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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달 이맘때쯤에 비하면 밤이 딱 내 손바닥 길이만큼 짧아졌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밤은 시나브로 제 길이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침 산행길에서였습니다.  짙은 어둠이 깔린 산을 오를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는 이른 시각이었고, 어둠 속의 숲은 제 모습을 감춘 채 그저 고요 속에 잠들어 있었으니까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불현듯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내게 갑작스러운 밝음이었습니다.  마치 다 익은 감이 뚝하고 떨어지듯 내 앞에 펼쳐진 하루의 아침은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맞는 아침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 느닷없음에 잠시 망연하였습니다.

 

아침의 느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느낌을 품은 채 정철의 <인생의 목적어>를 읽었습니다.  밝음 속에서 또렷하던 숲의 나무와 꽁지를 까딱거리며 밝게 우짖던 까치의 모습처럼 낱글자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카피라이터인 작가에게 글자는 그토록 느닷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작가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신선한 느낌은 나만의 것이었을까요?  아무튼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식이다.  엄마나 아빠가 아닌 사람은 있지만 자식이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는 안다.  자식들은 안다.  거의 모든 부모의 인생의 목적어가 바로 자식이라는 것을."    (p.244)

 

카피라이터는 분명 한 글자 한 글자의 낱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쓰는 카피는 유려한 문장보다는 톡톡 튀는 발상과 일상의 권역에서 벗어난 낱말들의 생경한 배열을 추구하는, 하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쉬 잊혀지지 않게 하려는, 소망을 담은 그들의 기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갈고 닦았으면 낱글자 하나하나에서 저토록 반짝이는 윤기가 날까요?

 

"달래 준다 해서 달이다.  어두운 곳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을 따뜻한 빛으로 달래 준다 해서 달이다.  달동네란 달이 유난히 가까이 내려오는 동네, 달빛을 누구보다 환하게 받는 동네라는 뜻일 것이다.  지구 밖에 사는 달도 이렇게 어두운 곳을 향하는데 지구 위에 사는 당신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바라볼 생각은 없는가."    (p.322)

 

설문을 통하여 찾았다는 인생의 목적어.  설문에 대답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50개의 인생의 목적어가 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겨있었습니다.  누구든 이 단어들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엮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 정철만큼 새롭게 바라볼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비슷비슷한 의미의 나열은 달력에 적힌 하루하루의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가 느꼈던 오늘의 아침은 그 달력에서 폴짝 뛰어 나온 살아있는 아침이었습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좋은 책이란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믿는다,가 잘 안 되면 믿어 준다,로 시작해 보세요.

믿어 준다,가 얼마 후엔 믿는다,로 바뀝니다."     (p.143)

 

언젠가 박경리 작가는 말하셨습니다.  "왜 쓰는가?" 하는 질문은 "왜 사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죠.  한 작가의 글에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의 정도와 색의 질감은 천차만별일 듯합니다.  단순히 글이 딱딱하거나 화려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글 속에 담겨진 작가의 마음이 문제겠지요.  '글'이란 결국 '그를 향한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철 작가의 독자를 향한 마음은 봄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들었던 까치의 울음 소리가 여직 생생합니다.  좋은 소식이 오시려나 봅니다.  소한, 대한도 다 지나고 이제는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작년 겨울에 비하면 올 겨울은 너무도 허술했던 겨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동장군을 제가 미처 보지 못한 탓일까요?  봄처럼 포근했던 오늘, 나는 정철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따뜻한 온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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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25 13:26   좋아요 0 | URL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꼼쥐 2014-01-30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