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재발견 - 자기진화를 위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김우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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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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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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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난 이 책의 출간되기전 '황혼의 백합의 뼈'로 불리울 때가 훨씬 와닿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황혼녁 백합의 뼈'로 출간되었다. 같은 단어이겠거니 하고 무심하게 받아본 책이 내가 처음 알던 제목과는 어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조금 아연했다. 하지만 앞쪽이 가제에 가깝게 떠돌았으니 큰 불만은 가지지않기로 했다. '백합장'  , '마녀의 집'으로 불리는 곳에 리세가 등장했다. 이야기는 역시 장소와 장치적인 힘에서 부터 출발한다.

앞서 읽었던 '보리의 바다에서 가라앉은 열매'의 히로인 리세의 고등학교 성장과정에 시기가 걸쳐져 있는데, 역시나 '보리의' 학교만큼은 아니여도 무시무시한 비밀을 가진 무대가, 긴장감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 그 무대에 들어간다면 신경쇠약으로 사건이 터지기도 전에 죽을만큼의 선명하고도 서늘한 마력을 가진 장소적인 장치가 여지없이 리세를 압박해온다.

온다 리쿠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폐쇄적이고(물론 '보리의' 학교만큼은 아니겠지만 사건이 해결되기전까지 나갈 수 없다는 룰은 변함이 없다) 강력한 제재력을 지닌 '장소'라는 장치는 온다 리쿠, 그 자신에게도 과거에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존재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꾸준히 들었는데, 매번 다양한 의도와 형태로 변하긴 하지만 이 흐트러짐없이 강박적인 무대는 대개의 공포문학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말하자면 구舊와 신新, 양면의 매력을 갖고 있다.

또 먼저 밝혀 둬야 할 감상이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온다 리쿠의 소설의 주제는 근본적인 인간의 선악이 아닌 조잘거리는 이야기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서 존재했던 선악이 어느정도 패턴화가 되어있는 점도 그렇거니와, 온다 리쿠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악들 역시 작가의 개인적인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의 악인에 대한 비아냥거림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 온다 리쿠만의 선악의 패턴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온다 리쿠와 미미여사는 비슷한 장르의 작가라고 묶어 생각하게 되지만, 근본적으로 출발하는 심리적 장르가 완전히 다르다. 미미여사의 경우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로써 꾸며낸다면 온다 리쿠쪽은 '이야기' 쪽이 주인이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인간'을 잘 뒤섞어 꾸며낸 작품이랄까?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가 '황혼의' 리뷰로 돌아가자면)

대개의 수수께끼적이고 살인이 끝나거나, 살인범이 밝혀지기까지 완벽한 폐쇄형을 이루는 공포문학의 장소적 성향도 갖추고 있지만, 역시 온다 리쿠의 진정한 매력은 끊임없이 그리워할 추억의 재료, 노스탤지어적인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는 장소를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백합장' 역시 그런 노스탤지어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끝없는 긴장감과 팽배한 박진감,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한 장소적인 장치이다.

공포 스릴러 라고 하기엔 히로인의 스릴러는 아주 미약하지만, '리세'는 역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캐릭터임이 분명하고, 작가역시 의도한 바가 아닐까 한다. 똑똑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여자,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건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감시할 수 밖에 없는 여자, 영화처럼 위험에 닥쳤을 때 혼자서 싸워이겨내지 못하고 도움을 받는 약하고 무능한 여자, 확실히 리세는 스릴러 장르에는 약한 히로인이지만, 온다 리쿠 특유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적 공포를 잘 끌어내주는 캐릭터이다.

임팩트한 행동이 없어서일까, 온다 리쿠가 심어주는 리세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마치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모두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소름끼치는 애증을 동시에 받고있으며 그래서 인지 '리세'시리즈는 꽤나 어둡고 몽롱하며 복잡한 면이있다. 복잡함을 다시 말하자면 조금 산만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할머니의 죽음' , ' 백합장의 숨겨진 미스테리' , ' 리세와 함께 생활하는 중년의 두 자매의 수상함' 뒤 이어지는 사건들이 복잡하게 얼키어 '백합장'에 관한 미스테리를 더욱 증폭 시키고 있다.

보통의 공포추리물은 어느 정도 공평하게 추리의 재료를 독자에게도 분할에 주는 반면(고백하자면 아직 그 재료로 한번도 제대로 범인을 맞춰본 적이 없긴하다) '리세'의 이야기들은 모든 열쇠가 그 등장인물들에게 쥐어져 있고, 거기에는 어떤 권력의 힘마저 느껴져서 읽다 보면 어느새 추리하거나 결과를 예상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이야기 자체에 심취하여 전혀 새로운 결말을 즐기게 된다.

마치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니고, 이 책이 내게 읽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로 하여금 자신을 읽게만드는 계략과 마력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라 책장을 덮는 끝에는 몸이 으스스스 떨리고 만다고 할까, 그 것이 온다 리쿠의 이야기적 재능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음침하고 통렬한 새로운 미스테리를 접한 그 이상으로 온다 리쿠의 또하나의 기록되어지는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기억, 노스탤지어를 간직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어째서 난 도코노시리즈보다 리세시리즈가 더욱 끌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궁금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온다 리쿠가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녀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을 예감한다. 온다 리쿠의 또다른 '리세 예찬'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나처럼 '보리의' 레이지가 살아있어서 함께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아마 책의 끝자락을 읽을 때 쯤이면 이 이야기의 제목이 왜 '황혼의 백합의 뼈'인지를 다들 공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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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닝소녀
구로다 겐지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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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나 컨닝을 해보지않은 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당연스레 나도 그랬으려니 하는데 난 대단하게 컨닝을 해서 시험점수를 올려본 일이 없다. 컨닝페이퍼 또한 공부를 꽤나 잘하는 아이들의 수법이지 보통 쯤 되던 내 성적으로는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것 또한 거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컨닝에 대한 추억이라면 어떤게 있을까?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보면 우등생인 친구가 이번 시험만은 공부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워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컨닝을 하다가 감독선생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친구의 자존심이나 마음이 상할까 염려했었던 것인지 선생님은 모르고 눈 감아주었다며, 그 친구가 분통을 터뜨리듯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나에게 고백했던 일이 있었다.

우리에게 컨닝은 부끄러운 수작이였고, 들킬까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무사히 들키지않아 성적이 몇점 올랐다해도 죄책감에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하지만 구로다 겐지의 컨닝 소녀는 다르다. 컨닝을 아주 대놓고 당당히 저질러 버린다. 그리고 그 컨닝에는 언니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레이미의 의지와 그런 레이미를 도우려는 친구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레이미의 단짝이자 최고의 우등생이며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 아이카, 공학전문가이자 레이미의 소꿉친구 하야토, 레이미의 언니와 같은 육상부였던 모리오 이 셋은 레이미에게 협력해 갖가지의 화려한 컨닝수법들을 선보인다.

그 중에서는 우리가 미처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못할 첨단을 달리는 것도 있고, 익히 알고 있고 몇번을 써먹을만한 고전적이고 기발한 녀석들도 보인다. 이 책의 묘미는 이런 다수의 컨닝들이 등장할 때의 긴장감과 들키지는 않을까 과연 레이미가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같이 조마조마하고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심리전이 아닐까 싶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레이미의 언니 후미코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외의 장소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서 즉사, 트럭기사는 후미코표정이 굉장히 간절하고 다급해보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아할 때는 그저 사고사에 그쳤을만하지만, 우연히 레이미가 후미코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사고전날에 있었던 '비밀'에 관한 구절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언니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나 계략이 있다고 판단한 레이미는 어쩔 수 없이 언니가 다니던 하세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하세다 대학은 도쿄 대학과 맞먹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만 가는 곳으로, 레이미의 성적은 중상정도, 객관적으로 레이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내볼 수 없는 목표지만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은 바로 '컨닝'

레이미는 아이카의 우수한 지능, 하야토의 기계매니아적 재능, 모리오의 용기와 항상심 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이 점점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언가를 해내려는 자신의 모습에서 레이미는 아름다운 힘을, 살아가는 힘을 발견해내지 않았을까?

조금은 의외의 반전과 상큼한 결말이 멋진 '컨닝소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이내 마음이 훈훈하게 젖고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무겁지않아 깔끔하고, 복잡하지않아 담백한 이 소설은 별다른 지루함없이 긴장감있고 재밌게 읽혀서 좋았다. 무엇보다 반전과 결말이 고등학생이 나오는 소설답게 상쾌해서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다.

컨닝소녀라는 아주 심플한 책의 제목에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내 감흥을 더하여 과연 어떤 제목을 붙여야적당할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이 책의 모토는 이런 것이 아닐까?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의외로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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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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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에쿠니 가오리와 동명소설인데,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보다 4배이상 판매되고 작년 일본 서점 대상,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어하는 책 1위 라는 문구에 이끌려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에 손을 뻗히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이 날 얼마나 울릴 것인가 하는 노파심 반, 원체 눈물이 많은 내 눈물샘이 어쩐지 책을 읽고 실컷 울었던 적이 오래되서 나를 실컷 울게해줬으면 하는 바람 반, 그런게 반심반의하며 어느 순간부터 도쿄타워를 읽기 시작했다.

감히 이 책을 세부분으로 나눈다면 릴리 프랭키의 유아에서 소년기 1/3, 소년기에서 청년기 1/3 어머니와 도쿄에서 함께했던 날들이 1/3 정도로 내용과 비중을 나눌 수 있는데,

처음 그의 유아기를 담은 1/3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릴리 프랭키, 그의 입담에 반하고야 말았다.
소소하면서도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찾는 애틋한 향수의 감정적인 부분도 좋았고, 그가 한 보따리씩 풀어내는 그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들도,  양윤옥씨가 옮겨놓은 맛깔스러운 사투리도 정감이 갔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심은 바로 어머니, 마사야의 엄니였다.
언뜻보면 자식에게 헌신하며 자애로운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어머니의 상같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자라면서 끊임없이 마사야에게 자신의 존재의 당위성을 심어주는 이야기라던가, 마사야가 동물을 사랑해 집에 온갖 동물을 사육해도 그가 좋을대로 하게 둔다던가, 젓가락질은 엉망이여도 좋지만,  남의 집에서의 식사예절은 엄니만의 철저한 기준에서 훈계를 내린다던가, 아이들은 조금씩 치고박고, 엉켜 싸우도록  그런 일에는 무신경해준다던가, 마사야가 갖고싶어하는 물건, 먹고 입고, 몸에 닿는 것을 조금 사치스러운 엄니의 모습은,

마사야의 엄니, 에이코는 눈부시도록 개성있고 멋진 어머니였다.

그렇다고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가 마냥 어머니와의 사랑만을 담아내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인지는 글을 읽는 내내 음 이래서 였어 이래서 하고 되내이게 된다.

중반부, 마사야의 청년기에서는 누구나 그렇듯, 조금은 화가 나고 속상할게다.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생활까지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탕했던 것이다.
그 모습은 그의 아버지를 닮아 가족적인 애환인 듯도 했고, 어쩌면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을 가르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지금 내 일처럼 불안하고 초조하고 반성적인 기분으로 " 이 한심한 인간아!! " 하고 자조적으로 외치기도 한다.

결국 그 뒤로 끔찍한 백수생활을 5년여 한 끝에, 그는 조금씩 일을 늘리고, 어느 정도 사회란 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떨어져지내던 엄니와의 도쿄생활도 이쯤 시작된다. 엄니와 드라이브를 하며 맛있는 음식도 함께먹고, 마사야의 지인들과 엄니의 사이도 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이 생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얼마나 마음이 싸하고 덩달아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내, 어김 없이, 나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듯이, 울음보가 터졌다.

그 것을 비단 마사야의 엄니의 죽음이 슬프고 아파서가 아니였다.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있어왔던 일에 대한 두려움과 예고된 서글픔때문이다.

이제 마사야의 멋진 엄니는 없다. 그리고 그 마사야는 일본 대중문화에 없어서는 안될 매력적인 릴리 프랭키가 되어 엄니와 나, 때때로 아부지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잊지않기 위해 도쿄타워를 썼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판 인간 극장의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릴리 프랭키의 이 책을
불온한 가정이지만 어머니의 애정을 듬뿍받은 유년기를 보내고 이유없이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 나이가 들어 그 어머니를 보살피고, 한 사람 몫의 인간이 되었다라고 단순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엄니의 삶이, 마사야의 삶이, 마사야 주변에 있는 그 모든 이의 삶이 값지다.

어째서 그의 도쿄타워가 이토록 사람의 감흥을 뒤흔들어 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수필보다는 소설적 성향을 띄어서 인지, 일본과 한국사이의 문화적 차이인지, 현재의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는 특별하다. 그 것은 독특한 이력을 가직 작가 릴리 프랭키 때문이 아니라 그 릴리 프랭키가, 마사야가 빛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의 어머니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나와 내 어머니와 내 가족과 함께 더 행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흐르는 이 뜨거운 피를 잊지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행복해야한다. 그리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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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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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책을 덮었다.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이 떨릴정도로 고조된 기분인 한편 모든 것이 담담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머릿 속이 혼잡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마음이 뜨거운 것은 이 책을 읽는내내 느꼈던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이 책으로 말미암아 얻게된 감동에 대한 전율이 살아있듯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수만가지 이야기와 수만가지 트릭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며, 온다 리쿠의 미스테리하기까지 한 이야기의 재능을 감탄하기도 하고, 예기치못한 곳에서 작가자신의 군더더기없는 모습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최대한 이 책의 그로테스크함에 접근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자면, 각각의 개성이 남다른 단편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네가지의 단편이 여러가지의 소재와 이야기들로 끊임없이 엮어진 윤무라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 이즈모 야상곡,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회전 목마 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작가 온다리쿠는 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여러가지 시도와 장치를 해 두었다는 것 정도이다.(내 예상이 맞다면 말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책의 존재와 부재를 논하기도 하며 책 자체와 그 장치를 설명해주는 듯 독자를 상냥하게 감싸안으며 흥미진진한 미궁으로 떨어뜨려놓는다. 부끄럽게도 고백하자면, 두번째 장인 '이즈모 야상곡'을  제대로 읽기까지 2주라는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다가 '이즈모 야상곡'의 중반부에 이르자 오늘 저녁만에 끝을 보게 되었지만, 사실은 지금도 나는 이 책의 끝없는 윤무 속에 존재하는 기분이다. 이 윤무속에서는 한없이 시간이 더디게만 가여 이 더딘 시간 속에서 이 책을 한없이 음미하고만 있을 그런 달콤한 몽상, '삼월은' 바로 그런 이야기의 끝없는 허기와 풍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하나의 이야기에 실마리를 가지고 또 다른 이야기로 연결되는 구조에 애정을 품고 있어서 '삼월은'의 연장선상인 '흑과 다의 환상'과 '보리의 바다에서 가라앉은 열매'와 '황혼의 백합의 뼈'가 '삼월은'마냥 사랑스럽게 보인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겠지만 그 또다른 이름의 이야기에 끌릴 수 있게하는 장치자체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에 마법처럼 걸려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장르가 비교적 미스테리하지않고 순수해보이는 '밤의 피크닉'의 소설 전체의 구조와 맞아들어감을 느끼고 이 것이 작가가 추구하는 이야기이며, 온다 리쿠만이 풀어낼 수 이야기 임에 새삼 감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게 차려진 '온다 리쿠 이야기'라는 밥상을 맛보기만하는 나에게도 '나도 같이 해냈구나'라는 쾌감을 안겨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내가 느끼는 책을 읽은 후 쓰는 '독서감상문'과 온라인 상의 '리뷰'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고싶다. 그저 내가 어떠한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과 비판은 글의 요모조모를 찝어가며 맹렬하게 쓸 수 있는 반면, 일반 소모품의 리뷰를즐겨쓰는 나로서는 상품에 대한 사용감과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정보등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책의 리뷰는 상당히 어렵고 힘든 주제다.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이 감상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글과 책의 중요한 포인트과 결말을 언급하지않고서는 그 책에 대한 감상을 모두 표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난 개인적으로 이즈모 야상곡 편을 좋아한다. 내가 가상 이상적으로 여기는 결말임과 동시에 그 기묘한 담백함에 가슴이 뜨껍다.)

자주, 그리고 열심히는 아니지만, 나도 이야기를 좋아하며 때때로 지금처럼 책을 읽는다. 하지만 그 책을 사게되기까지의 경로와 그 책에 대한 정보수집에 있어서는 서투른 습관을 지향하게 된다. 사실 난 책을 살 때에는 그 책에 대한 리뷰를 꼼꼼하게 읽지않는다. 문장과 문단을 뛰어넘어 대강대강 어설프게 읽고 느낌이 좋다싶으면 아 그래 이번엔 이거다 하고 결정해버리게 된다. 그 것은 리뷰어들의 서평실력을 간과해서도 책을 아무렇게나 고르는 습관도 아닌 오로지 책을 발견해내어 읽을 때에는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 '무'에서 시작하고 싶기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에 호기심을 이끌릴만한 작은 문장이나 단어하나만으로 잔뜩 호기를 최대한 끌어올린 채 책을 펼쳐든다.

내가 책을 사기 전에 서평을 대강 뜯어보는 습관은 그런 이유에서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이라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읽으며 격렬하게 두근두근하고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미스테릭함에 설레이고 그 결말에 대한 호기의 폭증을 즐기며, 그 결말을 '짠'하고 책과 함께 완성하는 것. 어쩌면 그 것이 진정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처음에는 '밤의 피크닉'처럼 그저 나 혼자만의 소중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겠다는 다짐으로 읽기 시작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였지만, 어쩐지 이 기묘한 주문이 걸려있는 이 책을, 책 속에 나오는 가네코회장 처럼, 한번의 번식만으로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는 포자씨앗 마냥 퍼뜨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실제로 그럴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직 나만을 위한'이라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이 이야기를 즐겨보시길 바라며 서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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