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하루였다. 말하자면 그렇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하늘은 온 종일 흐려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키가 큰 가로수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얼마 전의 폭염 속에서 나는 왜 이런 풍경을, 생각만으로도 시원했을 이토록 가까운 미래를 도무지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어두워진 허공에 가을을 닮은 두어 줄기의 애상이, 새로운 계절에 너무나도 쉽게 동화되는 옛추억의 회상이 낙엽처럼 흩날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오늘 있었고, 늘 그렇듯 고성과 막말 속에 잘 짜여진 코미디 각본처럼 마무리하는 의원 나리들의 뒷모습 속엔 한여름의 남은 열기가 펄럭였다. 그리고 지난해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른 조치로 일본 정부가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108억여원)을 출연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일 양국은 '외교적 현안'으로서의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수순을 밟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합의 반대를 외치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제1246차 수요집회는 빗속에서도 열렸었나 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난 코미디계의 대부 고 구봉서의 유언은 초가을의 연민처럼 가슴에 남는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이 많으니 절대 조의금을 받지 말고 그저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손바닥을 뒤집듯 너무나도 쉽게 8월이 가고 있다. 영영 오지 않을 듯하던 가을이,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9월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눈물 한두 방울과 서민들의 한숨이 흐린 하늘에, 저녁 어스름에 지문처럼 남는다. 가을의 애상처럼 8월 한 달이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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