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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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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더없이 멋진 말로 정의하였지만 나는 그 중 "여행은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향해 간다."는 루이 페르디낭 쎌린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저서 <밤 끝으로의 여행> 도입부에 나온 말입니다. 여행은 삶의 저편에 속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 쎌린느의 정의는 나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지만 때로는 현실과 아주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온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붙잡힌 채 살다 보면 여행은 한낱 상상 속의 그 무엇이 되곤 합니다.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던 후지와라 신야의 고백에 비추어 보면 나에게는 아직 삶의 온기가 조금쯤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요즘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게 해외여행이라지만 실상 떠나고 싶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차를 몰고 휑하니 떠난 주말여행이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여행 서적을 읽으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는 게 고작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때로 잊혀진 꿈이자 로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의 <떠나는 이유>를 읽었습니다. 황금같은 주말에 말입니다. 내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쯤 되지 않을까 싶은, 서글픈 기류가 듬성듬성 떠다니는 주말 오후에 작가와 함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마음 한켠에는 '언젠가는 나도...' 하는 옅은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밥장의 여행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의 책은 처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이런 저런 책을 여러권 집필한 인기 작가인 모양인데 왜 나만 몰랐던 것일까요. 작가는 꽤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더군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에 빠져 아티스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네요. 여행 마니아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가 뽑은 여행의 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홉 가지 키워드는 '행운, 공항 + 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입니다.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은 타바론 차는 티 소믈리에가 여러 가지 차를 섞어 그 손님만의 향을 만들어주는 차라고 합니다. 저도 '장소'라는 재료를 섞어서 저만의 여행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밥장만의 블랜딩으로 만들어낸 여행의 맛과 향에 가깝습니다." (p.21)

 

열거한 키워드만 보더라도 이 책의 내용을 대강 어림할 수 있겠지요? 그 중 방송과 나눔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미 EBS <세계문화기행>을 비롯한 몇몇 여행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마도 방송 큐레이터로서의 욕심보다는 타고난 여행 DNA의 촉수가 여행을 도와줄 여러 분야의 냄새를 맡고 그곳으로 뻗어가도록 부추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저자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꽤나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내전이 일어나 갈 수도 없는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눔' 편에 잘 드러납니다.

 

"중세의 수도사 테오필루스는 예술가의 재능이 질투라는 지갑과 이기심이라는 창고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술가 역시 자신의 재능을 기꺼운 마음으로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예술이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은 가난하더라도 예술을 많은 이들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재능나눔으로 벽화를 그리러 가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조용히 지켜보다 한마디 툭 던집니다. 그 말을 들으면 다시 힘이 솟아납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더라."" (p.289)

 

각 챕터의 끝에 수록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에는 작가가 각각의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소개하고 있는데 언급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수록해 놓은 것도 이채롭습니다. ' 어떻게 일상과 떨어져있으며, 또한 일상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여행이다.'라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온도가 임계점 이하로 내려가거나 미지의 세상으로부터 '먼 북소리'를 듣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배낭을 꾸려 홀연 그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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