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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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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곧바로 앉아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음식도 글도, 심지어 쉬지 않고 늘 하는 말도 숙성의 기간이 필요한 셈이다. 한 뼘 더 성장한다는 건 모름지기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나는 글을 쓰면서 배웠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밤, 내내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짝사랑의 연인에게 기나긴 편지를 쓸 때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서 요동쳐 두서없고, 바람처럼 허황한 말만 편지지에 남았던 그 밤이 지나고 나면 밤새 내가 썼던 편지는 얼마나 유치했는지... 이제 막 연인으로 발전한 풋사랑의 상대와 첫 데이트 약속이 있던 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앞뒤 재지 않고 횡설수설 하는 바람에 데이트는 엉망이 되고 가득한 후회만 안고 버스를 탔던 기억은 우리를 얼마나 주눅들게 했던지...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욕심이 조금 과했구나, 싶은 책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말하자면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그것을 갈무리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처럼 소양이 한참이나 부족한 독자가 그런 책을 읽을라치면 호흡은 가쁘고, 머릿속은 멍멍하고, 읽기 어려우면 당장이라도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악마의 유혹은 계속되고, 급기야 두 손 두 발 다 드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저자에 대한 원망만 한아름 쌓이곤 한다.

 

서정 작가가 쓴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도 내게는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었다. 작가의 기획 의도나 방향이 나빴다거나 글의 내용이나 문체가 좋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유럽의 문학이나 예술 또는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나와는 지적 수준의 차이가 명백한 작가의 글을 읽으려니 내 딴에는 여간 힘에 겨웠던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종의 여행기인 이 책에서 작가는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작가와 샤갈, 니콜라이 박 등 화가와 쇼팽이나 괴테, 고흐와 토마스 만, 카잔차키스 등 유럽의 변경을 따라 산재한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민스크 아테네를 두루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쫓아다니기도 했고, 반복하여 만나게 됨으로써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인물도 있었다고 말한다. 러시아 문학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푸시킨이나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와 관련된 내용이 너무 적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던 반면에 일리야 레핀 등 생소한 예술가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샤갈에게는 비텝스크도 파리도, 생폴 드 방스도 고향이 되는 동시에 그 어느 곳도 고향이 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실감이란 잃어버린 대상 때문에 잃어버린 자에게 찾아오는 텅 빈 마음일 텐데 그에게는 잃어지지 않는 고향이 이미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또 그는 그 위로 다시 채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벨라루스와 프랑스에서 마음속에서 반짝거렸던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에 불을 밝히고 있다." (p.182)

 

어떤 책이든 일단 손에 쥐면 다 읽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의 고집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루하거나 따분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젊은 시절에 읽고 그 뒤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토마스 만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공간과 함께 낭만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저자로 인해 나는 토마스 만을 다루는 그 부분의 글을 토마스 만의 실제 작품보다도 더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읽는 것에만 급급했던 토마스 만의 작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저자의 소개가 아니었더라면 내 기억에서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로코 열풍이 부는 가운데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한 채로 "밭에서 갓 딴 신선한 딸기"를 아주 맛있게 먹던 아셴바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삶에 생기를 잃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도시를 한 번쯤 탐할 만도 하다. 물론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베네치아에서의 첫 식사는 상한 조개가 들어 있는 봉골레였으니까." (p.322)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국 그리스가 소개되고 있다.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그 부분을 읽는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우천염천'을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지역이나 공간을 소개하는 데에도 그곳과 궁합이 맞는 작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처럼 불량한 독자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번번이 다른 작가를 기웃대는 것이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집적대는 바람둥이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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