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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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노래했으니 겨울에는 춤이나 추렴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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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의 *인본주의적 **낙관주의를 단호하게 *부정하며, *인류의 상황은 *신의 자비가 없으면 *절망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 P68

*바벨탑 이야기는, 그들이 문명의 중심지이며 그것의 사원탑은 *하늘의 문이라는 바벨론의 주장에 대한 *풍자다.

그러나 바벨은 하늘의 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어리석음을 의미했다. 그것의 사원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기는커녕, 그 사원탑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와야만 할 정도로 *낮은 것이다. - P68

*창세기 1-11장은 *자연적, *초자연적 세계에 대하여 *고대 세계에 *통용되는 *개념들에 관한 하나의 *주석서-종종 고도로 비평적인-이다.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신들과 사람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들 중 많은 것에 대한 *반론인 것처럼 보인다. - P67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결코 읽은 적이 없지만, 그것에 관하여 *모종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이러한 *전승들은 *고대 근동에서 *그 시대 *지식의 *일부분이었다. - P67

*창세기는 그것의 이웃들과 *원시 역사의 *공통적인 윤곽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점에서 *현대의 문화와도 일치한다.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데에 *일치한다.

즉 어떤 한 하나님 혹은 여러 신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인격적이며 생각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교통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인간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창세기는 사람이 *물질 이상의 존재라는 - 영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 동양의 신학에 동감한다.

애굽의 문헌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빛과 어둠, 땅과 바다 사이를 분리하는 행위로서의 창조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는 모두 근동 신학에서 평행을 발견할 수 있다. - P67

*그러나 *성경적 사고와 *비성경적 사고 사이의 *유사성은 그 **차이점으로 인해서 *무색해진다.

에리두 창세기는 존재에 관하여 시종 긍정적이며 낭만적인 견해를 취한다.

성경 기사는 그것과 다른 길을 걷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완전한 것으로 *시작되나, 그 후 그것들은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새롭고 더 나은 종족을 낳게 될 경건한 노아를 제외한 모든 인류를 전멸시키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사람의 *죄악됨을 통하여 *끊임없이 *악화되어 간다.

여기에 도입된 *도덕적 심판과 뒤따르는 비관적인 견해는 수메르 이야기의 취지와 *상이하다. - P68

*바벨론인들과 가나안인들은 *신들이 *여자들과 *성적인 결합을 맺는 것으로 생각되는 *풍요의 의식인 *제의적 매음과 거룩한 결혼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들은 *토양의 비옥함을 보장해 줌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촉진시킨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창세기 6:1-8은 그러한 *관습들을 절대적인 *공포로 바라본다. *그러한 관습들은 인류의 번영을 촉진하는 대신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과 방주로 데리고들어간 동물들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전멸시킨 홍수를 보내도록 *촉진했다.

*홍수에 관한 메소포타미아 기사들은 성경과 동양 문학 사이에 가장 밀접한 평행 중의 일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또한 인간의 세계와 신적 세계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상이하게 묘사한다.

*메소포타미아 기사들은 *홍수가 *사람들의 소란과 *땅의 과잉 인구에 *화가 난 *신들에 의해서 보내졌다고 말한다.

*바벨론의 "노아"는 우연히 홍수를 보내는 일을 지지하지 않은 신을 *경배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홍수가 시작되자 그것은 *신들의 통제를 벗어났으며 신들은 홍수에 의해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 *엔릴(Enlil)이 희생 제사에 나타나서 "노아"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발견하고 놀란다. 창세기가 실질적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관련된 인물들의 모습을 매우 상이하게 서술한다.

거기에는 *전지전능하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홍수는 그분의 *명령에 의해서 보내진 것이며 *전적으로 그의 *통제하에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변덕스러운 *성질 때문에 인류를 *파멸시키고 그들의 "노아"는 *운이 좋아서 의로운 신을 경배했지만, *창세기는 사람의 *사악함이 홍수의 *원인이 되었으며, 노아는 *의로웠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선포한다.

마지막으로 홍수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인구 증가를 제한하기 위한 수단을 찾았던 반면에, 야웨께서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장려하신다. 아담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9:1, 7: 참조. 1:28). - P69

창세기 1-3장은 유사한 방법으로 고대 세계에 통용되고 있던 개념들을 채택하여 그것들을 주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의 다른 모든곳에서 통용되는 *다신론에 대하여 *하나님의 *단일성을 확언한다.

특히 *해, 달, 별들 그리고 바다 괴물들 - 이방인 신화에 따르면 강력한 *신들은 *단지 *피조물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1은 *물질은 *영원한 것이며 *창조는 바로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다시 *배열하는 것이라는 그 *시대에 널리 수용되고 있던 견해에 반대하여 *물질의 피조를 확언한다. - P68

동양 신화에 따르면 사람은 신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뒤늦게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은 아주 반대되는 서술을 한다.

사람은 *창조의 정점이며, 살마이 신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대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한 바벨론 전승에 따르면 매달 일곱 번째, 열네 번째, 아홉 번째, 스물한 번째 그리고 스물여럽 번째 날은 불긴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창세기는 매주 일곱 번째 날-하나님에게 바쳐진 안식일-을 거룩하다고 선포한다. - P70

*창세기 1-11장은 *다신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유일하심, *변덕스러움보다는 그 분의 정의, *무능과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그분의 능력, 착취보다는 인류에 대한 관심을 확언한다. - P70

그리고 메소포타미아가 처음 사람의 지혜에 집착하고 있는 반면에, 창세기에 그의 죄악된 불순종을 보도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신학으로 이러한 사항들을 추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종종 창세기 1-11장 메시지의 두드러진 독창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중요성이 *적은 *부수적인 사항들에 집착한다.

그러나 나는 창세기 자체 내에서 창세기 1-11장의 보다 넓은 맥락과, 그것의 구조를 검토하는 것이 서언을 이루는 장들에 나타난 이러한 주제들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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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독특한 생물이다. 인간은 동물들 사이에서 구별되는 일련의 특이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풍경 속의 한 형상이 아니라 풍경을 형성하는 주체이다."

인간만이 주변 환경에 갇히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은 상상력과 이성, 정서적 예민성과 강인함을 가지고 동물과는 달리 환경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것이다. - <위대한 과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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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말로는 진실을 그 무엇보다 숭상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 - P9

사회생활을 해나가려면 이른바 ‘하얀 거짓말 whtie lie’이라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늘 해야 한다.

또 정치인, 언론, 기업 등등이 허구한 날 우리를 살살 속이려 드는데, 문제는 그게 다 *통한다는 것이다. - P16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를 선정했다.

*정치인들의 왜곡과 눈속임과 거짓말은 점점 더 *무책임해지는 듯하다.

*대중은 이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질렸다라는 주장마저 나온다.

*SNS는 *허위 정보의 *각축장이 되어 이제는 누가 *사람이고 누가 *자동 프로그램인지도 분간하지 어려워졌다. - P16

*트럼프 대통령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취임 이래 869일 동안 "*거짓이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을" *10,796건 했다고 한다. - P16

누구나 근거 없는 *루머를 *남에게 전해본 적 있고,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공유 버튼이나 *리트윗 버튼을 클릭해본 적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개인적 편향에 뭔가 잘 맞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 P18

*고장 난 스프링클러처럼 거짓말을 사방에 뿌려대는 정치인

모든 건 그냥 참 아니면 거짓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그 둘을 구분하기도 쉽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건 그리 간단치 않다.

유사 이래 진실과 거짓의 본질을 파헤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핵심적인 원리를 거듭 발견했다.

우리가 *옳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틀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는 것이다. - P25

"*진실은 *아버지를 *하나만 두었으나 *거짓말은 수천 명의 사내가 낳는 사생아로서 여기저기 곳곳에서 태어난다"라고 1606년 엘리자베스 시대의 작가 토머스 데커는 한탄한 바 있다. - P26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내가 *믿는 바를 *말하지 않았고,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믿지도 않았다. 그리고 간혼 *진실을 말할 때도 *수많은 *거짓말 속에 숨겨 남들이 찾기 어렵게 만든다"

마키아벨리1521

유럽에서는 몸이 이상하게 가벼워 보이면 마녀로 판결받기 딱 좋았는데, 인도에서는 가벼우면 결백하다고 보았으니까.

그러니 인도식 재판은 재판받는 도중에 오줌을 지리면 뜻밖에도 유리하다는 묘한 결론이 나온다.

서기 395년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여 가장 나쁜 것부터 순서대로 열거했다.

즉, *종교적 가르침에 관한 거짓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거짓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거짓말,
거짓말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거짓말,
*대화를 원활히 하기 위해 남의 *기분에 맞춰 하는 거짓말,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물질적 도움이 되는 거짓말,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정신적 도움이 되는 거짓말,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누가가를 ‘몸의 더렵혀짐’으로부터 지켜주는 거짓말이다. - P28

독자도 잘 몰랐을 만한 나름의 미묘한 *분류 체계가 있다.

일단 *하얀 거짓말은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치고받으며 싸우지 않고 서로 잘 지내기 위해서 하는 *무해한 거짓말이다. - P28

*노란 거짓말은 부끄럽거나 칭피하거나 겁이 나서, 다시 말해 결점을 감추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다.

*파란 거짓말은 그 반대로 *겸손한 마음에서 잘한 것도 못했다고 하는 거짓말이다.

*빨간 거짓말은 아마 가장 흥미로운 유형일 것이다.

*기만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거짓말이다. *화자도 자기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청자도 화자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화자도 청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다.

"*거짓말이 지구 반 바퀴를 돌 동안 *진실은 아직 *신발끈을 매고 있다"

진실의 반대가 취할 수 있는 수십만 가지 모습 중에서 *거짓말은 사실 딱 한 종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종류로는 우선 *여론몰이라는 게 있다. 정치인들의 기만 술책 중 하나다.

여론몰이의 교모한 점은 꼭 거짓마을 하지 않고도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몰이 기술의 정점은 진실만 말하면서도 완전히 거짓된 주장을 펴는 것이다. - P30

그다음으로는 *‘망상‘이라는 게 있다.

*틀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철석같이 *믿는 능력으로, 그 형태는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집단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대세에 *굴종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아마도 가장 *만연하게 퍼져 있고 피해도 가장 큰 형태가 되겠는데, *‘개소리‘라는 게 있다.

개소리에 대해서는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가 탁월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역작을 통해 그 복잡한 주제를 진지하게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렇다. 해리 프랭크퍼트는 철학자라는 직업을 엄청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핵심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짓말과 *개소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거짓말이란 *진실이 무엇인지 *본인이 *안다고 *확신해야만 할 수 있다. *개소리는 그런 *확신이 전혀 *필요치 않다."

다시 말해, *거짓말쟁이는 *진실에 아주 관심이 많다. 항해사가 빙산에 관심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용의주도하고 정밀하게 회피할 수 있다.

반면 *개소리꾼에겐 *진실이 하나도 *중요치 않다. *맞든 틀리든 *상관없다. *개소리는 가끔 뭔가가 *우연히 *맞더라도 그건 일종의 보너스다.

*개소리로 창조한 세상이 실제 세상과 살짝 좀 겹치면 어떤가. *본인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건 없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자칫 *불리한 사실을 *실수로라도 인정하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앞뒤가 안 맞는 *허황된 *개소리가 꿋꿋이 살아남을 수있는 이유는.....… *듣는 순간에는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랭크 퍼트는 "*진실에 관한 *무관심이야말로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P31

*거짓말이 날카로운 메스라면 *개소리는 무지막지한 *불도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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