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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그 근거가 너무도 빈약한 탓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내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예상을 하고 로또의 1등 당첨 확률보다 못한, 우연에 가까운 적중률에 환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의 빗나감 때문에 실체적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도 아니요, 예상의 적중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오직 현실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자신이 제시했던 예상의 근거를 작은 목소리로 수정함으로써 변명에 가까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예상치 못했던 현실에 대처하는(아니 '반응하는'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일이기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줄리언 반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아내 팻 캐바나의 죽음이었지만 그는 이 책에서 개별적인 (팻 캐바나의)죽음과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비탄의 모습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삶의 보편적인 패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했던 최세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세 이야기의 묶음이다. '비상의 죄(하늘)', '평지에서(땅)', '깊이의 상실(지하)' 이라는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 세 개의 수직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원제 'Levelsof life'는 직역하면 '인생의 층위들'이다.) 층위가 다르고, 장르적 성격이 다른 세 이야기는 대동소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의 것들을 하나로 합쳐보라. 그때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한 가닥 실처럼 세 이야기의 바늘귀를 관통한다." (p.200)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19세기의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아마도 저으기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캐바나에 대한 회고록 성격의 책이라는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던 독자라면 의아한 마음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아내와 사별하여 비탄에 잠긴 작가와 기구 또는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과의 연관성이 전혀 짐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장에서 작가는 기구를 타고 '신의 영역'인 하늘로 비상하여 '땅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던 나다르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 에르네스틴을 사랑했던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땅 위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2장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기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사랑의 패턴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인 장교 프레드 버나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질적인 두 보헤미안인 사라와 프레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함으로써 함께 기구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기구가 그렇듯 추락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쾌락을 찾아 헤매는 사라와 사랑의 완성을 원하는 프레드의 만남은 처음부터 추락을 염두에 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p.93)

 

3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들리지 않는 위로의 말들과 그다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비탄에서 벗어나는 여러 방법들 역시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상실의 고통은 삶의 층위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땅을 딛고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의 영원한 단절, 비탄에 잠긴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기준이 확실하게 바뀌도록 만든 냉엄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상실의 사마''(무풍지대인) 무심의 호수' '(말라서) 황무지가 된 강' '자기연민의 습지' '기억의 (지하) 동굴' 등을 표시한 17세기 지도와 흡사한 그 지도에서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p.138 ~ p.139)

 

구름을 뚫고 하늘로 비상한 기구처럼 삶의 층위가 갑자기 변했을 때,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땅의 고저를 가늠하는 일도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만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자조적인 무기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건, 벗어날 수 없는 비탄의 강정이나 혹은 구름을 벗어난 행복의 감정에 충만하건 그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우주의 진행은 무심히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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