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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엔딩 크레딧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우주를 구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금언과 함께 시작된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엔딩 크레딧을 본 후 나는 길어야 3분을 넘지 않는 엔딩 크레딧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제가나 테마음악과 함께 영화 제작을 위해 수고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을 소개하는 엔딩 스크롤(scroll)을 보면서 영화의 마지막을 차분하게 음미하거나 영화의 감동을 되새김질하는 그 잠깐 동안의 여유는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필수도구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영혼의 편지처럼 읽힌다.

 

그러나 아직은 어둠 속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흘러가야 할 그 시간이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엔딩 스크롤이 뜨자마자 퇴장을 다그치는 듯 실내가 밝아지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는 관객들로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영화의 감동이 채 가슴을 적시기도 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런 경험들은 유쾌하다거나 기쁜 일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영화의 감동마저 경감시킨다.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거나 독서 토론에 참석하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엔딩 크레딧을 보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기듯 각자의 관점에서 소설을 해석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주고,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즐겁지 않을까 생각되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이후 독서 클럽이나 주말 독서 모임에 나가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 두 사람의 대화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공감해요. 결국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게속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런 오해도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오해야말로 우리가 결국 겪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p.69~p.70)

 

이 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메인 테마 도서로 다루었던 80여 권의 책 중 청취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외국 소설 7편을 엄선하여 방송 내용을 다시 글로 옮겨 정리하고 보충한 책이다. 나는 사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도서를 테마 주제로 선정했는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설 7권은 익히 읽어본 책이었던지라 때로는 무릎을 치며,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 시작하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로 이어지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끝맺는다. 나는 이 중에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뺀 나머지 6권의 책에 대해 리뷰를 썼었다. 사실 <파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엄청나게 지루함을 느꼈던 터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소설 초반에 파이가 카톨릭 신부를 찾아가 계속 질문을 던지잖아요. 신은 왜 그랬고 신의 아들은 왜 그랬는지 의문을 갖지만 신부는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하구요. 저는 사랑과 믿음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일단 사랑하게 되면 믿게 되는 거죠. 저 역시 종교는 믿어야 이해하게 된다고 봐요." (p.230)

 

이 책에 선정된 7편의 소설이 각각의 작가가 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따로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는 명작이고 작가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체실비치에서>나 <암스테르담>을 더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이동진 작가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해변의 카프카>를 김중혁 작가는 <땅속 그녀의 작은 개>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두 명의 작가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때로는 일반 독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분야로 안내하여 책을 읽는 독자를 곤혹스럽게 할 때도 있지만, 책의 저자와 소설의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가 하면 '내가 뽑은 문장'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설 속 최고의 문장을 소개하고 있다. 대담집이라는 게 대체로 산만하거나 주제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계적으로 기술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작가에게 나는 대체로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그 중 무라카미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는 광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인지 하루키 작품의 평에 있어서 '평행우주'론은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행우주에 관한 생각을 지금 막 떠올린 것은 아니구요, 이 책을 읽다가 느껴진 것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행우주에 대한 신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키는 시간에 관한 문제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때 없어진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다른 차원에 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놀라운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을 구분할 때 평행우주에 대한 생각을 적용하는 것 같아요. 화자를 계속 엇갈리게 넣는다든지 하면서요. <1Q94>가 전형적으로 그렇고 <태엽 감는 새>도 일부분 그렇고 <해변의 카프카>도 그랬거든요." (p.311)

 

나는 지금껏 한 명의 작가에 의해 씌어진 독서 일기나 비평, 혹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주로 읽어 왔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어느 블로거의 리뷰에 댓글을 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체적이면서 신선하다. 게다가 자신도 이미 다 읽었던 책이라면 그들 옆에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든다. 독서 토론은 그야말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감동을 되새기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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