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 - 이미 어른이 된 우리에게 ‘또 다른 어른’이 필요할 때. 92세 지(知)의 거인이 조언하는 '마흔 이후 인생수업!'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정환 옮김 / 책베개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별것 아니지만 제목의 절묘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던 책이다. 도야마 시게히코의 신작 에세이<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수 서유석의 노래 중에도 이와 비슷한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노래의 제목인즉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데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다. 그렇게 제목에 이끌렸던 책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자 책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92세의 노학자가 들려주는 '인생 이모작'에 대한 조언인데 참고할 만한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내용이 신선해서 좋았다.

 

"흉내 내는 버릇을 방지하려면 평소에 세상의 상식에서 한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반(反)상식'을 소리 높여 외칠 필요는 없다. 의식적으로 상식과 조금 거리를 두기만 해도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이 들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사고는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짠 끝에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걷기 시작한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실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다." (p.120)

 

이모작 인생을 직접 살아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구순의 노학자에게서 나온 풍부한 경험은 이모작 인생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조언을 제공한다.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적정 연령대와 자금 준비 방법, 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하는지,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는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나 인생 후반기의 독서법, 죽음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 등 저자는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 짤막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내 나이 올해로 아흔둘. '노후'라는 말을 의식한 뒤로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노후는 우리의 생각보다 길다. 이 기나긴 노후를 찬란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노후를 의식하기 조금 전부터 먼저 나 자신의 발로 걷자고 생각했다. 이모작 인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p.21)

 

자신도 언젠가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제로 그 사실을 의식하며 살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매시간 의식하며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의 삶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은 '불안'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불안은 막연한 추측이나 보험회사의 협박성 발언 등과 같은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불안심리 때문인지 시중에는 노후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쓴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지금도 여전히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읽었던 책들로 인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금과 보험에 의지하지 않고 내조나 효도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익힐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요리든, 취미든, 건강이든 말이다. 또한 인간관계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는 것과 노년의 독서법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달라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하면, 쓸데없는 독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독서가 자신의 지성을 높여주거나 사고를 깊게 해주리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단순히 지식을 꾸역꾸역 쑤셔 넣을 뿐인 경우가 종종 있다. 불필요한 지식은 오히려 두뇌 활동을 방해한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책에서 답을 구하게 되면 큰일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물을 모방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사고를 흉내 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p.134)

 

저자가 추천하는 중년 이후의 독서는 '자신을 뒤흔드는 지적 경험을 제공했던 책을 다시 음미하라는 것', '그것을 충분히 음미하며 읽는 미독(味讀)과 독자 사고를 반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때때로 공상에 잠기는 '베타 읽기'를 취하라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스님으로부터 책을 그만 읽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들었던 적이 한 번 있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뜻밖의 말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축에 속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맹목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스님이 내심 섭섭하고 수긍하기도 힘들었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스님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무엇보다도 자신의 판단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92세의 노학자도 그런 것을 염려하는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간다면 넉넉잡아 두어 시간이면 다 읽을 책이지만 되내고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 맛이 진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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