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무덤 앞에 서서 다시 존재와 무를 생각한다. 너는 가고 없지만 너의 추억은 가득히 충만해 있다. 너는 무(無)가 된 것이 아니고 부재(不在)중인 것이다.
네가 사랑하던 발레리의 ‘풍부한 부재를 이즈음처럼 절감한 때는 없다. 이 비탄과 유폐의 계절 속에서도 풍부한 부재는 얼마큼의 위안을 주는 것이다.
너는 비면 위에 황홀하게 비치고 간 햇빛의 일순이었고 그 아름다움은 사라져도 아름다움의 추억은 남았다.
너 까닭에 이 괴로움, 이 아픔을 갖지만 너는 태어나야 했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슬픔과 아픔도 남겨야 했다.
그것은 섭리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신의 섭리에 간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무숙 작가가 스물 일곱 살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쓴 ‘우리 사이 모든 것이‘란 소설의 한 구절이다.
한무숙, 박경리, 박완서 세 작가의 참척을 하나의 키워드로 해 자료를 찾다가 접한 내용이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높은 수준의 인식이 수렴된 명문장이다.
오늘 이산하 시인의 페북에서 박경리, 박완서 두 분께서 타계 직전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묵계라도 한 듯 하셨다는 글을 읽었다.
한무숙 작가는 어땠을까? 궁금하다. 자료를 찾아내는 재미를 누리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