은 타인으로부터 얼마 안 돼 소외당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살아가는 데에도 언젠가는 본인을 괴롭히게 되는, 인생을 방해하는 짐스러운 탐욕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진료실의 경험에서 저는 항상 그런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인간이 겪는 대표적인 정적 스트레스를 엄선하여 수록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왜냐하면, 책의 주제가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저자의 메시지가 깔렸으나, 통상적인 범주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상황에 처한 몇몇 사람의 사례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입장에서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개별적인 환경에서 선후천적인 독특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을 터인데, 그런 맥락은 생략하고 저자의 현업인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에 의한 해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는 것,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 책 자체를 두고 '자기계발'이냐, '심리학'이냐를 먼저 명확하게 짚어주었으면 좋았을거 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처한 표면적인 상황에서 '착하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심도있게 풀어나가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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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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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물을 물이라 생각하고 마시니 비로소 물임을 알게 되었고, 바람을 바람이라 생각하고 맞이하니, 그제야 나 자신이 바람을 몸으로 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진귀한 현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오다니…….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천지에 만물이라 일컫는 모든 존재가 반쯤 채워진 미물이 되어 진화의 과정을 거치듯, 내 삶도 나라는 것이 주인이 되어 지금의 모습까지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함에 있어 책을 빼놓는다면 아마 혼이 빠진 허상의 껍데기와 마주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있으랴. 나에게 책이 없다면 사방팔방으로 날뛰는 정신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책으로서 대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 책다운 책을 찾아낼 수 있을텐데 말이다.

 


「"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다. 만약 꽃을 가린다면 꿀벌은 결코 꿀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시를 짓는 것도 이와 같다. 천지의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와 도리에 밝은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뛰어난 글귀를 뽑아서 내 창자를 씻고자 한다"」- 본문 중에서


 

 



 

 



 

 

 

아주 오래 전에 내가 머무는 공간을 살다간 지성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이덕무, 조선 후기의 실학자, 문인이었던 이덕무와의 만남은 찰나의 섬광처럼 짧고 강렬했다. 그 여운을 잊을 수 없어서 나는 계속 반쯤 감은 눈으로 회상하고 있다. 옷깃을 한번 스쳐도 그것이 인연이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애석하여, 책을 대하는 그의 몸과 마음은 한번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수백번을 거쳐서 빛바랜 고서로 탐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를 말하되, '말씨는 어눌하고, 성품은 졸렬하고 게을러 세상일을 알지 못했으며,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잡기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잘난 척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드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그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를 가슴속에 담고 있다

그는 간서치였을까. 책으로서 소통하는 이덕무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었을까. 자신을 다스리기 위하여 삶의 지침서를 직접 작성하여 가까운 곳에 붙여놓고 생활한 이덕무였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좋은 문장을 찾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글을 쓰기에 앞서 인간 본연의 심성을 절도있게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된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자가 천지를 울리는 문장을 남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은 즉,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은 자가 어찌 만인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와 같은 것이리라.

 

 



 

 


「정성으로 효를 다하면 온갖 행실이 저절로 갖추어지고, 온갖 행실이 갖춰짐을 드러내면 그대로 문장이 된다. 그래야 문장이 화평한 기운을 띠게 되어 즐겁고 맑고 고요하며,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선한 마음이 자라난다. 만약 재능과 문장을 앞세우고 행실을 뒤로 미룬다면, 비록 글 솜씨가 아무리 맑고 아름답고 논리 정연하더라도 이는 올바른 것이 아니기에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책에 미친 바보>에 수록된 이덕무의 글은 읽음과 동시에 눈앞에 그 웅장함이 또렷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이덕무가 여생을 보낸 조선 시대의 영향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내면에 내려놓고 자연을 벗삼아 스스로 정립한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를 지키며 살았던 이덕무. 그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벗은 없을지라도, 자신이 평생을 다하여 모든 걸 들어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간간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도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이덕무의 조카인 '심계 이광석'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는 이덕무가 스스로 정립한 '책'과 '문학'을 향한 사상과 깨달음이 담겨있어서 유익한 부분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문인,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다간 이덕무, <책에 미친 바보>를 읽은 지금 이 시점에 나는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반성하게 되었다. 때로는 읽어도 읽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책에 지배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내가 스스로 만든 속박의 굴레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반성해본다.

이 책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하반기 독서계획은 이덕무의 가르침을 본받아 더욱 절도있게 체계적으로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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