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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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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무, 풀 모두가 가을을 예감하는 기운을 머금고 있을뿐 아직 본격적인 가을의 현란하고 강렬하고 환희에 찬 색들을 펼쳐 보이지도 않았음에도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색채를 띤 적이 없는'듯한 가을이다.  나는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쯤이면 습관처럼 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젊은 시절에 남편을 여의고 아들의 그늘에서 더부살이를 하셨던 나의 할머니.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도 언제나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던 억척스러운 분이셨다.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고 온종일 술에 절어 살아갈 때에도 날품을 팔아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을 챙겨주시곤 했다.

 

언제였던가, 쫓기듯 서울로 이사를 했던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탄식처럼 말씀하셨다.  이제는 당신이 죽어도 묻힐 땅 한 뙈기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고.  나는 그 말 속에서 할머니가 진정으로 아쉬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첩첩산중의 산골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은 농사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 탓에 고만고만한 나이의 어린 형제들과 일밖에 모르셨던 어머니, 자식의 방탕을 당신 탓으로만 돌리셨던 할머니는 종일 밭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된 농사일에 지칠 법도 하였건만 할머니는 틈틈이 꽃을 가꾸셨다.  꽃씨가 귀했던 당시에도 할머니는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코스모스, 해바라기, 해당화 등 여러 꽃씨를 잘도 구해 오셨다.  변변한 정원은 고사하고 빈터도 마땅치 않았던 시골집에서 할머니는 꽃을 심을 자리를 어쩌면 그렇게 잘도 골라내셨을까.  담장 밑, 장독대 주변, 화장실 가는 길,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물을 길어 먹었던 실개천 옆의 샘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길 양옆으로는 코스모스가 가득했고 뒷열에는 듬성듬성 키 큰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었다.

 

나는 가을 햇살이 뽀얗게 내려 앉던 그 코스모스길과 깨끗하게 비질 된 마당 한 켠에서 시들어가던 봉숭아 꽃잎을 생각하며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었다.  정갈한 머릿결처럼 비질 자국이 선명한 그 길을 유년 시절의 내가 꿈결처럼 걷고 있다.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꽃잎의 리듬에 맞춰 나는 그 길에 작은 발자국을 얹고 있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을 때 나의 할머니가 잃었던 것은 어쩌면 철마다 꽃을 피우던 그 작은 꽃밭이었는지도 모른다.  꽃을 가꾸면서 잠시 잊을 수 있던 삶의 시름과 자연 속에서의 무한한 위로를 어린 손자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으리라.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온다.  이런 능력은 원래 누구나 타고났으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왜곡되고 잃어버린 채 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작은 기쁨은 이른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눈에 띄지도 않고 일상생활 속에 흔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만 열중하는 수많은 사람의 둔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가장 아름다운 기쁨은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p.71)

 

나의 할머니가 그랬듯 헤르만 헤세도  일생 동안 그리고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꼭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다고 한다.  작가이자 화가이고 한때는 포도농사로 생계를 꾸렸을 만큼 솜씨 좋은 원예가였던 헤세가 31~77세 사이에 자연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이 책에서 그는 간결하고도 투명한 문체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에게 정원 일은 혼란과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었고 작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청량제였다.

 

"미국 취향으로 변한 현대인들의 음악성이란 건축을 소유하는 것 이상이 아니고, 반짝거리는 니스 칠이 된 자동차가 아름다움의 세계에 속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거든.  그런 것에나 만족하고 즐기는 반쪽자리 인간에게 시험 삼아 예술수업을 한번 해보게.  꽃이 시드는 것, 장미가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온갖 생명과 모든 아름다움의 비밀로서 함께 체험하도록 가르쳐보게나.  그들은 아마 놀랄 것이네! "    (p.97 - p.98)

 

독자들에게 위대한 작가의 글일수록 극과 극의 평가가 내려진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이 책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그렇게 읽혀지고 또 그런 평가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작가가 깨달았던 진리의 깊이를, 작가가 누렸을 삶의 평화와 그 크기를 독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자연이 주는 커다란 기쁨과 환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라져가는 계절의 모습을 글로, 그림으로 하나라도 더 남겨두지 못해 아쉬워했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글은 손자들의 행복한 삶을 그렇게도 갈망했던 내 할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나는 이 가을에 내 유년의 그때로 되돌아가 코스모스 물결이 일렁이던 그 길을 온종일 걷고 싶다.  가을 햇살이 부서지던 애기 젖살처럼 뽀얀 그 길에서 돌아가신 내 할머니와 긴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밤이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도 싶고, 까르르 웃고도 싶다.  삶이 지나치게 빠른 도시인의 일상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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