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잡문
안도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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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문학인들은 의외로 많았던 걸로 안다. 그것이 사적인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서였든, 자신의 평소 소신에 기인한 거였든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내보였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이문열과 같은 대표적인 보수 논객도 있었지만 김지하와 같은 의외의 인물도 있었다. 민주화의 상징처럼 추앙받던 그가 얼토당토 않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의아해 했었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속마음이야 본인만 알겠지만 그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조차도 뜬금없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다. 지금이야 물론 이문열이나 김지하나 공히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한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의 생각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이 시대의 문학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라면 누구나 시대의 부름에 자기 목소리를 내야 마땅하다고 나는 믿기에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소신을 대중에게 떳떳이 밝히고 지지든 비난이든 감수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할 말을 삼킨 채 눈치만 보는 것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안도현 시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재판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 후 시인은 시를 쓰지 않겠다며 절필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 책은 그렇게 시인이 시를쓰지 않고 지내던 시기에 트위테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을 향한 시인의 넋두리인 셈이다. 시인의 감성이란 게 어디 안 쓰고 묵혀둔다고 녹이 스는 것도 아니요, 타고난 재능이란 게 때가 되면 멀리 달아나는 것도 아닌지라 시인의 글은 어느새 시가 되고 시인의 그 짧은 글에 독자들은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를 읽는 '너'에 의해서 결국 완성된다." (p.26)

 

우리는 이따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욕심내고,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들을 쉽게 버리는 탓에 세상은 언제나 낙엽처럼 불만만 쌓여가고, 누군가 소망하는 어떤 것을 거들먹거리며 하찮은 것인 양 비하하는 습성 탓에 세상은 온통 잘난 놈들만 득시글거리는 듯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할 것인가. 시인은 시를 쓰고, 영화인은 영화를 만들고, 삶을 짓는 모든 사람들이 또 그렇게 삶을 지을 밖에.

 

"낙엽을 보며 배우는 것 한 가지.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 것. 떠날 때 보면 안다." (p.17)

 

시인의 심정을 대변하듯 시인의 글에는 '울음', '시', '햇빛', '비', '꽃' 등 일정한 단어들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시를 쓰지 않는, 또는 쓰지 못하는 시기에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은 문득 시로 향하고, 꽃으로 향하고, 더없이 맑은 햇빛으로 향할 터이지만 그 심정 달랠 길 없어 비처럼 울음 우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겠다. 박재삼 시인의 시집에는 그리움처럼 '누이'와 '바다'가 반복되는 것처럼...

 

"이 못난 세상을 울음으로 들이받지 않으면 여름을 건너갈 수 없어 매미는 운다." (p.98)

 

시인은 마음이 심란하여 시를 쓰고, 독자는 또 마음이 심란하여 시를 읽는다. 지상낙원이면 시인들 무슨 소용이며, 시인인들 무슨 필요가 있으랴. 세상이 하도 억울하고 어수선하여 마음결에 고운 빗질할 시가 그립고 나 대신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줄 시인이 필요한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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