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주의 : 아랫글에는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비속어가 섞여 있으니 아이들의 교육에 저해된다고 판단하시는 분은 읽지 말 것을 권함.)

 

다른 사람의 말을 설렁설렁 듣다가 혼쭐이 났던 적이 몇 번 있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학교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닌데 이따금 멍 때리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는 게 더 쪼잔하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고, 그렇게 집중이 안 되면 '내가 지금 집중할 수 없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할 것이지 왜 그런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느냐, 는 게 아내 생각이다. 흠,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닌 듯싶다. 내 변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이렇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할 때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아무리 듣기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꾸역꾸역 들어주는 편이다. 양념 삼아 이따금 멍 때리거나 딴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 앞에 함정이 있어"라고 주의를 줘도 "그건 당신이 가는 길이니까 그렇지"라고 귀담아 듣지 않다가 함정에 빠지고 나서야 "아, 그 사람이 말한 대로잖아!" 하고 깨닫는다. 아집이 강한 것이다. 천재라면 아집이 강해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해서 결과를 낸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집에서 출발해 결국 통념으로 귀결한다. 그리고 전부 내 잘못이야, 라고 반성한다. 그런 일이 내 인생에는 숱하게 많다. (p.168)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오랜 무명 생활과 강한 자의식으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개그맨이 되어 세상과 만났을 때의 문화적 충격은 남달랐을 것이다. 2009년과 2010년에 방송 출연 횟수 1위를 기록하였고 그 후 저자는 월간 잡지 <다빈치>로부터 칼럼 연재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인 2학년'이라는 제목으로 그때 썼던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는 법은 없다. 아니, 어떤 행운으로 인해 그 자리에 오를 수는 있어도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내기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도 벼락출세를 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언제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짧은 순간에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예컨대 도박이나 음주운전, 성추문, 폭력이나 막말 등 그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결국 그는 그 자리를 유지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본인도 자신의 능력에는 버거운 그 자리가 심히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런 부담이 행동으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수업을 빼먹고 공원에 앉아 있곤 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벤치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란 의외로 어렵구나. 좋아, 더욱 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보자!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버렸잖아! 바보, 생각하지 말자니까!'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p.58)

 

나도 학창시절에는 저자처럼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발표할 사람 손들어 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앞장서서 따라본 적도 없었고, 누군가 등 떠밀어 발표를 시킬까 봐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선생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연단에 나설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물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어찌나 심장이 두근대던지 혹시 이러다가 내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와 내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랐다는 것이다. 형제가 여럿인 집에서 자란 탓일 게다. 이 사람한테 까이고, 저 사람한테 욕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치만 늘어난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회에 나가면 꽤나 유용하게 쓰이는 건 확실하다.

 

눈치가 없는 저자는 딱히 취미라고 말할 게 없어서 애먹고, 술자리에서는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타박이나 듣고, 너무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가 지적이나 당하고, 평화롭고 한가한 시간에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고 도무지 대책이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한테 차이고 저 사람한테 핀잔을 들으면서 저자는 이제 '사회인대학교'의 졸업논문을 쓸 위치에 올랐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의 경험에 실없이 웃다가도 그 일이 마치 내 지난 날의 모습과 닮은 듯하여 짠해지기도 할 것이다.

 

" '나를 바꾸는 책'을 읽은 후에는 내용을 의식하고 있어서 3일 정도는 달라지지만, 일상에 젖어 지내면 곧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는다. 성격이란 형상기억합금과 같아서 타고난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된 점이 '나를 바꾸는 책'을 읽은 수확이었다." (p.81)

 

사회에 진출하면 저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미리부터 조금씩 준비하거나 선배들로부터 몇 가지 요령을 배운다 한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만큼 좋은 선생님도 없다. 다만, 어렵고 힘들다 하여 징징거리거나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저자처럼 누구나 사회인대학교의 졸업논문을 쓰는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기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의 문제이다. 내 경험으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중 하나만 택하라면 나는 '글쓰기'를 택하고 싶다. 나를 돌아본다는 것, 객관적으로 나를 살피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저자도 그랬을 듯싶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신을 차분히 살펴보고 그 요령을 하나하나 터득해갔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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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9-10 19:31   좋아요 1 | URL
아무리 읽어봐도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비속어”는
섞여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
제가 너무 ‘센스’가 떨어지는 건가요?
이거이거 댓글 달면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들통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엉~ㅋ

꼼쥐 2015-09-11 12:09   좋아요 0 | URL
`멍 때리다`나 `까이다`라는 단어는 사실 비속어이죠. 요즘 아이들도 많이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바람직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까이다`라는 단어는 표준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죠. 다른 뜻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ㅎㅎ
쓰고 보니 답변 치고는 제가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아요. 다 웃자고 하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