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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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딸아이가 아빠를 부르고 있습니다. 천 미터 땅 밑에서요. 이대로 아이를 잃는다면 저는 평생 제 자신도, 이 나라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저는 내려가야 합니다. 꼭 내려가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흔들린다. 무너져 내린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거대한 아가미를 벌리고 인간의 욕망을 삼켜버리는 충격적인 싱크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인 3명이 있다. 그들은 마치 산의 부름을 받은 특별한 존재처럼 보인다. 달리기는 빠른 놈이 최고지만, 산은 천천히 오르는 자세, 산을 배우기 위해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과 함께 보낸 세월 속에서 강인한 집념으로 자신을 지켜온 김혁. 그의 뒤를 따르는 영준과 소희 이렇게 세 사람은 팀을 이루고 수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한편, 국내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지상 123층 지하 7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끊임없이 욕망의 탑을 쌓아간다. 거대한 성을 건설하기 위해 모여든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투자자금을 걸고 화려한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이제 곧 '파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낭가파르바트의 빙벽을 닮았어. 아니, 그것보다 더 비슷한 게 있는데….(p.54)

<싱크홀>은 천재지변으로 감쪽같이 사라진 초고층 빌딩에 갇힌 무고한 생명의 구출작전이 인상적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선사한 배부름에 만족하지 못한 탐욕에 찌든 인간의 초라한 최후를 경고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짜릿한 신선함'을 느끼지 못했다. 책표지에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재난소설'이라는 문구가 차라리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걸까? 이야기가 전개되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산악인'의 존재는 이미 전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싱크홀이 무엇인가?

 

지하의 암석이 붕괴되거나 지반이 약해져 땅이 꺼지는 현상을 '싱크홀'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123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가 나온다. 오픈식을 화려하게 치르고 자정이 될 무렵까지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카만 허공 속으로 떨어지는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영원히 깊은 땅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누가 믿을까? 인간의 마지막 순간은 오직 신만이 알리. 입구는 펀치로 종이뭉치를 뚫을 듯 정확한 원 모양이었다. 구멍 안은 무척이나 넓고 깊어서 지구의 입처럼 보였다. 그 구멍이 시저스 타워를 삼켰다. 야간 축하 행사가 끝나고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싱크홀의 아가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깊은 땅속에 매몰된 사람들은 붕괴된 건물의 잔해 깔려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극한의 위기에 처하면 인간이 지닌 본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싱크홀>이다. 사건의 발단은 인간의 무리한 욕심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소재는 참신하고 좋았는데,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책을 향한 나의 판단력을 분산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어떤 책을 읽더라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싱크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책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개입되어서 독창적인 핵심을 추려내기가 애매했다. 무너져 내린 시저스 타워가 암시하는 두 가지 측면, 인간의 욕망과 사랑인가?

 

 





 

땅으로 사라진 빌딩 속에 난데없이 '살인마'가 등장해서 무고한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작가는 무언가 독자로 하여금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최후를 씁쓸하게 느낄 수 있게끔 살인적인 광기를 삽입했을까. 개인적으로 마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었고 굳이 '살인마'라는 요소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내가 생각하기로' <싱크홀>이라는 책이 마음껏 펼쳐내야 했던 핵심은 '땅으로 꺼져버린 시저스 타워'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을 심도있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산악인의 비애, 부와 명성을 누리는 축복,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작은 희망, 가족의 기능이 상실된 한부모 자녀의 심리적 갈등, 어머니와 아들의 애착, 애정결핍, 남녀의 삼각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가 개입되어서 '싱크홀'이 남기고 떠난 '숙제'가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

 

끝으로 <싱크홀>의 가상공간에서 나름 발견한 게 있다면, '인간의 정신' 지닌 강인한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재난소설은 항상 암시적이다. 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칠레 화산폭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직도 자연을 마음껏 활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이치에 어긋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부실한 몸뚱어리는 뒤로한 채 외적인 부분만 뜯어내고, 깎아내고, 잘라내고 흡입하는 시술을 향한 욕망은 버려야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초고층 빌딩 '시저스 타워'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기회가 되면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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