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나온 한글 소설 한 편을 골라 줄거리를 소개하고 당대 한글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를 짚는 과정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에 담긴 의미를 궁구(窮究)하고 있다. 지난 해 문화 해설사 전문가 과정 수업 중 세종의 한글 창제의 동기를 묻는 원장님께 표면적 의미와 숨은 동기로 나누어 설명해야 하는지 물었다.

 

원장님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시며 세종의 한글 창제의 동기는 애민(愛民)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나는 한글은 유불(儒彿) 싸움의 진흙탕 속에서 불()이 살아남아 남긴 우리 글자라 할 수 있다는 정찬주 작가의 천강에 비친 달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은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에서 "우리말 불교 책을 펴내는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언해(諺解) 불전(佛典)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물려는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언해는 조선 시대에 한문으로 적힌 문장을 다시 한글로 풀어 쓴 것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적힌 책을 뜻한다. 경복궁 함원전(含元殿)에서 불교 행사를 하는 등 불교에 친화적이었던 세종은 승(: 남자 승려)과 니(: 여자 승려)를 도태시키라는 의미의 태승니(汰僧尼) 원칙을 어긴 임금이었다.

 

태승니는 태조 즉위 다음 날 사헌부에서 올린 '하늘의 뜻에 응해 혁명하여 보위에 올라 꼭 해야 할 일 ' 열 가지 중 한 항목이다. 애민(愛民)과 지배층 견제(牽制)를 양자 택일의 항목으로 볼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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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9-0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글 창제는 분석 정신의 쾌거였죠. 당시의 봉건적 사고 방식, 동양적 두루뭉술주의, 여백과 조화 중시 동양철학적 세계관에선 결코 나오기 힘들었던 원자론적·논리적·과학적·자연주의[naturalism, 동양의 자연(친화)주의하고는 다른 개념]적 시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570여년 전의 조선 세종대왕보다 훨씬 후진적인 사고방식 속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는 겁니다. 사람의 말소리를 초성(첫소리) · 중성(가운뎃소리) · 종성(끝소리)으로 세분해서 분석한 것은 세계 언어학 역사를 통틀어서 경이적인 발견이라고 하죠. 그 밖에 한글 · 한국어와 관련된 세종대왕의 언어학적 · 과학적 업적은 모두 알다시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그런 업적의 원천이었던 세종대왕의 분석 정신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건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미스터리)라고 봅니다. 이런 시각에서 세종대왕의 정신, 사상, 철학, 과학의 기원과 천재성의 면모를 연구하고 파헤친 책이 있는지(나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처음 댓글 올린 시각 : 2017-09-01 20:17]
[탈자 오류 고쳐 다시 올린 시각 : 2017-09-01 22:33]

벤투의스케치북 2017-09-01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마 히데키가 이런 말을 했지요. ˝한글이라는 문자는 음의 세계에 있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나타내는 자모를 문자의 세계에서 조합하는 것이다.˝

히데키는 음이 문자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이라고 한글을 표현했습니다. 한글은 다른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언어이고요.. 물론 알파벳도 다른 언어를 표기할 수 있지만 정교함면에서 한글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입니다.

언어는 우리 것이지만 문자는 한자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글을 만들어낸 것은 불편함 해소 차원이지만 그 이전에 치밀하고 정교한 분석의 승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고 방식이 세종대왕보다 후진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말씀대로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한 체계적이고 새로운 연구와 저술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길고 상세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qualia 2017-09-01 23:03   좋아요 1 | URL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는 벤투의스케치북 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1443~1446쯤의 세종대왕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그 까마득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까요? 과학기술이 무한 발전하면 고색창연한 옛 시절의 분위기, 풍경, 풍습, 생활 방식, 말투, 문화·경제·정치 체제 등등을 완벽하게 재현해서 현재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는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한 50년쯤 뒤에는 말이죠. 그러니까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현실 말고 실제 3차원 공간에서 벌어지는 실감현실(?) 같은 것 말이죠.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옛날의 참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할 수밖에 없죠. 정말 1443~1446쯤의 진짜 정감 있는 세종대왕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 ㅎ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17-09-01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늘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하고 상투적인 것을 싫어하기에 생각거리를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성과는 미약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참 안타깝습니다. 세종 시대에 대한 애정이 우리에게 없을 수 없는 시대상황이지요. 좋은 생각 거리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의 마무리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