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데미안 (양장)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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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헤르만 헤세)

< 오지지널 초판본 표지라서 그냥 샀어요>

"엄마 이책 제가 읽어도 되요?"...
"그래"
"민서야 데미안 다 읽었니?"
"내일까지 다 읽어요. 너무 어려워요"
"수레바퀴 밑어서 엄마가 먼저 읽으면 안될까?"
"88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너 시험기간 이잖아. 엄마가 얼른 읽고 줄께"
"수레바퀴 밑에서가 훨씬 재밌네. 흥미진진하다"
"진짜요?? 얼른 읽어야지"

중2라는 사춘기를 헤엄치고 있는 우리딸에게
20세기 독일 아저씨의 위로와 응원이 힘이 되길 바랍니다.

<데미안>

중학교 땐지 고등학교 땐지 암튼 10대 후반쯤 읽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헤르만 헤세라 이름이 멋져보여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도통 무슨 얘긴지, 데미안과 싱클레어라는 이름 정도밖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으니 좋네요. 난 이만큼 어른이 되고 이제 늙는다는
얘기가 어색하지 않은데 책속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여전히
푸른 소년들이네요. 당연하지만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대학생이던 친구 언니가 읽던 '유리알 유희'라는 범접할 수 없던
두께의 책도 기억납니다.
마당이 예뻤던 친구네 집도 생각나네요.
그집 마당 무화과나무도...

다시 읽어도 어렵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요.
한가지 특성으로 인간을 규정하는 건 좀 바보같은 일입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밝은 집과 교활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까지 지닌 어두운 골목.
거기서 방황하며 성장하는 섬세한 소년의 이야기죠.

놀라운건 헤세가 40대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겁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이런 소년감성으로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네요.

데미안은 1919년에 쓰여졌네요.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쓰러져 갈때 저 멀리 이국땅에
한 남자는 이런 소설을 썼네요.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을 너무 어렵게 읽은 탓에 뒤로 미루어뒀던 책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렸습니다.
읽기는 '수레바퀴 밑에서'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전형적인 구조라서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한스 기벤라트'가 참 가엾고 쓸쓸합니다.
비인간적인 교육제도와 억업적인 기성세대라는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다 서서히 죽어간 소년.
무서운 건 1900대초 독일의 교육과 2017년 우리에 교육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섬세하고 똑똑한 한 소년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갑니다.
제 나이가 한스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한스를 바라보는
어른의 한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그냥 재미있는 소설로만 읽기는 좀
찔리는 것도 많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억압적인 기성세대가 되었을까요?
억압적인 기성세대 전문용어로 "꼰대"죠 씁쓸합니다.
얼마전 청년들이 어른들의 잔소리에 지쳐 입을 닫아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루를 여는 첫마디는 "아메리카노 주세요"랍니다.
언뜻언뜻 우리 아이들에게 '한스 기벤라트'라 비쳐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중2 딸아이는 키우는 엄마로써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조용히 지내기만을 강요하는 학교.
너무나 하고 싶은게 많고 즐겁게 지내고 싶은 15살 딸아이.
학교는 벌점으로 화답하고 엄마는 잔소리로 대답했네요.
숨쉴틈이 있었을까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15살 아이의 감성과 꿈을 너무 짓밟는 꼰대는 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벌점'문자는
정말 짜증납니다.

그래도 15살이 15살처럼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겠습니다. 사실 학교와 학원에 앉아만 있기는 좀
아까운 나이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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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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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작가이나 번역자의 이름이 "안정효" 이어서 읽은 책입니다.
1941년 생이시니 연세가 꽤 많으시네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나 "하얀전쟁"의 작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번역가 더 훌륭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번역가의 좋은 문장은 멋진 책은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멋진 신세계' 이야기
고통이 없는 세상. 공장에서 생산되는 사람들. 도덕은 낡은 구시대의 개념이 되어버린 세상.
출산은 물론 죽음까지도 통제되는 세상.
출산의 고통도, 늙어가는 초라함도, 육아의 고단함도 없는 세상
모든것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세상.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사랑까지도 공유하는 세상. 행복한 세상일까요?

고통이 없다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고통없이 사랑하고 늙지않는 세상.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고민없이 하루치 소마(마약같은 약)면 충분한 세상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뼈아픈 비판이 반짝반짝한 소설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1940년에 씌여진 것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더 지혜로운 건 아닌것 같습니다. 시대의 발전으로 좀 편리하게 사는 것 뿐이지요.

문명인이 문명인인지, 야만인이 야만인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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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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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go on. I'll go on"

작년 하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던 책입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죽음을 죽음으로 맞서지 않는
모습이 의연하기도 합니다.

문학을 전공하고 철학과 생물학, 과학을 공부하고 그 교차점인
의학 택해 의사가 된 폴 칼라니타.
전도 유망한 신경외과 레지턴트 6년차인 그에게 암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그 모든 상황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주인공의 자세가 숭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책은 죽음을 앞둔 36살 의사의 이야기지만 죽을때까지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죽음때 까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용감한 사람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죽을때까지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어 대해 생각해 보게합니다.

미리 포기하지 않고, 의미없는 희망을 갖지 않고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살아가는 것. 우리의 의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뒷 부분에 폴 의 아내 루시가 폴의 마지막까지 모습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폴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생명 연장을 위한 장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명이 있는 한
살아있는 사람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간 가족들과 눈을 마추고 미소를 짓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죽음을 마주합니다.
불치병에 걸렸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살아있는 것 뿐 아니라,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 찬란해
죽음이 너무 어두워져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잘 죽을 권리는 너무
침해 당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병이 나면 그때부터 병원을 전전하며 결국 병원 장례식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너무 비참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가 살던 집, 내가 자던 그 자리에서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공기속에서 좀 우아하게 이 세상과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 can't go on. I'll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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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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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배우는 사랑'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습니다....
딱딱한 철학책도 아니지만 달달한 감각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실존적??(도대체 이 실존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요) 고찰에 대한 이야기 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 사랑은 기술인가?
2장 - 사랑의 이론
3장 -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장 - 사랑의 실천

작가는 사랑의 실체를 이야기 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줄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아무리 가져도 모자란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난한 사람이다.
사랑은 일시적인 뜨거운 감정이 아니다.
둘사이의 사랑이라도 하더라도 그사랑은 확대되어야 한다.
확대되지 못한다면 그건 집착이다.
특히나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부모의 사랑을 형제애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집착적인 사랑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이고,
결단이며 행위이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듯 사랑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의 실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뿐 만 아니라 사랑도 자본화 해버렸다.
계산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이다.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한 것이
성숙한 사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태도와 하나님의 방식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 었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이야기 입니다.
사랑은 첫번째 조건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 투영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저의 사랑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사실 자신을 사랑하는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작가는 사랑을 인간으로써의 형제애, 엄마로써의 모성애,
사람으로써의 성애, 스스에 대한 자기애,
신에대한 사랑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모든 사랑은 자기애를 기반으로 인류를 향한
형제애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듯도 합니다.

'좀더 일찍 이런 책을 만났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제야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0.0001쯤 알게된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쉽게 소비되는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처럼 의미가 축소된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흔하디 흔한 "사랑"이지만 이 책은 읽는 동안은 저에겐 깊이 생각해본

화두가 되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본들 후회에 후회 뿐이지만요.

책 뒷 부분은 에리히 프롬의 생애를 그의 조수였던 라이너 풍크가
기술한 내용이 꽤 많은 분량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이너 풍크는 에리히 프롬이 자신의 이론과 기술을
실생활에서 얼마나 잘 실천했는지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담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절로 되는 줄 알았던 "사랑"이 쉽지 않네요.
더욱 무서운 건 나의 삐뚤어진 "사랑"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나의 무지" 입니다.
나의 무지를 새록새록, 절실하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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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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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첫문장만 알고있던 소설입니다. 국경이 국가와 국가의 경계선이 ...
아니라 일본의 현과 현의 접점을 일컫는 말이네요.
시마무라에게 터널은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 고마코와 요코가 사는
세계로 들어가는 국경이었던 같기도 합니다.

일본의 첫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도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시아에서 2번째 수상자일겁니다. 아마도.
(아시아 첫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인도의 타고르 라는 시인일
겁니다. 아마도.)

저명한 이름만 알고 있었고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서양 무용에 대해 글을 간간히 기고하며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행을 다니는 그야말로 한량입니다.

시마무라는 서양 무용에 대해 글을 쓰지만 정작 직접 본적은 없이
다른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고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글을 씁니다.
무용을 글로 보고 쓰는 거죠. 사마무라의 서양 무용에 대한 애정은
마치 요코를 향한 애정 같기도 합니다.
차장을 통해 비쳐진 그녀의 얼굴처럼 말이죠.

시마무라의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탐미적 본능, 그러나 모든것을
감싸안는 허무, 고독, 죽음의 그림자 이런 정서가 글의 전반적인
정서인 듯 싶기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소설이 이렇게까지 유명한 이유를요.
눈덮인 산골 마을에 순간순간 열정으로 뜨거워지는 게이샤 고마코.

청순하고 순수한 처녀로 상징되는 요코.
그 둘의 관찰자인 듯 지켜보는 시마무라. 이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결국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허무할수록 아름답다?? 헛됨의 미학???
아무래도 모르겠네요.

책 뒷 장에
'니가타 현의 온천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세 사람의 정염과 미묘한
감정 변화를 그린 [설국]은 아름자운 자연과 유한한 인간 존재,
정열과 허무 사이의 대비가 돋보이는 일본 최고의 서정소설이다.
명확한 플롯이 없는 대단히 모호한 작품이자 감각적인 문체와
우수 어린 묘사로 그 누구나 빠져들게 할 만한 명작이다'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모호한 작품인건 알겠는데 그렇게 빠져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는게 이 소설의 핵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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