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홀릭 - SBS 김영욱 PD, 내가 사랑한 피아노 명곡들
김영욱 지음 / 북폴리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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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기 이를 데 없이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 책입니다.
피아노를 물론이고 어떤 악기도 다룰 줄을 몰라 악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피아노 치는 남자에 참 멋있습니다. ...
작가는 피아노 치는 남자가 멋있는게 아니라 잘생긴 남자가
피아노도 치는 것이 멋있다고 하네요.
제가 늘 아들 녀석에게 “피아노 치는 남자는 얼굴까지 가지도
않는다. 피아노 치는 남자는 등도 멋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 10살짜리 초딩이 멋진 남자가 되기위해 열심히,
억지로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자는 전문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SBS 예능 PD랍니다.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를 프로마추어라고 한다는데 그런 류의
사람인 듯 합니다.
한가지도 제대로 하는게 없는 저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자가 직접 연주한 CD도 함께들어 있어서 듣기도 좋습니다.
음악과 같이 들이면 좋겠지만 읽는 속도와 음악과 맞추기가
쉽지 않아 CD는 차안에서 주로 듣는데 참 좋습니다.

피아노 음악이 좋은 줄을 알았지만 연대순으로 이렇게 정리해서
읽고 들으니 무척 고상해 지는 느낌입니다.

헨델,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라벨.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왔는데.. 이렇게 쫘악 한번 펼쳐서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새롭게 느낀 작곡가는 모차르트 였습니다.
섬세한 감정의 작곡가였다는 설명을 듣고나니 흔히 들었던 모차르트의 음악이 다르게 들렸습니다.
모차르트의 곡들은 마치 둥근 유리 공 같았습니다. 유리처럼
영롱하고 맑지만 어디 하나 빈틈없는, 그러나 작은 균열도 용납하지 않는 그런 음악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맑고 영롱하지만 마음이 졸여지는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D를 들으면서 제일 좋았던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였습니다. 제 취향에 딱 이었습니다. 헨델의 “사라방드”도 좋구,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좋았습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곡가는 에릭사티입니다.
딱 작년 이맘때 쯤 갔던 파리에 몽마르뜨 언덕에서 우연히 알게된
사티와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와 그들이 짧은 기간 살았던 작은 2층집. 그리고 그의 음악과 괴팍했던 삶. 벌써 1년 전이네요.
아직도 눈에 몽마르뜨 언덕이 생생한데.
사티가 연주를 했던 카페인 “검은 고양이”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0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카페가 있고 책에서 봤던 식당이 있고
그림에서 봤던 그 풍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일단 부수고 시작하는 우리에 도시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묻어버리는지 잠깐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취미라는 이름으로 다른
세상을 만끽하는 사람은 참 부럽습니다.

자신이 영위할 수 있는 세계가 많을수록 현재의 부딪히는 일에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는 것 같기두 하구요.
암튼 현재의 자신을 벗어나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부럽고
부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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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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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학자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독일 철학, 문학, 카톨릭
신학을 공부하고 그 곳에서 계속 계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책은 독일어로 쓰여졌고 김태환이란 분이 번역한 책입니다. ...
피로사회라는 책을 쓰신 그분의 책입니다.

우선 이책의 특징은 얇고, 비싸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벼워서 갖고 다니기는 좋습니다.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지만 정말 진도가 빼기가 쉽지 않습니다.

에로스의 종말, 제목이 에로틱해서 잡은 책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더라구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에로틱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아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랑입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이것만은 포기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권력 구조 안에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사랑이 무엇일까요?
작가는 사랑은 사랑안에서 내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란 타자 속에서 내가 죽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죽어 타자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랑이 결국 나를 구원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한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에.
그리고 당신 속에서 나를 버린 뒤에 나는 나를 되찾는다.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하므로”(page 59)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 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생경하게
읽힙니다.
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지배하고 장악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속에서 긍정성 삶의 압박이 얼마나 우리를 속박하는지,

결국 그렇게 삶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삶에서,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에로스는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생존하는 자는 살아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는 산송장과

비슷한 존재”라는 말이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모두가 비슷해 지기 위해 문화를 소비
하는 사회에서 과연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이런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이런 생각을 좀 더 일찍 했다면
이렇게 비루한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는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 모르고 사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만약 선택권이 있다면 삶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사는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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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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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관심은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은 작가 중 한사람인
"한강"작가의 책입니다. 작년에 출판된 책 입니다.
음~~ 이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깊은 고통"입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문장들은 덤덤하지 이를데
없습니다.
고통을 정제하기 위해 작가가 견뎌냈을 고통의 양은 얼마나
되었을지요. 여린듯 보이는 작가의 모습에 그녀가 겪을 고통이
배가 되는 듯 합니다.

주인공 소년은 동호입니다.
80년5월 그날. 동호네집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는 그 두려움으로 그 죄책감으로 그 미안함으로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습니다.

은숙은 공장에서 함께 노동 운동하던 성희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도청에 들어와 그날을 함께 합니다.
그날의 그 두려움에 그 죄책감에 그 미안함에 결국 세상속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되어 버렸습니다.

대학생 청년 진수.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책임졌던 인물.
그날 도청에 있었던 그는 많은 것을 목격하고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 진수는 결국 그날 그곳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면 자기 때문에 동호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에
그 죄책감이 그 미안함에 자기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죽은 정대, 원혼이 된 정대의 독백은 독특하기도 했지만
리얼한 묘사와 움직일 수 없는 몸의 이야기가 절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읽는내내 80년 5월 그날 그곳은 소설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
이라는 생각에 더욱 먹먹해 집니다.

볕좋았을 어느날, 그 당시 국민학교 1학년 쯤이었을 저는
아마도 엄마랑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희 부모님은 TV속 광주 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빨갱이들
탓을 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았습니다.

여전히 누군에 기억속에 살아 있을 동호와
여전히 동호를 기억하는 그의
가족들과, 이제는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때로는 더 아프게
소설로, 이야기로, 음악으로, 미술로 계속 변주되어
그 고통을 위로해 주고 치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아마도 그런 힘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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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삼국지 세트 - 전10권 이현세 만화 삼국지
이현세 글.그림 / 녹색지팡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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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주말 오후. 10살 초등 아들과 거실에 배깔고 누워 함께 본
만화책입니다.
“엄마 아직도 4권이에요?” “준서야~~ 6권 어디니?”
마루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보는 만화책은 재미가 쏠쏠하죠~~
10년도 훨씬 전 쯤 이문열의 삼국지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
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인물들의 특징이 너무 단편적인 것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은데 인물들의 성향이 일반화 되어 있어서
캐릭터가 좀 지루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다시, 그것도 만화책으로 읽으니 느낌은 다르네요.
세월이 이만큼 흘렸는데도 책 속의 인물들은 그대로입니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반가웠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제일 멋진건 조자룡이었습니다.
이현세 만화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조자룡은 “까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읽었던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같은 만화책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여전엔 적벽대전 같은 웅장하고 멋진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새롭게 와닿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사마의와 제갈량의 계속된 전투입니다.
제갈량은 한번도 진적이 없었지만 결국 졌고 사마의는 한번도
이긴적이 없지만 결국 마지막 승자가 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결국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걸까요?
제갈량의 재주도 하늘이 정해준 운명 앞에선 무너지고 마는 것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인물들은
재주는 뛰어나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들이었
습니다.
촉의 마지막 장수였던 강유같은 인물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제 사람의 의지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과 함께 삼국지 인물 맞추기 놀이도 재미있습니다.
“엄마 마등의 아들은 누구게요?” “마초”
“오호장군 중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게요?” “조자룡”

“유비가 자결하라고 한 아들이 있어요. 누구게요?”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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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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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시 한편
이번 겨울에는 “백석”시인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백석”을 알게된 건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시였습니다.
아마도 처음은 거의 같을 겁니다. 이만한 연서는 없을 겁니다.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1912년 생인 시인은 1936년 25의 나이에 첫 시집 ‘사슴’을
발표합니다.
시인의 시집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백석” 베껴쓰면서 시인을 꿈꾸게 되었다는 시인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은 마치 한권의 소설처럼 읽혀집니다.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의 모든 시를 한 권을 모은 것입니다.
번역처럼 달려 있는 주석이 작가의 노력과 정성을 알게합니다.
두권 모두 글을 쓰신 분들이 공들인 많은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런 책들이 좋은 일겁니다. 분명히.

“백석”의 가난한 어린시절, 일본 유학, 조선일보 광화문 결벽증
모던 보이,
유명한 자야 여사와의 사랑,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만주의 가난한 조선인, 북한에서의 시인.
그리고 삼수에서의 농사 짓는 백석까지.
여리고 날카로운 시인의 감성으로 우리 근대사의 가장 아픈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입니다. 날선 양복에 문조차
손수건으로 감싸 열었던 결벽증에 가까운 시인,
30년대 후반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의 모던 보이.
첫 시집 “사슴”에 쏟아지는 찬사. 20대 잘생긴 젊은 시인.
그러나 그의 찬란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40년 만주행은 창시개명을 강요당하는,
우리글로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었던 당시 상황,
그에 더해 일본의 전쟁에 참여를 선동하는 선동시를
발표하는 동료 시인들을 보며.
나름의 저항으로써의 선택이었습니다.

시집에 나오는 북한 사투리에서 오는 색다름,
잘 모르는 우리말들.
우리글의 폭을 넓게 확장하는 느낌들도 참 좋았습니다.

시집 “사슴”에 실린 글들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만주에서 쓰여진 시들이 참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가난한 시인의 바람드는 벽에 비쳐지는 늙은 어머니,
친구와 결혼한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하늘이 이 세상 가장 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만드셨답니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당나귀와, 프랑씨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처럼 “백석”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같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했다면 그냥 슬펐을 텐데 “높고”라는
단어가 전체의 격을 확 끌어올립니다. 시인의 문장이
이런건가 봅니다.
단어하나로 참새가 고고한 학이 되는 느낌입니다.

만주에서 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도 참 좋습니다.
구체적인 감정없이 묘사만으로도 가난한 목수의 집 겻방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시인의 슬픔과 외로움이 절절히 전해집니다.

저는 특별히 이 시집을 읽으면서 ‘여승’이라는 시가 가슴에 팍
박혀버렸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시인이 감성이라고 읽기엔 너무 처연합니다.
슬픈 비구니의 합장이 보여지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제일 슬픈 건 북한에 남아있던 “백석”입니다.
당시 월남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백석은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었고 당시 북한에서 월남하는 사람들은
당시 지주들이나, 친일파들었기 때문에 백석은 고향인
북에 남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백석은 북한에서 동시 몇편을 쓰고, 주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공산당이라는 거대한 독재세력에 가난한 시인의
저항은 시를 쓰지 않는 것이었던 같습니다.
그나마도 1961년이후 약 30년간 시인은 어떤 글도 발표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단 이후 1959년부터 시인은
양강도 삼수라는 지역(삼수갑산이라는 그 곳입니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화문 모던보이가 삼수갑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던 것은 시인의 개인사라기보다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약에 분단 이후 “백석”이 월남했다면 어땠을까요?
시인으로 문장가로 더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백석은 1995년 84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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