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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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능 프로에 나와서 했던 유시민 작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정치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는 포털에 올라온 자신의 이미지 10년 치를 모두 검색해 보았다고 밝히면서 "내가 이 얼굴로 10년을 살았나 싶더라"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이 날카로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 보여서 더는 이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들려주던 작가는 이야기의 말미에 덧붙여서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일주일 동안 많은 사진을 찍어 서로 교환해 보라고도 권했다. 사람들은 평상시에 자신의 얼굴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 만약 타인이 찍은 사진 속의 자기 얼굴이 다 안 좋다면 직장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이 주는 느낌, 그것이 좋을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맞는 말이다. 이미 결정된 자신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불행하지 않을까 고민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법론 중 하나로 '감정수업'을 꼽고 싶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서툰 우리나라 국민이기에 '감정수업'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수용하는 것보다 실패한 관계에 분노를 쏟아붓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전에 받은 상처를 지닌 채 그 상처와 연관된 상실감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때, 당신의 분노는 슬픔으로 바뀌게 된다. 슬픔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p.90)

 

덴마크의 심리치료사 일자 샌드가 쓴 <서툰 감정 The Emotional Compass>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대책이 없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책이다. 더구나 되도록이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인 양 교육을 받아왔던 우리로서는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임계점에 이른 감정은 결국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폭발하고야 말 것이고 우리를 둘러싼 관계를 일시에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문제의 핵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해결 방안을 피력한다. 총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우리는 감정에 속고 있다, 2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3장 분노는 현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4장 분노는 전염성이 강한 감정이다, 5장 자존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습관, 6장 슬픔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과정이다, 7장 질투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8장 불안한 게 당연하다, 9장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10장 우리는 왜 끝없이 관계를 맺는가, 11장 설명하지 말고 느낌을 표현하라'의 순서로 인간의 감정 전반을 다루고 있다.

 

심리 치료사들은 대체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행복, 슬픔, 불안/두려움, 분노의 네 가지로 규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대체로 혼합되고 변형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의 강도가 약할 때에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사람은 갈등을 일으키는 게 싫어서 문제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겉으로 표출되는 행동이 우리가 예측하는 감정이 아닌 경우도 많다. 예컨대 울고 있는 여자가 단순히 슬퍼서가 아니라 겁을 먹거나 화가 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자가 화를 내는 원인이 분노가 아닌 두렵거나 우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감정은 그 종류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인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수업을 통해 감정의 종류와 원인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삶의 질 또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이유나 어떤 것을 원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말고, 당신이 느끼고 감지하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라. 상대방은 당신에게 훨씬 더 큰 공감과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굳이 자신을 설명하고 옹호하고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p.201)

 

감정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이런 감정을 느껴야겠군, 하면서 물건을 고르듯 골라잡을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형체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는 감정이라고 해서 버리거나 그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있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좋든 싫든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감정을 남들보다 더 크게 느끼며 사는 게 상책이다. 범사에 그저 무덤덤할 게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행복일지언정 크고 강하게 느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행복은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임을 <서툰 감정>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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