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의 *인본주의적 **낙관주의를 단호하게 *부정하며, *인류의 상황은 *신의 자비가 없으면 *절망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 P68
*바벨탑 이야기는, 그들이 문명의 중심지이며 그것의 사원탑은 *하늘의 문이라는 바벨론의 주장에 대한 *풍자다.
그러나 바벨은 하늘의 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어리석음을 의미했다. 그것의 사원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기는커녕, 그 사원탑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와야만 할 정도로 *낮은 것이다. - P68
*창세기 1-11장은 *자연적, *초자연적 세계에 대하여 *고대 세계에 *통용되는 *개념들에 관한 하나의 *주석서-종종 고도로 비평적인-이다.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신들과 사람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들 중 많은 것에 대한 *반론인 것처럼 보인다. - P67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결코 읽은 적이 없지만, 그것에 관하여 *모종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이러한 *전승들은 *고대 근동에서 *그 시대 *지식의 *일부분이었다. - P67
*창세기는 그것의 이웃들과 *원시 역사의 *공통적인 윤곽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점에서 *현대의 문화와도 일치한다.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데에 *일치한다.
즉 어떤 한 하나님 혹은 여러 신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인격적이며 생각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교통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인간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창세기는 사람이 *물질 이상의 존재라는 - 영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 동양의 신학에 동감한다.
애굽의 문헌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빛과 어둠, 땅과 바다 사이를 분리하는 행위로서의 창조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는 모두 근동 신학에서 평행을 발견할 수 있다. - P67
*그러나 *성경적 사고와 *비성경적 사고 사이의 *유사성은 그 **차이점으로 인해서 *무색해진다.
에리두 창세기는 존재에 관하여 시종 긍정적이며 낭만적인 견해를 취한다.
성경 기사는 그것과 다른 길을 걷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완전한 것으로 *시작되나, 그 후 그것들은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새롭고 더 나은 종족을 낳게 될 경건한 노아를 제외한 모든 인류를 전멸시키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사람의 *죄악됨을 통하여 *끊임없이 *악화되어 간다.
여기에 도입된 *도덕적 심판과 뒤따르는 비관적인 견해는 수메르 이야기의 취지와 *상이하다. - P68
*바벨론인들과 가나안인들은 *신들이 *여자들과 *성적인 결합을 맺는 것으로 생각되는 *풍요의 의식인 *제의적 매음과 거룩한 결혼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들은 *토양의 비옥함을 보장해 줌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촉진시킨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창세기 6:1-8은 그러한 *관습들을 절대적인 *공포로 바라본다. *그러한 관습들은 인류의 번영을 촉진하는 대신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과 방주로 데리고들어간 동물들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전멸시킨 홍수를 보내도록 *촉진했다.
*홍수에 관한 메소포타미아 기사들은 성경과 동양 문학 사이에 가장 밀접한 평행 중의 일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또한 인간의 세계와 신적 세계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상이하게 묘사한다.
*메소포타미아 기사들은 *홍수가 *사람들의 소란과 *땅의 과잉 인구에 *화가 난 *신들에 의해서 보내졌다고 말한다.
*바벨론의 "노아"는 우연히 홍수를 보내는 일을 지지하지 않은 신을 *경배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홍수가 시작되자 그것은 *신들의 통제를 벗어났으며 신들은 홍수에 의해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 *엔릴(Enlil)이 희생 제사에 나타나서 "노아"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발견하고 놀란다. 창세기가 실질적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관련된 인물들의 모습을 매우 상이하게 서술한다.
거기에는 *전지전능하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홍수는 그분의 *명령에 의해서 보내진 것이며 *전적으로 그의 *통제하에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변덕스러운 *성질 때문에 인류를 *파멸시키고 그들의 "노아"는 *운이 좋아서 의로운 신을 경배했지만, *창세기는 사람의 *사악함이 홍수의 *원인이 되었으며, 노아는 *의로웠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선포한다.
마지막으로 홍수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인구 증가를 제한하기 위한 수단을 찾았던 반면에, 야웨께서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장려하신다. 아담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9:1, 7: 참조. 1:28). - P69
창세기 1-3장은 유사한 방법으로 고대 세계에 통용되고 있던 개념들을 채택하여 그것들을 주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의 다른 모든곳에서 통용되는 *다신론에 대하여 *하나님의 *단일성을 확언한다.
특히 *해, 달, 별들 그리고 바다 괴물들 - 이방인 신화에 따르면 강력한 *신들은 *단지 *피조물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1은 *물질은 *영원한 것이며 *창조는 바로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다시 *배열하는 것이라는 그 *시대에 널리 수용되고 있던 견해에 반대하여 *물질의 피조를 확언한다. - P68
동양 신화에 따르면 사람은 신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뒤늦게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은 아주 반대되는 서술을 한다.
사람은 *창조의 정점이며, 살마이 신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대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한 바벨론 전승에 따르면 매달 일곱 번째, 열네 번째, 아홉 번째, 스물한 번째 그리고 스물여럽 번째 날은 불긴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창세기는 매주 일곱 번째 날-하나님에게 바쳐진 안식일-을 거룩하다고 선포한다. - P70
*창세기 1-11장은 *다신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유일하심, *변덕스러움보다는 그 분의 정의, *무능과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그분의 능력, 착취보다는 인류에 대한 관심을 확언한다. - P70
그리고 메소포타미아가 처음 사람의 지혜에 집착하고 있는 반면에, 창세기에 그의 죄악된 불순종을 보도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신학으로 이러한 사항들을 추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종종 창세기 1-11장 메시지의 두드러진 독창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중요성이 *적은 *부수적인 사항들에 집착한다.
그러나 나는 창세기 자체 내에서 창세기 1-11장의 보다 넓은 맥락과, 그것의 구조를 검토하는 것이 서언을 이루는 장들에 나타난 이러한 주제들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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