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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ㅣ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평점을 매우 너그럽게 주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마지노선이라면 마지노선이라고 불릴만한 무엇인가가 있긴 있다. 별 네개. 그러니깐 5점만점에 4점.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 대해서는 4점을 주는 편이다. 바꿔 말하면 5점은 정말 좋아하는 책에 주는 것이다. 내 서재의 평점을 믿지 말라. 매우 주관적인 평점이고, 이 서재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거의 대부분의 과학분야, 특히 하드 사이언스 계열의 책에 두꺼운 천페이지가량 되는 책들은 거의 5점을 주는 편이다. 인문 계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나는 기본적으로 천페이지가 되는 책들은 4점을 깔고 시작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평점 매기기는 비판받을 여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뭐? 이 서재는 내 서재고, 내가 무슨 직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 자유롭게 끄적-거리려고 노력하지만, 수많은 자기검열때문에 끝내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곳이기에, 이런 조그만 자유는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굳이 조금만 사족을 붙이자면, 아무리 뻘소리라도 천페이지를 아무렇게나 채울 수는 없다. 물론, 아예 방향을 잘못잡은 책이라면 정말 가끔가다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천페이지 중 정말 일부는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이 섞여있다.
물론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닌 한, 뻘소리와 괜찮은 내용을 구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러다보면 대개 몇 페이지 읽다가 집어치우게 된다. 그리고 별점을 깎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다. 한 책을 다 읽고 평점을 매길때에는 관련되는 책을 같이 읽고, 어떤게 옳은 것인지 나름 판단을 내린 뒤 내리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이기적 유전자, 의 영향으로 선택의 수준이 유전자라고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집단 선택설에 관한 논문과 책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아예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칼 세이건이 자신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에 대하여 소심한 반항을 하는데, 사실 이기적 유전자론에서 본다면 칼 세이건은 매우 그릇된 오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 또한 칼 세이건이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 칼 세이건이 정말 이기적 유전자를 이해를 못했을까? 그걸 이해하지 못한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물론 열정적으로 이런 것을 권할 생각은 없다. 자신의 독서인생은 자신이 꾸리는 것인데, 내가 뭐하러 남의 독서에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겠는가. 사실 쓰다보면 이렇게 흥분해서 끄적거리지만, 또 얼마지나지 않으면 귀찮아지게 된다. 내가 신간평가단을 안한다면 아마 글을 거의 안쓸 것이다. 솔직히 내가 당장 하루 하루 꾸려나가기도 바쁜데.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공이 깊은 사람들이 비단 인터넷 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도 수면 밑에 잠수해서 잠들거나 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소설 분야에 한 발을 걸치게 되면서 약간 그런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긴 하다. 내가 요 몇년간 5점을 준 책들을 다합쳐도, 최근 요 몇달 만점을 준 책들 갯수랑 차이가 없다. 사실 내가 신간 평가단을 하면서 쓰려고 했던 방향은 요런 방향 http://blog.aladin.co.kr/760670127/7108252
이었고, 저 링크를 따라가보면 알겠지만 어설프게나마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요근래 내가 쓴 글은 저런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소설 본연의 가치, 아니 좀 더 말하면 그림과 사진과 여행의 차이에 가까울 것이다.
사진과 그림은 현실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고, 영영 그 현실에 가닿을 수 없는 공허를 당신의 마음에 남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여행을 통해서 그 현실에 도달한 순간 당신의 공허는 현실에서 받아들이는 인상과, 거기서 가공된 관념을 통하여 채워지게 된다. 그러니깐 여행가서 당신의 두 눈으로 열심히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사진만 찍는 사람들은 헛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부차적인 것이다. 당신의 안구에 뙇하고 광자가 부딪혀서 시신경으로 전달되어 전위차를 일으켜 뇌로 향하는 그 상황이 당신에게 진짜인 거다. 물론 상상으로도 당신의 마음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시신경에 도달하는 광자가 없고 그저 기준 준위 뿐이니, 당신의 마음 속의 커다란 구멍은 채워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설도 마찬가지다. 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냥 보라.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여기의 어딘가에 이성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데이비드 흄을 인용했던 것 같다. 결론은 여튼 중요한 것은 감정이고, 이성은 그저 거들뿐, 이라는 거다. 백날 논리를 통해서 논파해보라. 논파당한 사람이 당신의 말을 이해하는지. 이해는 무슨, 다음에는 다른 증거를 가져와서 당신을 이기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이길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무라카미 류의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몇 권 안읽어봤다. 잠깐 몇 권 나열하자면, 식스티나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코인 로커 베이비. 식스티나인은 좀 발랄하다고 치더라도, 다른 두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가 좀.. 읽기 거북한 작가인 것은 사실이다. 섹스, 폭력, 건조한 문체 등등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난 솔직히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식스티나인도 마찬가지였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참 중의적인 제목이구나 라고 떠올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도 보자마자 발랄한 표지와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55세 이후의 성생활을 다룬거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런데 왠걸, 무미건조한 야설이나 봐야지 - 그래, 나한테 무라카미 류의 이미지는 이런 느낌이었다 - 하는 심정으로 첫 몇 페이지를 넘겼는데, 이렇게 수작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식스티나인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의 두배, 아니 세배의 충격이랄까.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 무라카미 류가 맞아? 하고 저자를 다시 쳐다보기를 두 번이나 했으니 말이다. 역시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이렇게 바뀌는 걸까?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말그대로 55세 이후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실직을 하거나 명예퇴직을 했고 결과적으로 직장이 없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어떻게 다시 삶의 기력을 가져가는지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데, 글들이 대부분 호흡이 빠른 것은 아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이었기에 그럴 것이리라. 그리하여, 55세부터 헬로 라이프,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조금 다른 측면을 환기시키고 싶은데, 사실 저 서사구조, 실직하거나 기타 이유로 삶에서 유리된 상태의 사람이 ->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 다시 삶에서의 희망을 가진다, 라는 구조는 비단 주인공의 나이가 55세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주인공의 나이가 20세든, 30세든 소설의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측면이다. 류의 전작들을 - 앞서 말했다시피 많이는 읽지 않았지만 - 살펴보면 의외로 이 구조가 그대로 적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깐 류는 사실 바뀐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옛날부터 해오던 글쓰기를 조금더 온건하고 실생활에 밀접한 소재로, 말하자면 독자 프렌들리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 것 외에는 주제면에서는 동일하다. 부연설명하자면 대부분의 그의 소설은 마지막의 다시 삶에서의 희망을 가진다, 단계를 괄호로 묶어두는게 옳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환기시키고 싶은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20대의 청년 실업 부분이랄까. 사실 작가의 고국에서도 분명 취업은 쉬운 것이 아닌데, 단지 주인공이 55세였을 뿐이며, 이 55세를 20세로 바꾼다면 이 또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청년실업을 순간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효과도 있다. 아마도 이런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전에 류가 자극적이고 건조한 글쓰기에서보다 조금더 나아진 부분이 있으리라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이 책도 5점!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