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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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시 한편
이번 겨울에는 “백석”시인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백석”을 알게된 건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시였습니다.
아마도 처음은 거의 같을 겁니다. 이만한 연서는 없을 겁니다.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1912년 생인 시인은 1936년 25의 나이에 첫 시집 ‘사슴’을
발표합니다.
시인의 시집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백석” 베껴쓰면서 시인을 꿈꾸게 되었다는 시인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은 마치 한권의 소설처럼 읽혀집니다.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의 모든 시를 한 권을 모은 것입니다.
번역처럼 달려 있는 주석이 작가의 노력과 정성을 알게합니다.
두권 모두 글을 쓰신 분들이 공들인 많은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런 책들이 좋은 일겁니다. 분명히.

“백석”의 가난한 어린시절, 일본 유학, 조선일보 광화문 결벽증
모던 보이,
유명한 자야 여사와의 사랑,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만주의 가난한 조선인, 북한에서의 시인.
그리고 삼수에서의 농사 짓는 백석까지.
여리고 날카로운 시인의 감성으로 우리 근대사의 가장 아픈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입니다. 날선 양복에 문조차
손수건으로 감싸 열었던 결벽증에 가까운 시인,
30년대 후반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의 모던 보이.
첫 시집 “사슴”에 쏟아지는 찬사. 20대 잘생긴 젊은 시인.
그러나 그의 찬란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40년 만주행은 창시개명을 강요당하는,
우리글로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었던 당시 상황,
그에 더해 일본의 전쟁에 참여를 선동하는 선동시를
발표하는 동료 시인들을 보며.
나름의 저항으로써의 선택이었습니다.

시집에 나오는 북한 사투리에서 오는 색다름,
잘 모르는 우리말들.
우리글의 폭을 넓게 확장하는 느낌들도 참 좋았습니다.

시집 “사슴”에 실린 글들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만주에서 쓰여진 시들이 참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가난한 시인의 바람드는 벽에 비쳐지는 늙은 어머니,
친구와 결혼한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하늘이 이 세상 가장 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만드셨답니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당나귀와, 프랑씨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처럼 “백석”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같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했다면 그냥 슬펐을 텐데 “높고”라는
단어가 전체의 격을 확 끌어올립니다. 시인의 문장이
이런건가 봅니다.
단어하나로 참새가 고고한 학이 되는 느낌입니다.

만주에서 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도 참 좋습니다.
구체적인 감정없이 묘사만으로도 가난한 목수의 집 겻방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시인의 슬픔과 외로움이 절절히 전해집니다.

저는 특별히 이 시집을 읽으면서 ‘여승’이라는 시가 가슴에 팍
박혀버렸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시인이 감성이라고 읽기엔 너무 처연합니다.
슬픈 비구니의 합장이 보여지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제일 슬픈 건 북한에 남아있던 “백석”입니다.
당시 월남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백석은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었고 당시 북한에서 월남하는 사람들은
당시 지주들이나, 친일파들었기 때문에 백석은 고향인
북에 남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백석은 북한에서 동시 몇편을 쓰고, 주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공산당이라는 거대한 독재세력에 가난한 시인의
저항은 시를 쓰지 않는 것이었던 같습니다.
그나마도 1961년이후 약 30년간 시인은 어떤 글도 발표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단 이후 1959년부터 시인은
양강도 삼수라는 지역(삼수갑산이라는 그 곳입니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화문 모던보이가 삼수갑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던 것은 시인의 개인사라기보다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약에 분단 이후 “백석”이 월남했다면 어땠을까요?
시인으로 문장가로 더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백석은 1995년 84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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