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행한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 강연에서 정치인의 윤리를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나누었다.
*신념 윤리는 *행위의 동기와 *의도를 중시하는 *윤리인 반면, *책임 윤리는 *행위의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윤리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도는 올바르게 행할 뿐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긴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게 ‘신념 윤리’이지만, *정치는 *종교가 아니며 따라서 *자기 행위의 *예측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책임 윤리’다.
*순수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가 나쁠 경우, 생디칼리스트는 그렇게 된 *책임을 행위자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 또는 그 사람들을 그렇게 창조한 *신神의 의지에 돌립니다.
이에 반해 *책임 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인간의 바로 저 **평균적인 결점을 고려하며, 또한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던 한에서는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결과가 된 것은 *나의 행위의 탓’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슐루히터는 "신념 윤리는 특히 강제력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에서는 선善에서 악惡이 생겨날 수 있으며 또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신념 윤리는 특수한 의미에서 현실에 대해 눈이 멀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지향하는 *신념 윤리적 행동은 *분극화分極化한다.
즉 그 행동은 *정치적 추종자를 **사도使徒로 만들며 *정치적 반대자를 *적敵으로 만든다."
사회학자 김덕영은 앞서 거론한 미헬스를 ‘신념 윤리가’, 베버를 ‘책임 윤리가’로 보면서 두 사람을 대비시킨다.
그는 "왜 전형적인 *시민계층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소유자인 베버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회주의자, 그것도 급진적인 생디칼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인 미헬스와 그토록 친밀하고 강도 높은 관계를 유지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런 답을 제시한다.
"베버는 미헬스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결여된 **타자他者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신념 윤리적 타자 말이다."
슐루히터가 잘 지적했듯이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그 어떤 정치가도 *책임 윤리적 신념이 제아무리 *선명하다 하더라도 *‘선동’ 없이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정치가 *지적 훈련과 *감정의 억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는 여전히 **‘당파성, 투쟁, 정열’이다."
사실 *감정과 정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책임 윤리를 높이 평가하지 않거나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영국 수상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1883~1967는 "정치가는 그가 성취한 것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가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던가에 의해서도 판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일할 때의 상황 조건, 즉 상황이 그에게 허락하는 가능성의 정도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1년 4월 17일 감행한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좋은 예다. 이는 대실패로 돌아간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케네디가 다음 날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자 케네디의 지지율이 수일 만에 72퍼센트에서 83퍼센트로 뛰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케네디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이 결과에 깜짝 놀랐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론조사 전문가인 조지 갤럽George H. Gallup, 1901~1984은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목표가 무엇이며 *무엇을 하려고 *애썼는가에 의해 *어떤 사람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꼭 그 사람이 *무엇을 성취하고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의해 *평가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뇌과학자 *조나스 캐플런Jonas Kaplan은 "*정치적 신념은 *비정치적 신념보다 *훨씬 바뀌기 어렵다"고 했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김명언은 "*신념이 공격받았을 때 *인간은 **전 재산을 잃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책임 윤리’ 없는 ‘신념 윤리’만 판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인간 됨됨이가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 정치가 피타쿠스)
"*거의 모든 사람이 *역경을 견뎌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보라."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사실 그런 정도의 변화야 얼마든지 애교로도 봐줄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권력으로 인해 아예 *뇌腦가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권력 추구를 본업으로 삼는 정치인들이 그러는 거야 익숙했던 모습인지라 크게 놀랄 게 없지만, *특정 권력 진영에 속하는 *지식인과 보통 사람들까지 그렇게 확 달라지는 건 다른 문제다.
*독선과 오만은 기본이고, 이른바 *‘내로남불’의 화신으로 변해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과 비난, 아니 악다구니를 써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새삼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마저 갖게 된다.
*대화를 위해선 **‘추상의 세계’가 필요하다.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가 잘 지적했듯이, "*갈등이 더욱 깊어질수록 이 갈등의 **뿌리에 관한 *분명하고 *정리된 견해를 얻기 위해 **추상의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늘 싸움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잘 알겠지만, **피상적 수준에서 *아무리 공방을 벌여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 이유의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더 낫다." (이탈리아 정치가이자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중에서
*권력을 쉬지 않고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이런 *권력 욕구는 오직 *죽어서만 멈춘다."13 (영국 사상가 토머스 홉스)
미국 철학자 윌 듀랜트Will Durant, 1885~1981는 니체의 사상에 대해 논하면서 "*권력을 향한 *열망 앞에서는 *이성도 *도덕도 *무력하다. *이성과 도덕은 *이 열망의 손아귀에 든 *무기이고, 이 *열망의 *꼭두각시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우리들의 *욕망의 반영이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것은 *이런 잠재적 욕망, *권력에의 의지의 이런 맥박이다. 사실 *의식의 역할은 너무나 *과대평가되어왔다.
*우리들의 활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이 *미력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의식적 사고가 *가장 미약한 사고이다."
우리는 권력욕이라고 하면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우리가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어떤 사회적 행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권력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 1892~1971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에서 "*개인이 *대의大義나 공동체에 *헌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때조차도 **권력에의 의지는 여전히 갖고 있다"고 했다.
미국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Randall Collins는 『사회적 삶의 에너지』(2004)에서 아예 ‘*이타적 권력’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타적 지도자는 설명하기가 쉽다. *관심과 *숭배의 *중심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추종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엄청난 **정서적 에너지를 얻는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신념에 *중독되면 우리의 *사고방식은 **왜곡되어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고 *괴롭힘으로써 *도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신념 중독자는 "나는 *나의 신념이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의 *머리에서, 가슴에서, 영혼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이들이 *나처럼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틀렸기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니체, 니부어, 러셀, 콜린스의 말은 누구나 다 명심해야 할 금언이지만, "*나는 *예외다"는 생각이 권력의 그런 속성을 외면하게 만든다.
*특히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런 착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방식이 어떠하건 *권력욕 또는 *권력 의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깨닫는 성찰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스로 착하다고 자부해서 벌어지는 권력의 오·남용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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